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시대의 경영학
최수형 외 지음 / 피앤씨미디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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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민완 저널리스트일 뿐 아니라, 중국에서 그의 경력 상당수를 쌓은 편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그가 중국 현지의 사정에 정통한, 몇 안 되는 인 물 중 하나라는 뜻인데요. 최근 10년을 중국이 폭발적으로 쏟아내는 성장의 거대한 스트림에 의존해서 가까스로 버텨 내었던 세계 경제가, 이제 그 성장 동력이 꺼져 가는 시점을 맞이하여 앞으로 믿을 만한 엔진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창조 경제"라는 키워드를 갖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이 책을 통해 도움을 받을 것을 제안하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창조경제"라고 하면, 정부의 슬로건과 무조건 단세포식 조건 반사로 동일시(그에 대한 찬성, 반대를 막론)하고 보거나, 혹은 이스라엘식 벤처 열풍만을 연상하는 분위기가 우리 나라에서는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한국의 신정부 출범은 물론, 이스라엘의 "후츠파이즘chutzpahism"이 성황을 이루기 이전 시점에 이미 나온 책입니다(원서 기준). 그러니, 성장의 방식, 동인 물색에 치열한 고민이 이뤄지는 지금, "창조경제"의 원전 격인 이 책을 읽어 보는 건, 개인이나 정책 결정자에게나 공히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 선 이 책은 도입부가 상당히 신선합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 CG 성과는, 이 영화를 본 세계 수억의 인구가 동의하듯, 종래와는 차원이 다른 역동성과 생동감으로 빛났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알고리즘의 고안을 두고, <반지...> 제작진은 이후 시스템의 인수라든가 후속 작품 제작을 위한 사용 계약 따위를 제안하지 않더라는군요. 본디 헐리웃은 개별 발주 건별로 생산 요소를 물색할 뿐이며, 대상이 (재고 공간을 차지 하지 않는 무형 자산이라고 해도) 그 영속적 보유라는 부담을 원치 않는 게 보통의 태도라는 거죠. 애써 개발해 둔 성 과물을 아깝게 사장할 위험에 처했으나, 엉뚱하게도 영국의 교통 신호 체계 개선이나, 화재 발생 같은 때 비상구의 구조 고안 같은 데에 이 체계가 대단히 요긴하게 쓰였다고 합니다. 요즘 경영 서적을 읽으며 대단히 자주 발견되는 게 "혁신"의 키워드인데, 이 혁신의 가장 흔한(그러나 유용한) 패턴 중 하나가, 특정 상품, 장치, 서비스를 기 존의 용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창조"라는 게 순전한 무(無)로부터 대단히 유용한 무엇을 창조해야만 하는 부대조건이 붙는 건 아니죠. 실물의 창의성뿐 아니라, 그 용도상의 창의성도 역시 창의성임은 분명하니까요. 간단한 발상의 전환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이룬다면 그때 창의성이란 오히려 더 빛나게 마련 아닐까요.

 

이어 저자는, 이 창의성에는 물적 설비나 거대 자본이 소요되지 않으므로, 누구나 자신 개인의 "사고력"만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 런 창조경제 종사자, "thinker"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기업들도 더 저렴하고 더 효율적인 아웃소싱이 가능하므로, 시장의 기능 역시 더욱 활성화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저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노조는 이를 두고 비정규직화라는 쪽으로 인식하고 거부감을 드러낼 수 있으나... " 여기서 창조경제는 어찌보면 신자유주의와 친화점을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본질 중 가장 두드러진 요소인 "창의성"이 잘 구현되는 게 그 번영과 생존을 위해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이 분명하므로, 이데올로기의 구획 노력보다 이 이슈가 더 상위 차원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숙련 노동의 잉여는 상대적으로 어디서나 풍부한 편이나, 구미와 중국 모두 숙련 인력("창의력, 창조성을 충분히 갖춘 인적 자원"을 의미하는 걸로 보입니다)을 조달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이 어려움은 중국보다는 구미에서 더 가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분명히 제시되어 있지 않은데, 우리 독자는 일단 중국통인 저자의 휴리스틱 진단을 믿고 갈 수밖에요.

 

그 다음에 전개되는 내용은 솔직히 좀 아쉽습니다. 전통적인 지식재산권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물론 각국의 법제와 실제 사례(대학 교재에서 곧잘 제시되는 고전적 실례들)가 책 안에 이렇게 실 리면 무게감이 더해지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1) 창조경제 = 지식경제의 등식이 성립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스케이프가 넓어지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 "창조"의 내용이 "비창의적"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2) 책이 좀 오래 되다 보니 냅스터의 사례, dvd 불법 복제 등 낡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3) 지 식재산권에 대한 설명은 다른 책에서 많이 봐 오던 내용이고, 너무 규격화되어 있습니다.  p204 밑에서 다섯 번째 줄에 나오는 서술은 번역이 불명료합니다. 주어가 생략되어 있으니, 그런 성질을 띠는 것이 상표 등록 대상이 된다는 것인지, 예외로서 안 된다는 것인지가 모호합니다. p138의 "최혜국 조항"은, 과연 "국'이라는 말 뜻이 뭔지를 정확히 알고 그리 옮긴 건지 의문스럽습니다. 이런 책은 저자의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단어 하나까지 정확히 전달하는 쪽에 초점을 둬야 하지, 그저 겉으로 무난하게 보이게만 하는 윤문 작업에 그쳐서는 안 되는 것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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