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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무게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0년 7월
평점 :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현명한 선택은 행복으로, 어리석은 선택은 불행으로 인도한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현명한 선택보다는 반대의 것을 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고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도 매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엉뚱한 선택을 하더라도 때로는 전화위복으로 좋은 결과를, 때로는 설상가상으로 나쁜 결과를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시행착오라는 말이 있듯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결국 좋은 결말을 얻는다고 굳게 믿는다. 『침묵의 무게』의 안토니아, 벤, 칼리 역시 행복으로 향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복잡했지만 다행스럽게 행복한 마무리를 짓는다.
어느 날, 절친한 친구인 칼리와 페트라는 각자의 집에서 실종된다. 두 소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경찰과 부모는 백방으로 찾아다니고 칼리의 오빠인 벤도 여동생이 자주 갔던 집 앞의 숲을 정신없이 뒤지고 있다. 경찰은 용의자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쉽사리 지목할 사람이 없고 시간이 흐를수록 소녀들의 부모는 피가 마른다. 『침묵의 무게』는 두 소녀의 실종일 단 하루와 등장인물이 회상하는 과거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실종이라는 급박한 소재 덕분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이야기이다. 또한 『침묵의 무게』는 작가가 표현한 '침묵'의 잔인함에 대하여 여러번 숙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안토니아는 벤과 칼리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이다. 벤이 학교에서 줄행랑을 치고 돌아왔을때나 교장실로 불리워갔을때, 아이에게 무작정 혼을 내기보다는 진심으로 믿어주는 모습으로 안토니아는 보통 엄마들과 다른 행태를 보여준다. 단 한가지만을 제외하고 부모자격 시험을 치른다면 그녀는 상위권에 해당될 수 있을 정도의 좋은 엄마이다. 하지만 술주정뱅이 남편의 폭력 앞에 '침묵'한다는 것이 바로 안토니아의 수많은 장점을 단번에 지워버리는 단 하나의 크나큰 문제이다. 남편 그리프의 폭언과 폭력은 안토니아와 그녀의 어린 아이들까지 상처를 입힌다. 또한 임신 7개월째의 태아마저 가정폭력으로 유산되었고, 그것을 목격한 4살 된 딸 칼리는 그날 이후로 입을 다물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녀는 이미 결단을 내렸어야 한다. 하지만 안토니아는 어렵고 힘든 결단보다는 간단하고 쉬운 침묵을 선택한다. 나는 그녀의 처지가 안쓰럽고 불쌍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의 안일한 대처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대목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 작품의 원제 역시 『The Weight of Silence』이다. 이야기 초반에는 말을 하지 않는 7살 칼리의 침묵에서 기인된 제목이라 여겼다. 하지만 중반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지자 '침묵'은 칼리가 아닌 안토니아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술주정뱅이 남편의 폭언과 폭력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은 채, 그저 그 상황을 잠깐 잠깐 모면하고자 하는 임시방편적인 회피와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녀의 이런 대응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상처를 점점 곪아가게 만들뿐이었다. 결국 안토니아의 '침묵'은 간접적으로 어린 벤과 칼리에게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줘버린 격이 된 것이다. 다시 찾은 딸의 얼굴을 마주한 뒤에서야 안토니아는 자신의 '침묵'이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고 반성하다.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독자에게 진정으로 전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다.
이제 안토니아는 침묵의 무서움과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노란 색으로 집을 색칠한다. 이는 그녀와 벤, 그리고 칼리의 행복으로 향하는 첫발걸음을 의미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그들에게 행복한 햇살이 비춰지니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침묵은 더 이상 금이 아니다. 안토니아의 침묵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금은 침묵이 아니라 소통이 금이라는 사실을 되뇌이며 『침묵의 무게』를 홀가분하게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