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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수레바퀴 아래서 (리커버 한정판, 패브릭 양장) - 헤르만 헤세 탄생 140주년 기념 초호화 패브릭 양장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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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독일 학생들은 생각할수 없는 세계이자, 지금의 우리나라 학생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세계인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다.

작은 마을에서 수재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의 기대감과 마을 어른들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던 한스 기벤라트.

한스는 마울브론의 신학교 입학 시험을 위해 아버지와 함께 기차를 타고가 친척집에 머물며 시험을 치른다.

불안과 걱정 속에서 치른 시험은 어렵고 자신감을 앗아갈만큼 무거웠다. 그 중압감 이후 시험을 치르고 나서 한스는 잠시동안의 자유를 느낀다. 좋아하던 낚시를 하며 자연속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좋은 성적 2등이라는 입지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가문의 자랑이자 마을의 자랑이 된 한스는 조금은 우월해진 마음을 품으며 신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성적 우수자인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 학교 생활을 시작한다.

성적이라는 점과 신학교 학생이라는 수재라는 공통점만 빼고는 각자 다른 성격과 개성들을 가진 학생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하일러와 유독 친해지는 한스를 교사들은 탐탁치 않아한다.

요주의 인물이자 골칫거리인 하일러와 한스를 떼어놓으려하지만 결국 한스는 돌아 돌아

다시 하일러와 친해지게 된다. 하지만 결국 신학교를 떠나게 된 하일러와 그 속에서 혼자 남겨진 한스.

이제는 더이상 관심을 받는 우수생도 아닌 한스에게 남은 것은 차가운 시선들 뿐이었다.

그렇게 점점 병들어 가던 한스도 결국은 신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모든 마을의 관심이자 자랑이었던 한스는 한순간에 실패자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강압적인 교육 제도 속에서 살았던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인 이 소설은

놀랍도록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과 비슷하다.

일주일에 한 명의 학생이 자살한다는 통계학자의 주장이 나올 정도로 학생들의 자살율이 높았던

19세기의 독일. 그리고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와 함께 학생의 자살율 역시 높은 우리나라.

나 역시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도시락을 2개씩 싸서 다녔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학교라는 공간이 그다지 즐겁기만 하지는 않았다. 수능시험이 치뤄진 날 전후로 자살하는

학생의 기사가 나오는 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다.

학창시절 유달리 성적에 예민한 친구들이 있었다.

시험 문제 하나의 맞고 틀림의 유무로 책상에 앉아 펑펑 소리내어 울던 아이, 공부를 이유로

당번(주번)일에 소홀해 마찰을 빚던 아이, 성적으로 친구를 판단하고 사귀는 것을 지능적으로 하던 아이.

하일러처럼 반항심이 반발한 아이에게 낙오자라는 이름표를 은근슬쩍 쥐어줘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를 하던 교사들, 친구따라 강남간다며 친구도 가려사귀어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던 교사들.

그럼에도 그런 아이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놀던 아이들.

작은 교실 안에는 마울브론의 신학교가 생생히 살아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모의고사를 치던 날, 교실에 들어와 대성통곡을 하며 울던 반친구가 있었다.

다른 반에 있던 친한 친구가 학교에 오지 않았고 2교시 이후 그 친구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울던 그 친구에게 '친구는 친구고 시험을 망쳐서야 되겠느냐'고

그만울고 시험을 잘 치라던 시험감독관 선생님의 말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그 말이 당시에는 상당히 충격이었고 비정하게 들렸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친구는 나와는 중학교 시절 친구의 친구로 인사를 하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착하고 얌전하며 수줍게 잘 웃던 친구였는데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죽임 이후에서야 겨우 친구들이 알았다고 한다. 나 역시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 당시에는 우울증 자체가 지금처럼 이해받는 폭이 넓은 대중적 질환도 아니었기에 더 생소했던

기억이 난다.

'데미안' 등으로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수레바퀴 아래서'를 통해 좀 더 헤르만 헤세를 이해하고

더 관심가지게 된 것 같다.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데미안의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의 하일러.

두 소설처럼 친구라는 존재는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그럼에도 결국 우리는 '나 자신'으로

세상에 부딪혀 나간다. 오늘을 견뎌내고 있을 하일러와 한스들, 그들 각자의 세계가 굳건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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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별에 서툴러서 - 이별해도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
최은주 지음 / 라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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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노래 가사에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라는 가사가 있다.

원하든 원치않든 살아가면서 우리는 매일 크게 작게 이별을 하며 살아간다.

생이별이든 사별이든 혹여는 애착을 갖던 물건과의 이별이든 그리고 또..

매일 똑같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매일 다른 시간들을 떠나보낸다.

결국은 매일 이별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떠나는 것도 떠나보내는 것도 쉬울 듯 어렵다.

떠나보낸 그 자리, 텅빈 공간 속에 그럼에도 무언가가 차올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걸 추억이라 부른다.

빛바랜 듯 선명한 추억들이 매일 혹은 갑작스레 떠올라, 

슬픔과 아픔과 그리움을 던져놓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이별일까.

사실 세상에 좋은 이별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별에 서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별이 완벽해 더이상 아무런 마음도 남기지 못하는 것 만큼 슬픈게 또 있을까?

떠나 보낸 자리에 그리움이 없다면 결국은 추억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무언가를 가슴에 남기지 못하는 시간들이 의미가 있었을까? 반문하게 된다.

그렇기에 소중한만큼 우리는 서툴어도 된다. 이별이 아파 가슴에 사무치도록 슬퍼도 된다.

우리는 결국 누구나 혼자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서늘한 외로움을 조금은 데워줄

따스한 추억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잘 살아왔구나 위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별카페라는 곳이 정말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모티브가 된 카페가 유달리 이별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에 설핏 웃음이 서렸다.

그러고보면 드라마에서든 영화에서든 헤어지라는 종용을 듣는 곳이 카페인 경우가 많았다.

몰론 좋게 말해 종용이지 사실은 음료나 물을 끼얹고 돈봉투가 오고가고 살벌함이 오고간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카페는 조금 다르다. 애잔함과 따스함, 그리고 내일을 향한 희망이

함께 물든 이별의 장소다.

읽으면서 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들도 있어서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나에게는 당장 이별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노견이 있다. 

16살이라고 하면 꽤나 장수를 한 경우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언제나 아기같은 노견은

책을 읽는 내 곁에 머리를 대고서 평화로이 잠을 잔다.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막상 이별이 오면, 나는 언제나 그렇듯

서툴게 마치 처음인 듯 슬퍼할 것 같다. 

이별에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사실만큼 늘 처음인 듯 슬퍼할수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언젠가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며 이별하는 날이 올 것이다. 

'기쁘게 안녕'에 나온 여주인공처럼 나도 모두에게 인사하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회사와 이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떠남을 선택하고 받아들이며 결국은 조금 더 좋은 이별을 위한 방법말이다.

사람이 떠나간 자리는 남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는다.

그렇다면 좋은 흔적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없애기는 어렵겠지만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별해야지.

매일매일 다가올 내 삶의 이별들.

무수히 많을 그 이별들에 나는 하나 하나 서툴것이다.

서툴어서 마음껏 이별을 느껴볼 작정이다.

서툰 이별을 사랑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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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 마더 테레사에서 세인트 테레사로, 성인聖人 추대 기념 묵상집
마더 데레사 지음, 앤서니 스턴 엮음, 이해인 옮김 / 판미동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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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가난한 빈민자들의 삶 터 콜카타.

전혀 다른 종교로, 배척되는 것이 당연한 이곳에서 성녀로 인도인들의 사랑을 받은 수녀님이 있었다.

우리가 이름을 한번은 들어봤을 마더 테레사가 바로 그녀다.

마더 테레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본래의 세례명은 테레사로 후에 빈민자들의 어머니라는 뜻에서 마더가 붙어 마더 테레사가 되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수녀가 되기전 세례명은 아그네스) 현재는 세인트 테레사로 불리지만 영원히 마더 테레사로 기억될 것 같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여러가지 문제에 시달린 인도,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들이 보살핌을 받지 못한채 죽어가던 콜카타. 버려진 신전에서 가난으로 허기와 병마로 쓰러져 죽어가는 이들을 보살피기 시작했지만 처음에 영국출신이자 타종교인인 수녀님을 반가워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선교 목적을 의심해 그녀를 감시하듯 쫒아다니던 시선에도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목적을 향해 움직였다.

바로 가난한 이들을 계속해서 사랑으로 돌보는 일이었다.

목적이 없이 배푸는 사랑과 의심 없이 받는 사랑이 서로 만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일방적인 사랑만으로는 절대 이룰수 없는 '사랑의 최종 완성'이 바로 배푸는 사랑과 받는 사랑이 순수하게 일치되는 순간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그녀의 일생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이리라.

종교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천주교의 넓은 포용력에 반해 세례를 받았었다.


같은 종교 속에 있다고 해서 모두의 생각이 같지는 않은 것이 결국 종교란 사람이 믿는 것이기에 마음이 일치되기 어렵다는 것을 후에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더 테레사 수녀의 신앙의 신념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해서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나는 내가 믿는 종교기에 남에게 이 종교를 강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신이 있다면 하나의 모습이지만 여러 민족의 사람들이 각자의 문화에 맞춰 해석해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모습이든 최종적으로는 같은 신을 향해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우리가 속해 있는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다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라는 말이 그래서 어떠한 용기와 위로를 전해온다.


이 책은 수녀님의 평소 말들을 엮은 책이기에 장황하지 않다.

간략간략하게 우리에게 의미 있는 말들을 들려주 듯 구성되어 있어 하루만에 읽기에도 충분했다.

(단 몇시간만에도 읽을 분량이니 어렵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기도는

나를 사랑하는 일이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안쓰러운 나, 안쓰러운 소중한 사람을 위해

내가 할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

기도를 시작하게 된다.

그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마음의 외톨이가 되었을 때 우리는

기도를 한다.

각자의 신에게 혹여는 막연한 무언가에.

기도는 사랑이 남아있음의 증거가 아닐까.


6월 1일.

새로이 시작되는 달에 맞춰

좀 더 열심히 기도하며 바랄수 있는 것들을 바래보고

나 자신을, 내 주변을 사랑할수 있을 만큼 사랑해보며

작은 것부터 큰것에 이르기 까지

행복해할 수 있는 감사의 시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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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되고, 이 기도는 마음의 침묵에서 탄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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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야만 가득히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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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은 뉘우칠 수도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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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사람들은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똑같은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모두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며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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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가게
너대니얼 호손 외 지음, 최주언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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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문학이라는 장르는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하며 즐거움을 주지만

어른에게는 아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어둠을 생각하게 해준다.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우리들과 같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목소리 섬 =

아름다운 섬과 마법을 부리는 현자인 장인, 그리고 그런 장인의 마법으로 인해 좀 더 편한 삶을 살고픈 케올라의 욕심. 그 욕심으로 스스로 빠진 늪에서 그를 구해준 것은 그를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 레후아였다.

현자인 칼라마케도, 케올라도 욕심으로 인해 과오를 저지른다.

욕심, 욕망은 때론 사랑의 감정보다 거대해져 눈앞을 가로막는다. 당장 앞만 바라보게 만든다.

허황된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의 환상이 '욕심'이라면 케올라가 견뎌야했던 경험들이 '인생의 파도'가 아닐까

칼라마케의 마법들이 '허황된 꿈'이라면 레후아는 '진실'인지도 모른다.


= 마술가게 =

사랑스러운 아들 깁과 함께 들어선 마술가게는 뭔가 다른 가게들과 같은 듯 하면서도 전혀 다르다. 이 단편에서 나는 '순수함'으로 믿는 아이와 '의심'으로 불신하는 어른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볼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순수하게 믿어 얻는 것과 의심으로 불신해 잃는 것들. 그리고 대다수의 어른들은 불신으로 잃는다.

아주 작은 '상대에 대한 마음'조차도 말이다.


= 초록문 =

평생 초록문의 세계를 그리워 한 월리스의 죽음.

그가 그토록 다시 가길 바란 초록문의 너머. 월리스가 발견된 마지막 장소는 그에게 정말 초록문이었을까. 어쩌면 망각 속에서 마지막 순간 그만의 초록문이 열렸던 건 아닐까.

이곳과 저곳의 세계는 다른 곳이니...

데미안의 알처럼 보잘것 없는 그 껍질같은 초록문을 깨고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이들을 만났을거라고 믿고 싶은 어른으로서의 나의 애도의 기대인지도 모르겠다.



신기한 듯 평범하지 않은 세계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아이들은 분명 나와는 다르게 받아들이며 상상하는 즐거움을 느낄수 있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기에 느끼는 묘한 감정들이 있다. 아이들은 당연하게 갖고 있지만 어른들에게는 다소 세월에 씻겨나간 일종의 '잃어버린 부분'이라고 할까? 마술가게와 초록문에서 특히 그런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세월이 빼내어 간 것이 아니라 세월을 살아온 나 자신이 놓쳤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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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 케이스릴러
전건우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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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릴러, 한국형 스릴러를 선보이는 시리즈를 마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느낀 건 영화 곡성, 사바하. 소설 퇴마록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무당이란 존재로 샤머니즘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의 특색을 잘 살린 스릴러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족의 동반자살, 타락한 종교, 잘못된 믿음의 방향을 밀고 나가는 종교인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오대양 사건과 백백교 등 실제로 있었던 종교적 범죄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그런지 생소하기 보다는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과학적 근거는 없는 일들이지만 엄연히 하나의 문화로 인정하고 있는 빙의, 무속신앙.

서양은 우리의 무속신앙과 비슷한 것은 없지만 사탄과 영혼의 존재를 믿어서인지 오컬트 영화가 자주 상영되곤 한다. 죽음 이후의 시간과 세계, 부활의 염원 등 어느 나라든 만국 공통의 관심사같다.


죽음에서 살아돌아온다는 부활의 의미는 본래 성스럽고 영엄한 것이었을텐데 어느샌가 부활은 끔찍한 악마와 저주의 대명사로 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부활과 영생을 빌미로 잘못된 믿음을 권하고 사람들을 농락하는 종교인들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 딸을 죽이고서 부활 한다며 시신을 방치하며 기도만 했던 목사 부모의 이야기라던가, 병원만 가면 살 수 있을 아이를 기도로 낫게 한다며 치료거부해 결국 복수에 물이 차 고통속에서 하늘의 별이 된 어린 소녀의 이야기. 낯설기를 바라면서도 낯설지가 않은 주변의 이야기들이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생각이 났다.


눈이라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내리는 소복리, 선우는 종교적 믿음으로 동반자살을 하려던 부모님의 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런 그는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소복리에서 살고 있다. 그다지 친구가 없는 선우지만 그런 그에게도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있다. 자신과는 180도 다른 모습의 모범생 수미는 선우에게 있어선 할머니 만큼 중요한 소중한 친구다.

어느날 마을에는 늘 비어있던 붉은 별장에 사람이 들어오고 연달아 사람이 실종되어 대대적인 수색을 위해 마을 주민들이 뭉친다. 그래봤자 나이든 노인들 뿐이지만 평소 건강하던 분들까지 포함해 갑자기 다같이 신체적 고통과 아픔을 호소한다. 그리고 의사출신이라는 별장에 새로온 사람이 나타나 그들의 병을 낫게 해준다. 그런데 점점 마을에는 이상한 일들이 늘어난다. 개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사람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그런 마을에 수상한 조합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신부와 스님, 수녀와 무당이다. 별장에 들어온 사람들과 수상한 조합의 사람들 그리고 마을사람들에게 벌어질 일들은 과연 무엇일까.

작가 전건우는 [살롱드홈즈]라는 책을 통해 알게되었다.


살롱 드 홈즈와 마귀를 나란히 살펴보면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작가가 한쪽으로 치우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살롱드 홈즈는 밝고 위트가 있다면 마귀는 어둡고 끈적한 느낌이 있다.


최근 살롱드홈즈가 드라마화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마귀도 한국형 스릴러로 영화나 드라마화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스크린형으로도 잘 맞는 스토리를 쓰는 작가인 듯하다.


앞으로 작가님의 책에 관심을 좀더 가지게 될 것 같고 살롱드홈즈의 드라마화가 첫 스타트를 잘 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신이 부르신다.


신이 우리를 부를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신의 부름을 들어야 할까.

종교인이기도 하면서 농땡이이기도 한 나는 맹목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맹목적인 신알을 가진 이들이 신기하고 놀랍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믿을 수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믿음은 평등하다.

단, 선한 것을 믿어야 한다.


본문에 있는 이 문장이 와서 박혔다.

내가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와 일치한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정확한 문구를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나를 사칭하는 이들이 있을 것인데 너희들은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 라는 말을 전달하는 성경 구절이다. 사람인 우리는 사칭하는 이들을 가리는데에 아직 정확한 분별력이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선한 것을 믿어야 한다.

선한 것을 믿고 선하게 행동하며 언젠가 다가올 나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종교적 '종말의 그 날'이란 것을 내 나름대로 '개인의 죽음'이 '종교적 종말'의 그 날이라고 생각한다.

죽지 않는 생명은 없기에 종말의 그날은 정말 단체로 어떻게 되는 그런 약속된 종말의 날이 아니라 바로 한 생명이 평생을 살아오며 언젠가 맞이할 '죽음이라는 나 자신의 종말의 순간' 말이다.

그 때에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도록 살아가야 하는게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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