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참으로 여러 가지 바쁜 시기이다. 55일 어린이날을 시작하여 58일 어버이날, 515일 스승의 날, 성년의 날과 부부의 날, 하다못해 음력을 기준으로 부처님 오시는 날 역시 5월이다. 5월의 푸르고 더운 봄은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여유와 더불어 의무감을 부여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5월은 그렇게 아름다운 일만 존재하는 달은 아니다. 5월은 언제나 슬픈 일도 있다. 523일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한 날이 다가오고, 그 이전 518일은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사건이 떠오르는 날이다.

 

최근 지만원 씨가 지목한 광수73호가 사실은 광주시민군이었고, 그는 평생 조용히 아픔을 숨긴 채 살아가고 싶으나, 그분의 따님이 자신의 아버지가 전혀 상관없는 북한 특수부대란 오명을 지만원 씨에게 받자, 그 가족들은 과거의 아픔을 알리기 시작했다. 5월의 즐거움과 감사함이 따르는 이상으로 슬픔은 크다. 실제 광주518 망월묘역에 가면 유가족들이 한약 한복을 입고 묘비를 닦아주고, 기념전시관을 들여다보면 피가 묻은 옷들이 여기저기 전시되어 있다. 5월이란 그런 시기이다. 모든 생명이 움을 트는 시기라면 어느 생명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꺼져가는 것을 말이다.

 

5월의 시작은 May-day, 즉 노동절이다. 한국에서 근로자의 날이나, 외국에서 노동절로 통하고, 노동절이 되면 유럽의 선진 국가들은 국경일로 휴무를 취하고, 각종 노동운동 관련 행사가 길거리에서 일어난다. 노동이란 단어를 들으면 한국에서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본인 자신도 임금을 받고, 5일에 8시간 근무하기 바라면서 왜 그런 것인가? 사회적 통념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자신은 힘든 공사장과 공장 같은 곳이 아니라 돈도 많이 받고 쾌적한 곳에만 일하기를 바라는 심리일 것이다.

 

어린 시절, 대부분 어른들은 공장에 가면 돈도 많이 못 벌고 힘든 일만 한다고 했다. 우리 세대의 부모들은 다들 공사장과 공장에서 몸을 축 내면 일을 했고, 그렇게 몸이 망가진 채 노년을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면 가는 경우가 많다. 안전도구와 지침은 필수적으로 착용하고 지켜야 하나, 막상 현장에서 그런 일들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최근 서해 쪽 고속도로 건설 중에 노동자 4명이 공사용 난간이 무너져 30m 가량 낙하했다. 그곳에 안전관리자와 공사관리책임자는 없었다. 건설노동자는 하루하루 일을 해야 임금을 받는다. 그들과 상대하면 매우 거친 인간이고, 보통의 상식으로 대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힘든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근무하는 중간에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며,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도 언제나 반주이다. 담배를 마구 피며 던지지만, 사실 누구보다 인간적인 분들이다. 자신의 몸을 망가져 가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챙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분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슬프다. 자신의 실수보단 안전문제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안전에 대한 관리기준은 결국 투자에 비례한다. 기업에서 수급한 공사금액에서 하도로 넘길 때 이윤을 챙기기 위해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다. 안전모와 안전화는 개인의 것을 사용해도 안전비계나 도구들 300만원 아끼려 할 때 사고로 그 수십 수백 배를 손해 보는 일이 많다.

 

그런데도 계속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고의 확률은 전체 공사 진행과 대비하여 매우 적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목숨보다 고귀한 게 이윤이다. 이윤의 가장 큰 조건은 빠른 시간에 해당 공정을 정리하여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전 공정이 계속 발목을 잡으면 다음 공정까지 더 많은 시간을 소요되고, 그때까지 대출이자의 상환금은 높아지고 이윤은 축소되며, 다음 계약을 착수할 시간적 여유가 줄어든다. 결국 자본의 순환을 위해 인간의 생명과 건강은 무참히 밟히는 현실이 우리 사회의 슬픔이다.

 

이런 사회적 약자에 대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보장해준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과저 노동자 몇 명이 사고로 죽어도 뉴스조차 나오지 않았다. 건설로 통한 선진한국을 이룩하기 위해 부정적인 언론을 내보서는 안 되었다. 공장에서 어린 소녀들이 열악한 환경에 병에 걸려 피를 토하고, 폐가 손상되어 차가운 방에서 외롭게 생을 접어갈 때 세상을 그녀에게 따듯한 손을 내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여공소녀들이 먼지가 날리는 공장 닭장에서 울어야 했다. 우리는 그런 과거를 잊고 살았다. 오늘날의 한국을 이룩한 것은 한강의 기적이 아니다.

 

한강의 둔치에서 눈물을 흘리던 어린 소녀와 강변에서 홀로 외롭게 술을 마시며 달래던 많은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강은 기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기만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는 매우 짧다. 주권을 빼앗긴 것과 더불어 전쟁의 상흔이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냉전이 지배적이었고, 자본주의 시장체계가 부흥하던 시절이다. 돈이 국가를 위해서라면 무조건 희생되던 시절, 막상 돈이 국가로 모여도 그것을 위해 일하던 사람들에겐 혜택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임금은 제자리고, 노동 강도는 더 강해졌다.

 

5월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저 행사에만 집중하지만, 5월은 저항과 혁명의 시기이다. 55일 현대철학과 경제학 그리고 문학과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친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난 날이다. 200주년이 된 그의 탄생기념일이고, 그가 저술한 <자본론>이 세상에 알려진지 약 150년이 넘었다. 현대 경제학을 바라보면, 고전경제학의 시초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어도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제시한 자본주의의 문제는 지금 보아도 큰 괴리감이 없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의 삶은 겨우 조금 나아진 점이다.

 

지금 한국이나 유럽에서 만 5세의 어린 아동이 공장 엔진에서 고된 노동을 하지 않는다. 방적기계를 돌리다 이제 중학교 되는 어린 소녀가 손가락이 잘리거나, 30세 정도 청년들이 폐암이나 폐질환으로 사망하지 않는다. 이 모든 일들이 마르크스가 150년 전에 목격한 일들이다. 마르크스를 두고 사람들은 그저 사회주의 사상가 내지 공산주의 이론가 창시자 정도로 알 것이다. 주변에 어느 누가 경제학과를 나와 내가 개인적으로 <자본론>을 읽어봤냐는 말에 대부분 아직이란 대답이 많았다.

 

경제학에서 거시경제학과 미시경제학으로 구분하여 배우고, 거기에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보단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 경제노선을 더욱 선호하는 한국 경제학이다. 문제는 사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도 엄연히 노동자의 자리로 들어가는데,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르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사회적 문제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만 하라고 배우고 생각해도 막상 현실의 벽은 이론적 역량과 별개의 문제이다. 신자유주의에서 경쟁의 자유라고 해도 그건 공정한 조건이지, 대기업과 정부기관의 유착관계, 법과 도덕을 초월한 경제논리에서 스미스의 <국부론>은 결코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을 저술한 시기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자본론>을 읽으면 단순히 자본주의 문제점을 거론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를 연구한 서적이다. 자본의 흐름과 유통만 아니라 자본의 시작과 탄생, 자본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역사와 정치, 더 나아가서 혁명과 사회적 헤게모니까지 이어진다. 마르크스는 기존 사회는 관념으로 통찰하는 것을 지나 물질적인 토대가 되어 움직인다고 보았다. 가령 한국에서 법을 제정하고 개정할 때 임금이나 아동정책, 그리고 교육정책을 보면 인구감소와 영아출생 그리고 결혼비율에서 조인한다.

 

물질적 토대, 즉 인구의 비는 관념적인 조건이 아니라 현실 있는 그 자체의 조건이다. 인구의 비례에 따라 시장체계는 변화하고, 정책도 바뀐다. 자본이 인구문제를 야기 시켰으니, 이제는 인구의 문제가 자본주의 체계를 위협한다. 사람들이 인구가 감소해도 오히려 기술발전이 되어 노동인력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분명 기술발전과 과학의 진보는 인력의 감축을 유발하고, 사람의 손을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로 대체하면서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 상품의 수보다 기계에서 찍힌 상품의 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말은 무엇이냐? 결국 고생산성이 인력이 감축하여 노동력의 투입을 감소시켜도 그 상품에 대해 구매해야 할 대상들은 더욱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구매자들이 부족하고, 상품은 나와도 팔리지 않는다.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기업은 이윤을 추구할 수 없고, 끝내는 기업을 접어야 한다. 인력의 감소는 경제활동에서 생산만 보는 게 아니라 소비의 대상까지 이어진다. 교육대학교 학생들이 과다선발로 인해 임용 후 대도시권 진입이 어렵다고 한다. 대도시권이 아닌 농촌과 어촌의 모든 학교의 필요교사 인원을 더해도 서울의 교사 수보다 적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수도권 초등학교 정원이 감축하고, 변두리지역은 폐교에 이른다. 폐교가 되는 순간 임용교사의 취업률은 저하되고, 결국 교육대학교 정원수는 감축된다. 학생 수가 감소되면 교육관련 업체와 학원, 각종 아동 생산품들의 소비가 감소되고, 그 아동들이 성장함에 따라 관련 생산품들의 소비 역시 감소된다. 인구의 감소, 노동력 감소로 외국인의 이민을 늘리면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기 어렵고, 정착하기 위해 의식주에 많은 비용이 필요하며, 그 이상의 생산품을 소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정책의 방향에서 마르크스의 고찰과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의 연구는 거의 들어맞는다. 단지 마르크스가 부정적인 대상이 된 이유는 그의 예언이 일치하지 않았고, 제대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살던 시절은 산업혁명이 이룩한 지 반 세기가 도래하던 시대다. 공장의 매연과 폐수는 강과 하늘을 덮고, 많은 하층민들은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렸다. 주간의 공장은 어느덧 24시간 체계로 바뀌었고, 아침에 출근하여 저녁에 오던 사람들은 아침에 가서 다음날 아침에도 공장에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마르크스는 그런 이들에 대한 연민감과 그들을 착취하는 부르주아를 경멸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은 국가체계 상 위협적이었고, 그는 환대받는 학자가 아니라 주의와 감시의 대상이었다. 마르크스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박사학위까지 받은 엘리트이다. 헤겔학파 청년이던 마르크스는 관념적인 망상을 떠나 실제적 현실을 보자고 했다. 라인신문을 다니다 폐간되고, 파리와 브뤼셀로 옮기면서 그는 새로운 사상을 연구하고 전파하려 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만큼 대단한 인물이 있으니 그는 평생 마르크스의 친구이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마르크스의 연인이며 아내인 예나였다. 예나는 베스트팔렌 가문의 영애였다. 부유한 귀족집안 출신인 그녀가 평생 화려하고 품위 있는 귀족의 딸이 아니라 노동운동가의 아내로 살아야 했다.

 

가난과 배고픔, 질병과 추방이란 아픔에서 그녀는 마르크스와 평생을 나누었다. 영화 <청년 마르크스>에서 예나는 상당히 도발적이고 정열적인 여성으로 나온다. 마르크스가 홀로 영국에 가야할 때, 그는 고민한다. 아내와 어린 딸을 나두고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르크스에게 예나는 오히려 그 길을 가라고 권유한다. 위대한 혁명사상가와 혁명가는 그 자신만으로 위대해진 것이 아니다. 그 옆에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적인 아버지 장 자크 루소는 테레사라는 여성이 있었고, 볼셰비키 혁명을 이룩한 레닌과 트로츠키 역시 자신과 함께 한 여성이 있었다.

 

영화에서 마르크스의 열정적 삶을 그릴 때, 좌절과 시련의 시간에서 예나가 보여준 용기, 그리고 예나와 마르크스가 서로 격렬한 애정행위를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마르크스가 나오는 점, 마르크스의 삶을 조명한 점에서 상당히 이 영화는 정치적인 이념이 가득한 작품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삶에서 예나의 모습은 없을 수가 없었고, 엥겔스의 옆에도 공장에서 노동하던 여성 메리의 모습 역시 지울 수 없었다. 혁명에 대한 열정과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무모하게 대항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예나의 모습에서 영화는 지겨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영상시간 100분이 금방 갈 정도로 영화 프레임은 갈등과 갈등 그리고 저항과 투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마르크스가 프루동 박사와 대립하게 된 동기가 나온다. 프루동은 <빈곤의 철학>이란 서적을 내놓는다. 가난하고 소유물이 없이 평등하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다. 장 자크 루소의 사상에서 조금 틀어진 사고방식으로, 루소는 너무 가난해도 안 되고, 너무 부유해서 안 된다고 했다. 루소의 <정치경제론><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읽으면 마르크스의 사상가 매우 흡사한 게 많았다. 루소는 인간의 불평등이 자연적 원인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란 것을 밝혔다. 단지 마르크스가 제시한 것처럼 그 수학적 원리를 내세우지 못했을 뿐이다. 산업혁명이 아직 제대로 태동하지 않았고, 농업과 수공업 중심이 되던 사회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착취의 개념을 시간과 노동력의 착취, 그리고 노동력과 생산수단 간의 관계, 임금과 물가 간의 관계를 연구했다. 실제 <자본론>을 읽으면 재미있는 말이 나온다. 물가가 상승하면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여 자본가는 이윤을 확대하고, 물가가 하락하면 임금을 하락하거나 동결하여 지출을 감소하여 이윤을 확대할 수 있고, 또한 가격이 저하되면 상품이 박리다매하기에 이윤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이다. 어느 것이나 자본가가 손해 보는 일이 없다. 그 조건이 노동력의 착취가 계속 되는 조건 아래서 말이다.

 

영화는 마르크스가 라인신문 폐간에서 <공산당 선언>이 나오기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그가 다투던 대상은 권력을 가진 정부와 자본가만이 아니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하던 이들이었다. 현실을 망각한 채 형제애를 외치는 바이틀링, 현실물질 조건을 경시하던 프루동과 바쿠닌, 그 외의 많은 사회운동가 역시 다투었다. 현재 이중에서 가장 신뢰하고 높은 가치를 지닌 인물은 마르크스가 되었다. 마르크스는 승리자가 되지 못했다. 마르크스가 추구하던 사회는 영원히 올 수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생산조건이 어느 일정단계 이르면 더 이상 생산할 필요 없이 컨트롤하게 되어 노동착취가 일어나지 않을 생산단계가 목표였다.

 

러시아 소비에트의 실패는 생산조건에서 생산수단의 기술력 한계, 생산품에 대한 보급, 생산품이 사회에 끼치는 실용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소비에트가 존재해도 이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미래에는 지금과 비교하여 훨씬 더 좋은 생산품과 뛰어난 과학기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이런 생산품을 대중에게 보급하기 좋은 수단은 자본주의 경제구조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 구조에서 대부분 시민인 노동자를 희생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보장하게 만드는 것이 마르크스가 남긴 업적이다.

 

마르크스와 많은 사상가들이 활동하면서 유럽의 19세기는 혁명의 시대를 만들었고, 유럽은 혼란의 시기를 보냈다. 어느 누구는 마르크스에 의해 일어난 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나, 다르게 생각하면 마르크스의 사상이 없이 계속 고된 노동을 많은 시민들을 괴롭혔다면 그들의 죽음 역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영화의 제작진이 프랑스계열이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대화는 독일어로, 마르크스가 유럽을 망명할 때 프랑스어로, 마지막으로 생을 마친 영국에서 영어로 대화한다.

 

하지만 영화제작진들이 프랑스이기에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발간한 <공산당 선언>이 등장한 후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을 보여주며 마친다. 혁명은 참으로 달콤하면서 위협적인 단어이다. 실상 19세기는 유럽만이 아니라 남미에서 일어난다. 혁명이 있었기에 근대가 있었고, 근대가 있었기에 현대가 있다. 현대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권이다. 인권은 국가에 의해 생명과 재산이 보호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결합한 적에서 기업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재산은 보호되는 게 아니고, 그저 관리되는 것이다.

 

노동자의 생명이 산업재해로 잃으면 막대한 벌금과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고, 때에 따라서 영업시설을 며칠 간 정지해야 한다. 운이 없을 경우 언론에 노출되어 기업이미지 훼손으로 영업 손해를 보기도 한다. 노동자의 재산은 오직 자신의 신체밖에 없다. 신체가 손상당하는 재해현장에서 기업은 그저 약간의 보상비와 노동관리청에 부과하는 세금만 더 납부할 뿐이다. 그나마 제대로 신고하면 모르지만, 산업재해가 발생되면 산업재해보험금을 더 납부해야 하기에 일반 진료로 돌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무책임한 일이 있기에 마르크스의 사상이 소비에트 붕괴와 함께 사라졌다고 믿은 20세기 말의 사고방식은 틀렸다.

 

21세기 역시 인간이 소외와 착취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더 교묘하게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고 있었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인간은 자연을 착취의 대상물로 삼아 정복하기 시작했고, 그 정복이 끝이 나면 마지막에 인간은 인간을 착취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대해 많은 이들은 그 결과의 고통만 알지 그 과정의 흐름을 알지 못한다. 영화 <청년 마르크스>에서 마르크스는 그 과정을 찾아가며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마르크스의 삶을 알고 사상을 알아도 당장은 사회를 변혁하기 어렵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하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 모두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나의 삶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후손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미래가 더 이상 의미 없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삶을 위해 우리는 투쟁을 한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을 뿐이다. 마르크스는 평생 사회적 약자 극빈층 노동자를 위해 살았다. 우리는 마르크스와 같이 살아갈 수 없고 살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가 말한 인간의 가치와 삶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 마르크스>를 본다면 그가 위대한 사상가 이전에 한 여인을 사랑하고, 늘 현실에서 방황하고 좌절했던 청년이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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