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삶을 사랑한다면 삶 또한 사랑을 되돌려 준다."
한 달에 한 번 중2 둘째 아이의 학교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에 갔던 날,
학교 벤치에 적힌 이 문구를 발견하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혹자는 그냥 지나쳤을 이 문장 하나가
나에게는 가던 길을 붙잡아 세워 두고는 음미하게 한다.
삶을 의인화하며 내가 베푼 사랑을 다시 내게 돌려준다 하니
이 문장을 보고 기분 좋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말이다.
정말 그럴지 사실 인간은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지금 당장 확인할 수도 없지만 이 문장 하나로
따뜻한 햇살이 축복과도 같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문학작품 속에 담긴 문장들은 이렇듯
언어라는 도구로 인간의 마음 속까지 깊이 파고든다.
파고들어 가만히 있지 않고 기분좋은 파동을 만들어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이번에 만난 문학 에세이 속 문장으로 이렇게 화답하고 싶다.
"네가 세상을 보고 미소 지으면 세상은 너를 보고 함박웃음 짓고,
네가 세상을 보고 찡그리면 세상은 너에게 화를 낼 것이다."
<정글북>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말이다.
위 문구와 왠지 결이 겹치는 듯한 느낌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라 일컫는 '상상력'이 빗어낸 소설을 너무나 사랑하고
나아가 문학덕후를 자처하는 나에게 그러한 책이 왔다!
2020년 겨울에도 어김없이 나혼자 제주도여행을 했던 나.
매년 안식일처럼 혼자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주 동안 제주도의 겨울을 느끼면서
여행을 하는데 그 중심에는 책방투어가 있다.
따로 블로그 내에 <탐서가의 책방투어>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전국의 책방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그렇게 쌓인 게 어느덧 61개나 되었다.
같은 책방을 두 번, 또는 세 번쯤 남긴 것은
정말 애정하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이번에 문학덕후인 나의 인생책에 등극한 책을 여기에서 만났다고
얘기하려다 보니 서론이 길었다.
제주도 동부 세화리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서점 제주풀무질에서
장영희 교수의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 를 만났더랬다.
그 때는 개정되기 전 버전이었고,
샘터에서 장영희 교수의 책들을 차례차례 개정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 책에게 그 차례가 온 것이다.
장영희 문학 에세이 개정판은 진짜 못 참지!!!
(개정판이 훠~~~얼씬 낫다... ㅋㅋ)
요즘 읽어야 할 책들이 줄을 섰지만 이 책은 절대 뒤로 미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문학덕후가 오랫동안 묵혀둔 기대감으로
이 문학 에세이를 펼쳐본 결과,
장영희 교수의 글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장영희 교수는 사람과 삶을 사랑하는 영문학도였다.
반갑게도 나 또한 영문학도였다.
그리고 나 또한 사람과 삶을 사랑하며 살고자 노력중이다.
그래서 이 책 속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감동이었나보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 속 문장을 인용하며
장영희 교수가 생의 마지막에 암과 싸우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이 글은
적잖은 울림을 전한다.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저항하며,
때로는 버텨가며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간다.
평소에 온화한 장영희 교수도 생의 마지막을 앞둔 이 시점에서
자신의 삶 앞에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 한편 눈물겹기도 하다.
오랫동안 문학의 힘을 믿으며 수혜를 입었던 자는
이렇게 남은 이들에게 고스란히 그 힘을 남김없이 물려주려는 듯이.
어떤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글인지 작은 제목에서
가늠이 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런데 확실한 것은 다 가독성 너무 좋고
다 의미와 책 읽는 즐거움을 갖춘 글들이다.
유명 일간지에 3년 가까이 연재한 문학칼럼을
단행본으로 엮었다는 게 개인적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서문까지 이렇게 버릴 게 없는 61개의 글을
단숨에 읽을 수 있게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 는 하버드대 방문 교수 자격으로
보스턴에서 1년이라는 안식년을 보내는 해에 쓴 글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의 말미에 미국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다행히 바로 수술을 해서 완치가 되었다고 하더니
다시 시간이 흘러 유방암이 목 뒤 경추로 전이되어
척추암 진단을 받게 되었던 장영희 교수.
생후 1년만에 소아마비를 앓게 되면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의 삶을 살아왔지만
운명에 저항하며 자신의 딸을 사랑으로 지켜냈던 부모님 덕분에
지금의 장영희 교수가 있었다고 에세이 속에 고백하기도 했다.
특히 장영희 교수의 아버지는 수 많은 작품들을 번역하고
글을 썼던 영문학자였고,
그 영향으로 장영희 교수 역시 영문학자가 되어
번역과 글쓰기, 중고교 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잠실 지역의 중고교 학생들의 영어 교과서를
디테일하게 분석하며 내신 대비를 해줬던 내가
이 경력을 접하자 마자 '장영희' 라는 이름은
이 문학 에세이의 저자가 아니라
영어 교과서 집필진의 이름으로 탈바꿈된다.
정말 그랬다....장영희라는 주 집필진 이름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랑, 행복, 희망의 축복을 전하고 싶었던 장영희 교수의 메시지처럼
사랑에 관한 전 세계 위대한 작가들의 한 마디를 모아둔 페이지가 인상깊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추앙하는 작가의 문장이
역시 내 눈에 가장 깊이 박힌다.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빅토르 위고-
사는 게 고통스럽다 해도 결국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라면
사랑이 남지 않는 죽음보다 사랑이 남아 있는 삶이 좋다는
문학 작품 속 문장을 인용한 것에서도
장영희 교수의 삶에 대한 애정이 온전히 느껴진다.
음률이 살아있는 영미시, 영미 문학 속 멋진 문장들을
아름다운 그림과 나란히 배치한 구성도 완전 취향 저격이다.
진짜 알맹이가 되는 장영희 문학 에세이 속에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내면 세계를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의 말과 행동, 사건들을 통해서
거울 보듯 들여보게 한다.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갖는 약점들, 연민들,
슬픔과 좌절을 깨닫고 주인공을 바라보며
나와 내 주변의 타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문학 작품들의 힘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 였다.
주인공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삶의 다양한 경험도 해보고
그들의 시행착오도 함께 겪으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고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인지,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하게 했다.
장영희 문학 에세이를 읽으면서
문학을 통해 내 삶에 눈을 뜨게 해주는 힘이 있음을 깨달았다.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 에서는
딤즈데일, 헤스터, 칠링워스를 보면서
미로와 같은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에서는
개츠비 앞에 왜 'Great' 를 붙였는지
장영희 식 해석 덕분에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이 해소된 시간이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에서는 원시와 문명 세계 사이에서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조명할 수 있었고
과도하게 발달한 과학이 과연 인간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개인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러시아 문학, 그 중에서도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은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경험하고 느끼기 어려운 그들의 사상을
장영희 교수의 따뜻한 해석 덕분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인간과 인간의 삶에 신이란 어떤 존재인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선과 악은 어떤 관계이며
사랑은 어떤 힘을 미치고 있는지 작중인물들을 통해서
도스토옙스키의 메시지를 어렴풋이 접했던 시간이었다.
황당무계하지만 아름다운 이상주의자 <돈키호테>는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기 위해 누가 뭐래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꾸던 꿈이 깨져서 좌절하게 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괴로워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면 그것마저도 받아들이겠다는
돈키호테의 삶에 대한 자세는 접할 때마다 너무나 눈물겹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작품인데
장영희 교수의 해석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더 좋아지게 만들어 버렸지 뭐야....^^
이 밖에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허먼 멜빌의 <모비딕>,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펄 벅의 <대지>,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대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이렇게 위대한 작품들을 이 책 한 권으로 다 만날 수 있다.
아름답게 살다 간 한 인간의 인문학적 시선이 담긴
온화한 문체는 이런 것이구나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현실세계의 아름다움, 누추함, 비루함을
비평이라는 장르로 고전적인 문학세계와 비교 분석한 훌륭한 글의 모음집이다.
시종일관 종교와도 같이 추앙하듯 써내려 가는 나의 이 책리뷰는
사실 장영희 교수의 서문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미 시작부터 무릎 꿇고 두 손 모은 격이지.....^^;;
그래도 괜찮다.
그녀의 글로 인해 나는 충분히 구원받은 느낌이니까.
문학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또는 상처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서문 중에서
살면서 끊임없이 부조리한 세상을 목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
이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문학이 이런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서문에서 이미 이러한 나의 인생관과 딱 겹치니
<문학의 숲을 거닐다> 문학 에세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순간적으로 감동해서 눈물이 맺히는 내 모습에 나도 놀랐다.
문학덕후의 인생책으로 등극하기에 손색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