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자기 이외의 인간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될까요.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던, 적어도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을 동안은 무슨 행동을 하거나 생각을 하거나 할 때, 인생의 주어는 언제나 '나'입니다. 손에 잡으려 노력하는 행복 역시 '나의 행복'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이런 상태에서 탈피하게 됩니다. 인생의 주어가 '나'에서 '우리'로 변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나' 혼자만 살아봐야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자립이란 결코 혼자 사는 것, 자신의 일을 자기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생각하고, '내'가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달성한다는 과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바로 자립입니다. (165~166페이지)

 

 

사랑이 행복해야 했던 것인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거나,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만 하는 것 아니었나? 그거 말고 사랑에 뭐가 더 필요했단 말인가.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사랑하는 일에도 어떤 방식이 굳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 했던 거다. 그저 사랑하는 동안에는 내 마음이 가는 데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사랑이 끝났을 때는 내 마음이 더는 상대에게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 그게 전부였다. 헤어지고 슬퍼하거나 아프기는 했어도, 세월이 그 슬픔을 희미하게 한다는 것 또한, 안다. 사랑에 관한 어떤 물음이 구체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 한 채로 살아왔다. 그저 내 앞에 주어진 사랑에 임하기만 하면 되었기에 뜬금없는 저자의 물음이 당황스러웠다. 당신의 사랑이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 이유가, 사랑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전제부터 다시 해야겠다. 사랑이 행복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이 책 속에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공감할 수 있다.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고, 우리가 노력하고 기술을 쌓아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몰랐던 게 아니다. 하지만 막연했다. 사랑하는 우리가 나 자신과 상대에게 쌓아가는 노력에 구체적인 게 없었다. 시시콜콜하게 드러내지 않아도 무던하게 흘러가는 것, 감정과 물리적인 노력이 합해져 이뤄가는 거라는 것, 그 정도였다. 그런데 저자는 참으로 구체적으로, 소소한 것들까지, 쉽지만 해내기 어려운 감정적인 문제까지 풀어내려고 애쓴다. 성숙하게 사랑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불러와서, 우리의 사랑을 돌이켜보고 생각하게 하고, 우리는 사랑에 얼마만큼의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묻게 한다. 사랑하는 법을 알 때, 사랑도 인생도 행복해진다는 말을 증명한다.

 

사랑에 방법이 문제라는 게 무엇일까. 사랑은 능력이고 기술이라는 저자의 말이 낯설지도 모른다. 사랑이 무슨 공부도 아니고 전문직도 아닌데 말이다. 저자는 사랑의 정의부터 다시 쓴다. 사랑이란 '나와 상대가 함께 시간을 쌓으면서 관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그게 '사랑의 기술'이고, 서로가 함께하면서 공유하는 시간은 곧 '체험되는 시간'이 되어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과 같다. 그러니 연애도 결혼도 혼자 할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면서 유지하고자 하는 연애나, 그 결과로 얻고 싶은 결혼도 같이 노력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 흔히 상대와의 관계가 어긋나면 둘 중 하나의 문제를 찾곤 하는데, 그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저자의 말처럼, 그 문제는 '누구'에게가 아니라 '어떻게'에 관한 것이다. 둘 사이에 생기는 문제가 왜, 무엇 때문에 시작되었는지 원인을 찾아야 하지 누구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건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되지 못한다. 둘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 대부분을 상대에게 책임 묻기로 한다면, 그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고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노력하는, 배우는 사랑이어야 하니까. 그래야 우리의 사랑이 행복할 테니까 말이다.

 

사랑은 '능력'의 문제이고 나아가서는 '기술'이라고 프롬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술이라면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고 '쌓아올리는 것'입니다. (47~48페이지)

 

함께 지낸 시간이 '그저 보낸 시간'이 아니고 '체험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동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시간이 아니고, 둘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229~230페이지)

 

인생을 배우는 것처럼 사랑도 배울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게, 요즘 내가 느끼고 있어서다. 살아오면서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나 혼자 결정했다. 그건 사람을 만나는 일에서도 비슷하다. 만날 사람을 내가 정하고, 그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의 정리도 내 맘대로 했다. 내 생각대로 하면 되는 거였고, 그게 적용되지 않으면 싸우기도 하면서 결국 헤어지는 거겠지 싶은 일을 반복했다. 행복해지자고 연애하는 건데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 행복하지 않은 건 당연했다. 그러니 끝날 수밖에. 그런데도 아쉽다거나 잘못된 걸 몰랐다. 그저 나의 말과 생각을 인정해주지 않는 상대에게 화만 냈다. 도대체 왜? 그러다가 지금 애인을 만나면서 나는 조금씩 변했다. 부정적인 마인드를 바탕에 깔고 사는 내가 긍정적인 마인드를 바탕에 깔고 사는 그와 대화가 통할 리가 없었다. 의심하고 확인하고 경계하는 내 생각이 '괜찮겠지, 나아지겠지, 어쩔 수 없지' 3종 세트를 남발하는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는 안 되는 일 앞에서 나를 닦달하고 있는 걸 봤다. 내려놓고 잊어야 하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그의 말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나 자신을 들들 볶아댔다. 그의 말 한마디가 나의 사고를 바꾸게 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해야 하는 게 사랑이라는 저자의 말을 인정하게 됐다. 나만 보고 나만 우선시하던 관계에서, 강요하지 않고 나아가야 할 상대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게 많아졌다. 피곤하고 귀찮아서 걸려오는 전화를 무시하던 것도, 왜 그렇게 느리냐고 투덜대던 것도, 서로 식성이 달라서 짜증 내던 것도. 크고 작게, 서로가 달라서 힘들었던 순간들을 돌이켜보곤 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을 때는 감정적이 되거나 힘을 사용해서 이견을 짓눌러 이기려고 들면 안 됩니다.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끈질기게 논쟁을 펼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인정하는 만큼, 바로 그 폭만큼 우리는 대화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이렇게 다르구나, 알아간다고 생각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비결일 수도 있겠습니다. (199~200페이지)

 

저자가 말하는, 같이 만들어가는 체험하는 시간에 나는 무엇을 보여줬던가 싶다. 그러다 점점 나를 돌아보게 되더라. 내가 상대에게 화를 내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들이, 상대도 나를 보며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쌓아두고 있지는 않았을까?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주기만 했던 거 아니었을까? 그때야 '아차' 싶은 후회, 내가 느끼는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가 싶은 반문, 내가 맺은 이 관계에서 나는 무슨 책임을 지고 있었던가 싶은 깨달음이 밀려왔다. 나는 이 관계를, 상대를 존중하지 않았던 거다. 저자는 사랑의 기술은 서로를 대등하게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상대의 관심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지 않으면 관계가 망가지는 건 순간이고, 망가진 관계를 회복하는 건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고. 그러면서 좋은 관계를 쌓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상대를 존경하고, 신뢰하고, 협력할 것. 나빠지려고 하는 관계에서는 그 관계 개선을 위한 시도와 방법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 것.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 존경이라고 했다. 상대의 과제 해결 능력을 믿는 것이 신뢰라고 했다. 결국은, 상대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신뢰했을 때 '우리'의 사랑은 유지되고 성장한다는 말이겠지.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사랑이 행복해진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냥 하는 게 사랑이 아니라, 배우고 노력하며 얻는 게 사랑의 기쁨이라고 말한다. 모르지 않는다. 세상 그 어떤 일도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건 없을 테니. 저자는 거기에 한 가지 더 보탠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노력은 힘들기만 한 게 아닌, 즐거운 과정이라고 말이다. 사랑, 연애와 결혼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인생의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피력하면서, 행복한 사랑을 완성해가는 기쁨을 알게 하려 애쓴다. 혼자가 아닌, 둘이서 해야 하는 협력이다.

 

사랑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상대를 사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상대가 우리를 사랑할지 여부는 상대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결정권이 없습니다.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받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69페이지)

 

"사랑과 결혼은 인간의 협력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그 협력은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한 협력일 뿐 아니라 인류의 행복을 위한 협력이기도 하다." (251페이지)

 

관계를 맺고 이뤄가는 게 어디 사랑뿐이겠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랑을 얘기하고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 내용은 사랑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맺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적용되는 방법이다. 연애와 결혼을 넘어, 인간관계 전체를 아우르는 방법에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같은 상처를 받지 않겠다고 연애가 두려워 다시 시작하기 두려운 사람, 현재의 사랑이 어려운 사람, 배우자와의 관계가 위태로운 사람 등 우리의 사랑이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를 찾으면서, 사랑하는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로 자기만의 방법까지 찾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배우는 일. 인생의 많은 일에서 부딪힐 때마다 우리가 찾는 방법이었다. 그 많은 관계 안에서 더 성장하고 나아가고자 애쓸 때, 우리는 행복을 만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