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종과 <임금님의 사건수첩>'

예종이란 임금은 재위기간이 매우 짧은 왕이었다. 본인 장남이 아닌 차남이었지만, 자신의 큰 형님이 병으로 죽어 아버지 세조를 대신하여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 예종이다. 예종은 참으로 안타까운 왕이다. 그가 일찍 죽은 이유도 있지만, 아버지 세조는 역사의 역대평가에서 매우 좋지 못한 왕으로 평가되었다. 세조는 세종의 아들이고, 태종 이방원의 손자이다. 이방원은 철인군주에서 철인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철인적 정치기반이 없다면 세종대왕이란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다.
     
세종의 아들 문종과 세조, 형제는 매우 친하고 서로를 아꼈다. 사랑하는 친형을 보내고, 왜 조카를 죽이야 하는 삼촌이 되었을까? 태조 이방원은 고려를 역모하여 왕조를 일으킨 무관이다. 그의 아들 이방원은 무관의 아들로 태어나 무장으로 활약하였다. 임금이란 무릇 학문을 뜻을 두어 큰 대의를 지니어야 하나, 그가 가진 역사란 피로 얼룩진 나날이다.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자를 베고, 자신에게 반항하는 베였으며, 자신의 아들을 반항하려고 하던 자까지 베던 무정한 군주였다.
     
그러나 태종의 방침은 다 이유가 있다. 임금이란 무릇 만 백성의 아버지로 있어야 했다. 세자의 아들이나 혹은 왕실과 종친, 그리고 외척의 가족에 있어서 안 되었다. 만 백성이 아버지, 즉 어버이로 되려면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했고, 백성의 억울함은 정치사회적 모순과 부조리고, 그 부조리를 일으키는 것은 권력을 잡은 인간이다. 권력을 가진 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권력을 잡은 자는 임금이고, 임금은 측근에게 돌아가는 권력은 막강하다. 임금 스스로 권력을 좌지우지 하지 않으면 만 백성에게 일어날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멸사봉공, 말이야 쉽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감상하면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왕은 왜 그렇게 행동해야 했을까? 조선왕조실록 모두를 아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조선의 역사에서 왕권(王權)과 신권(臣權) 사이의 간극은 멈추지 않을 분쟁과 위기의 순간이다. 그 이유를 대자면 사실 세조가 일으킨 난이나 혹은 그 이후로 일어난 많은 역성과 반정, 전쟁과 조선의 패망조차 이 관계성에서 나온 하나의 법칙이었기 때문이다.
     
 
2. 지루하나 들어볼만한 조선역사 이야기
세종대왕 시절, 조선 최고의 명재상이 있었다. 그 이름은 황희 정승,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만한 이름이고, 황씨 문중에서 최근 어느 정치인 발언에 분노하게 만든 이름 중에 하나이다. 황희는 영의정이란 직책을 맡았다. 영의정이면 조선 정부조직 서열 2위이다. 그러나 그는 항상 가난했고, 노년에도 세종의 엄청난 노동착취(인재 활용)에 의해 제대로 쉬지 못한 노인이었다. 황희 정승처럼 말 그대로 정사에만 몰두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황희가 너무 노약하자 그의 후계자로 장군 김종서를 키우려 한다. 김종서가 무관으로 생각하나 그도 역시 문관의 기질이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이다. 조선의 왕은 군주이나, 조선 군주의 후예 모둔 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왕의 후손 중 대군은 왕이 되지 못하고, 그의 후손은 사대부가 된다. 사대부가 되어도 입관하지 못하면 그대로 몰락할 수 있다. 그런다고 종실의 후손들은 왕족을 배신하지 않았다. 문제는 왕실이 사대부가 되듯이, 그 외의 사대부도 사대로 이어져 간다. 사대부(士大夫)에서 선비는 벼슬하지 않거나 5품의 벼슬까지 지칭하며, 대부는 4품 이상의 벼슬을 의미한다. 외국에서 군주가 있으면 귀족과 기사계급이 있다. 왕에게 충성하여 영지를 다스리거나 혹은 정사에 관여한다.
     
그러나 모든 귀족과 기사가 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충성하는 것은 왕인지 아니면 자신인지 모른다. 인간은 모두 자신의 생명과 이기심에 충성하나, 그 이상으로 충성하거나 혹은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왕과 신하의 관계성은 여기서 문제가 발생된다. 왕의 권력이 너무 심하면 독재가 있어날 수 있으나, 너무 약할 경우 신하에 의해 위축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왕권의 확립이 중요한 것은 다 그 이유가 있다.
     
3. 왜 왕권인가?
 
신하의 권력이 심하면 왜 문제가 생기는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조선에서 왕권에서 신하의 권력으로 넘어간 계기는 다름 아래 중종반종이라 나는 생각한다. 중종은 자신이 왕이 될 것이란 생각도 없었고, 그저 재야에 편하게 머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복형인 연산군은 무섭고, 그의 폭종은 더욱 무서웠다. 연산군 폭정이 길어도 기간이 10년이 넘는다. 그러다 어느덧 중종반정이 일어난다. 중종반정의 명분은 연산군의 폭정과 반륜도 있다. 그렇다면 그가 한참 그런 폭정과 폐륜을 일삼을 때 역성혁명을 일으킨 게 아니라 한참 뒤에 일어난 것인가?
     
연산군은 낭비가 심했다. 술과 연회, 거기에 들어가는 많은 경비, 이때까지 연산군의 주변에서 벼슬하던 이들이 갑자기 반정을 일으킨다. 왜 그럴까? 그것은 낭비로 인해 부족한 재고를 채우기 위해 반정을 할 생각조차 없던 대신의 재산을 탐냈기 때문이다. 결국 재산, 가진 것에 대한 탐욕이다. 연산군의 어리석지만, 중종에 일어난 기묘사회처럼 중종시대 권력자들도 자신의 욕심으로 무고한 사화를 일으킨다. 예종이 왜 고민하고 그렇게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인가? 이런 역사적 맥락을 보면 조금 더 잘 알 수 있을지 않은가?
     
4. 영화는 픽션이나 전후맥락적으로 다르다.
 
영화에서 과학적 근거로 통해 많은 미스터리를 푸는 예종의 모습이 나온다. 괴물물고기나, 흔들리는 호리병이나 기타 등등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종이 권력이 없다는 점이다. 아버지 세조는 반정에 의해 옹립된 군주이고, 군조로 옹립될 때 3정승 체계에서 6판서 체계로 이전하려 했다. 그 의미는 3정승이 6판서의 정치적 입안을 왕에게 직접 다 올리지 않고, 중간에서 조절하는 것이다. 왕에게 모든 처분을 맡기지 않으면, 나머지 신하가 처리하고, 게다가 이조는 문관의 인사권, 병조는 무관의 인사권을 결정한다.
     
인사권을 가지면, 자신에게 유리한 사람에게 관직을 주고, 그 관직의 권력에 의해 정치적 변수가 일어난다. 예종은 아버지 세조에 의해 왕좌를 받은 인물이다. 반정공신은 아버지 세조를 돕기 때문에 그 권력이 막강하다. 세조가 문종과 단종의 충신 김종서를 죽인 이유는 권력의 유지와 더불어 권력이 신하보다 왕에게 더 가기 위해서이다. 예종은 영화에서 보면 외로운 임금이다. 이미 훈구대신이 혼사 정략으로 통해 사돈을 맺어 권력의 사슬을 굵게 다짐 이후에서 정사를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5. 사관 윤이서의 등장
 
사관 윤이서는 아무런 권력적 사슬이 없다. 그가 사관이 되어 왕을 따르고, 다섯 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이유는 윤이서에게 권력의 이해득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은 계속 독살설이나 암살설에 시달리는데, 그 이유는 신하들 사이 권력의 관계성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군주는 오로지 백성을 위해 산다. 백성의 배불리 생업에 보장케 하고, 억울한 일에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는 일이다. 예종의 조카, 형님의 아들은 추후 조선 명군 중 하나인 성종이 된다. 연산군의 아버지이나, 그는 인간을 매우 아꼈다.
     
실록의 기록에서 어느 한 여종노비가 다리가 잘린 채 추위에 죽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극진한 간호를 명하고, 그 여종노비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조치하도록 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에서 아무것도 되지 못한 여종, 관비도 아닌 사비이면 그 처지는 비참했다. 그러나 성종은 그 노비를 위해 정성을 다 했으며, 조선왕조에서 가뭄이나 홍수가 들어서면 임금은 직접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스스로를 책문했다. 백성이 괴로운 이유는 그들의 물질적 주인인 양반이 문제였다. 권력을 가진 이유로 노비나 백성을 괴롭히고, 백성의 재산을 빼앗았다.
     
그런 양반들이 계속 관직에 출세하고, 권력의 고리는 계속 연결되어 깨지지 않으면 어째 백성의 고통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벼슬 중에 특히 문관, 그중에 임금 곁에 있을 수 있는 자는 양반사대부 집안의 문관이다. 그런 문관이 권력과 밀접한 순간 왕의 개혁의지는 이미 수가 틀리게 되는 것이다. 윤이서는 권력 사슬구조가 없으며, 부당한 일에 납득하지 못한다. 예종이 그를 거둔 이유는 기존 구조의 문제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물론 구조보단 그 구조를 이루는 인간이 문제였다.
     
6. 경제학적 관점
 
조선의 군주와 사대부는 백성의 경제적 상황이 중요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돈만이 아니라 배불리 먹고 제대로 된 물건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되는가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철광석이다. 철은 인류가 모든 발전을 하기 위한 물질이다. 무기에서 검과 창이 되고, 집과 배를 만드는 구조물이며, 인류역사에서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한 기초적 광물이 철이다. 그 철이 누군가 독점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조선은 자본주의 국가, 아니 근대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특성에서 재료의 중요성은 보인다, 지금도 건설현장에서 레미콘 톤당 가격이 무척 중요하다. 하물며 철이면 얼마나 더 심한가? 누군가 철광석의 존재를 숨기고, 그것을 독점하면 어찌 되는가? 국가는 비싼 것에 무기를 만든 원자재 철을 구매하고, 백성은 생활용구 원자재인 철을 구하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한다. 결국 국가가 빈곤해지고, 백성 역시 삶이 수척해진다.
     
영화가 비록 조선이란 이전시대를 현대적 감각을 다소 반영했다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요건을 배제할 수 없다. 서양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경제학을 강조하는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적재적소에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서 시작된다. 지금 우리의 경제적 관념과 경제학의 경제관념은 다르지만, 영화에서 경제학적 관점은 백성에게 필요한 철의 제공이 원활하게 되어야 하나, 누군가 그 철광석을 일부러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왕이 보낸 밀사조차 암살당하고, 왕의 목을 노리는 자들도 속출한다.
     
7. 코미디지만 코미디가 아니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예종과 사관 2사람의 이상한 플레이로 웃음을 자아낸다. 모든 것을 기억하나 다소 얼이 빠진 사관, 그리고 똑똑하지만 엉뚱하고 자애로운 군주, 이들이 왕권을 위해 움직이려 하나, 주변은 온통 적이다. 장면을 보면 예종이 죽은 것처럼 소문나자 모든 고위대신들이 속이 편한 것처럼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백성들은 철이 비싸서 생계에 많은 부담이 와도 이들에게 큰 문제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왕이 개혁안을 내놓으려 하면 백성의 이름으로 만류한다.
     
백성의 이름은 팔아먹으면서 백성의 등골을 빠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예종의 모습은 보면 엉뚱하더라도 성군(聖君)이고 명군(明君)이다. 하지만 그런 군주일수록 간신배에겐 그저 불편한 임금에 불과하다. 임금은 외로웠다. 그리고 백성들은 혼란에 빠진다. 예종이 보여주는 기상천외한 과학, 판단력, 인덕은 분명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그가 넘지 못한 벽은 여실히 보여준다. 형님의 아들 성종을 아끼는 그의 마음에서 알 수 있다. 고위대신이 종실을 이간질하는 책략에서 예종은 오히려 종친을 지키려 하는 모습이 나온다.
     
성종 다음 중종은 명군 대신 용군(庸君)으로 통한다. 명종과 선조 역시 사화와 옥사를 일으키고 인조는 전쟁의 화를 만들고, 숙종은 용군의 특성을 이용하여 정치적으로 피를 흘리게 만든다. 정치적으로 군주의 위치가 불안하면 신하들 사이에서 이간질과 정치적 다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예종은 종실을 지킨다고 하나, 후에 그것은 좌절된다. 그래도 성종의 업적인 경국대전의 초석을 마련한 것이 예종이니 어찌 큰 업적을 남기지 않았는가? 
     
8. 영화의 흐름과 원작, 시대적 조건
 
영화는 예종의 엉뚱한 사관의 어설픈 행동을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만들어낸다. 웃음이 나오지만 웃음이 나오기도 어렵다. 이 영화의 원작은 직접 본 것은 아니나, 원작은 만화책인 것으로 안다. 예종은 20살 정도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 배우 이선균 씨는 나이가 제법 있으나 20살의 연기를 맡아야 했다. 게다가 예종은 젊은 나이에 운명을 하고 만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무술실력이 매우 뛰어난 장수이고, 이방원과 그의 후손 왕조 역시 무술이 뛰어난 군주(효종과 사도세자)는 많으나, 예종의 무술을 보면 너무 지나치게 수준이 높다. 무관으로 입관하여 오랑캐가 출몰하는 국경의 부사 내지 무관의 무술실력은 보통은 아니다. 작가의 마인드나 영화연출을 위한 장면이겠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너무 예종은 띄워준 것은 아닌가 싶다.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와 암수는 리뷰에 올리지 않겠지만,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이란 자리와 더불어 임금을 중심으로 둘러싼 신하들의 권력관계이다.
     
조선이 몰락하고 망한 이유는 바로 왕권의 몰락이다. 태종시대에 누가 조금이라도 백성의 재산을 탐닉하거나 혹은 국가 재산을 가로채면 용서란 없었다. 왕자의 난이 2번 일어나 형제를 죽인 정도이니 그 처참함을 생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예종에겐 그런 증조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쓸쓸한 임금, 그 옆에 지키고 있는 오보 윤이서지만, 권력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영화 <사도>에서 송강호 씨는 영조를 맡는데, 그때 대사 중에 이 장면이 인상이 깊다.
     
단지 대사 모두가 기억나지 않지만, “왕이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신하가 결정한 사항에 대하여 책임지는 잘기이다.” 이미 영조는 조선왕조의 권력이 임금이 아니라 신하에게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조는 조선의 권력이 노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노론에 의해 임금이 된 왕이다. 형님 경종의 죽음에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아들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평생 후회한 임금, 그 모든 것은 조선왕조의 권력이 군주정이 아닌 신하들의 중심이고, 그 신하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정치권력이 이익에 의해 움직이니 당연히 백성들은 슬퍼하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예종이 그렇게도 바삐 움직이는 이유에 대해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영화는 픽션이어도 예종의 입장에서 픽션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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