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 사이》

 

타네하시 코츠 / 열린책들 / 2016-09-05
양장본 / 248쪽 / 195*124mm / 332g

 

 

'미국 사회의 인종 문제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킨 문제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책이다. 수상내역을 보자니 이미 작년 미국에서 이 책이 출간되고는 어지간히 화제가 되었었나 보다.  발췌된 내용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백인의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 문제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오늘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암울하고 처절하며 끔찍하기까지한, 민주주의와 평등과 인권을 자랑하는 미국이란 나라 안에서.

 

저자는 인종 차별이 미국의 역사에서 출발되었고, 사회 전반의 시스템 속에 깊이 뿌리박힌 결과로 오늘날까지도 흑인 살해와 탄압의 사건들이 발행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오랜 세월 구축된 차별의 철창 안에서 흑인의 삶이란 불안과 공포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민감한 소재이고 다소 과격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더라도, 뿌리 깊은 문제를 세상에 끄집어내어 사람들이 이야기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큰 가치가 있다. 저자는 작가로서 또 지식인으로서 용맹하다. (약간의 축소를 하자면) 변화를 위한 투쟁은 삶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니, 이 책은 어쩌면 또 다른 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열다섯 살 너에게 이 글을 쓴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에릭 가너가 개비 담배를 팔았다는 이유로 목이 졸려 죽는 것을 네가 본 게 바로 올해였기 때문이다. 레니샤 맥브라이드가 도움을 청했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죽고, 존 크로퍼드가 어느 백화점 안을 둘러보았다는 이유로 총에 쓰러졌다는 걸 이제 너도 알기 때문이야. (…) 예전에는 몰랐다 해도, 네 나라의 경찰에게는 네 몸뚱이를 파괴할 권한이 주어져 있다는 걸 이제 너는 똑똑히 알게 되었어. (p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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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루이스 세풀베다 / 열린책들 / 2016-07-20
양장본 / 104쪽 / 195*125mm / 240g

 

'따끈따끈'한 신간은 아니고 '미지근'한 신간이라고 할까. 7월에 출간된 것을 못 보고 지나쳤는지 오늘에야 내 눈에 띄다니.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을 읽기 전엔 이 작가를 잘 몰랐다. 하지만 그 얇은 텍스트를 읽고 보니 왜 라틴 아메리카의 거장이라고 하는지, 세계적인 작가라고 하는지 알겠더라.(년식이 좀 된 책을 구해서 읽었기에 번역이 매우 매끄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책이었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동화 작가로도 활동한다. 이 책은 '달팽이들은 왜 이렇게 느린 걸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 어떤 달팽이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누구나 당연해서 당연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무언가 성취한다. 이 이야기 속의 달팽이 역시 그런 과정을 겪을 것인지, 그 여정을 함께 하는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 것인지가 궁금하다.
 

「나도 예전에는 잘 날아다녔단다. 하지만 지금은 날 수가 없구나. 옛날에, 그러니까 너희 달팽이들이 이 들판에 살기 훨씬 전에는 나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지. 너도밤나무, 밤나무, 떡갈나무, 호두나무, 참나무 등등, 셀 수 없을 정도였어. 그때만 해도 모든 나무들이 다 내 집이나 마찬가지였단다. 밤마다 나무들 사이를 자유자재로 날아다녔지. 사라져 버린 나무들에 대한 추억이 쌓이면서 몸이 너무 무거워지는 바람에 이젠 날 수조차 없구나. 보아하니 넌 아직 어린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까지 네가 본 것, 쓴맛이든 단맛이든 네가 여태껏 맛본 것, 그리고 비와 햇빛, 추위와 밤, 그 모든 것들이 너와 함께 움직이다 보니 무거울 수밖에. 그 무게를 다 감당하기는 아직 네가 어리기 때문에 몸이 느린 거란다.」
「이렇게 느려 터져서 뭘 한단 말이에요?」 달팽이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어.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해줄 말이 없구나. 그 대답은 너 스스로 찾아야만 해.」(p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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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최민석 / 보랏빛소 / 2016-09-04
256쪽 / 188*127mm / 333g

 

'초단편 소설집'이란다. 초단편 소설은 뭘 말하는 것인지 감이 잘 안잡힌다. 다섯 페이지? 한 페이지? 한 문단? 잘은 모르겠지만 300페이지도 안되는 책 한권에 40여 편의 소설이 들어 있다고 하니, 짧은 글들의 모임인 건 분명하다.

 

장르에 상관없이 난 이렇게 실험적인 글이 좋다. 신선할지도 모르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씻기 전에, 간단한 아침을 먹으면서, 짧은 휴식 시간에, 점심 먹고 잠깐, 지하철이나 버스 기다리면서 잠깐, 자기 전 잠깐. 그렇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임경선 작가가 추천글에 "야하지만 청순하고, 저속하지만 귀엽고, 담백하지만 강렬하고, 성긴 것 같지만 촘촘한, 그런 특별한 소설이다."라고 썼다. 이 설명을 보고 나니 더욱 종잡을 수 없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확실히 '야하지만 청순하다'는 부분에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도저히 당신 소설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가 편지의 첫 문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OO에 사는 누구입니다’ 같은 의례적 인사는 없었고, 하다못해 ‘어이, 작가 양반. 되도 않는 소설 쓰느라 고생 많군’ 같은 비아냥도 없었다. 자신을 마장동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이라 소개한 이의 이름은 이재만이었다. 사실 나는 약간 놀랐다. 이재만은 내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악당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때문에 오해를 받고 있어 억울하다고 했다.
- 『독자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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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 예담 / 2016-09-05
반양장본 / 256쪽 / 188*128mm(B6) / 256g

 

구병모의 새 소설이 나왔다. 아내와 사별하고, 외국에 살던 외아들도 불의의 사고로 잃은 노인이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들의 이름으로 17세 소년의 모습을 한 로봇이 배달되어 온다. 여기까지 소개를 보고 나니 뭔가 냄새가 난다. 그리고 걱정이 된다. 혹시 내가 예상하는 그 이야기를 읽게 될까 겁이 난다.
하지만 '작가의 한 마디'에 적힌 긴 문장이 내 생각을 돌려 놓았다.

 

"로봇의 감정 발생 서사는 마르고 닳도록 반복되어온 것인데 거기 하나를 더 보태도 될까 의심스러워하고, 보탠다면 뭔가 획기적으로 다른 방식이어야 하나 싶은 마음에 조심스러워하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 스스로 소재의 진부함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고민을 거친 작품일거라 짐작하게 된다. 믿게 되고, 확인하고 싶어진다. 적어도 '마르고 닳도록 반복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설렘이랄까.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구리하라 야스시 / 서유재 / 2016-09-05
252쪽 / 193*135mm / 328g

 

웃기다고 누군가 말했다. 누군가는 어처구니없지만 다 말은 된다고, 누군가는 솔직함이 좋다고 한다. 이 책은 '사회과학 > 국제사회비평/칼럼' 으로 분류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이런 언발란스한 책들에 관심이 간다. 내가 '비평'이라는 단어에 대해 고정관념이 박힌 탓일까.

 

웃다가 배꼽이 빠지는지는 일단 읽어봐야 알겠지만, 목차만 보더라도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한 느낌이 나는 게 마음에 든다. 대놓고 읽히려고 쓰여진 글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궁금한 건 또 못 참으니까.
마음껏 웃으며 통쾌할 준비는 되어 있다.

 

"아아! 이것이 먹는다는 것인가. 이런 걸 쾌감이라 하는 걸까. 그 이후 나는 참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부모님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니 고구마든 뭐든 먹을 것은 가지고 나오면 된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든가, 그런 말을 하는 놈들은 먹는 기쁨을 모르는 놈들이다. 일하지 않고도 배불리 먹고 싶다. 그리고 나는 ‘어엿한 사회인 되기’를 그만두어 버렸다."
- 『고구마 철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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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이별》

 

류근 / 문학과지성사 / 2016-08-31
반양장본 / 159쪽 / 205*127mm / 235g

 

평소에 시를 잘 알거나 많이 보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시가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한권 두권 마련한 시집이 몇 권 된다. 류근의 첫 번째 시집 <상처적 체질>도 그렇게 나에게 왔고, 물론 지금 당장 기억나는 것은 없으나 분명 내 안에 양분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좋은 기억으로 두 번째 시집을 반갑게 맞는다. 시가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욕심없이 읽고 싶어지는 계절이 바로 앞에 와 있으니.

 


어제 나는 많은 것들과 이별했다 작정하고 이별했다 맘먹고 이별했고 이를 악물고 이별했다 내가 이별하는 동안 빗방울은 구름의 자세와 이별했고 우산은 나의 신발장과 이별했고 사소한 외상값은 현금지급기와 이별했다 몇몇의 벌레들은 영영 목숨과 이별하기도 하였다 어제는 어제와 이별하였고 오늘은 또 어제와 이별하였다 아무런 상처 없이 나는 오늘과 또 오늘의 약속들과 마주쳤으나 또 아무런 상처 없이 그것들과 이별을 결심,하였다
……
그러니 나의 이별을 애인들에게 알리지 마라 너 빼놓곤 나조차 다 애인이다 부디, 이별하자
- 「어떻게든 이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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