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전쟁은 없다 

'무의식의 저널' 시리즈는 사실 <법은 아무 것도 모른다>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전쟁'과 '평화'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완전한 상태'를 향한 욕망을 파헤치고자 한다.

어쨋든 이 철지난(2004년 산이다) 논문들의 집합이 지금-여기 우리에게 갖는 '여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반세기 동안이나 '휴전국'으로 존재하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물음일 것이다. 왜 '전쟁'이란 '피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가. 이 책이 넌지시 제기하는 '물음들'을 살펴보고 있자면, 반전주의자는 동시에 열정적 전쟁지상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신이 '작동'하는 자동기계적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2. 문자와 국가 

아, 정말 모종의 페티시적 욕망이 불타오르는 '컬렉션'이라 할 만하다. 아직 고진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필자이기에, <트랜스크리틱>의 이해는 언제나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고진만큼 쉽게 '읽히는' 사상가도 드물지만, 그만큼 오독의 여지와 진정한 '독해'의 어려움을 동시에 담보해야만 하는 사상가 또한 드물다. 

<문자와 국가>라는 강연집에서의 여러 초기 작업들은, 그의 정치철학에 대한 입문서 격의 저서 - <세계 공화국으로>, <트랜스크리틱>(은 좀 어렵지만) - 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준다. 더불어 '문학평론가'로서의 고진과 데리다의 문자론(그라마톨로지)와 비교되는 그만의 '문자론'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쨋든 '언어' 혹은 '문자라는 이름'이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문젯거리'가 됨은 분명한 듯. 

  

 

 

3.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독일 낭만주의적 전통에 대한 새로운 분석서라고 할 만하다. '프레드릭 바이저'라는 이름은 비록 꽤 낯선 이름이긴 하지만, 그가 작업하고 있는 초기 독일낭만주의와 독일관념론에 대한 연구는 결코 '낯선' 것은 아니다.(브레히트처럼 '낯설게' 보지만 않는다면.) 다만 낭만주의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 어떤 '보수성', 그리고 중세적 세계관이라는 점을 감안할때, 이 저서가 초기 낭만주의에 대해 밝혀내는 '급진적' 제스쳐의 발견이란, 놀라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쌍 슐레겔(프리드리히, 빌헬름), 셸링, 노발리스 등의 초기 낭만주의자들이 가진 '시'적 개념은, 충분히 철학적/윤리적/정치적으로 확장 가능한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세계를 낭만화하라!"는 명령은 결코 유미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학의 범주를 넘어, 비판정신을 토대로 한 '계몽에 대한 계몽'으로 나아간다. 

 

 

4. 언어의 감옥에서 

이 평론집의 목차를 보면서 많은 호기심이 생겼다. 특히 1부 '식민주의와 언어' 부분은 제목만으로 충분히 필자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비록 직접 읽어봐야 하겠지만) 보론격의 2부 또한 흥미가 간다. 사실 그저 '흥미가 간다' 라고 표현하기엔 좀 씁쓸한 감정이 밀려오기는 하지만, '재일조선인'이라는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그의 글이 과연 어떤 '굴곡'을 보여줄지에 대해 기대를 거는 것은 사실이다. 

'내셔널리즘'에 대한 분석이 이 책의 '골자'라 할 만하고, 그가 "모어의 폭력성"이라고 부른 언어의 '감옥'에 대한 저항적 고찰이 과연 얼마나 구조주의적 한계를 잘 극복해내면서 개인과 주체,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조건들'로 사유될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5. 성혁명 

맑스주의와 프로이트주의의 결합. 그것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정신분석'이 가지는 쌍방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의 '욕망' 그 자체이다. 마이너한 사회사상가가 역사 속에서 전유하는 스탠스가 늘 그러하듯, 저자인 빌헬름 라이히 또한 시대 속에서 함몰되지 않은, 시대를 항상 '뛰어넘는' 주체들과 조우한다.  

'성교육'이라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그것은 왜 국가적 교육의 '대상'이어야 하는 것인가.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이러한 교육의 '자율적이며 주체적인' 경험이다. 더불어 그것은 가족제와 가부장제에 대한 '복종'으로부터의 탈피, 그리고 나아가 '집단'이라는 이름속에 묻힌 개인을 해방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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