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10명의 물리학자
로드리 에번스.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김소정 옮김, 유민기 감수 / 푸른지식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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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물리학자 목록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가장 본질적인 것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실제로 바꾼 사람들입니다. 물리학이 없었다면, 목록에 올라간 물리학자(와 그 밖에 많은 물리학자)가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현대 세계를 지탱하는 기술도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머리말 중에서. 

 

 

왜 물리학일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이 세상에 과학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물리학자라니. '물리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왠지 딱딱하고 어렵고 지루할 것만 같다. 이런 지루한 학문을 연구했던 사람들의 역사는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물리학이 모든 과학의 기본이며,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중요한 학문이라는 것을, 이 학문을 연구했던 위대한 과학자들의 역사 또한 우리 개개인의 역사와 다름없이 흘렀고, 그렇게 지루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물리를 기반으로 화학과 생물의 이론이 확장되며(화학자와 생물학자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과학의 발전은 사람들의 의식을 변하게 한다. 이 변화는 다시 정치, 종교, 철학 등에 영향을 주어 세상을 변화시킨다.  ​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웠던 '물리'에는 수많은 공식과 법칙들이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중요한 게 빠졌다는 느낌이 든다. 바로 물리학자와 그들의 스토리. 그래서 아쉽다. 물리학 법칙을 발견하고 완성한 사람들, 그 과정에는 동기와 배경이 있다. 우리는 다만 이들이 이뤄낸 성과에만 관심을 갖고 그 외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구나. 이런 걸 생각할 때면 내가 고등학교 물리를 왜 그렇게 힘겨워했었는지도 이해가 된다. 획일적이고 암기를 강조했던 (지금도 그렇겠지만) 고등학생 때는 이런 방향을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했으니까. 단지 왜 공중에 45도 방향으로 공을 던져야만 하는지, 돌아가는 놀이기구의 원심력을 계산하는 방법이 어디에 필요한 건지 당최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성인이 된 지금이라도 물리를 흥미롭게 다룬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일 뿐이다. 이 책은 어른들에겐 과학 교양서로, 아이들에겐 학습서로 손색이 없다.

 

이 책이 남다른 이유는 10명의 물리학자를 선정한 방식에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물리학자들은 '유명한 물리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가 선정한 위대한 물리학자'이기 때문이다. 고로 나처럼 물리학 지식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도 더러 있겠지만, 그렇기에 이 책이 더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미 익숙한 이름의 역사에서도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페러데이는 원래 책 제본공이었다. 제본하던 책에 관심을 둔 것을 계기로 과학 실험의 세계로 들어선 그는 대학 교육을 받지는 않았다는 사실. 전자기론의 초석을 마련하는 성과는 단지 열정과 독학에의 의지였다. 또 닐스 보어는 물리학에 기여한 공로로 평생 칼스버그 라거 맥주를 무료로 마실 수 있었다고. (난 여기서 물리학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의 부족한 사회성과 고집스러운 성격은 고전 물리학의 틀을 깨려는 시도에 가려져있다.

 

모두 태어나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바로 '의심과 증명 의지'. 과거의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을 거부했던 사람들이다. 설령 그런 시도로 누군가의 비난을 사고, 사회적인 고난을 경험하게 되더라도, 의심이 확신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증명을 멈추지 않았다. 분명 그런 시도들이 모여 사람들의 시야를 넓히고 기술은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기존의 틀에 대한 의심, 그 틀을 깨려는 시도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는다면 더 흥미로울 것 같다. 연대기 순에 따라 인물 배치를 한 것도 그런 의도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이 10명의 물리학자들이 천재라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한 것이어서 읽는 내내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지금껏 위대한 물리학자로 불리게 된 것이 단지 뛰어난 머리를 가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역사 안에서 겪었을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난이 인정받을 만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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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인간학 - 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이지수 옮김, 이진우 감수 / 다산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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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불평만 늘어놓는 데다 판에 박힌 상투적인 말만 내뱉는 것이 착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 생각하는 척하면서 실은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 이 정도로 친절하고 정중하게 설명하는데도 자신의 어디가 나쁜지 전혀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착한 사람이다." (p.59)

 

 

역시 니체다. 저자는 무능력한 약자들이나 니체를 읽고 간직하는 거라고 조소하지만 그래도 니체다. 나 역시도 "자존심 세고 유약한 젊은이"(p.23) 중 하나인걸까. 그래도 아직까진 니체다. 니체를 읽는 것은 보석을 정제하는 과정과 같다. 선별의 즐거움, 그것이 니체를 읽는 이유다.

 

저자는 니체를 경멸(실은 무관심)해왔지만, 지금의 일본을 설명하자면 니체의 방식이 필요했기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또 니체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일삼는 책들이 성에 차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정작 본인이 니체를 오해하는 부분도 물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니체에 동의하거나 혹은 애정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극단적인 서술로 니체를 힐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착한 사람'에 대한 비난은 '니체'에 대한 우려로 끝이 난다. ​

 

이건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니체의 말을 빌렸을 뿐, 이 책의 내용이 니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비난이 니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저자는 니체 뒤에 숨어 본인의 생각을 니체의 이미지를 통해 쏟아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니체를 에둘러 (소위 말하는) '까게'되는 효과랄까. 그런 면에서 저자는 참 똑똑하기도 하다. 동시에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더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었을 테니까.

 

이렇게 비약과 배려없는 문장들이 이어지다보니, 논쟁의 소지는 다분할 것 같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강자'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할 것인데, 니체의 '초인'과 유사한 의미로 쓰여서 지식과 교양을 갖춘 자, 삶의 소명이 있고 도덕을 갖춘 자,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감수하는, 삶의 의지가 강한 자를 뜻한다. 즉 재산이나 직업 등 사회가 매긴 가치에 따라 이분적으로 나뉘는 개념이 아니라, '약자'가 아닌, 혹은 스스로 '약자'를 이겨낸 사람들을 말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곡해하여 현실적 강자(금수저 혹은 권력자)의 이론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우려가 된다. 많은 부와 명예를 축적하고 사회적으로 입김을 행사하는, 사회의 축이 되어 제도와 구조를 만드는 그런 사람을 강자라고 하는 것이 아님을 피력하고 싶다. 진짜 강자는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스스로를 위험으로 내던지는 사람이며, 비겁하지 않고 진솔하면서도 소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불편한 부분이 간혹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많이 통쾌했다. 표시하던 문장도 너무 많아져서 관둬버리고 읽는 데만 집중했다. 니체를 등에 업은 저자는 냉철하고 직설적이며 과격하지만, 공감할 수만 있다면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니체다. 전혀 조심스럽지 않고 강박에 가까운 말들이지만, 뼈를 훑는 서늘한 직언. 내 안의 '약자'가 보일 때마다 불편함과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통쾌함을 느끼는 부조리.

 

저자는 '약자 = 착한 사람'이라는 공식이 자신의 결함을 선량함으로 표시하려는 약자들의 자기기만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약자'에 대한 저자의 정의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약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자신의 무지를, 자신의 나태함을, 자신의 서투름을, 자신의 어설픔을, 자신의 인간적 매력의 결핍을 비하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뿐더러"(p.33), 그것을 오히려 사회 구조나 제도의 문제로 돌려 자신의 약함을 옮음으로 정당화하고, 자신이 피해자라고 합리화하는 사람들. 그 사실에 조금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면서 누군가 그들의 결핍을 비판하기라도 하면 즉시 상대를 공격하는 사람들. 강자로부터 배려받기만을 원하고 , 자신은 정작 변화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약자가 있는지, 매 페이지마다 누군가가 떠오르고 쓴웃음을 짓게 된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약자의 근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확신한다. 그럼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가 결국 남겨진 문제이다. 내 지나온 삶은 물론이거니와 계획했던 앞으로의 삶까지 반성한다. 내가 가진 가치관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내 삶을 나의 것으로 살아왔는지, 내 인생을 어디에 걸어야 할지 고민한다. 그냥 이대로 약자의 모습을 간직한 채 만족감에 젖어, 죽음만을 앞둔 삶을 그럭저럭 이어나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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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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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가족도 하나가 될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 가족은 싸우질 않았잖아. 정말 이상할 만큼. 문제가 생기면 그래도 가족이 하나로 뭉쳐서 일을 해결해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 그저 우리끼리 싸우고, 부딪혀가면서 서로가 한 집에 있다는 사실을 좀 깨달았으면……(…) 욕을 먹거나 쫓겨날지언정 한번이라도 우리 집이 가족들이 사는 집이라는 걸 내 눈으로 보고 싶었어. (p.178)
​​

​막장이다. 책 표지에 나온 것처럼. 이 책을 읽은 사람의 반응은 둘로 나뉠 것 같다. 매우 흥미로웠거나 혹은 억지스러워서 불편했거나. 워낙에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쉴 새 없이 펼쳐지다보니 바삐 페이지를 넘기게 되지만, 그렇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그만인, (막장 드라마를 보고 나면 한 동안 입에 오르내리다 마는 것처럼) 잠시 머리를 스쳐가는 정도. ​분명 장단이 확실한 소설이다.

일단 이 소설에는 참 많은 장르가 보인다. 가족 드라마를 기본으로 멜로, 스릴러, 코미디 등 읽다보면 참 다양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빛이 나는 문장은 없지만, 우리가 잊고 지냈을지 모르는 일상의 가치, 기울어진 가치관들을 캐내어 새로이 생각하게 해준다. 요즘 흔히 금수저라고 하는 소수 상위 계층 가족의 이야기라지만 유독 그들만의 문제 만은 아닌, 우리 시대의 문제를 품고 있어서 오히려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가 한다.

전체적으로 드라마나 영화, 그러니까 글보다는 장면으로 이루어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염두에 두고 썼든 아니든, 읽으면 읽을수록 대본을 읽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대중성은 담보하겠지만, 그냥 재미있게 보는 걸로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가끔은 이렇게 가법게 읽고 즐길 거리도 필요한 법이니까. 기분을 진지하고 무겁게 혹은 우울하게 만드는 소설이 필요한 것처럼, 모두 저 마다의 특성대로 읽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쉬웠던 점은, 도입에서 뭔가 치밀하고 거창할 것만 같았던 혜윤의 계획이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별 것 없어서 맥이 빠졌다는 것. 이야기를 푸는 건 작가의 마음이지만, 사랑에 빠져버린 혜윤은 너무도 허술했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엔 증발해버린 느낌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끌고가는 사람이 없다. 핵심적인 사건은 있으되, 그건 누구의 몫도 아니다. 가족 구성원과 인물들 각각의 개성대로 사건을 바라보고 해결하도록 해야만 다른 문제들이 생기고, 그것이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그런 설정이 필요하겠지만, 극적인 사건을 만들기 위해 우연과 사람의 심리에 치중한 것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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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길잡이, 개와 고양이 -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는 철학 동화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강수돌 옮김, 패트릭 맥도넬 그림 / 웃는돌고래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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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개 복잡한 마음 속 생각이나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길을 잃곤 해요.
그러나 개나 고양이가 있어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주 많아요.
반려 동물 덕분에 존재의 기쁨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p.60)

 

 
이 책에는 개와 고양이가 등장해요. 반려 동물을 통해 사람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말하려고 하지요. 동물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로 행복하고 자유롭다고 해요. 그에 반해 사람은 걱정과 불안과 복잡한 생각들을 만들어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요. 우리는 흔히 사람이 동물에게 먹이와 거처를 제공하고 사랑을 나눠준다고 생각하지만, 사람 역시 동물로부터 (더 나아가 자연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때로는 배움을 얻기도 하며,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선물받는다는 걸 알고 있나요?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이렇게 사근거리는 말투를 써야할 것만 같다. 이 얇고 글자 수도 많지 않은 책 한 권을 읽고 내가 좀 더 착한 사람이 되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꼭 빼곡하게 글자가 들어차 있지 않더라도 그 이상의 의미를 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그에 더해 삽화로 글이 전달하지 못하는 직관적이고도 흥미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렇게 적은 분량의 텍스트로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고 깨닫고 결심하게 하는 것이, 어찌보면 효율적으로 책의 기능을 정확하게 수행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복잡한 생각은 접어두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혹은 지저귀는 새들이나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을 관찰하자. 가만히,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누군가에겐 단순하고 익숙한 주제일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책을 읽고 나서 그 의미가 가슴으로 와닿는 느낌이 또 달랐다. 지구에서 인간이 가장 뛰어난 동물이라고 우리는 스스로 믿고 있지만,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를 더욱 복잡한 세상으로 밀어넣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서 잃어버린 것들, 특히 불구가 되어버린 마음은 어떻게 되는 건지, 그런 상태를 치유하고 좀 더 근원적인 접근으로서 삶의 의미를 생각할 기회를 가져보자. 그렇게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또 하나의 생각은, 반려 동물을 진심으로 키우고 싶다는 것. 정말. 간절히. 안그래도 조금만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반드시 입양을 하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있었던 터에 이 책을 읽어서인지 읽은 후에 강아지와 고양이 동영상을 검색하는 시간이 더 늘었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는 이렇게 반려 동물을 간절히 원함에도 어느 누군가는 버리고, 화풀이 혹은 쾌락의 대상으로 괴롭히고 있으니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그런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인간들'('것들'이라고 하고 싶지만)이 반드시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반려 동물에게 사랑 혹은 호의를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그 작은 존재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즐겁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지를 잊어서는 안될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개와 고양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들일 뿐 우리와 함께 자연의 일부를 이루는 존재들이다. '자신의 본질'을 관찰하려는 노력은 궁극적으로 나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들과 소통하고, 공존하는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빡빡한 생활에 조금 지쳤던 요즘, 마음이 참 풍요로워지는 기분이 좋았다. 생각과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존재 자체로 즐거움을 느끼는 삶. 그 속에서는 왠지 진실된 나와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에 대한 고민은 하자면 끝이 없지만, 그래도 멈추어서는 안되기도 하니까. 있는 그대로의 나. 존재 자체로의 나.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결국엔 반려 동물과 함께 사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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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보트를 타고 상어 잡는 법 - 거대한 그린란드상어를 잡기 위해 1년간 북대서양을 표류한 두 남자 이야기
모르텐 스트뢰크스네스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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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할 일이 아주 많았지만 주저 없이 대답했다.

"좋아, 바다로 나가 그린란드상어를 잡자." (p.26)

  

 

수심 200미터에서 서식하며, 7~8미터의 몸 길이와 1.2톤의 무게를 가진, 200년 이상을 사는 바다생물. 몸 구석구석 독성물질을 품고 있으며 눈과 톱니 같은 이빨에는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괴물이 연상되는 이 생물이 그린란드상어다. 처음 이 동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난 아주 흉폭하고 기괴한 상어의 모습을 떠올렸다. (찾아본 이미지는 생각보다 온순해 보였지만.) 오랜 세월의 진화를 거친 이 거대한 심해생물에 대한 호기심이 차오르는 걸 나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북부 노르웨이의 로포텐 제도, 그 중 베스트피오르를 주무대로 한다. 그린란드상어 잡이에 나선 두 남자의 도전을 그리는 와중에 이 지역의 어업, 해양 생물과 생태, 지질, 지리 등에 대한 수많은 지식들이 쏟아진다. 전설과 실화, 문학, 학술보고 등 작가가 공부하고 수집한 수많은 자료들이 방대하게 펼쳐지기에 이것을 받아들이는데만 해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전문적인 지식이 어디서 나올 수 있었는지는 작가 소개에 나열된 여러 직업들을 보는 순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지역과 상어잡이 프로젝트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대단하다.

 

작가에게는 이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도전을 함께 할 친구 후고가 있다. 어쩌면 무모할지도 모르는 이 도전에 함께 할 전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 나에게도 바다를 사랑하는 친구가 있고, 언젠가는 나와 함께 넓은 바다로 나가 참치를 잡기로 약속도 되어 있다. 물론 그들에 비하자면 고작 참치를 잡겠다고 다짐했던 우리가 좀 민망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런 공감대가 있어 이 모험담에 훨씬 몰입하게 되었다. 쉽게 가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하는 세상이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긴장감과 묘한 설렘이 바다에 대한 로망을 피어나게 하는 것 같다.

이 책에는 환상적이고 압도적인 장면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특히 고래에 대한 환상이 커질대로 커져버렸다. 그래서 <모비 딕>을 읽지 않은 것이 마치 큰 죄인 것처럼 느껴졌으며, 내가 아주 교양없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지만)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었던 <줄리언>에서 <주홍 글자>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이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과의 만남에 대해 여러 번 기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런 순간엔 참 운명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비 딕>을 읽어야 하는 순간이 오고 있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어린이 문학이 아닌 버전으로.) 책을 덮고 나서도 심해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커다란 고래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친구에게,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노래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소리가 심해 전체로 퍼져간다. 그런 생물 곁에 내가 다가설 수 있다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들 것이다. 또한 미립자 같은 나의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금 깨닫게 되겠지. 마치 영적인 체험을 하듯, 그 순간 시간이 멎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로서는 나름 충격적인 사실도 있었는데, 노르웨이 보건당국이 바다에서 잡힌 게의 카드뮴 함유량이 너무 높아 먹지 말라고 경고한다고. 북부 노르웨이의 바다는 깨끗하기로 유명하지만 중금속 오염이 심각한 편이라고 한다. 자정이 되기 위해서는 수만년이 걸린다는데, 더구나 바다를 오염시키는 행위가 앞으로 멈춘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바다를 잃어가는 것만 같아 답답해졌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해산물도 괜찮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또 하나, 노르웨이 사람들은 고등어를 예나 지금이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에는 흉물스러운 존재로 여기기까지 했다는 사실. 나의 빈약한 추측이지만, 우리나라 식당에 노르웨이산 고등어가 쌩뚱맞게도 흔히 보이는 이유와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실패'에 관한 에세이다. 그것도 일 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면서 얻은 실패에 대한. 오늘은 어떻게 실패했는지, 사흘 뒤에는 어떻게 실패했는지, 또 몇 달 뒤에는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아주 상세히 기록한다. 사실 상어잡이를 하러 바다에 나간 날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 책이 상당히 매력적인 이유는 상어잡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있다. 그린란드상어를 일생에 한번은 꼭 보고싶다는 꿈으로부터 출발한 프로젝트니까. 그 꿈 속에 살고있는 미지의 동물에 대한 열망과 환상을 실현시키려는, 두 중년 남자의 무모하고 치열한 노력이 있다. 그렇기에 그 과정을 함께 하는 독자는 그들 못지 않게 흥분되고 설레며, 안타깝고 허탈해진다. "그린란드상어를 직접 보는 것으로 충분해. 그린란드상어가 심해에서 올라왔을 때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면 돼"(p.294) 후고가 했던 말처럼, 어쩌면 찰나의 순간을 위해 실패는 금새 잊고, 다시금 고무보트에 근거없는 확신을 가득 담은 채 바다로 다시 나가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의지, 단지 이루고자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계속 도전하는 의지가 좋은 것이다.

 

그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 있는 시간동안 나는, 참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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