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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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성경책은 누군가......아 그렇지, 네 아빠가 손에 쥐고 있는 위스키보다 더 나쁘기도 하단다. - P93

언젠가 아빠는 내게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 P119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 P149

"난 네가 뒷마당에 나가 깡통아니 쏘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마 새들도 쏘게 되겠지. 맞힐 수만 있다면 쏘고 싶은 만큼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돈다는 점을 기억해라."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디 아줌마에게 여쭤 봤습니다.
"너희 아빠 말씀이 옳아." 아줌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 P174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 P200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리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겨우 45킬로그램도 안 되는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할머니의 생각대로 그 어떤 것,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여태껏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셨단다. - P213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할 필요는 없지. 그건 숙녀답지 못한 거고..... 둘째로, 사람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화가 나는 거지. 올바른 말을 한다고 해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어. 그들 스스로 배워야 하거든. 그들이 배우고 싶지 않다면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처럼 말하는 수밖에. - P237

" 사람들 중에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살마들도 잇거든. 그들에게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들더러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니?
난 그들에게 구실을 주려는 거야. 사람들은 구실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지지. 내가 아주 어쩌다 읍내에 나올 때, 조금 비틀거리며 이 봉지에 든 뭔가를 미시면, 사람들은 돌퍼스 레이먼드가 술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하는 거야.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아저씨, 그건 정직하지 않잖아요. 지금보다도 아저씨를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데다기 이미...."
"물론 정직하지는 않다만 사람들에게는 아주 도움이 되거든." - P372

아빠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이다, 자업자득이란다. 우리는 보통 우리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갖기 마련이거든. 우선 첫째, 용감한 메이콤 시민들은 재판에 관심이 없지. 둘째, 걱정도 되지. 그러니 그들은..."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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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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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애 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 P12

토마시는 생각했다.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 P28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 P49

우리생각에는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아틀라스가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듯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 P60

테레자에게 책이란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였다. 그녀를 둘러싼 저속한 세계에 대항하는 그녀의 유일한 무기는 시립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뿐이었다. - P85

필연과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인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 P88

그녀는 말을 멈추더니 다시 덧붙였다.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 - P114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ㄲ 작곡하고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 P152

사비나에게 있어 진리 속에서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싦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잇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사비나는 작가가 자신의 모든 음닐한 삶, 또한 친구들의 은밀한 삶까지 까발리는 문학을 경멸했다.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고 사비나는 생각했다. 또한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도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사비나는 자신의 사랑을 감춰야만 한다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진리 속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P187

프란츠는 모든 거짓의 원천이 개인적인 삶과 공적인 삶의 분리에 있다고 확신했다. 개인적인 삶 속에서의 모습과 공적인 삶 속에서의 모습은 별개다. 프란츠에게 있어서 ‘진리 속에서 살기‘란 사적인 것과 공개적인 것 사이에 있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뜻했다. 그는 아무것도 비밀이 아니며 모든 시선에 열린 ‘유리 집‘속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던 앙드레 브르통의 구절을 즐겨 인용했다. - P187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P201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항상 베일에 가린 법이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명예를 추구하는 청년은 명예가 무엇인지 결코 모른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 P202

그녀는 자기에게 참을성이 없었던 것을 후회했다. 함께 더 오래 있었더라면 그들은 조금씩 그들이 사용했던 단어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어휘는 너무도 수줍은 연인들처럼 천천히 수줍게 가까워지고, 두 사람 각각의 음악도 상대편의 음악 속에 녹아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제 너무 늦었다. - P205

그가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가 원하는 바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 P353

목청 높여 자신의 종말을 재촉하는 것이 나았을까? 혹은 침묵해서그 대가로 좀 더 느린 종말을 사야 했을까?
이런 질문들에 한 가지 해답만이 존재할까?
그리고 다시 한 번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생각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 P357

진정한 목표는 정치범의 석방이 아니라 아직도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다. - P436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네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익명의 무수한 시선, 달리 말하자면 대중의 시선을 추구한다.
(중략)
두 번째 범주에는 다수의 친한 사람들의 시선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속한다. (중략)
세 번째 범주가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사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중략)
끝으로 아주 드문 네 번째 점주가 있는데,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 P440

현실이란 꿈을 뛰어넘는 것, 꿈을 휠씬 뛰어넘는 것이란 확신을 갖기 위해 그는 여행을 했던 것이다! - P448

테레자는 태평하게 무릎을 베고 누운 카레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대충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자기와 비슷한 대상에게 잘 대해 준다는 것은 아무런 미덕도 아니다. 테레자는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거기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릭 심지어 토마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랑받는 여인으로 처신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토마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와 타인의 관계가 어디까지 우리 감정, 우리 사랑이나 비-사랑, 우리 호의 혹은 증오의 결과인지 또는 어디까지가 개인 간 역학 관계에 의해 사전에 규정되었는지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참된 선의는 아무런 힘도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순수하고 자유롭게 베풀어질 수 있다. - P470

"오로지 우리를 위해서 밖에 나온 거야. 카레닌은 산책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단지 우리를 즐겁게 해 주려고 온 거야."
그녀가 한 말은 슬펐지만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그들은 행복했다. 그들이 행복한 것은 슬픔을 무릅써서가 아니라 슬픔 덕분이었던 것이다. - P476

공포는 하나의 충격, 완벽한 맹목의 순간이다. 공포에는 모든 아름다움의 흔적이 결핍되어 있다. 오로지 우리가 기대하는 미지의 사건이 내뿜는 광폭한 빛만 보일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슬픔이란 우리가 무엇니가를 안다는 것을 상정한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귿르을 기다리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공포의 광채는 휘장에 가리고, 우리는 전보다 세상을 휠씬 아름답게 만드는 푸르스름하고 부드러운 빛 속에서 세상을 발견한다. - P493

"솔직히 말해서 아들과의 만남이 두려워. 바로 그래서 나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았던 거야. 내가 왜 이리 고집불통인지 나도 모르겠어. 어느 날 어떤 결심을 하면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조차 모르면서 그 결심에는 자기 고유의 관성이 생기는 거야. 세월이 흐를수록 그것을 바꾸는 게 더 힘들어." - P500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 갔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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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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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가 우물 안에 던져졌고, 그 우물은 나의 젊은 영혼이었다. - P46

내 인생에서 나에게 흥미로운 것은 오직 나 자신에게 이르기 위해 내가 내디딘 걸음들뿐이다. - P65

"똑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전혀 가치 없어. 아무 가치도 없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건 죄악이지. 자기 자신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 수 있어야 해. 거북이처럼." - P88

각성이 나의 익숙한 느낌들과 기쁨들을 일그러뜨리고 퇴색시켰다. 정원은 향기가 없었고 숲은 마음을 끌지 못했다. 내 주위에서 세계는 낡은 물건들의 떨이판매처럼 서 있었다. 맥없고 매력 없이. 책들은 종이었고, 음악은 서걱임이었다. 그렇게 어느 가을 나무 주위로 낙엽이 떨어진다.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비, 태양 혹은 서리가 나무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리고 나무 속에서는 생명이 천천히 가장 좁은 곳, 가장 내면으로 되들어간다. 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 - P91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 P122

사랑은 천사상이며 사탄이고, 하나가 된 남자와 여자,인간과 동물, 지고의 선이자 극단적 악이었다. 이 양극단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을 맛보는 것이 나의 운명으로 보였다. 나는 운명을 동경하고, 운명을 두려워했지만, 운명은 늘 그곳에 있었다. 늘 내 위에 있었다. - P127

나는 단 한 가지만 할 수 없었다. 내 안에 어둡게 숨겨진 목표를 끌어내 내 앞 어딘가에 그려 내는 일,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될 것이며, 그러자면 얼마나 걸리고, 그것이 어떤 장점들을 가질지 정확하게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려 내는 일, 그것은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그런 무엇이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어쩌면 나도 찾고 또 계속 찾아야겠지. 여러 해를, 그러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 어떤 목표에도 이르지 못하겠지. 어쩌면 나도 하나의 목표에 이르겠지만 그것은 악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P128

당시에 나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우연‘에 의해 특이한 도피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그것으로 인도한 것이다. - P130

이제 비로소 피스토리우스가 이해되었다. 그의 모든 꿈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이런 꿈이었다. 사제가 되어 새로운 종교를 알리는 꿈, 찬양과 사랑, 예배의 새로운 형식을 주고 새로운 상징들을 세우려는 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그의 직분이 아니었다. 그는 너무도 편안하게 이미 존재하는 것 속에 머물렀다. 그는 예전의 것을 너무도 정확하게 알았다. 그는 이집트에 대해, 인도에 대해, 미트라에 대해, 아브락사스에 대해 너무도 많이 알았다. 그의 사랑은 이미 지구가 본 형상들에 매여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그 스스로가 잘 알았다. 새로운 것은 새롭고도 달라야 하며 새 땅에서 솟아야지 수집되거나 도서관에서 길어 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의 직분은 어쩌면 나에게 해 주었듯이 인간이 그 자신에게 이르도록 돕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전대미문의 것, 새로운 신들을 제시하는 것, 그것은 그의 직분이 아니었다. - P168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직분이란 단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사람들은 결국 시인 혹은 광인이, 예언가 혹은 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관심 가질 일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궁극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나 관심 가져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 내는 일이었다. - P169

"연대란... 멋진 일이지. 그러나 지금 도처에 만발해 있는 것은 결코 연대가 아니야.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테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 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는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 모두가 그들의 삶의 법칙들이 이제는 맞지 않음을, 자기들은 낡은 목록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는 거야. 종교도 도덕도 그 모두가 이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 맞지 않아. - P180

"그래요.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그 길이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하면 안 돼요."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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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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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이유가 없어도 좋다.그러나 죽음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 죽음, 그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위해서. - P9

"속속들이 모르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위험하오." - P163

그는 결코 알지 못했다. 읽는다는 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것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감각이라는 사실을. 한 줄의 문장을,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을, 혹은 그의 세계를 읽는 행위라는 것을. - P169

주먹질로 점철된 세월 속에서 소실기관처럼 퇴화해 버린 감정. 배우지 못했지만 천성적으로 지닌 심미안. 그는 허공을 가로지른 음의 거미줄을 건너갔다. - P184

하지만 행복은 유리에 맺힌 물방울처럼 불안했다. - P185

"이름은 한 존재의 모든 것을 담은 상징이에요. 한 사람의 얼굴과 눈빛과 몸집과 행동뿐만 아니라 그의 기억과 꿈과 그리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죠. 하나의 단어가 수많은 느낌을 담고 한 줄의 문장이 헤아릴 수 없는 의미를 담은 것처럼요."
한 줄의 문장이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그렇다면 놈은 셰익스피어의 문장에 정반대의 두 의미를 숨긴 것이다.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여전히 향기를 풍기지만 장미말고 불리지 않으면 더 이상 장미가 아니다. 아무리 향기로운 장미도 시간이 지나면 향기를 잃고 시들지만 그 이름은 살아남는다. ‘장미‘라는 이름을 부르면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가 떠오르는 것처럼. 장미는 사라지지만 장미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고, 장미는 유한하지만 장리마는 이름은 영원하다. - P218

어떤 책을 읽은 사람은 그 책을 읽기 전의 사람이 아니다. 문장은 한 인간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불치의 병이다. 단어와 구두점들은 몸 여기저기에 세균과 바이러스처럼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문장들은 뼈에 새겨지고 세포 속에 스며들고 자음과 모음은 혈관을 타고 흐른다. 수많은 상징과 비유는 뇌세포를 물들이고 영혼을 재구성한다. 그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돌아가서도 안 된다. - P220

스기야마는 위험한 촉수를 가진 물건을 만지듯 조심스레 펜을 쥐었다. 펜촉은 검은 잉크를 듬뿍 머금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심지어 종이 위에 내려앉지도 못했다. 눈앞의 백지는 형무소의 뜰처럼 활량했다. - P267

결핍은, 고통스럽지만 때로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고양시키는 법이다. 감옥은 살기엔 고통스러웠지만 꿈꾸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그곳엔 자유가 없었기에 자유를 꿈꿀 수 있었고, 희망이 사라졌기에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 P278

모든 일은 일어날 어떤 일의 전조다. 시간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고 사건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모든 행위는 다가올 운명을 위해 복무한다. 그것이 기막힌 행운이든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갈 불운이든, 문제는 그 전조를 예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20

운명은 어딩에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디에 있을 수 있느냐는 권력에 의해 결정되었다.

달콤함을 참는 것은 고통을 참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웠다. - P184

철학자들과 주인공들의 이름이 그를 떠나갔다. 나는 그의 영혼의 올이 하나씩 풀리는 것을 보았다. - P192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무, 심지어는 거짓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의 잘못을 다시 곱씹을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행해 새 출발 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돌이켜 볼 수 있고, 돌이켜 보아야 과오를 찾을 수 있고, 과오를 찾아야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해야 용서를 빌 수 있으며, 용서를 빌어야 용서받을 수 있고, 용서받아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288

진실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죠. 기록이 불태워지고 감추어졌다 해도 진실은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소실되고 나의 진술이 사라져도 제가 본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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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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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지를 썼다. 그냥 되는대로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레몽의 마음에 들도록 힘썼다. 왜냐하면 내게는 레몽의 마음에 들지 않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 P41

그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러고는 벽을 통해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로,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왜 엄마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에는 일찌감치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으므로 나는 저녁도 먹지 않고 잤다. - P49

"자넨 젊으니까, 그런 생활이 자네 마음에 들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는 하지만 결국 아러나저러나 내게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이 생활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내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대답했다...증략...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으나, 나이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학생 때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던 것이다. - P51

길에 나서자, 피로한 탓도 있고 또 덧문을 열지 않고 있었던 탓도 있어서 벌써 퍼질대로 퍼진 뜨거운 햇살에 나는 마치 따귀라도 얻어맞은 것 같았다. - P57

이제 태양은 찍어누르는 듯 세차게 내리쪼였다. 햇빛은 모래와 바다 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 P65

조금 전과 다름없이 시뻘건 폭발은 그대로였다. 모래 위에서 바다는 잔물결들의 급하고 가쁜 숨결을 다하여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바위께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햇볕에 쬐어 이마가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더위 전체가 내 위로 내리눌러대면서 나의 걸음을 막았다. 그리하여 얼굴 위에 엄청나게 무더운 바람이 와 닿을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두 주먹을 부르쥐었고, 태양과 태양이 쏟아부어 주는 그 영문 모를 취기를 견뎌 이기려고 전력을 다해 몸을 버티는 것이었다. 모래나 흰 조개껍질이나 유리 조작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 칼날처럼 번뜩일 때마다 양쪽 턱뼈가 움찔하곤 했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 P67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 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는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 P69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에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읭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지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 - P69

그날 마음이 아팠냐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 질문은 나를 몹시 놀라게 했다. 만약에 내가 그런 질문을 해야만 할 입장이었다면 나는 매우 거북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자문해 보는 습관을 좀 잃어버려서,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 - P75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재판의 세계란 부르조아이기도 하고 나치이기도 하고 공산주의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시대의 모든 암들입니다. 뫼르소로 말하자면 그에게는 긍정적인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사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뫼르소는 판사들이나 사회의 법칙이나 판에 박힌 감정들의 편이 아닙니다. 그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 존재합니다. - P139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힌 것일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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