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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앤스터디' 김상봉<그리스 비극론 1> 제 6강  

 

(..) 폴리스는 지리적 한계를 가지는 정치적 공동체일 뿐 아니라 자연과 사람과 신이 만나는 우주적 교차로이자 형이상학적 좌표였다. 종교와 맞물려 있는 것은 왕권의 계보가 아니라 시민적 공공성이었다. 이로 인해 그리스의 종교는 자유로운 시민의 종교일 수 있었다. 종교가 민중의 아편, 억압의 기제, 순치 내지 사기를 위한 체계가 아닐 수 있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종교를 통해서 실존의 지평을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절대적 초월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폴리스는 인간이 숨쉬는 공간이자 신이 보호하는 공간이었으며, 따라서 시민이 폴리스를 사유/염려한다는 것은 자연과 신과 인간을 총체적으로 배려한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보편은 정신의 개별성과 보편성이 공속하는 토양에서 가능했다. 모든 실제적인 정신은 개별자 속에서 발생하나, 개별자 속에서 발생하는 정신은 개별성에 함몰되지 않고 절대적 총체성(인간, 신, 자연)의 영역까지 자기를 확장하고자 한다. 개별적 주체가 보편성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모순이다. 비극은 바로 이 두 가지 대립적 계기의 모순에서 생겨난다.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 되려 할 때 비극이 시작된다. 개별자가 비극적 주체로서 파멸하고 몰락할 때 발생하는 고통이 비극적 고통의 핵심이다.

 

개인이 당파성 속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성의 지평에서 사유하고자 할 때 개인 내의 개별성과 보편성은 충돌을 일으킨다. 정신은 삶의 계기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를 원한다. 정신(보편성)은 이론적 자연에서는 질서와 합법칙성을 추구하고, 실천적 삶에서는 총체적 삶의 의미를 파악하여 의미의 지평을 확보하고 개방하고자 한다.

 

피타고라스가 좁은 의미의 사물 인식이 아니라 총체적인 삶의 완성을 추구하고자 한 것에서 이미 확인되듯, 철학은 시원에서부터 정치적이고 실천적이었다. 신화를 버리고 physis, 즉 자족적인 자연의 총체성을 정립해가는 과정이 철학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정신은 계속 외연을 넓혀 우리의 삶이 정신의 빛 아래로 들어올 수 있게 한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존재자를 소통의 빛 아래로 불러들임, 그것이 곧 로고스(합리성)이다. 그런데도 그리스인들에겐 어떤 비합리성, 초월, 형이상학적 지평이 끝끝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운명'이라고 일컬어졌다. 비극은 이렇듯 합리성의 이상과 운명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장파는 "비극은 합리적 이성이 확고한 뿌리를 내린 데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반은 맞다. 종교적 정신에 함몰되어 있을 때 비극은 가능하지 않다. 『욥기』의 숭고함은 인간의 비극적 현실이 종교의 절대적 지평이 아니라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무한한 의미의 지평 속에서 정당화되기를 요구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것이 비극적 긴장의 핵심이다. 필연성, 합리성 속에 머무를 때 비극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단 한번도 합리성이 초월적인 신비를 지양하였던 적이 없다. 그리스인의 합리성은 항상 신화/종교/운명에 발목 잡혀 있었다. 나아가 정신이 완벽히 세속화되어버리면, 완벽히 계몽화된 후엔 비극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합법칙적인 세계에서, 예컨대 스피노자적 세계에선 비극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은 필연적 연쇄에 따라,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는 것뿐이다. 비극은, 합리성과 비합리성 사이의 여변에서, "왜 그래야만 하는가" 하는 절박한 물음에서 탄생한다. 비극은 현실에 대한 깊은 불만족, 그 경계에서 생긴다. 그것은 능동적인 현실 초월이다. 그리스인들은 운명에 관한 한, 순종적이면서도 동시에 합리성의 척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극한까지 추구하려 했다.

 

주체는 이런 방식으로 폴리스의 주인이 되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합리성을 끝까지 추구했기에 역설적으로 이들은 합리성의 한계를 자각할 수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도 이해의 지평으로 불러들일 수 없는 것, 그것은 주체성(정신)의 한계로 남았고 그 경계선의 흔들림에서 비극적 정신이 싹텄다.

 

호메로스식 운명관은 변경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었다. 운명에 철저히 순응하면서 정신적인 숭고함을 보이는 것, 즉 운명=죽음을 뛰어넘는 용기를 얻고 영원한 가치에 참여하는 것(;도덕적 초월)이 호메로스 이래 그리스인의 유구한 정신 태도였다.그런데 기원전 5세기로 내려오면 이러한 사고 방식이 그 자체로선 통용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죽음의 공포를 뛰어 넘고 운명을 이기는 것은 개인적 태도로는 훌륭할지 몰라도 폴리스 전체로 보면 보편적 정당성을 얻기 어려웠다. 즉 dike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내 한 몸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숭고함은, 공공적 이성의 입장에서 볼 땐 폴리스 전체에 불의가 될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 개인들의 dike를 합산한다고 해서 인륜적 사회 전체의 dike가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에 맞닥뜨렸을 때 비극 작가들은 신화/운명의 정당성에 대해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비극적 질문이 싹튼다.

 

고통스런 사건들의 원인과 의미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비극 작가들은 철학자들이 넘어가지 못한 합리성의 여변에서 그 해답을 추구하였다. 그들에게 비극적 운명의 출발은 휘브리스 hybris였다. 신이 아닌 인간으로부터 비극은 발생한다. 그렇다면 휘브리스의 목표는 깨달음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하여 배운다는 식의 정당화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리스 비극성은 결국 정신이 이 모든 것을 자기 속에 떠 안아야 했기에 발생하였다. 그 정점이 소포클레스였다.

 

요약하면 개별적인 정신이 보편성에로 확장해 가면서 절대적인 총체성 앞에서 일으키는 내적 분열이 그리스 비극의 참된 숭고함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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