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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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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이라는 사람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이 정도면 필자의 '무지'가 얼마나 충분한지 알 수 있을게다.) 오늘의 기사였던 동아일보 홍찬식 논설위원의 칼럼을 통해 그의 '위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것도 포함시켜야겠다.(http://news.donga.com/3/all/20110126/34385678/1)   

그다지 '반박할' 가치도 없는 글이긴 하지만, 조국 교수의 반박(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10126184640)은 꽤 통쾌한 편이다, 아니 뭐 특별할 것 없는 글에 대한 반박치고는 좀 너무 '열심히' 인 편이다. 어쨋든 '폴리페서'라는 무식한 주장은, '범주'를 벗어난 논의라는 생각이 든다.(근데, 폴리페서이자 '강남좌파'이면 또 어떤가? 필자는 그런 '척'을 하는 교수도 흔히 보지 못한다. '정치적 중립성'은, 소수의 공간을 제외하면, 그다지 '필요없는' 개념이 아닐까. 차라리 수구/보수와 개혁/진보의 양 쪽의 사상을 모두 적극적으로 '표현해주는' 편이 모두에게 이로울지도.) '정치교수-비판적 지식인' 중의 택일이라니?! 그렇다면 관악구에 거주하는 비판적 지식인은 정치적/당파적 자율성을 표현할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을 '선택'을 강요당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이것은 '교수'라는 그의 직업적 특성 때문이기는 하지만, 교수 또한 시민권을 가지고,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 오히려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장점' 또한 가지고 있는 - 위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무슨 '공산주의-사회주의' 사상을 법학수업시간에나 퍼뜨리는 '빨갱이'인 마냥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정치'로부터 대체 어떤 분야가,직업이,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이번에 같이 읽은 '촘스키와 푸코' 대담집에서의 푸코의 말처럼, "대체 왜 '정치'에 관심을 두어서는 안된단 말인가?!" 

서두가 길었지만, 여하건 이 책, <진보집권플랜>과 오늘 몇 줄의 기사를 통해 내가 그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건, 꽤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가 필자의 마음에 '쏙 드는' 인간형이라기보다는 - 분명 그의 정치성과 필자의 그것은 다르며, 추구하는 가치 또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 그만한 '인물'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인 우리 사회의 '현실'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몇 가지 부분에서 그의 생각을 살펴보고자 한다. 플랜의 순서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겠으며, 필자의 무지 덕택에 오독한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책은 '대중'을 위한 두 사람의 노력이 충분히 고려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촘스키와 푸코~>도 그러한 것 같고.) 

1. 교육, 그리고 20대와의 '연대'

'김예슬' '사건'과 관련하여, 그들이 풀어내는 한국 교육에 대한 대화는 비교적 그 맥락을 잘 짚어내고 있는 듯 보인다. 특히 한국 교육의 맹점들 - 조기교육을 비롯, 사교육 문제(공교육의 약화), 서울대 폐지-분할론, 20대의 요구에 대한 '응답'에 대한 내용까지 - 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젯거리'가 되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봉착하는 지점들이, 바로 우리, '20대'의 주체성, 그 짓눌린 주체의 자국들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특히 김예슬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들은, 필자를 비롯하여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진지하게(사실 굳이 너무 진지할 필요는 없을 듯도 하다. 오히려 이것은 약간의 '진지하지 않음'이 필요한 작업같기도.) 고민해보았으면 하는 부분이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는가, 아니 왜 관심을 가지면 '안 되는가' 하는 것들. 

더불어 서울대 폐지론에 대한 조교수의 '분할론'은 나름대로의 '설득력'이 첨가된 듯 보인다. 서울대가 가지는 모종의 '권위'를 해체하자는 듯이 보이는데, 과연 얼마나 '효과성'이 담보될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와 같은 현상적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무조건 "서울대를 없애자!"는 일종의 강박적 히스테리보다는 좀 나아 보인다.) 

하지만 사교육 문제에 대한 그들의 대화는 좀 밀도가 떨어진다. 단순히 '공교육의 강화'를 위해 조교수가 대안으로 내놓고자 하는 것들은, 물론 충분히 고개를 끄덕거릴 수는 있겠지만,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과연 'EBS와 강남구청 수능강의를 강화'하는 것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그게 최선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물론 필자는 생각이 좀 다르며, 더불어 단순히 그의 논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식이 아니지만, 그 구체적 '형상'에 대한 의문점이 든다. 

또한 20대와의 연대,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정치활동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88만원 세대라는 '자기규정' 속에 빠져있는 세대론적 갈등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생각들도 비교적 구체적이지 않은 듯 보인다. '청년유니온'이나 '백수연대'같은 집단적 움직임들이 '어떻게' 그들과 '손잡을 수' 있을까.(아니, 20대는 그들과 '손잡아야만' 어떤 움직임에 대한 '정치적 의미'혹은 효과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인가.) 단순히 20대의 움직임을, 그 미세한 흔들림을 감지하고 손뻗을 만한 '진보'의 모습을 만들수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물론 그것은 그의 화두가 아니라 20대 그 자신들의 화두이자, '범주'이기는 하지만, 20대가 펼쳐나가야만 하는 현실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조금 더 고민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우석훈류의 '침묵'으로 남고 말 가능성이 커 보인다.

 2. 매력적인 진보, 밥 먹여주는 진보 

'개혁/진보'라는 말이 계급론적인 '좌파'보다 쓰기 알맞은 말이라고 하니, 그렇게 해보자. 서두에서 그들은, 단호하게, 그리고 절대적인 '진보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것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인사들에 대한 충분한 쓴소리가 첨가된, 비교적 '통쾌한' 발언들이다.  

사실 '정치'와 '현실' 그 사이에는 필자같은 사람들에겐 충분한 '간극'이 존재한다. 그것은 혹여 정치라는 학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에는 그만큼의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수많은 이들(필자를 포함한)의 외상적인 정치적 스탠스와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그들의 말처럼, 진보라는 이름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말처럼 '밥벌이'와 '생계'에 매몰된 학계에서는 아무것도 잉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다루는 건, 결국 이 밥벌이와 진보라는 어울리지 않는, 무엇인가를 '통합'시키고자 하는 노력에 다름아니다. 무상급식 논쟁까지의 진보는 과연 우리에게 진보라는 이름에 대한 '이미지', 혹은 좌표를 올바르게 인식시킬 수 있었을까? 

물론, 진보는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진보가 아무리 '매력적'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진보가 공짜로 급식까지 먹여준다 하더라도, 탈정치화된 대중과 20대라는 세대론적 공간에는 미개척된 '영토'가 존재한다. 그것은 이미 대중의 현실에서 괴리된 '정치적 현실'이 단순히 '밥벌이'와만 관계되어 있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칼 슈미트의 말처럼, 대의제에서의 '대표자'란 결코 대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장치로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입장'(결국 우리의 현실에서는 '정당'의 입장)을 선언하는 장치로서 존재한다. 그들의 논의에서처럼, 이러한 대의정치의 한계를 고려할 때, 과연 매력적인 '정당'이란, '우리'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정당정치'에 대한 막연한 '희망'에서부터 진보의 변화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보라는 것이 단순히 '진보정당'으로 병치되는 것은 다만 그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진보진영을 향한 변화,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는,(적어도 한국식 정당정치에 대한 그다지 긍정적인 희망을 가지지 않는 필자로서는) 가장 근본적인 '민주주의', 그 자체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과연 민주주의는 '살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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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비교적 '까놓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MB정권의 무지함과, 수구/보수, 그리고 그 누구보다 개혁/진보 진영의 인사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거대자본과 삼성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으며, 검찰개혁에 대한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다. 만약 우리세대 중, 정치와 자신의 현실, 미래 그 무엇때문에라도 이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된 이라면, 이 책은 한 번쯤 읽어볼만 한 책인것 같다. 물론 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모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가끔은 조금 편향적이며, 어쨋든 '진보'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재집권', 권력의지를 어떻게 향유해나갈 수 있을 것인지가 이 책의 '이름'이니까. 다만, 이 책의 가장 주요한 '필요성'은, 탈정치화된 현실을 살아가는, 그래서 무의식적 정치편향을 농축시키고 있는 우리들 자신, 그 '슬픈 현실'에 대한 자신만의 '사유'를 진행해 나갈 수 있는 초석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초석이다. '잔치'를 시작하려면, 세대론을 넘어선 '주체적 사유', 단순히 지식자본과 소유된 가치들을 넘어선 주체성의 사유가 우리에겐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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