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SALTY SALTY SALTY(솔티 솔티 솔티)
하얀어둠 / 스칼렛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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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이 있다. 읽기가 망설여져서 미루고 미루다가, 가끔 궁금하긴 하지만 책 선택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아주 완벽히 잊히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기억될 자리의 불안함을 남겨놓는 책. 하얀어둠의 <솔티 솔티 솔티>는 내게 그런 책이었다. 종이책 출간 당시의 입소문에 내 취향이 아닌 듯하여 저기 멀리 미뤄둔 책이면서, 궁금함은 늘 남아있는 책. 호불호가 심하게 나뉘는 것 같아서 내내 망설였다. 종열이의 걸쭉한 욕사포가 거슬리면 읽기 어려울 것이고, 이 짠내나는 남자를 이해하면 한없이 소중한 책이 될 거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그 말이 맞더라. 속내를 들여다보고 나니, 순간순간 치고 들어오는 먹먹함이 문장 곳곳에 스며들더라. 여전히 종열이가 쏟아내는 욕이나 막말은 거북하지만, 그가 진심과는 다르게 거칠게 말하는 걸 알게 된 순간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다는 걸...

 

처음부터 등장하는 종열이의 '씨발' 라임은 많이 거슬렸다. 어디 그것뿐이랴. 종열이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욕 아니면 거친 말이었다. 그냥 모르는 사이로 지내도 옆에 지나가는 것조차 싫은 사람. 나에게 종열이의 첫인상은 그랬다. 중국집 운영하는 종열이는 모든 것을 아끼는 남자였다. 최소한의 생필품을 제외하고는, 그에게 소비라는 건 없었다. 한겨울의 맹추위마저도 그에게는 별것 아닌 일상이었다. 뭐 하러 난방을 돌리냐, 뭐 하러 핸드로션을 따로 사는 거냐, 뭐 하러 오래 씻으면서 낭비를 하냐, 등등. 그의 생활은 아끼고, 안 쓰고, 또 아끼고 안 쓰는 것이다. 내가 힘들게 번 돈 남의 아가리에 처넣어주는 건 죄악이라 여기는 사람 같았다. 그런 종열이 앞에 나타난 정지안은 그의 절약 개념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여자였다.

 

왕따 당하던 남동생의 죽음. 남동생의 죽음을 시작으로 지안의 가정은 무너진다. 곧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안 홀로 남았다. 그런 그녀의 삶이 편할 리 없다. 아르바이트로 대학 생활을 이어가던 중, 호프집에서 운명을 맞이한다. 남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무리, 죄는 무거운데 형벌은 너무 가벼워 일상을 누리는 자들. 그들을 눈앞에서 본 지안은, 그들이 자기 남동생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을 보고,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호프집 주방에서 가져온 칼로 그 무리의 주동자를 찔렀다. 다행히 그의 목숨은 건졌으나 하반신 마비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안은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담담하게 형을 치른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교도소 문을 열고 나온 그녀에게 남은 건, 몇십만 원의 돈과 작은 가방 하나. 그녀의 작은 몸 하나 뉠 곳이 없다. 일할 곳도 없었다. 그때 종열이 지안의 앞에 나타난다. 무작정 끌고 그의 집으로 간다. 잠잘 곳, 먹을 것, 누군가의 그늘 같은 안도를 내놓은 종열은 왜 지안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이해가 안 되는 시작이었다. 그렇게 끌고 갔다고 순순히 종열을 따르던 지안이나, 욕과 거친 말을 쏟아내면서도 지안을 놓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간 종열이나... 생판 모르던 사이였던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만나야만 했을까. 알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읽어 가는데, 문득문득 울컥해져서 혼났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도무지 내 취향이 아닌 이 글을, 이 주인공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데, 왜 자꾸 이들의 삶을 엿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종열이의 짠내는 그럴 수밖에 없는 역사를 가졌다. 지안이의 현재는 종열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돈 때문에 서글펐고, 돈이 분노하게 했고, 돈을 아끼며 살아야 했던 종열의 시간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런 기억을 가진 누구나 종열과 비슷한 생활을 만들지 않았을까. 돈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한 세상에서, 그 순간 종열이 선택한 게 죽음이 아니라 짠돌이 생활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흘러 지안이를 만나게 된 게 마치 운명처럼, 서로를 보듬고 살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된 거라고 말이다.

 

방끈 짧은 남자와 전과자 여자가 세상을 살 방법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삶을 이뤄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사회의 사각지대에 머문 두 사람을 한가운데로 끌어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착각이 들 만큼, 절망에서 삶의 의지를 불러오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그들이라고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을까? 예쁘고 멋있게 차려입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보기에 그럴싸한 집에, 한겨울에도 반소매를 입고 다닐 정도로 난방을 켜고, 구멍 난 운동화를 버리고 새 신발을 사는 일들. 매일 웃고 사는 일상이 그렇게 갖춰진 것들 때문이라면 못할 것도 없겠지.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삶의 목적은 그런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살아야 하는 일, 살아내는 일이 우선이었던 거다. 누군가가 행하는 소비의 일상이, 그들에게는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거다.

 

세상의 바닥을 살던 두 사람이 만난 오늘이, 점점 내일을 그리는 일상이 되어가는 기적을 본 것만 같다. 꼭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지금 가장 울고 싶은 순간에 이 책을 펼쳐 든다면 어김없이 빠져들고 말 것만 같다. 그들의 간절함을 엿보면서 위로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다만, 종열이의 지독한 츤데레를 예뻐해 줄 수 있다면 말이지.) 종열이의 말투나 지안이에게서 볼 수 없는 자존감에 화가 나다가도,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과 같은 삶을 이어온 이들이 겪는 현실이 그대로 묻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올 때면 침묵하게 된다. 전혀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을 확인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을지도... 혹시 종열이의 욕이, 거친 말이 그의 삶을 대신 표현하는 걸 알게 되면 그나마 조금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진심을 드러내는 방식이 그러하여 거슬리더라도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줄 아량이 저절로 생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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