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신명
이용두 지음 / 책과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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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때이다. 아버지는 집안에 기묘사화를 당한 분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를 알아보니 기묘사화 때 죽임을 당한 조광조 선생의 문하로서 한양태학(漢陽太學), 성균관에서 학문을 수행하는 진사였다. 집안의 족보를 찾아보니 과연 조정암(趙靜庵) 종유(從遊)라는 글이 있었다. 족보에서 같이 딸려 나온 묘비명이나 기타 사료를 찾아보니 그분의 묘비명이 있었다. 어려운 한자어를 한글로 번역(그래도 명사는 한자이다)한 문장을 읽었다. 본래 진사로 성균관에 학문을 수행하다 기묘사화 때 스승을 잃고, 그분 역시 화를 당했다고 한다.

 

이때 화를 당한 사람 중에 그분의 재종조부(할아버지 사촌동생), 탄수 이연경 등 다양한 학자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화를 당한 것과 조정암 선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고향으로 낙향했다. 고형에서 학문을 전파하고, 가까운 문우들과 학문을 논하면 말년을 보냈다. 그때 같이 학문을 논하던 인물 중에 탄수 이연경 선생이 있었다. 이연경 선생은 연산군 시절 갑자사화로 화를 당하신 분이다. 그분의 할아버지가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의 사약을 내리려 간 집행참관자로 간 게 화의 근원이었다.

 

연산군은 이연경 선생의 할아버지 이세좌를 사약을 내리게 한 후 시체를 갈기갈기 찢는 것도 모자라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이세좌의 아들들, 이연경 선생의 아버지와 그의 형제 모두 참수형을 당하여 그 머리를 효수하도록 해다. 집안이 화를 당해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이연경 선생의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자신도 제주도로 유배로 가야했다. 조선의 유배에서 한양에서 가까운 거리면 죄가 가볍겠지만, 멀리 남으로 진도, 기장, 해남과 북으로 함경도로 떠나면 그 죄가 엄중한 것이다. 가까운 것이라도 강화도 역시 죄가 무거운 죄인이 간다.

 

인조반정 광해군이 제주로 유배가는 이유 역시 그 죄가 깊다. 유배형은 사형 다음으로 높은 형이고, 유배지에 있는 죄인은 언제 금부도사가 찾아와 사약을 내릴지 모르는 형국이다. 이연경이 운이 좋은 건 금부도사가 제주도로 가서 형을 집행해야 하는데, 파도가 너무 심해 배를 띄울 수 없는 상황에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중종반정으로 이연경 선생은 다시 고향 충주로 가고, 그리고 이연경 선생의 사촌형제 역시 다시 고향으로 해배되었다. 이연경 선생의 사촌동생 중 이준경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갑자사화로 처형되고, 이준경과 그 형 이윤경 역시 어린 나이에 유배 살이를 해야 했다. 조선의 형은 참으로 무섭다. 조선이 문장과 예의의 나라라고 하나, 백성들은 늘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렸고, 사대부들 중 권력을 잡지 못하거나 혹은 백성의 편에서 권력에 항거하면 그 화가 온 가족을 도륙 내었다. 이준경은 그저 폐비윤씨의 사형집행을 한 할아버지의 과거 일로 어린나이부터 힘든 삶을 사니 얼마나 힘들 것인가? 죄인이 되는 가족에서 남자들은 너무 어리면 유배를 보낸 후 일정 나이가 되면 사약을 보내거나 혹은 다시 압송하여 참형에 처한다. 여자들은 관가의 노비가 되어 손발이 퉁퉁 부을 때까지 일을 한다.

 

이준경의 어머니 역시 그렇다. 이준경이란 인물은 이렇게 갑자사화에서 화를 보다, 다시 기묘사화에서 화를 당한다. 그 본인은 당하지 않으나, 이준경의 사촌형인 이연경은 조광조 선생과 엄청 친한 사이고, 이준경 역시 조광조 선생에게 큰 가르침을 받는다. 이준경은 당대의 학자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하고 친한 학우였다. 그러나 2사람 모두 조정암 선생과 비교하여 더 높지 않다고 여겼다. 이런 이준경에게 내가 눈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묘사화 시 화를 당한 나의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살고 있을 때 이준경이 나의 할아버지의 재주를 너무 아까워하여 무관직 어모장군에 천거했다.

 

몇 년 전 시골에 내려가 파() 시조의 제사를 준비하던 작은아버지가 신위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참봉공, 통정공, 부사공, 만호공, 어모장군공, 훈련원정공 등등이 보였다. 어모장군에 임관된 할아버지가 바로 성균관 진사로 학문을 수행한 분이다. 문과 대과에서 진사로 계신 분이 무관직을 맡은 것은 의외이다. 문무를 모두 겸비했다고 하나, 문예로 출사한 분이 무예로 임관했다. 이준경이 그때 천거한 인물을 보니 족보에 구수담이란 인물이 있었다. 구수담은 당시 권력자를 비판한 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기묘사화를 당한 분이 다시 기용되어도 기묘사화를 일으킨 자들은 무덤에 있지만, 기묘사하와 같은 참극을 일으킬 수 있는 권력자들을 여전했다. 이준경이란 인물은 바로 그런 탐관오리와 권력자 사이에서 국가의 업무를 돌보던 실천적 사대부였다. 이준경이란 인물이 또 다시 집안 족보에 나온 것은 본 적이 있는데,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분의 작은아버지는 본래 만호(萬戶)라는 무관을 지낸 분이 있다. 1555년 왜적이 을묘왜변을 일으켜 전남 해남, 영암, 강진 등을 약탈하며 전주성까지 위협한 큰 전쟁이었다.

 

선조시기 임진왜란을 대다수 사람들은 생각하나, 사실 임진왜란의 전초는 을묘왜변이었다. 을묘왜변 이준경과 그의 형 이윤경은 전주성과 영암성을 지키며 왜적을 소탕했다. 이때 집안 족보를 보니 만호를 지냈던 분은 이준경에게 을묘왜변 시 도움을 주었고, 이준경과 매우 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나는 이준경이란 인물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읽은 <청풍신명>은 이준경의 삶을 소설로 만든 책이다. 내용을 읽으면 다소 도교적 발상이 함유되어 있고, 조광조의 학문을 이은 이준경에게 유학의 기본이 중시되겠지만, 소설의 감인지 아니면 당대 사료를 보고 그렇게 했는지 알 수 없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이준경이 해오던 일들이 엄청났고, 파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준경은 갑자사화, 기묘사화를 직접 겪었고, 명종 때 을사사화로 조카를 잃었다. 권력에 저항하기보단 권력을 지닌 자를 어떤 계기로 통해 물리쳐서 위기를 넘어섰다. 이준경의 실수는 아니나 이준경이 가장 잘한 일이 엉뚱하게 된 것은 명종의 임종 시기였다. 명종은 후사가 없고, 그의 아내 인현황후는 선조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때 척신 이양이 계속 압력을 넣자, 이준경은 이양에게 직접 내의관에 가서 환약을 가져오라 하고, 이때 왕에게 후사를 정하라 하자 왕은 왕비에게 눈빛을 보낸다.

 

왕비는 그 입으로 선조를 호명하자, 이준경은 큰소리로 따라 부르고, 승정원의 관리에서 기 이름을 기록하게 한다. 어려운 시기를 위기에서 기회로 만들고, 주변에 인물이 있으면 거론하여 그를 기용하거나 추천한다. 이준경이 추천인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오리영감 이원익이다. 조선 정승 중에서 가장 오래한 사람 중에 황희와 더불어 올라간 사람이 이원익이다. 전주이씨 출신인 이원익은 왕가의 후예지만, 왕보다 백성을 더 사랑했다. 이원익이 알아본 인물로 충무공 이순신이 있다.

 

소설을 보면 방진이란 보성군수가 나오는데, 활을 명수였다. 방진에게 외동딸이 있는데, 그딸을 이순신과 부부의 연을 맺으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은 문장력이 뛰어났지만, 매우 가난한 선비였다. 만약 방진 군수와 그 딸을 맞이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일본에게 조선을 내어주었을지도 모른다. <청풍신명>은 그런 이준경을 삶을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그린 책이다. 우리 선조들 중에 위대한 인물은 모두 어려운 시절을 겪어도 거기서 좌절하지 않은 것은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느낀 바는 진정 백성을 사랑하던 관리들은 백성의 삶에 녹아들어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이준경이 지방의 목민관이 되었을 때 가난과 재난에 지친 백성을 위해 구휼활동을 하는데, 다른 지역의 목민관이 자신의 딸에게 병자를 위해 간호하게 하거나, 물을 길어 백성들을 돌보게 한 점이다. 이준경 역시 자신의 아들에게 명을 내려 그 여성을 돕게 하도록 하고, 나중에 혼인도 올린다. 이준경의 사무처리는 뭐든지 딱 잘라버리는 게 아니다. 나도 성격이 조금 급하고 섣부른 판단을 잘하는 편이라 잘 느낀다.

 

변방의 오랑캐가 계속 조선군민을 괴롭히자, 이준경은 그들을 토벌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오히려 인정을 베풀어 조선의 백성과 계속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칼로 계속 그들을 베면, 그들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계속 국경을 침범하고 마을을 약탈할 것이다. 이준경의 재치는 바로 뭐든 그때 상황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무를 처리한 점이다. 한국의 정치인이 배워야 할 인물 중에 황희, 이원익, 채제공, 정약용 같은 인물도 있지만, 이준경의 활약 역시 그러하다. 문관이라도 체술을 배워 전략과 전술, 전투까지 이어가는 것은 참 중요하다.

 

사람에게 항상 필요한 점은 선견지명인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 앞으로 다가올 세대를 위한 주춧돌을 놓아 후손들이 계속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를 위한 현재를 다시 재정비하는 일이란 어렵다. 사람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도리까지 저버리는 게 현실이다. 인간의 도리를 잃는 순간 모든 것은 허물어진다. 이준경은 인간의 도리와 더불어 명분을 중시했다. 그가 실용적 정치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당장의 문제만 생각하면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난 것은 당대의 인물들이 이준경과 만난 것이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은 그렇다고 하도, 토함 이지함(토정비결), 화재 이언적, 조선 최고의 기생 황진이도 등장한다. 임꺽정을 토벌한 남치근 등도 나온다. 중종반정 이후 중종과 명종은 기존 조선의 왕권이 신권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왕의 무능함이 결국 신권이 우위로 가고, 선조는 신권을 이용하여 왕권을 지키기 옥사까지 일으킨다. 이준경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으나, 결국 그렇게 되었다. 앞날을 보려면 현재를 보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나,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보단 그저 감정과 사당의 이익으로 움직였다.

 

책을 보고, 사료를 보면, 이준경이란 인물은 매우 신중했다. 이준경의 삶을 따라보면 당시 당대의 학자 이황과 조식, 기대승도 나오나, 율곡 이이도 나온다. 율곡은 학문은 깊으나 성격이 너무 급하여 경솔한 행동을 했다. 이준경이 죽기 붕당의 투쟁을 걱정했고, 율곡의 행동이 붕당정쟁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 했는데, 과연 붕당의 폐해는 심각했고, 기축옥사의 참혹함이란 말할 수 없었다. 이준경의 삶을 보면 언제나 고난의 연속이나, 그 고난 속에서 다른 사대부들처럼 권력을 누리거나 혹은 처사로 숨어있기보단 그 앞으로 나와 해결하려 했다. 세상이 더럽다고 피해도 그 더러움이 물러나지 않는다. 청풍신명이란 책제목처럼 맑은 바람, 올바른 마음의 형태가 신의 명령, 즉 우리의 사명이란 말처럼 이준경의 삶은 그렇게 살다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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