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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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어떤 날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들이 살아온 어떤 날 중의 하루를 꺼내어 들려주는 것만 같다. 지나간 시간이지만 기억에서 지워지지는 않고, 돌이킬 수 없어서 그렇게 끌어안고 사는 기억을 한 번쯤은 꺼내고 싶은 날. 이들에게 그런 날들의 숨소리가 건너온다. 우리 삶을 두르고 있는 일상의 굴레를 이렇게 슬쩍 열어놓는다.

 

「에트르」의 서른 살 ‘나’는 백화점 베이커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연말의 매장은 붐빈다. 밥 한 숟가락 제대로 넘길 시간이 없는 일상에서 부담은 늘어난다. 집주인이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려달라고 했다. 이사를 결심하고 12월 31일 집을 보러 간다. 연말이고 누구나 포근한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싶은 시간, ‘나’는 집을 보러 갔지만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새로 이사하려고 집을 보러 간 동네도 지금 사는 동네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너무 닮아서 놀랄 정도다. 이곳(지금 사는 동네)과 저곳(집을 보러 갔던 동네)이 다른 게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동시에 밀려드는 건, 월세나 보증금의 문제보다는 그저 ‘나’의 삶의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여전히 무겁고 버겁고 힘들다.

 

현실적으로는 대출이 불가능하고 더 벌 수도 없으니까 쓰는 걸 줄여야 했다. 그동안 잠도 줄이고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꿈과 기대와 감정까지 줄이며 살았는데 여전히 뭔가를 더 줄여야만 했다. (12페이지, 「에트르」)

 

사는 건 왜 이리 힘들까. 이십 대의 치기 어린 마음이 무모해서 힘든 걸까? 대책 없이 서울로 상경해서 시작한 청춘이어서 그런 걸까? 그럼 이십 대가 지나면 좀 괜찮아지려나? 이제 곧 서른을 넘어서는 주인공이 보내는 지금이 그렇게 아프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이미 알아버렸지 않은가. 그건 이십 대여서가 아니라 청춘이어서가 아니라, 삶이 고단한 건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환경 때문이라는 것을. 사람을 알아가고 인생을 더 배운다고 해서 달라질 거로 믿고 오늘을 버틴다는 것을. 다른 단편 속 주인공들 삶도 비슷하다. 「뒷모습의 발견」의 아내는 갑자기 사라진 남편 때문에 남편의 회사 생활과 동료들을 만난다. 그녀가 알던 남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남편의 다른 모습을 본다. 10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남편을 모른다. 그가 스스로 사라진 건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남편을 생각하면 혼란스러운 것뿐이다. 「이후의 삶」의 남자는 이혼 후 임시 거처로 찜질방을 택한다. 곧 나갈 거지만 그곳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익숙해지고 있다. 거기에서 만난 사람으로부터 죽음의 이야기를 듣는다. 돈이 많아도 외롭다는 말은 남자에게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찜질방 남자의 말이 틀린 것도 없다. 죽음 이후의 모습조차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혼자 죽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제 낯선 일도 아닐 것이기에 말이다.

 

어느 날 자기 삶이 어떤지 돌이켜보는 건 어떤 느낌일까. 「변해가네」의 주인공 ‘나’는 그날 오래전 인생을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요양원에 들여보내는 것과 딸이 산통이 시작되는 건 동시에 이루어졌다. 마음이 급했다. 엄마를 안전하게 요양원에 인계해야 했고, 첫 출산을 하는 딸에게도 가봐야 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녀의 지나간 시간이 떠오른다. 현재의 그녀가 사는 모습까지 지나온 시간, 그래서 지금 행복한지 스스로 묻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하다. ‘그래, 이 정도면 나 지금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을까? 이와 반대의 느낌을 주는 단편이 「개의 나날」이었는데, 주인공 ‘나’는 성매매 알선하는 일을 한다. 거구의 몸으로 먹는 것을 일삼고 있다.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그는 어떤 꿈을 상상한다. 새아버지가 될 뻔한 남자의 죽음, 아주 오래전 잠깐 인연이었던 남자의 죽음을 왜 자기에게 알리는 건가 싶지만 그가 남긴 걸 찾아가라는 말에 유산을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주인공 ‘나’는 혹시 돈을 생각했던 건 아닐까? 지금 그의 삶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돈은 아니었지만 죽은 이가 남긴 건 그의 삶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것이었다. 물론 내 생각에는 그렇다. 죽은 이가 남긴 봉투에서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가 성매매 업소의 문 앞을 지키던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줄 알았다. 서성이던 개에게 다시 오지 말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그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서다. 하지만 그는 일어나지 않았고, 멀어져가는 개를 쳐다볼 뿐이다. 어쩌면 그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지만, 선뜻 그 말을 품지는 못한다. 그 말이 의미를 담지 못해서다. 현재 그의 삶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안도할 수 없어서다. 허기진 그 마음을 채우려 계속 먹고 또 먹었던 것처럼 그의 비어있는 속을 채워줄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다. 누구라도 그걸 쉽게, 금방 알 수 있을까? 알지 못해서 현재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각 단편 주인공들의 나이대가 다양하다. 20대부터 60대까지, 나름으로 열심히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혹시 내일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바람, 노력으로 오늘을 채우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이 너무 팍팍하다. 피하고 싶은 위기는 언제나 잘도 찾아왔다. 때로는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도 오늘과 다를 것이다. 하지만 다르지 않은 건 여전히 존재한다. 불안한 삶. 나름 오늘을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남는 게 없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너무 익숙하다. 지금 여기, 우리 삶과 다를 게 없는 그대로였다. 현실 속 우리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다. 미래를 꿈꾸기도 하지만, 지금 눈앞의 현실이 암담해서 오늘을 살아내기에 급급한 모습. 그렇다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또 꿈을 꾸고. 그래서 무언가를 품어가면서 그 마음 내려놓지 않는다. 떨어트려서 망가졌지만 다시 주워서 품에 안아버린 케이크처럼, 떠나지 못하는 삶을 대신 떠나가라고 개에게 말하는 것처럼, 불행을 알리는 소식이 올지도 모르지만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이상하게 웃던 엄마의 표정을 떠올리면서. 케이크는 다시 사면 되고, 그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언젠가 자기가 될지도 모르는, 이상하지만 엄마의 웃는 모습은 아직 볼 수 있는...

 

열차가 삶의 한 시기를 지나 간이역에 멈춰 설 때, 내리지 못한 채 네모난 칸에 실려 덜컹거리는 여정을 이어갈 때마다 반대편의 삶과 새로운 바람이 불던 창 밖에 대해 생각했다. (172~173페이지, 「변해가네」)

 

그저 가볍게, 삶의 한 부분을 기억에서 꺼냈다고만 하기에는 무거운 이야기들이었다. 현실 속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아서 공감하지만, 역시 우울하고 서글픈.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는 게 우리 모두의 운명인 것처럼 여겨져서 씁쓸했지만, 또 그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받아들이게 된다. 내일 또 오늘과 똑같은 하루가 펼쳐진다면 그렇게 또 살아가고, 또 그날과 이별하면서 살아가겠지. 마치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던 소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살아가는 보편적이고 평범하던 삶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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