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인물편 - 벗겼다, 세상을 바꾼 사람들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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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한국사, 세계사 수업은 재미있었지만 시험볼 때면 그 막대한 분량의 시험 범위 때문에 허덕이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시험 부담없고 특히 수업시간에 미처 듣지 못한 역사의 뒷 얘기까지 들을 수 있는 세계사 이야기가 재미없을 리 없다. 평소 즐겁게 시청하던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가 책으로 발간되었다고 해서 반가웠다. 방송시간을 놓칠 때면 아쉬웠는데 언제고 다시 펼쳐볼 수 있는 책으로 만나게 되어 좋았다.

 

 

책에는 방송에서 다룬 유명한 역사적 인물 가운데 총 10명이 등장한다. 알렉산드로스, 진시황, 네로, 칭기스 칸, 콜럼버스, 엘리자베스 여왕, 루이 14세, 마리 앙투아네트, 히틀러, 링컨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사실 이미 어느 정도 알만한 인물들이기에 뭐 새로운 얘기가 있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역사책에 미처 실리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다뤄주지 않았던 전후사정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로마시내에 불을 지르고도 좋아라하던 미치광이 폭군의 이미지가 남아있던 네로가 왜 그런 이미지를 갖게됐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을 황제를 만들기 위한 엄마의 욕망 아래 조종당하며 황제가 되지 못할까봐 초조해하며 친족살해를 서슴치 않는 괴물로 자랐던 네로가 평민과 노예까지 배려하는 법을 제정하고 건축법을 개정하고 시민들을 위한 축제도 열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 로마 대화재 방화범 배후와 또 희생양으로 기독교를 억압하고 배척하게 된 전후사정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역사 사료나 성서, 역사소설 등에 의해 폭군의 이미지가 강해지고 제2차대전 연합군까지 히틀러를 네로에 비유까지 해 악의 아이콘이 되는 상황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 시민혁명의 기운을 등에 입은 프랑스의 국민영웅인줄 알았던 나폴레옹의 뒷얘기도 놀라웠다. 뛰어난 전술과 저돌적인 작전으로 많은 전쟁에 승리하며 영토확장을 이뤄낸 성과도 있지만 황제가 되고자 온갖 이미지메이킹에 능한 욕망덩어리였으며 파리의 정치상황을 활용해 쿠테타를 일으킨 인물이었던 것, 나폴레옹법전의 의의 이면에 여성인권을 소홀히 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페인에서 보인 잔인한 학살과 아메리카 제국의 건설하고자 생고맹그 노예제 부활을 시도했으며 권력 유지를 위해 혹독한 언론 통제와 시민 발언통제를 위한 체포까지 서슴치않던 독재자였던 사실은 배신감마저 느끼게 했다.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많은 것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자가 그릇된 욕망이나 복수심,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권력을 휘두르면 소수의 사람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수백수천만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나라의 존폐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더 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책 속 인물들이 권력 확보를 위해 사용했던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이미지메이킹을 하고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며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의 야망을 드러내는 일들이 현재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새삼 아프게 느껴진다.

 

 

책 속 인물들을 보면 인간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마냥 칭송할 영웅도 또 천하에 못되먹은 악인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반전이 있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인물들 위주로 선정한 것이겠거니 싶다. 아무튼 역사 속 인물들의 전후사정 뒷얘기를 다시 들으니 드라마만큼 재미있었지만 새롭게 알게된 사실들 때문에 배신감을 느끼고 놀랍기도 했다.

 

역사란 어차피 승리한 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또 역사가들의 주관에 의해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적 사실을 다시 이해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오해하며 지나칠 뻔 했던 세계사 속 인물들의 잘 몰랐던 뒷 얘기와 역사적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던 것도 유익했다.

 

 

*출판사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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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구의 미국주식 투자 전략
전인구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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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주식열풍은 뜨거웠다. 국내 코스피가 3300을 넘고 코스닥은 1000 돌파했고 주식투자 노하우를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대거 방영됐으며 주식투자자들이 작든크든 수익을 거두는 게 자연스러웠다. 나같은 초보 투자자들까지 국내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으니 국내 주식투자자가 급증한 건 당연했다.


2022년 현재, 주식으로 수익을 거뒀다는 얘기가 언제 있었나 싶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등 국내외 이슈로 주식시장은 정체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잘 모르는 사람도 돈벌 수 있던 때와 사정이 달라졌고, 국내투자자들도 국내 시장을 떠나 경기 불황이나 호황에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인다는 미국 증시를 따라가 서학개미가 되었다.



이 흐름을 따라 나도 미국주식에 발디디고 싶지만 막연히 구글, 애플, 테슬라만 사기보다는 좀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몰라 공부를 미뤄두고 있었다. 마침 53만의 구독자를 갖고 있는 경제 유튜버로도 활동하며 여러 투자 서적을 펴낸 저자가 쓴 <전인구의 미국주식 투자전략>은 초보자들도 쉽게 익을 수 있는 미국주식 입문자를 위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고 해서 읽어보았다.



1장 '개미투자자를 위한 미국주식투자법'에서는 미국주식시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국주식과 한국주식의 차이점과 함께 미국주식의 장단점을 소개한다. 배당수익률이 높은 미국주식, 미국주식 세금을 줄이는 노하우로 개인형 퇴직연금 IRP로 해외 ETF에 투자하는 것, 한국 주식과 비교해 미국 주식은 경기방어주로서 역할을 하는 글로벌 브랜드가 많아 경기불황에도 꾸준한 실적을 내는 일이 많다는 것, 또 세금 부과정책의 차이도 국내와 비교해 설명한다.


마냥 미국주식이 좋다즌 것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미국주식과 국내주식을 사고 파는 좋은 시기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국내외 주식시장이 어려운 위기때는 미국주식도 손실이 날 수 있지만 환율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덜 하락한 미국우량주를 팔고 환전해 수익을 확정지어 상대적으로 많이 하락한 한국주식을 사는 교체매매를 하면 나중에 더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주가와 환율이 안정시에는 높은 환율로 환손실이 발생하므로 미국주식을 사는 것이 가장 불리하다는 조언으로 미국주식을 팔고살 때 환율을 고려해야함을 강조한다.



2장 '초보자도 바로 시작하는 미국 ETF 투자법'에서는 유망한 ETF종목을 추천하고, 미국 ETF검색법을 소개한다. 농산물, 원유, 부동산, 데이타센터, 재생에너지, 전기차, 헬스케어, 메타버스 등 유망 분야의 대표 ETF를 소개하고, ETF.com 사이트를 통해 원하는 ETF를 검색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초보자도 미국증시 ETF의 하나인 S&P500 지수에 투자하면 평균 이상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고 하는데, 배당금을 제외하고 연 10%이상의 수익률을 거둔다는 S&P500, 나스닥, 다우존스 지수에 눈여겨 볼만하다.



3장 '앞으로 오를 미국주식'에서는 현재 미국 주식시장의 흐름과 정책 등을 토대로 투자자들이 알기 원하는 추천 주식에 대한 정보를 실었다.


인플레에 강한 미국주식, 배당 수익률이 높은 대표 주식, 브랜드 가치가 높은 스타벅스와 애플, 테슬라의 주가 전망, 추후 더 성장가능성이 있는 현재 저평가된 주식 종목 등을 설명한다. 특히, 2021년 11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향후 5년간 1200조원의 예산을 투입한 인프라 구축 계획의 연계된 종목들과 관련 기업 주가의 유망성을 짚어준다.



4장 '미국 부자들이 주목하는 해외주식'에서는 미국에서 더 나아가 주목할만한 해외 주식을 소개한다. 명품회사를 소유한 다국적기업 그룹들의 ETF, 성장하고 있는 신흥국인 인도주 식, 고배당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베트남 주식, 큰 상승이 예상되는 홍콩 주식 등 해외주식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국내 주식시장도 어차피 미국이나 중국 등 타 국가와 여러이슈가 맞물려 돌아가는 만큼 더 넓은 시야를 갖고 해외주식 사정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어려운 공부가 필요한가 싶은 부담감 때문에 제쳐놨던 미국 주식에 대해 꼭 알아야할 주요 정보를 선별해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제공한 책 덕분에 미국 주식 시장을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낯설고 잘 몰라서 엄두가 나지 않았던 미국주식 시장의 두려움을 버리고 마침내 서학개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 출판사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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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 - 산책길에 만난 냥도리 인문학
박순찬 그림, 박홍순 글 / 비아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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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고양이들이 골목 구석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표지라니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누구라도 책이 궁금해 손을 뻗을 것 같다.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라는 책 제목을 보고 소크라테스 때문에 내용이 혹시 어려운가 싶겠지만 책을 뒤적여 몇 페이지만 살펴보면 사랑스럽고 장난기 많은 고양이 그림으로 인문학을 풀어낸 매력적인 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책은 마치 명화 패러디의 작품들을 보듯 재치있고 완성도가 높은 고양이 그림으로 가득하다. 사람은 한 명도 등장시키지 않고 모두 고양이가 주인공인 그림들로 소크라테스부터 공자, 애덤 스미스, 단테, 프로이트, 보부아르, 체 게바라, 데리다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정신을 이끌어온 인물들의 주요 업적과 사상을 압축시켜 개념을 이해하기 쉽도록 돕는다. 경향신문에서 26년간 해학과 풍자로 통쾌한 시사만화 '장도리'를 연재한 박순찬 만화가가 탄생시킨 고양이 '냥도리'가 인문학 가이드로 등장하는데 한 장면 한 장면이 흘려보내기 아쉬울만큼 정성스럽게 표현됐다.


 


인류 역사에 변화를 가져온 무수한 인물 중 선정한 열 다섯 명을 다시 짚어보는 것도 의미있었다. 인간의 영혼과 신체가 분리될 수 없다고 본 아퀴나스의 이론은 달려가는 해골을 끌어안고 있는 고양이로 표현했고, 우매할 수도 있는 다수에 의한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정치는 극소수의 철학자가 맡아야한다 했던 소크라테스의 주장도 귀여운 고양이 만화로 다소 순화돼 전달된다. 애덤스미스가 내세운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설명할 때는 고양이 발이 등장하고 칼마르크스의 자본가가 행하는 노동자를 상대로 한 노동착취는 고양이를 주물러 돈을 토해내게 하는 그림으로 표현해 와닿는다.


 


케인스가 주창한 정부 개입을 통한 유효수요 창출과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도 한 장의 그림으로 이해가 되고, 사회화 과정을 통해 조작되고 강요된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을 규격화된 틀을 지나 같아지는 고양이들로 표현해 보부아르의 사상을 전달한다. 합리적 이성이라는 서양철학의 신화를 해체한 데리다의 사상은 허물어지는 기둥으로 단박에 이해시킨다. 그 밖에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등 다양한 명화나 역사적 인물을 고양이로 표현하고 패러디해 알아보고 이해하는 새로운 재미를 준다.


 


책의 뒷부분에는 인물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배경지식을 '도슨트투어'라는 코너로 별도로 실었으며 좀더 깊이 있는 지식을 얻고자하는 이들을 위한 추천도서를 '깊이와 넓이' 코너에 게재했다. 만화적 상상력에 어울리게 글도 좀 재미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용의 왜곡이나 비약없이 사상과 이론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오히려 정통 이론을 찾아 이해할 때는 도움이 될 것도 같다. 명화 못지않은 컬러풀한 만화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대의 변화를 이끈 철학자, 인문학자, 혁명가들의 이야기를 한눈에 살펴보게 해 미술관이나 박물관 가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 출판사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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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 매일 쓰는 사람 정지우의 쓰는 법, 쓰는 생활
정지우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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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단한 환상을 갖고 있거나 심각한 수준의 부담을 느끼는 편은 아닌터라 이 제목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가 내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작가가 사춘기 아이를 타켓으로 쓴 책을 재미있게 읽고 아이에게 건네줬던 적이 있고, 우연히 들은 ebs 라디오에서 글쓰기론을 늘어놓던 좋은 음성의 진행자가 같은 작가였던 터라 이 작가가 쓴 글쓰기 책은 어떨까 궁금했다.

프로필을 보니 내가 잘 몰라봐서 미안했을 만큼 작가는 그동안 다양한 책을 썼고 방송활동 경험도 많았다. 20여 년간을 매일 글쓰기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가가 얼마나 성실한지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에는 오랜 시간 글써온 자의 내공과 글쓰기에 대한 숱한 고민과 이해의 흔적이 담겨있다. 작가가 얼마나 글쓰는 일을 사랑하고 이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지, 때때로 지리멸렬하고 번민이 가득한 삶을 글쓰기라는 마법으로 어떻게 벗어나고 또 승화시킬 수 있는지 글쓰기 예찬론을 펼친다. 마치 글쓰기와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또 글쓰기의 신비체험을 종교처럼 간증하듯 글쓰기의 힘과 이를 가능케 한 방법을 소개한다.

글을 오래 잘 쓰기 위해 지지자를 곁에 두면서도 때로 쓴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하며, 무매락의 인식과 거리두기로 글쓰기와 밀당하고, 단문쓰기나 쉬운 글쓰기 같은 강박적인 틀을 벗어나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다가서는 법을 설명한다. 막막한 글쓰기에 앞서 어떻게 동기를 찾고 서두를 시작하며 또 글을 전개해 나가는지, 나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남을 이롭게 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겸허한 자세로 임하는 글쓰기 철학도 밝힌다. 꾸준히 쓰는 자로서 사명감과 자부심을 느끼며 다른 쓰는 이들과 연대감을 갖고, 언어가 어떻게 나를 구체화시키고 또 이 불안한 삶을 또렷이 살게하는 힘을 발휘하는지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하는 글쓰기도 연애 대상처럼 때로 지긋지긋해 하기도 하고 갈등도 생기기 마련이라 그런 글쓰기에만 몰두할 수 없는 상황과 현실의 한계도 털어놓는다. 가장으로서 맞닥뜨리게 하는 프리랜서로서의 불안, 사회 문제 속 무기력한 자신과 이 삶이 엉망이 되지 않도록 좋은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며 좋은 글을 쓰기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려는 저자의 의지도 읽힌다.

그래서인가 작가가 글쓰기에 푹 파묻혀있는 삶을 사는 줄 알았는데 찾아간 작가의 페이스북에서 작년 작가가 변호사가 되어 출근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 책에도 드러나듯 가장으로서 글쓰는 삶만을 고집할 수없었는지 문학, 철학 전공자인 작가가 갑자기 어떤 연유로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부디 그의 새로운 직업이 그가 좋아하는 글쓰기에 더 많은 소재를 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 궁극적으로 그가 바라는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글을 써야하는데 쓰게 하는 동력을 잃고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라면 이 작가의 글쓰기 예찬론과 노하우가 식어가는 작은 불씨를 다시 되살려줄지도 모르겠다.


// 글쓰기의 동력이란 박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공포, 회피, 불안에 있다. 그런데 동시에 어떤 존재로 규정되고, 고정되며, 고착되고 싶은 욕망이 글쓰기의 동력이기도 하다.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 고정된 정체성, 안정된 나, 나를 뚜렷하게 붙잡아줄 수 있는 어떤 상태에 도달하는 일이라면, 마침표가 찍히자마자 다시 그로부터 달아나려는 욕망이 뒤따라온다. 이것이 글쓰기를 멈출 수 없게 한다. 계속해서 도착하고, 계속해서 도망치기. 이 순환, 이 반복, 이 메커니즘에 들어서면, 그는 이제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사람이 된다.// 


* 출판사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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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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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중문화가 정식으로 국내 개방되던 90년대 말, 낯설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일본 영화가 한국관객들을 사로잡은 적이 있다. 에쿠니가오리의 작품을 영화화한 <냉정과 열정사이 >, <도쿄타워> 등도 2000년대 초반부터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냉정과 열정사이>는 영화 내용은 희미해도 ost와 남녀주연 배우의 얼굴이 아직 기억날 정도다. 덕분에 이 작가의 이름을 낯설지 않게 기억하고 있었고 이 책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해도>는 여고생들의 성장기를 담은 이야기라기에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작가는 6편의 단편에서 똑같은 교복을 입고 평범해 보이는 열일곱살 일본의 여학생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삶의 과도기를 지나며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타도시로 전근 가 두어달에 한 번 만나 서먹한 아빠를 두었고 책 읽기 좋아하는 기쿠코가 지하철에서 여자 치한을 만나고 알게 되면서 새로운 감정에 사로잡히는 이야기 '손가락', 단짝 친구였으나 정신 이상 증상이 나타난 에미가 다른 친구들로부터 고립되고 자신도 거리감을 느끼다 에미가 입원후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모에의 이야기 '초록 고양이'도 있다.

 

쇼핑으로 공허함을 달래는 엄마를 둔 유즈가 남자친구를 사귀며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 '천국의 맛', 찻집에서 알바를 하고 음식으로 허전함을 달래는 비만인 자신에게 말로 상처주는 주변인들에게 매일 색깔별로 독약을 처방하는 일기를 남기는 카나의 이야기 '사탕일기', 애인과 헤어지고 혼자살며 언니 딸인 조카와 친구처럼 지내는 치즈루 이야기 '비, 오이, 녹차', 20대 후반 아저씨와 사귀다 싫증내고 헤어지는 미요의 이야기는 '머리빗과 사인펜'에 실렸다.

 

에쿠니가오리의 글은 영상이나 웹툰을 보듯 구체적인 묘사가 많았다. 다양한 색감과 맛이나 향을 상상하게 하는 여러 음식들도 언급돼 오감을 자극시키고 실제 제품의 브랜드도 많이 등장시켜 일본내 독자들은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일본 전통 문화를 슬쩍 흘리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전달하려 했는지 서양식 생활 방식을 보여주며 영어식 표기 단어도 상당히 많이 나온다. 주어를 술어 뒤에 붙이는 도치식 표현도 종종 써 뭔가 좀더 가볍고 여운을 전달하려는 것도 같다. 그래서 뭔가 세기말부터 2000년대 초반 보던 영상미 가득하고 여백이 큰 일본 영화들이 떠오르고 왜 이 작가의 작품이 영화화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2002년 처음 일본에서 발간된 책이니 시간의 갭은 있겠고 한국의 열일곱 여학생들이라면 아마 빠질 수 없었을 진로나 학업 문제가 책 속 일본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아 좀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단편이어서인지 자세한 설명없이 인상만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일본문화의 차이 때문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긴했다. 하지만 일본영화나 소설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과거 일본여행의 향수를 갖고 읽을 수도 있겠다.

 

일본어 이름이 익숙해지지 않아 잘 몰랐는데 책을 다시 보니 각 단편 속 여학생들이 모두 같은 반인 것 같다. 한 교실의 비슷해 보이는 소녀들이 각기 다른 감정들에 혼란스러워 하고 설레기도 하면서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을 각각의 스토리로 풀어낸 듯 하다. 20년 전 일본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 앉아있던 열일곱 여학생들은 이미 아줌마가 되어 이 책을 통해 이때의 시간을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들 중 누군가는 책속에서 자신의 기억과 맞닿는 부분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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