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 있어서 주변의 환경과 상황을 얼마나 고려하느냐에 따라
저맥락과 고맥락 사회로 구분하는 문화학 계통의 개념어를 접하게 되었다.
과묵한 핀란드 사람들의 특징을 대표로 해서 북유럽 사람들이
고맥락 문화권에 속한다는 걸 이해해볼 수 있었다.
즉 고맥락의 문화에서 언어적 소통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우선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북유럽 사람들은 소통에 사용된 단어 자체의 의미보다는
왜 저 사람이 저런 말을 했는지에 대한 상황이나 의도, 표정과 행동에
더 집중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한국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도
고맥락 문화권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밥 한 번 같이 먹자는 이야기를 하는 한국 사람들은
인사치레이거나 그 의도가 친해지고 싶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저맥락 문화권 사람들로서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볼 수 있어서
모호하고 무책임한 말로 들리고 해독 과정이 들어가야 해서 피곤해질 수도 있겠다 싶다.
(충청도 말이 매우 고맥락의 언어가 아닐지....^^;
의도를 파악하기가 참으로 난해한 언어이다. ㅎㅎ)
한국도 전반적으로 고맥락 문화권에 속한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소통 방식은 또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TMI지만 나는 상대방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소통 방식을 싫어하기 때문에
돌려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는 편이다.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했다는 건 진짜 그러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어서
일정 기간이 지나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못내 찜찜하다.
내가 한 말에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농담이라는 한 마디 던져서 공기 중에 이미 뿌려진 '그 말'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일은 그래서 내게는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은 어떤 방식이 더 좋고 나쁜지를 분간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대화 안에서 고맥락과 저맥락을 스스로 파악할 수 있다면 좋고
그 분석이 끝났다면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맞게 소통의 기술을 적용하면 될 일이다.^^
관계는 곧 인간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하는 것임을 생각해 본다.
내가 발견한 유럽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차이는
'어떤 시점에 삶의 방점이 찍혀 있느냐' 였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사는 사람들과
장미빛 미래의 나를 꿈꾸며 현재의 나를 희생하는 사람들.
과연 어떤 삶이 더 만족도가 높을까.
미래의 행복도를 현재에 알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신이다.
우리는 인간일 뿐이기에
이렇게 단순화해서 생각해 봐도
북유럽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행복지수는 현재를 살아가는 개개인이 평가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수치이니까.
'그냥 하루를 견딘다' 는 마음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라기 보다는
주어진 나의 오늘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안전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마음.
'그냥 하루를 견딘다' 는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또 달라진다.
금욕적이고 실용적인 사람들.
따분하고 너무 과묵해서 재미없는 사람들.
집단주의적이어서 시민 합의에 집착하는 사람들.
파티에 진심이고 매우 사교적인 술꾼들.
규범과 절차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
단일한 문화여서 세계관과 목표가 비슷한 사람들.
나라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배와 피지배의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각자의 입장에 따라 그들을 설명할 수 있는 표현들도 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은
북유럽 사람들은 바이킹의 후예라는 유전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공용어로 통하는 영어에 바이킹족이 남긴 흔적도 작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 문화가 현재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스칸디나비아의 원형은 앞으로도 쭉
그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 스며들어 북유럽스러움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삶의 방식과 우선 순위, 돈을 쓰는 방법과 삶과 일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
효과적인 교육 제도와 서로를 돕는 방식,
그리고 최종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까지 닮아 있는 북유럽 사람들.
세계적으로 공인된 행복에 대한 지표에도 불구하고
그들 또한 인종차별과 이슬람 공포증, 약화되어가는 사회적 평등, 알코올중독,
이민자 수용에 관한 불편한 진실,
혜택을 누려본 적 없는 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공공 부문에 관한 문제들이 점점 부정적으로 강화되어 가기도 한다.
저자가 오랜 시간 북유럽에 있으면서
덴마크 시골에 있는 집에서 노르웨이 북쪽 극지방의 차디찬 바다,
아이슬란드의 간헐천, 악명 높은 스웨덴 주택단지의 암흑가,
산타가 사는 작은 동굴과 레고랜드,
덴마크 코펜하겐의 동쪽 해안과 서쪽 지역까지 경험한 북유럽스러움을
농담과 진지함을 오가며 전하고 있다.
북유럽의 행복 현상, 북유럽의 기적을 깊이 파고들면서도 유쾌통쾌한 어조가 좋았다.
개인적으로 유익하게 다가온 부분은
'북유럽'이라는 단어 하나로 대강 뭉쳐서 규정해 버렸던 인식과 이미지가
저자 덕분에 국가별, 개개인별 개성으로 섬세하게 분리되는 경험이었다.
이렇게도 북유럽을 여행할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