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이 글은 만남이 펼쳐지는 장마다 작은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문장이 매력적인 글 이였다.

애니메이션 감독이 써내려간 글이라서 일까?  

그들의 일상이 마치 영화속 한 장면처럼 떠오르게 만드는 부분이 제법 많다.   사실, 신카이 마코토의 다른 작품을 봐도 평범한 일상조차 예쁘게 표현 해놓은 점이 따뜻해서 좋았기에 나는 [언어의 정원] 역시 좋다.

 

글은 아키즈키 타카오 라는 평범한 소년과 그 주변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과 고민을 각자의 입장으로 잔잔하게 보여주는 형식이다.

한부모 가정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 하는 쇼우타, 가출을 일삼으면서도 중년 여성의 고민을 끌어안고 있는 레이미, 아무 탈 없는 보통의 일상에서 느닷없이 상처를 안고 공원을 찾는 유키노.

 

 

비 내리던 그날 밤.

10년도 전에 히나코 선생님이 했던 그 말.

선생님은 그때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 당시로 거슬러 간 것처럼 선생님의 마음이 똑똑히 보였다.

 

- p63. 본문. <유키노>

 

---------------- 중략 ----------------------

 

모르는 사이에 우리 모두는 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건강한 어른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누가 우리를 선별할 수 있을까.  

 

-p 64 본문. <유키노>

 

부드러운 발소리, 천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것, 사람에게는 누구나 조금씩 이상한 면이 있다.  중에서...

 

 

세상 밖이 아니라 세상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찬란한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서 그 바람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듯 보였다.   이대로 다른 이들처럼 야무지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예고 없이 쏟아진 비처럼 피할 수 없는 무엇인가에 휘말리고 있었다.

 

- p  320 본문. <유키노 유카리와 아키즈키 타카오>  말로는 못 하고.   중에서. 

비 내리는 오전 학교 대신 공원을 찾는 타카오는 얼핏 어긋나 보이지만, 사실 이 글에서 가장 균형 잡히고 확실한 자아가 있는 인물이지 싶다.  

엄마의 신발을 정리하며 생겨난 취미가 미래의 꿈과 연결되어 차근히 계획을 잡아가는 어린 그가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어른스럽다는 점에서 그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 역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본인은 의식하지 않으나 각 인물들 간의 위태로운 관계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여행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비행기도, 배도 타지 않았지만 시내버스 좌석에 앉아, 병원 대합실에서, 대학 식당에서, 국산 미니밴의 운전석에서, 아무도 없는 고가 밑에서 내 여행은 이어져왔다.   나도 그렇게 제법 먼 곳까지 온 것이다.

 

- p 364 본문. <아키즈키 레이미> 중에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관계를 일본의 가집 [만요슈]를 끼워넣으며, 부드러운 시선으로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며 책장을 덮는다.  

이야기의 배경처럼, 어느 비오는 여름날 타카오와 유키노 가 이야기를 나누던 공원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수채화 같은 비 내리는 공원 그곳에 가고 싶어지는 어느 날에.

 

 

 

 

 

그 아름다움이 그다지 인간다워 보이지가 않는다고나 할까. 예를 들자면, 멀리 보이는 구름이나 높은 산봉우리, 또는 눈 덮인 산에 사는 토끼나 사슴 같은 자연의 일부에 속해 있는 것 같은 아름다움으로 느껴졌다.

- p 113. <아키즈키 타카오> 장마 초입, 먼 산봉우리, 달콤한 음성, 세상의 비밀 그 자체 중에서...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그러나 무(無)는 아니고 동시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던 시간. 그저 선량함으로 가득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아름답고 완벽했던 시간. 만약 신이 지난 인생에서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는 나날을 선사해주신다면 반드시 그 빛의 정원을 선택하리라.

- p167. <유키노> 자주빛 찬란한, 빛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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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더 2018-04-10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영상이 예술이고 보는내내 힐링이죠^^

별이랑 2018-04-10 13:18   좋아요 0 | URL
아쉽게도 [언어의 정원] 애니메이션은 아직 못 봤어요. 글 읽고 나니까 애니가 넘 보고 싶더라구요. 음악도 궁금하고.

팬더 2018-04-10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추합니다!!!

별이랑 2018-04-10 13:37   좋아요 0 | URL
열심히 찾아보겠슴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