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이태준의 단편선집 <까마귀>(문학과지성사)를 읽는다. <복덕방> <불우 선생> <까마귀> <달밤> <해방 전후> 등등. 명색이 문학애독자로 자처하는 나로서는 부끄러운 일인데, 한국문학사에서 이효석과 함께 단편소설의 전범으로 꼽는 작가를 이제사 알아보았으니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 물론 해방 후 좌파 문학을 한 전력과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백안시되다보니 나 역시 쉽게 접할 수가 없긴 했다. 그렇다고 아예 기회가 없었던건 아니다. 지난 80년대 기민사에서 월북작가 작품집을 출간했을 때 이태준의 단편집도 출간한바 있기 때문이다. 이후 창작과 비평사에서 <문장강화>도 출간했던것으로 기억나는데, 이제사 작품을 접하고보니 참으로 만시지탄일뿐이다.

 

<해방 전후>는 제목 그대로 해방 전후를 배경으로 한 단편인데, 작품성 여부를 떠나 당시 우리 문단, 사회 분위기, 일제 치하에 이어 해방직후 좌우 대립의 혼란스런 상황에 처한 지식인들의 고뇌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어 흥미가 있었다. 

"단편이란 소설 형태 중에서 인물 표현을 가장 경제적이게, 단편적(斷片的)이게 하는 자라 생각하면 고만이다. 인물, 행동, 배경이 전체적으로 균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면 인물에만 치중하고, 행동이면 행동, 배경이면 배경에 강조해서 단일적인 효과를 거두는 것이 단편의 약속이다. 단일적이게 어느 한 가지가 강조되도록만 구상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해가지고 시간과 공간을 되도록 절약하는 것이다."    - 이태준 <무서록>

이태준의 전매특허인 휴머니즘, 페이소스 넘친 따스한 시선은 어느 단편이든 어김없이 짙게 배어있다. 절제감있는 문장,  작고 세심한 눈길, 뭔가 미진한듯 여운을 남긴 끝맺음은 더욱 일품이다. 천성이 이런 작가에게 굳이 현실참여니 역사의식이니 하는 타박은 시대상황이 그랬으니 하고 그만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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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회 <칸투스문학살롱>에서 진행하는 가즈오 이시구로 단편집 <녹턴>(민음사, 김남주 역, 2017)토론 자료.

■『크루너』

등장인물

- 나(얀네크) : 폴란드 출신 떠돌이 기타리스트
- 토니 가드너 한물간 60대 크루너 가수
- 린디 가드너 : 40대 배우, 토니의 아내.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광장. 우선 이 소설은 과거의 영광, 전통에 사로잡힌 베네치아가 배경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그 영광이 현재가 아닌 과거라는 것.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선 소설의 주인공인 야네크의 기타라는 악기가 지나치게 현대적이어서 환영받지 못한다. 그리고 산마르코광장은 최신 히트팝송을 원하지 않음. 주로 흘러간 히트곡 환영받는다. 마찬가지로 과거에 사로잡혀 잇는 것은 야네크의 어머니다. 그녀는 생전에 토니 가드너 한 가수의 노래에만 집착했다. 과거의 스타 토니는 아내와 27년간의 결혼생활, 린디는 음악에 관심 없고 부부의 소통부재다.

야네크, 토니 모두 이런 물음을 안고 있다. 오늘,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누군가 좋은 삶은 현재가 어떠냐로 결정된다. 따라서 그의 과거과 어떻고, 미래의 꿈이 어떻고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가 어떤가로 결정되니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만이 최선이다. 그래서 부단히 오늘을 개선하기 위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롭게 변신하는 삶이 요구된다.

이제는 한물간 과거의 스타 크루너 가수 토니는 묻는다. 과연 위대한 연주자, 가수는 누구인가? 라고, 그가 얻은 답은 이렇다. 새로운 변화없이 과거에 집착하는 것(현제에 안주)은 무의미하고, 오로지 새로운 변화모색, 그것도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을 결행할정도 큰 변화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전통과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곳 베네치아에서는 모든 것이 거꾸로이다.” -10쪽(주제 암시)
“제가 두 분의 대화를 방해했네요. 음악인들 간의 대화를요....프라다 매장에 가 보고 싶거든요.” -18쪽
“사실 이제 나는 주류 가수가 아니오. 당신은 부정하겠지만.....나아가 사랑하는 것들까지 바꿔야 할 경우도 있소.” -41쪽

■『비가 오나 해가 뜨나』

- 나(레이먼드) : 47세, 어학원 선생
- 에밀리 : 나의 대학동창
- 찰리 : 대학시절 나의 가장 친구. 에밀리의 남편

찰리는 극도로 이기적이고 향락적인 인물. 부부 모두 성공신화에만 매달려있음. 남편이 치과여의사와의 불륜관계임을 에밀리가 알아챔.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는 부부. 누군가와 비교하며 주어진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다. 눈앞의 성공만을 보고 내달리는 부부(현대사회)

“우리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야 해. 하지만 만족할 줄 몰랐던 것 같아. 이유는 모르겠어. 문득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해 보면, 내가 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겠거든.” -98쪽

“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누군가와 함께라면, 그 방의 다른 사람들의 존재는 의미가 없어야 마땅해. 하지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렇지 않아. 어떤 남자라도 지금 안고 있는 남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도.....음, 방안에 있는 다른 남자들이 여전히 눈에 들어오는 거야. 그들이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질 않아” -99쪽

■『말번 힐스』

- 나 : 기타리스트
- 틸로부부 : (소냐)
- 프레이저 할멈 : 전직교사, 호텔경영
- 누나 부부

화자인 나는 세상의 성공을 부와 명예가 아닌 위대한 연주자가 되는게 꿈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위대한 연주자가 되는 길은 짧은 시간이 아닌 긴 시간동안에 이뤄지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보잘것없는 상황이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꿈을 버릴 수 없다.

그는 런던에서 오디션이 실패한 후로 재충전할겸 여름한철 누나의 식당일을 거들어주기 위해 온다. 어느날 관광차 온 스위스인 부부가 그의 연주를 우연히 듣고 훌륭한 연주라고 칭찬을 한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준 부부에게 따스함을 느끼며 그들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그런데 엊그제 그토록 칭찬을 아끼지 않던 부부의 평가가 서로 상반됨을 뒤늦게 알게된다.

남편 틸로는 아무리 비관적인 상황이라도 사태를 행운으로 받아들이고, 아내 소냐는 냉정하니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재능이 진정한 재능때문인지, 아니면 틸로의 낙관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인지.... 화자에게는 어린시절 프레이저 할멈(운명의 메타포)이후 다시 가혹한 운명이 찾아온 셈이다.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 운명의 갈림길에서 그는 다시 자신의 노래에 집중하기로 한다.

- 운명을 대하는 인간의 두 가지 태도
- 나의 성공 기준과 세상의 기준의 차이점

“ 문제는 그들중 아무도 이 특별한 시점에서 나에게 어떤 것이 진정으로 성공적인 시간이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 -103쪽

- 프레이저 할멈은 운명의 메타포

나는 그것으로 그녀와의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는 다시 안으로 들어와서는 카운터 위에 빈 찻잔과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가 테이블을 치우러 오지 않아서 내가 이것들을 직접 들고 왔다.“ -111쪽

-틸로와 소냐의 운명을 대하는 세계관의 차이

틸로가 여기에 오면, 당신에게 말할거예요. 결코 용기를 잃지 말라고요. ......하지만 난 확신은 할 수 없어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인생에서 많은 실망을 만나게 될 테니까요. 정상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꿈을 가질 수 있겠죠.“ -142쪽

■『녹턴』

- 나(스티브) : 39세, 이혼당한 섹스폰 주자
- 헬렌 : ‘나’의 아내
- 린디 가드너 : 크루너 가수 토니와 이혼한 여배우

치열한 경쟁에서 성공한 삶의 정체, 산다는 것의 슬픔에 대하여
성공한 삶(제이크 마벨)과 실패한 삶(스티브)의 차이란 과연 무엇인가?

- 우리사회에서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

“그중 몇몇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을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약간의 인정은 받을 만한 자격이 있지요. 당신 같은 사람들의 문제는, 신에게서 특별한 재능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믿는 거예요.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언제나 선두에 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당신만큼 운이 좋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출세를 하기 위해 몹시 힘들게 노력한다는 걸 당신은 모르고 있어요.....” - 190쪽

-그들끼리의 눈물겨운 위로?

“이봐요, 스티브, 내 말 잘 들어요. 난 당신 아내가 돌아오기를 바라요. 정말로 그러면 좋겠어요.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그렇다 해도 당신에게는 전망이 생길 거예요. 당신 아내는 멋진 사람이겠지요. 하지만 삶이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크답니다. 당신은 이제 그 단계에 이르렀어요. 스티브. 당신 같은 사람은 보통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요. 날 봐요. 이 붕대를 풀면 정말 20년 젊어 보일까요? 잘 모르겠어요. 나는 아주 오랜만에 싱글이 되었어요. 하지만 어쨌든 이제 세상으로 나가서 운을 시험해 볼 거예요.“ - 209쪽

“이제 나는 이 붕대를 풀 날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린디 말이 맞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의 말처럼 내게는 어떤 전망이 필요하고, 삶은 한 사람만 사랑하기에는 너무 큰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일은 내게 정말로 중요한 전기가 되고 성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린디의 말이 옳을 것이다.” - 212쪽

■『첼리스트』

-나 : 색소폰 연주자
-티보르 : 첼리스트. 런던 왕립음악원 출신, 비인에서 저명한 첼리스트에게 사사
-엘로이즈 매코믹: 관광객, 소녀시절 첼로지망생. 티보르에게 개인지도 자청함

천재, 거장에 대한 과대망상의 비극,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 노력의 차이,
인생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

“난 당신에게 내가 거장이라고 했어요. 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할게요.(....) 다만 아직 베일에 싸여 있는 거장인 거죠. 당신 역시 아직 완전히 베일을 벗지 못했어요. 지난 몇 주동안 내가 해 온 일이 바로 그거예요.” - 238~239쪽

그러니까 당신은 자신이(...)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거장이라고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니........“ -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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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회 <칸투스문학살롱> 진행 자료

 

제인 오스틴 <에마>(민음사, 윤지관, 김영희 역, 2012)

■ 제인 오스틴 연보

- 1775년 12월 16일 영국의 햄프셔 주 스티븐턴, 교구 목사의 딸로 출생
- 15세 때부터 단편 습작, 21세~42세까지 총 6편 남김.
- 1799년 24세때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결혼 무산
- 1805년 30세때 아버지 사망. 경제적으로 궁핍. 어머니와 함께 친척, 친구 집 전전. 1809년 다시 초턴으로 이사하여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일생을 독신으로삼.
- 『이성과 감성』(1811), 『오만과 편견』(1813), 『맨스필드 파크』(1814), 『에마』(1815)
- 42세 사망. 사후 『노생거 사원』과 『설득』 출판

■ 오스틴의 작품의 특징

- 윌터 스콧 : 오스틴의 세계는 작고 평범하고 잘 길들여져 있다는 뜻에서 “옥수수 밭과 시골집과 초원”이라고함. 샬롯 브론테 “단아한 경계와 섬세한 꽃들이 있는, 세심하게 울타리를 두르고 잘 가꾼 정원”. 오스틴은 자신의 창작에 대해 “섬세한 붓으로 작업하는 2인치 넓이의 작은 상아 조각”이라고 함

- 묘사와 정서의 진실을 통해서 일상의 평범한 일과 인물을 흥미롭게 만드는 빼어난 솜씨.
- 일상생활 속에서의 남녀 사이의 관계, 감정 그리고 인물을 훌륭하게 묘사하는 재능.
-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적인 개인을 기존 사회의 가치관에 동화시키는 보수적 플롯 사용.
- 젠트리 계급에 속한 오스틴의 소설은 근본적으로 젠트리의 자질과 역할의 전통적 개념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야기가 주를 이룸.

■ 오스틴의 여성의식

- 여주인공들은 여성 운명의 완성을 결혼과 가정에서 찾는 가부장적 가치관을 내면화.(반론: 소설의 전반부에 치밀하게 그려진 경제적 조건하에서 어쩔수 없이 취할 수밖에 없는 선택)

- 여성에게 불리한 법적, 경제적 토대를 확실히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여주인공들이 결혼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결혼플롯은 잠재력있는 여성에게조차 결혼 이외의 대안이 주어지지 않는 당대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 여성이 이성적인 존재이며 올바른 교육에 의해 개선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소설의 플롯이 아무리 기존 가부장사회에 대한 동화를 북돋운다 해도 결국 이야기의 행보는 여주인공의 도덕적 성장을 재확인하는 것이고, 여성의식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여성은 성장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

■ <에마>의 등장인물

- 에마 우드하우스
- 나이틀리
- 로버트 마틴
- 해리엇 : 에마의 친구
- 프랭크 처칠
- 제인 페어팩스
- 엘튼 : 교구 목사
- 오거스타 호킨스 : 엘튼의 아내

■ 줄거리

유복한 가문 출신의 예쁘고 영리한 아가씨 에마 우드하우스. 따분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최대 관심사인 에마에게 가장 흥미로운 일은 다른 사람들의 결혼을 주선하는 것. 에마는 자신을 따르는 어린 친구 해리엇을 조건 좋은 남자들과 억지로 맺어 주려 한다. 그러나 해리엇과 연결해 주려 했던 남자가 자신에게 청혼하거나 약혼녀가 따로 있거나 하는 등 에마의 시도는 자꾸만 엉뚱한 결과를 빚는다.

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자기 생각대로 짝을 맺어 주려 한 에마의 시도는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갖은 우여곡절을 통해 자기 안의 허영심과 위선을 깨달은 에마는 헛된 상상력을 발휘해 남을 중매하는 일에서 손을 떼기로 한다. 그사이 철저한 독신주의자였던 그녀에게도 꿈같은 사랑이 찾아온다.

오스틴의 작가적 재능은 감정이라는 기이하고 혼란스러운 소재를 소설의 플롯으로 풀어 나간다. 작가는 에마와 나이틀리, 해리엇, 로버트 마틴, 프랭크 처칠, 제인 페어팩스 등 여섯 남녀의 애정 관계가 미묘하게 얽히고 또 풀려 짝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설 전편에 걸쳐 치밀하게 보여 주는데, 누가 누구와 맺어지는지 그 짝을 추측해 가는 것은 이 책이 선사하는 커다란 흥밋거리 중 하나다. 주인공들과 독자들을 온갖 우여곡절과 추측과 짐작과 오해의 안개 속을 헤매게 놓아두고 물밑에서 척척 움직여 상황의 전말이 저절로 드러나게 하며 결국 세 커플을 완벽하게 짝 지우는 매끈한 솜씨를 보인다.

■ <에마> 작품 평가

1. 해학과 풍자 가득한 문체 속에서 주인공 엠마의 착각과 자기기만, 혹은 허위의식이 경쾌하게 폭로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젠트리 가문의 계급적 편견)

- 교구목사 엘튼이 헤리엇이 아닌 에마를 결혼 상태로 생각했다는데 대한 에마의 비난

“가문에서나 정신에서 그녀와 대등하다고 생각했다니! 그녀의 친구를 얕잡아 보고,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경우에는 소소한 차이에도 그렇게 훤하면서 자기보다 높은 신분의 경우에는 분수도 모르고....

“재산과 지위에서만큼은 그녀가 훨신 월등함을 당연히 알아야 하지 않는가, 우드하우스 집안은 유서 깊은 가문의 방계로 여러 세대에 걸쳐 하트필드에 거주해왔다는 사실, 이에 비해 엘튼 집안은 그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할만큼은 알아야 했다. ......” - 200쪽

- 에마가 베이츠 양을 폄하

지루한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세 가지로만 제한하자는 좌중의 의견에 에마는 베이츠를 두고, 세 가지로 제한되는게 어려울것이라고 조롱.

“어머! 아주머니, 그렇지만 좀 어렵지 않을까해요. 죄송합니다만, 한 번에 세 가지만 할 수 있게 횟수가 제한될 텐데요."

“베이츠 양은 그녀의 짐짓 예절 바른 태도에 넘어가 말뜻을 즉각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불현듯 깨달았을 때도 화를 내지 않았다.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팠을 수도 있지만.....” - 538쪽

- 나이틀리는 에마에게 그런 식의 (계급적인)편견은 나쁘다고 조언한다.

“그분이(베이츠 양) 부자였다면 나도 악의 없는 엉뚱한 짓쯤이야 내 버려두고, 무람하게 군다고 당신한테 뭐라고 하지도 않았을거야. 그분이 당신과 동등한 신분이었다면 말이오. 그렇지만.....” - 544쪽

2. 풍부한 사회적 묘사로 당대의 풍습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예리하고 깊은 심리적 통찰과 묘사, 재치가 번뜩이는 대화, 탐정 소설 못지않게 긴장감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구조, 인간 관계와 일상사에 대한 세밀한 관심 등으로 곳곳에서 잔잔한 웃음뿐 아니라 폭소를 자아내게 하면서 자기 성찰을 유도한다.

- 엘튼의 아내 오거스타 호킨스를 비난하는 에마의 편견, 초면인 호킨스가 에마한테 감히 나이틀리를 평가하는 광경에 화가남. 너무 리얼하고 해학적인 묘사

“ 상종못할 여자! 곧장 이런 소리가 터져나왔다. ..” - 402쪽

3. 인간의 심리와 사고 과정을 가장 정교하게 다룬 작품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주인공 에마가 인격적 결함들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아와 사랑을 동시에 거머쥐는 과정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더없이 사랑스럽게 그려 낸다.

“제가 엘튼 씨를 완전히 잘못 봤다는 건 저도 인정해요. 그 사람한테는 협량한 구석이 있는데...과오의 연속이었지요.“ - 479쪽

“베이츠 양한테 다시는, 그래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진정한 참회에서 우러난 다정한 마음으로 바로 다음날 아침 베이츠 양을 찾아볼 것이며....” -548쪽

“이제까지 헤리엇한테 얼마나 부적절하게 처신했던가! ...” - 592쪽

4. 마치 정교하게 그려진 풍경화처럼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오르도록 한다. 목사 엘튼이 해리엇같이 신분 낮은 여자와 자기가 엮인 것에 분개하는 것, 에마가 농부 마틴과 해리엇의 결혼을 두고 농부와의 결혼은 격 떨어지는 일이라며 노발대발하면서도 후에 해리엇이 나이틀리 씨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고백하자 나이틀리 씨 같은 격조 있는 사람이 해리엇과 결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등, 모순적인 인간 내면의 모습을 자신의 방식으로 가감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 낸다.

5. <에마>의 현재적 의미

19세기 영국 상류층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이지만, 속물이어도 비루하지 않고 감정에 휘둘려도 막가지는 않으며 오만과 편견을 가졌을지언정 귀여운 수준에 머무는 에마의 모습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꼭 겹쳐지며 보편성을 지닌다.

당시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현대를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연애와 결혼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대 여성들에게,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독립적인 자아의식을 지닌 한 여성의 사랑과 결혼을 그린 이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 기타 인용문장

- 당대 사회 여성이 처한 현실을 보이는 장면

"기혼 여성치고 자기 남편 집에서 내가 하트필드에서 하는 그 절반이라도 여주인 노릇을 하는사람을 별로 없을걸.." - 129쪽

- 에마가 결혼, 연애라는 한정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으로 당대의 경제적 상황을 오스틴은 돈이라는 것을 통해 보여줌, 즉 신분, 돈= 연애, 결혼의 조건

"그 매력적인 오거스타 호킨스는 완벽한 미모와 미덕이라는 모든 통상적인 장점에다 독립적인 재산까지 소유하고 있었다.어림잡아 만 파운드라고 할 만한 수천 파운드 재산으로...." -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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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승우의 소설집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문학과지성사)의 제목대로 정말이지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고 사는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사소한 물건에서부터 필수품에 이르기까지 집에 무엇이 있는지 의외로 모르는 게 많다.

오래 전 일인데 아내에게 점수 좀 따볼까 하고 동네 마트에서 커피잔 셑트를 구입한 적이 있다. 왜 하필 커피 잔이냐고? 우리 세대가 대부분 그렇듯 나 또한 부엌살림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지라 그저 아내가 주는 밥먹고 왔다 갔다 하는 터였지만, 그날따라 마트에 진열된 멋진 커피 잔 하나가 눈에 띄었던 거다. 워낙 커피를 좋아한 탓이다. 한데 내가 마음먹고 산 똑같은 커피 잔이 집에 또 있잖은가. 글쎄, 늘 사용하는 커피 잔인데도 같은 게 있는지 몰랐다니.

내가 가끔 사용하는 운동모자는 원래 아들녀석 것인데도 내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뭐 모자야 별 것 아니니 그렇다치더라도 애지중지 하는 책까지 이럴 때가 있다. 가끔 서점에 들러 읽을만한 책이 눈에 띄면 얼른 사들고 오는데, 집에 와서야 비로소 예전에 산 책인 것을 알고 교환하러 가는 일이 있다. 물건도 이럴진대 하물며 정신에 관해서랴! 아무튼 누구랄 것 없이 우리는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고 지낸다.

주인공은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새댁으로, 남편의 근무지가 워낙 먼 곳이라 신혼초인데도 불구하고 떨어져 지낸다. 한데,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 새댁에게 이상한 증세가 찾아온다. 환상? 아니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넓은 주택에 그녀 혼자뿐인데도 마치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엔 그냥 느낌으로 그랬는데, 날이 갈수록 실제 같다.

헛것을 봤나? 처음엔 긴가만가 했는데, 반복되다 보니 이게 장난이 아닌 거다. 남편에게 말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환상일 거라는 거다. 신혼인데 떨어져 지내다 보니 외로워서 그럴 거라는 거다. 그러니 아무리 남편이 그립더라도 좀 참고 지내라고 그런다.

어렵쇼! 그런데 날이 갈수록 증세가 심해진다. 그녀는 분명 집에 누군가 있다고 확신할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관심이 없는 터라, 부득이 결혼 전 가까이 지냈던 친정 오빠에게 하소연 한다. 그러나 오빠 역시 마찬가지다.

"애야! 눈앞에 어떤 물건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그 물건이 실제 눈에 보이기 때문에 정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물건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 혹은 감각 따위는 믿을 게 못되는 거란다. 물건에 대한 나중의 생각이란, 길이와 색깔, 모양에 이르기까지 사람에 따라 달리 생각될 수 있으니 틀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동생은 지금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가 집에 있다고 하잖은가. 그러니 이런 그녀의 생각이란 오빠의 말을 따르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일이 겠는가. 따라서 분명 헛것을 봤거나 환상일 거라는 게 오빠의 말이다.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오빠까지 이 지경이니 그녀의 답답함은 더욱 커간다. 착각이라는 것. 자신의 욕망을 현실에 투사해서 실제 있을 거라 착각하는데, 그건 잘못이라는 거다. 실제 눈에 보이는 것. 구체적인 현실만이 진짜라는 거다. 뭔가가 있을 거라고 믿는 머릿속 생각이란 환상이며 비현실이니 절대 믿지 말라는 거다. 이런 답답할데가 있나. 적어도 그녀에겐 허상이 아니라 실제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정신병원에 가보길 권한다. 그녀가 말한다. 내가 정신병자라구요? 이거 왜 이래요. 왜 쌩사람 잡느냐구요.

결국 부부는 집을 팔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동네 복덕방 아저씨가 왠 중년의 남자를 데리고 온다. 예전에 이 남자의 어머니가 어렵게 이 집을 작만했는데, 가난한 살림에 자식키우느라 고생고생하다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는 어머니를 그리워한 나머지 다시 집을 사들이려고 한다는 거다. 그동안 온갖 고생을 마다하고 돈을 마련했다고 한다.

남자는 집을 보자 마치 어머니를 대한 듯 당장 팔라고 통사정한다. 그러자 여자가 그런다. 어머니 키가 어느 정도였냐고. 어떤 모습이었냐고. 워낙 진지한 여자의 말에 남자가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1미터 50센티에 갸름한 몸매였고 이마에 점이 있었다고. 순간 여자가 깜짝 놀란다. 그동안 그녀가 봤던 사람의 모습과 같지 않은가. 환상과 착각이었다고 생각했던 누군가가 바로 이 남자의 어머니였다고?

하지만 남자의 어머닌 이미 죽었다고 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단 말인가? 남자에게 그런다. 당신은 정말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습니다. 물론 실제로야 돌아가셨지만 내 마음 속으로는 지금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분명 우리 어머니는 살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어머니는 이 집에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그런다. 맞습니다. 나도 당신의 어머니를 봤어요. 그것도 매일 말이지요.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줄거리다.

글쓰기를 하는 당신. 소설과 시를 쓰는 당신. 당신은 자신의 글에 나타난 사실들이 평소 마음 속에 내재되었던 욕망이 투사된 결과라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욕망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소산이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니 글쓰기로 드러난 모든 것들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며 상상에 불과한, 허구적 산물이라고 단정하는가? 하지만 당신이 비록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인물이라 하더라도 실제인 양 느껴질 때가 있지 않는가? 아니, 단순히 느끼는 게 아니라 실제로 확신될 때는 없었는가?

옛날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있었다. 솜씨가 뛰어났던 그는 어느 날 정말로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어냈다.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아름다운 자태에 반해, 그는 더 이상 다른 여인을 사랑할 수 없었다. 그의 사랑은 날로 뜨거워갔지만, 조각상은 언제나 차갑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비너스 여신에게 빌기로 했다. 이 조각상과 똑같이 생긴 여인을 내려달라고. 그의 뜨거운 사랑에 감동한 비너스는 마친내 그 차가운 대리석을 생명이 있는 따뜻한 육체로 변신시켜주었다고 한다.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나는 별스럽지 않은 글을 쓰는 아마추어 문사지만, 가끔 내가 써논 글을 읽으며 나르시즘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쓴 글이 허구적, 상상력이 빚어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제인 양 착각을 하곤 한다. 내가 이럴정도니, 뼈를 깍고 피말리는 듯한 사투를 벌이며 소설과 시를 창작하는 사람이야 오죽할까.

마치 피그말리온처럼. 당신이 비록 가짜로 만들어낸 허구적 인물이지만 실제로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아마 이런 식의 느낌은 너무 리얼하게, 전심전력을 다해 쓴 창조적인 작품일 경우 더 현저할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은 말한다. 그거 말짱 가짜고 엉터리라고. 절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라고 말한다. 당신 눈 앞에 있는 그 생생하게 실제하는 것.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그말을 듣는 순간 당신은 그동안 확고하게 지녔던 신념이 스르르 무너지며 혼란에 시작된다. 급기야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창조한 인물과 실제를 가짜라고 믿기에 이른다. 그러다 종당에는 글쓰기에 대한 회의마저 따른다. 이거 씰데없는 짓 아닌가? 이거 말짱 장난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면 차라리 신을 믿든지. 그런데 내가 만든 것을 믿는다? 그게 말이 되나? 내가 신인가? 아서라 그만두자. 글쓰기라니,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물론 처음은 이랬을 것이다. 심심해서. 할 일 없고, 무료해서. 그냥 글쓰기가 좋아 소설 흉내내고, 일기쓰듯 부담없는 글쓰기를 했던 거라고. 그거 심심풀이 땅콩이었다고. 그냥 할 일 없어 해 본 거라고.

때로 그것들은 허구일 수 있고, 소박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또는 착각이나 환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피그말리온처럼 당신의 소망이 절실하다면 그건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변한다. 비록 환상과 상상 속의 인물이지만 그것이 절실하고 리얼하면 실제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사실에 대해 바이블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라고.

당신은 지금 마음 속으로 뭔가를 절실히 바라고 있는가?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당장 글쓰기로 드러내 보시기 바란다. 내 장담하거니와 그 바라는 것들이 분명 현실에서 실제화 될 수 있다고. 다만 유념할 게 하나 있다. 치열해야 한다는 것.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보다 처절하게, 오로지 죽기살기로 그것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믿음 하나로 뚝심있게 버텨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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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어쨌든 다시 제자리로 온 기분이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실제가 그렇다. 문학비평을 시작한다. 평생 독서를 하면서 유독 문학을 가까이했고, 그중에서도 문학비평은 더욱 그랬다. 비록 인상비평이지만 상당수 습작까지 했으니 그럴만도 하지 않은가? 

 

지난 몇 년 독서회를 하면서  주로 세계문학을 읽었다. 그러던게 최근 젊은 시절 동인활동 했던 석조에 참가하면서 글을 쓰지 않은면 안 될 처지가 되었다. 그렇담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예나 지금이나 에세이 아니면 문학평론류다. 

 

희미해진 감도 잡고 최근 문학경향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이후 출간된 평론집을 드문드문 읽으면서 정찬의 소설읽기를 병행하고 있다. 왜 정찬인가?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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