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마는 집안의 많은 것을 정리하는 중이다. 오래된 집의 정리라고 해봤자 버리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살펴보고 분류해서 버려야 하니 틈나는 대로 하는데도 아직 정리할 게 많이 남았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장독대는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라 오롯이 엄마가 다 손대고 있다. 30여 개에 달하는 장독을 지금은 거의 다섯 개만 사용하는지라 나머지 빈 장독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했더니, 이때다 싶어 사람들은 서로 달라고 했고, 엄마는 깨끗하게 씻어 놓을 테니 가져가라고 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장독을 하나씩 비우고 정리하고 씻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정리하려니 힘이 드시나 보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손댄 김에 하겠다며 굳이 다 정리해놓겠다고 하는 걸 보니, 그걸 보는 내 마음이 불편했다. 말려도 계속할 것 같아서 쉬어가면서 하시라고 했더니 엄마가 하는 말, "죽으면 푹 쉴 텐데, 뭘..." 아, 어느 정도 인생 살아온 엄마가 생각하는 쉼은 죽음 이후의 시간일 수도 있구나.

 

 

휴식이나 쉼을 떠올리면, 여행이나 늘어짐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요즘처럼 여름에 주어지는 며칠간의 휴가는 어딘가로 떠나기 좋은 시간이고, 평소에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면 한없이 게으름 피우며 뒹굴고 싶었다. 쉰다는 건 그런 거로 여겼다. 짧게 든 길게 든 보너스 같은 시간에 부리는 마음의 여유. 그 여유에서 가장 먼저 선택되어야 할 조건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거다. 그게 여행이든, 책 쌓아놓고 방바닥 뒹굴며 읽는 것이든, 며칠 동안 밀린 잠을 자든, 그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좋아해 선택한 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바로 쉰다는 거로 여겼다. 그런데 엄마의 한마디에 내가 생각하는 '쉼'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죽음이라는 건, 또 다른 의미의 쉼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 인생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을 생각하면 시작점부터 열심히 달리다가 끝점에서야 겨우 쉬는 거라고, 그 끝점이라는 건 우리 눈 감은 후에 이뤄지는 안식 같은 게 아닐까 하고.

 

 

 

 

 

 

 

 

 

 

 

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제대로 된 휴식을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여행용 가방에 필요한 것을 싸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서 여행이 시작되듯,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는, 긴 휴식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사실, 그 준비를 모르는 건 아니었던 듯하다. 뻔한 답이지만, 죽음의 순간에 다다라서야 떠오르고 후회 없이 살아가는 시간과 과정을 이루는 것이 제대로 된 준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이의 죽음이나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지켜보면서 그 의미를 더 깊게 고민하게 된다. 헨리 마시의 『참 괜찮은 죽음』은 신경외과 의사인 저자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의사로의 삶뿐만 아니라 여러 환자의 모습을 다양하게 비춘다. 환자와 함께하며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다. 때로는 환자를 살리고 때로는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도 하지만, 그 바탕에서 피어오르는 건 보다 나은 다음을 고민하는 것이다. 신이 아닌 의사이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당황도 하지만, 그때마다 진심을 드러낸다. 목숨을 살릴 수 없음을 인정하고 전달해야 하는 마음의 불편함도 그대로 쏟아낸다. 그런 그가 찾아낸 괜찮은 죽음의 조건이 고요히 스며드는 것처럼 다가온다.

 

 

가끔, 누군가 “우린 아직 이 사람을 보낼 준비가 안 됐어요…….”(88페이지)라고 말하는 순간을 상상했다. 괜찮은 죽음이란, 죽은 이를 떠나보내며 아쉬워하는, 그 죽음을 붙잡고 싶은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올 때라고, 그런 목소리를 들으면서 떠난다면(떠났다면) 참 멋지게 살고 가는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아쉬운 이별의 목소리가 전부가 아니었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25가지 에피소드에 생과 사의 온갖 생생함을 보면서 끝도 없는 생각이 이어진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어떨까,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죽음을 미리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죽음이 다시 보인다. 그냥 숨이 끊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슬픈 이별일 수 있는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이제야 비로소 편히 쉬는 시간임을 보게 된다. 조조 모예스의 소설 『미 비포 유』를 윌과 루의 로맨스로만 봤던 기억이 변한다. 윌은 자기의 휴식을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 거였다. 2년여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끝난 거였다. 그의 선택을 두고 많은 이가 슬퍼했겠지만, 그에게는 편안함의 시작이었을 거라고 이제야 보인다.

 

 

순간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을 돌아보며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그 한마디가 고운 말이 되었으면 하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의식을 차렸다 잃었다 하는 동안 모국어인 독일어로 이렇게 되뇌셨다.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했어.” (275페이지)

 

 

한때 누군가의 결혼, 아기 돌잔치 초대를 많이 받았다. 어떤 시작을 알리는 소식들이 자주 들려오던 때였다. 이상하게도, 지금은 장례식에 갈 일이 잦아졌다. 친구 부모님, 친척, 지인. 몇달 전에는 이모부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이제 내가 그런 나이가 되었나보다. 누군가의 탄생이나 시작을 알리는 소식보다, 누군가와 이별하는 소식에 안부를 묻고 위로와 공감을 나누어야 하는 때... 누군가 떠나는 모습에, 잘 헤어져야 하는 마음을 가져야할 시간이 많아진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런 시간이 더 많아지겠지.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 친구와 지인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해야 할 이별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게, 죽음이 아주 가까이에서 나에게 말을 걸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무서워진다.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 듣고 싶었나 보다. 우리가 만나는 죽음을 어떻게 괜찮은 죽음으로 볼 수 있는지를...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할 때 괜찮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곱씹고 있다. 치료를 중단하는 게 최선일 수 있고, 가망이 없더라도 마지막 희망으로 수술을 선택할 수도 있다. 죽음을 염두에 두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건 환자 자신의 결정이어야 하고, 그 누구도 아닌 자기 마음속의 바람을 말해야 한다. 어떤 결정을 하든, 그건 그 끝에 있는 죽음으로 가는 길, 영원한 휴식을 위한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는 선택이다. 참, 어렵다. 마음도 무거워진다. 인생의 끝에서 마주할 그 쉼을 위해, 우리가 오늘을 채우는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엄마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면서도 굳이 자기 손으로 장독을 정리하는 일도 그 과정일까. 오랜 시간 자기 곁에 머물며 일상을 채웠던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는 엄마의 모습이 새삼 너무 진지하고 중요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어설픈 손이지만 엄마의 그 정리를 돕는 일인 것 같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이 될 시간을 준비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엄마의 편안한 쉼을 위한 준비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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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2016-12-1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