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신화여행 - 신화, 끝없는 이야기를 창조하다
강정식 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잘못된 믿음, 근거 없는 주장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판단을 지배하는 것." 신화(myth)의 정의(定義)에는 (아마도 후대에 추가되었겠으나) 저런 풀이도 끼어 있습니다. 학교 교육이나 독서를 통해 합리적이고 계몽된 정신을 단련하길 원하는 이들은, 신화를 그저 흥미를 돋우는 이야깃거리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티프로만 받아들입니다. 재미있게 여길망정 진지하게는 수용하지 않습니다. "단군 신화" 같은 것에는 그나마 재미도 없다며 형식적인 경의만 표할 뿐입니다. 우리가 지적인 관심을 베풀어야 할 대상은 그저 "역사"이며, "전설"과 "설화"는 인문, 문학적 교양의 원천 이상이 아니라고 쉽게 봐 넘깁니다.

물론 신화를 그렇게만 활용하거나 이해해도,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유용한 문화적 자원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조상들, 혹은 다른 겨레의 선조들(아마도 현명하고 사려깊기까지 했을)이 남겨 준 알쏭달쏭한 이야기들은, 그저 듣고 나면 마음이 넉넉하거나 깨끗해지는 어떤 감동과 교화의 매개일 뿐이 아니었습니다. 신화는 우리 정신 깊은 곳에 자리한 남모를 특질, 개성을 파악하게 도와 줍니다. 게다가 신화는, 명확한 모습으로 채 기록되지 못한 아득한 옛적의 역사 몇 자락을 에두른 말로 일깨워주는 스승이기까지 하더군요. 이 책을 읽고 독자로서 까맣게 몰랐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엄청 많이 접했을 뿐 아니라, 고갱의 유명한 그림 제목처럼,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깊고 심각한 고민을 해 보게도 되었습니다.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미국-서유럽 중심으로 본격화하면서 우리 나라도 자신의 시원을 추적할 때 자연스럽게 남방계, 북방계 하는 혈통을 따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G, A, T, C 라 이름 붙은 이런 단백질 계열 분석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절양장의 혼란만 가중하자, 지성계는 자연스럽게 더 익숙한, 그러나 소홀히 다뤄 왔던 신화의 영역 탐구로 그 방법론의 무게 중심을 옮기게도 되었습니다. 실제로 신화의 여러 화소(話素)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면, 민족과 종족 간의 근연 관계 같은 난제에서 의외로 쉽게 해답이 얻어지기도 합니다. 김헌선 교수님의 명쾌한 프레임 설정, 즉 무신론 대 유신론의 논쟁 중 에드워드 윌슨의 입장이 "신화의 해석을 통해 많은 난제가 해명 가능하다"라는 정리는, 꼭 도킨스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라기보다, 도구로서의 신화 탐구가 우리에게 얼마나 흥미롭고 유익한 시사점을 던져 주는지에 대해 보다 후련한 설명이 되었습니다. 배설, 성관계, 혼인, 출산, 번식에 대해 각국의 신화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특히 아시아의 남방계 여러 신화에 대승불교적 요소가 어떻게 끼어들었는지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지적이 유익했습니다.

경기도 오산 같은 곳이 독자적인 "창세 설화"를 갖고 있는 줄도 몰랐던 독자로서, 박종성 교수님의 "시루말"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흔히 큰 활을 잘 다루어 "동이(夷)"족이라고 이름붙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비류와 온조가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 주무대가 되었던 경기 일원에 유독 "쇠로 만든 활" 화소가 널리 퍼져 있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사항은 오해와 왜곡이 끼어들기 쉬운 작위적 문자 풀이보다, 풍성하고 직접적인 아날로그의 향연인 신화, 그 이야기의 몸뚱아리에 무슨 무늬가 새겨졌는가가 아닐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주도는 남방계 신화가 원형이 훼손되거나 다른 모티브와 타협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보고와도 같은 지방이죠. 사실 저로서는 그동안 할머니 등이 재미있게 들려 주신 이야기 보따리 정도로만 이들 설화를 이해했고, 그나마 마음에 새기지도 않았습니다만, 이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근원을 추적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될 소중한 신화라는 점을 강정식 소장님의 이 강연 기록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래 아 모음 발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제주도의 방언은, 정확한 발음으로 읽힐 때 또다른 의미를 드러내는 여러 신화의 개념과 이름들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이 파트 뿐 아니라 다른 장에서도 아래 아 표기가 그래야 할 곳에서 각각 정확하게 이뤄져서, 강연자가 무슨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지가 더 잘 와 닿았습니다. 장례와 같은 흉사를 시급히 처리하기 위해, 부자와 빈자가 차별을 두지 않고 제기(祭器)를 공유했다는 설명에서, 신화가 어떻게 종족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지 잘 배울 수 있었네요.

오키나와는 우리보다 규모가 훨씬 작긴 하나,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꾀하고자 여러 설움을 겪었던 동병상련의 역사를 공유하는 고장이기도 합니다. 마을의 탄생, 민족 시조의 남매혼(婚), 태양, 군주의 농사 지도 등 신화의 여러 모티브를 통해, 류큐 인(엄밀하게는 범위가 불일치합니다만)들의 심성과 심상, 이상과 좌절 등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일본과 그토록 오랜 동안 대립하면서 남방계 한 지류의 특징을 간직하려 애쓴 흔적을 보며, 우리와 어디가 닮았고 또 다른지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더군요. 꼭 지배국과 피지배국의 관계를 떠나, "국가"라는 독점적 폭력 집단이 인간 본연의 생존에 얼마나 해로울 수 있는지를 잘 깨우치는 게 그들의 신화였습니다. 이는 또한, 신화가 열심히 (정치적)현실과 소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덧입고 성장하는 좋은 예인 듯합니다. 반미 운동, 그리고 반일 운동의 한 중심에 서 있는 게 저들 오키나와의 사회 단쳬이며, 그들 신화의 새로운 의미가 구명되는 것도 이들의 노력 덕분임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매장, 농경, 식인 등은 여러 지점에서 서로를 연결하며, 각국의 신화에서 공통점과 분기점을 형성하는 화소입니다. 인도네시아의 하이누웰레 신화는 이를 기준으로 다른 나라의 신화들에까지 전면 재해석과 연계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소스임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이 5강에서는 하이누웰레의 분석을 통해,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 그리스의 크로노스 신화 등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체험을 독자에게 선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계모-친자-의붓딸의 오랜 갈등을 다룬 신데렐라 설화의 근원까지 파헤치며, 인류가 그 까마득한 옛적 어디서 서로 만나고 다시 흩어졌는지에 대해서도 건강한 영감을 자극하더군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본을 넘어 세계적 성공을 거둔 데는, 그가 자국뿐 아니라 세계 신화의 본질을 꿴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에서 우리는 신화라는 문화 유산이 단지 각 민족의 배타적 자산일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주고 꾸어 받은 공통의 보고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평화와 박애의 정신을 작품 속에 담아 온 그는, 신화야말로 바벨 탑 이래 말과 글이 서로 달라진 인류가, 아날로그식 소통을 통해 다시 한 아버지의 자식들임을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아고라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파편적 개념이나 부호의 교환으로는 형식적 화해에 그치는 게 고작입니다. 마음에 쌓인 걸 풀려면 "속을 탁 터놓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속"이 어떤지는 피상적 기계적 논리적 사고로는 자신의 사정도 알지 못합니다. 나를 모르는데 타인, 이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속"에 감춰진 무의식을 탐구하는 데 신화가 큰 도움을 줍니다. "신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너와 나의 사연이 의외로 많이 닮았음을 깨우칩니다. 많이 닮은 우리가, 더 이상 누가 다르고 누가 틀렸다며 서로 싸워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의 웹툰이 세계적 인기를 모으는 현실은, "아날로그식 이야기"가 가진 무서운 힘, 따뜻한 힘을 실감케 합니다.

"눈은 다른 것을 보지만,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한다."라는 라틴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 문명의 힘을 입어 자연을 지배하고 효율적인 사회 제도를 만들었지만, 짐승과 인간의 경계를 막 넘어설 무렵에 대한 기억이 분명하지 않은 데다, 인종과 민족으로 편을 갈라 잔인하고 격렬한 투쟁을 벌이면서도 자신이 낀 패의 시원에 대해 거의 무지합니다. 이뿐 아니라, 나 개인의 무의식에 어떤 욕구, 원한, 상처, 만족, 죄의식, 감사함 같은 게 자리하는 지 거의 무시한 채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똑똑한 척, 모든 것을 아는 척 행동하고 착각하죠. 우리는 어리석은 선조들과 달리 현명하고 과오를 피해 가며 환경을 지배한다는 양 말입니다. 어쩌면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먼저 폐기해야 할 "신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얼핏 보아 엉성하고 모호한 이야기로 가득한 신화는, 우리의 한 처음이 어떤 모양이었으며 우리의 현재가 어떤 색깔이고, 우리의 앞날이 어떤 방향일지 넌지시 일러 줍니다. 나의 조상이 결국 지금의 나 자신이며, 그 면면한 세월 동안 계승된 온갖 가능성과 잠재적 자질 중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묻은 채 지나쳤는지 가르치고 가리킵니다. 겸허히 나 자신의 근원과 질료를 더듬고 살필 때, 우리는 앞날에 놓인 문제와 장애를 더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화가 곧 인류 문명공통의 블루 오션"이며, "신화와 현실이 소통하고 서로를 살찌워야 문화와 사회의 앞날이 밝을 수 있다"는 진단은 실로 독자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