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보트를 타고 상어 잡는 법 - 거대한 그린란드상어를 잡기 위해 1년간 북대서양을 표류한 두 남자 이야기
모르텐 스트뢰크스네스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그때 할 일이 아주 많았지만 주저 없이 대답했다.

"좋아, 바다로 나가 그린란드상어를 잡자." (p.26)

  

 

수심 200미터에서 서식하며, 7~8미터의 몸 길이와 1.2톤의 무게를 가진, 200년 이상을 사는 바다생물. 몸 구석구석 독성물질을 품고 있으며 눈과 톱니 같은 이빨에는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괴물이 연상되는 이 생물이 그린란드상어다. 처음 이 동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난 아주 흉폭하고 기괴한 상어의 모습을 떠올렸다. (찾아본 이미지는 생각보다 온순해 보였지만.) 오랜 세월의 진화를 거친 이 거대한 심해생물에 대한 호기심이 차오르는 걸 나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북부 노르웨이의 로포텐 제도, 그 중 베스트피오르를 주무대로 한다. 그린란드상어 잡이에 나선 두 남자의 도전을 그리는 와중에 이 지역의 어업, 해양 생물과 생태, 지질, 지리 등에 대한 수많은 지식들이 쏟아진다. 전설과 실화, 문학, 학술보고 등 작가가 공부하고 수집한 수많은 자료들이 방대하게 펼쳐지기에 이것을 받아들이는데만 해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전문적인 지식이 어디서 나올 수 있었는지는 작가 소개에 나열된 여러 직업들을 보는 순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지역과 상어잡이 프로젝트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대단하다.

 

작가에게는 이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도전을 함께 할 친구 후고가 있다. 어쩌면 무모할지도 모르는 이 도전에 함께 할 전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 나에게도 바다를 사랑하는 친구가 있고, 언젠가는 나와 함께 넓은 바다로 나가 참치를 잡기로 약속도 되어 있다. 물론 그들에 비하자면 고작 참치를 잡겠다고 다짐했던 우리가 좀 민망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런 공감대가 있어 이 모험담에 훨씬 몰입하게 되었다. 쉽게 가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하는 세상이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긴장감과 묘한 설렘이 바다에 대한 로망을 피어나게 하는 것 같다.

이 책에는 환상적이고 압도적인 장면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특히 고래에 대한 환상이 커질대로 커져버렸다. 그래서 <모비 딕>을 읽지 않은 것이 마치 큰 죄인 것처럼 느껴졌으며, 내가 아주 교양없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지만)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었던 <줄리언>에서 <주홍 글자>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이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과의 만남에 대해 여러 번 기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런 순간엔 참 운명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비 딕>을 읽어야 하는 순간이 오고 있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어린이 문학이 아닌 버전으로.) 책을 덮고 나서도 심해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커다란 고래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친구에게,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노래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소리가 심해 전체로 퍼져간다. 그런 생물 곁에 내가 다가설 수 있다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들 것이다. 또한 미립자 같은 나의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금 깨닫게 되겠지. 마치 영적인 체험을 하듯, 그 순간 시간이 멎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로서는 나름 충격적인 사실도 있었는데, 노르웨이 보건당국이 바다에서 잡힌 게의 카드뮴 함유량이 너무 높아 먹지 말라고 경고한다고. 북부 노르웨이의 바다는 깨끗하기로 유명하지만 중금속 오염이 심각한 편이라고 한다. 자정이 되기 위해서는 수만년이 걸린다는데, 더구나 바다를 오염시키는 행위가 앞으로 멈춘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바다를 잃어가는 것만 같아 답답해졌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해산물도 괜찮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또 하나, 노르웨이 사람들은 고등어를 예나 지금이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에는 흉물스러운 존재로 여기기까지 했다는 사실. 나의 빈약한 추측이지만, 우리나라 식당에 노르웨이산 고등어가 쌩뚱맞게도 흔히 보이는 이유와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실패'에 관한 에세이다. 그것도 일 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면서 얻은 실패에 대한. 오늘은 어떻게 실패했는지, 사흘 뒤에는 어떻게 실패했는지, 또 몇 달 뒤에는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아주 상세히 기록한다. 사실 상어잡이를 하러 바다에 나간 날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 책이 상당히 매력적인 이유는 상어잡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있다. 그린란드상어를 일생에 한번은 꼭 보고싶다는 꿈으로부터 출발한 프로젝트니까. 그 꿈 속에 살고있는 미지의 동물에 대한 열망과 환상을 실현시키려는, 두 중년 남자의 무모하고 치열한 노력이 있다. 그렇기에 그 과정을 함께 하는 독자는 그들 못지 않게 흥분되고 설레며, 안타깝고 허탈해진다. "그린란드상어를 직접 보는 것으로 충분해. 그린란드상어가 심해에서 올라왔을 때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면 돼"(p.294) 후고가 했던 말처럼, 어쩌면 찰나의 순간을 위해 실패는 금새 잊고, 다시금 고무보트에 근거없는 확신을 가득 담은 채 바다로 다시 나가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의지, 단지 이루고자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계속 도전하는 의지가 좋은 것이다.

 

그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 있는 시간동안 나는, 참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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