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어두운 복도 아래로
로이스 덩컨 지음,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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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이디스 워튼의 괴담처럼 미묘해서 잠시 시차가 있은 다음 움찔하게 만드는 타입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가 난무하는 살인마 타입도 아니다. 딱 적당히, 오래된 대저택에 붙은 귀신 이야기. 그리고 영계와 감응하기 쉬운 네 명의 소녀들.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대저택 같은 것이 드물고 있다고 해도 이미 국가문화재나 지역문화재로 지정된 지 오래기 때문에, 집이 얼마나 사람의 상상력을 건드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물며 나머지 집들도 거의가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 아니면 별 특징 없는 주택이다. 이런 곳에서 '고딕' 호러가 꽃피려면 창작자가 상상 속의 건물을 상상 속의 외딴 곳에 지어놓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공포영화 한 편의 정수만 추려낸 깔끔한 소품을 본 느낌이다. 괴담 애호가가 아니라면 심심할 수도 있는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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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발견 - 문화인류학자 케이트 폭스의 영국.영국문화 읽기
케이트 폭스 지음, 권석하 옮김 / 학고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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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실 내가 책의 별점을 나만의 기준으로 굉장히 짜게 매기는 사람이라, 올 1~3월처럼 별 다섯 개짜리 리뷰를 계속 쓰고 있다는 말은 나름 세심하게 고른 책들이 계속 홈런을 날리고 있다는 뜻이다.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데는 시간이 들지만, 별 다섯 개가 마구 튈 때는 역시 기분이 좋다. ^^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영국 사회를 문화인륫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난 문화인류학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이 얼마나 문화인류학 연구방법의 정석을 따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의 입담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길고 재미난 수다를 듣는 것처럼 부담없이 읽힌다(이 말은 물론, 어떤 사람은 중언부언으로 느끼리라는 말이다). 그리고 문화인류학자 언니와 사회학자 자매라니, 만나서 수다 떨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케이트 폭스는 '영국인다움'의 정수를 '사교불편증'이라고 정의한다. 내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쑥스러움의 문화'이다. 쑥스러우니까 많은 의례를 정규화하고, 하지만 인간 관계에서는 그 정규화할 수 없는 부분이 언제나 생기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발발하면 더 쑥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 


저자는 한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어쩌면 나일지도 모르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우스우면서도 정겨웠다. 후기에서 역자가 '다른 나라 사람 읽으라고 쓴 책이라기보다는 영국인들끼리 돌려 읽으며 낄낄거리는 책'이라고 평했던데 과연 그런 것 같다. 케이트 폭스가 다음에는 SNS 문화를 분석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살짝 머리를 든다. 그것도 엄청나게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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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키타 GUGU 8
토노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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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장서가라고 할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장서가에게 만화 취미는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 책값보다 책 보관비용이 훨씬 비싸게 드는 현실을 감안하면 만화는 최악이다. 책장 규격에 두 권씩 위아래로 집어넣을 수도 없고(미묘하게 안 맞고 게다가 책이 상하고!) 정작 외울 정도로 달달 보게 되는 만화책은 드물다. 그림이 함께 있기 때문에 이야기 크기에 비해서 부피도 많이 차지한다. 책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특히 무해하고 순진해 보이는 만화책들은 책장 구석에서 슬금슬금 번식하는 것 같다. 


그래서 R모사에서 <치키타 구구> 이북 대여가 나왔을 때 쾌재를 지르며 전권 대여했다. 칼바니아 1~10권도 이북으로 나왔더라. 감사한 일이다. ,TONO의 흘린 듯한 그림체는 늘 그렇듯이 설렁설렁해 보이면서도 매력적이고, 장난 같은 작명도 여전하다. 식이장애를 앓으며 죽음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요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죽음이 문제일까, 외로움이 문제일까. 장난같지만 진지한 이 만화 속에서, 이 질문은 죽지 않는 요괴들이 더 많이 던지고 탐구한다. 요괴들은 배고픔을 느끼고 인간을 잡아먹지만 배가 부르지 않기 때문에 계속 먹어야만 한다. 그리고 '먹이'였던 인간과 안정적인 정서적 관계를 맺게 되면서부터는 식욕을 상실한다. 비록 그것이 자기의 죽음을 부를지라도. 그리고 요괴에게도 의문들이 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뭘까. 나는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답이 없는 질문들이기에 대답은 없다. 그렇지만 이 작가는 늘 그렇듯이, 너무나 뻔한 대답도 이해가 갈 것 같은(그리고 공감해도 쑥스럽지 않은) 상황과 그림 속에 녹여넣는다. 웹툰을 그려도 잘 어울릴 작가 같은데, 요즘 활동은 어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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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속에 애장판 1~8(완결) 박스세트
강경옥 지음 / 애니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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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월이 흘러도 명작인 만화들이 있다. 현재 유행과 동떨어진 그림체나, 지금 보면 촌스러운 말투나 정서에 킬킬거리면서도 다시 한번 정주행할 때까지 손을 놓지 못하는 만화들이 있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 그렇고, <우주해적 코브라>가 그렇고, <별빛 속에>가 그렇다. 물론 취향에 따라서는 <북두의 권>이나 <이나중 탁구부>를 그런 만화로 꼽는 사람도 있을 테다. 


작가 후기에 '고2때 결말까지 다 구상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야기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가 아니면 안 나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사실 강경옥의 좀더 섬세한 작품들(<17세의 나레이션>이나 <...ing> 같은 쪽)을 더 좋아하지만, 걸작의 탄생을 목격하던 사람이 갖는 감회가 또 다르다. 아마 지금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다시 읽어도 그런 감회는 마찬가지겠지만, 강경옥의 주인공들은 신일숙의 주인공들보다 늘 더 망설이고, 더 생각이 많고, 먼 곳과 다른 시간의 이야기 속에서도 더 친근했다. 더 깊이 감정이입이 될 수 있었다. 


다시 읽어보니 신기하기도 하다. 남고 여고가 갈라져 있던 시대, 남녀공학은 정말 손에 꼽을 만큼밖에 없었던 시대에 우리는 왜 그렇게 사랑에 빠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까. 시이라젠느는, 레디온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고작 몇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어떻게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붙들어매고, 운명은 끊을 수 없다고 느끼고, 그 안에서 화려하게 피어났을까. 


그림체의 촌스러움(?)은 각오하고 집어들었지만 읽다 보니 그 그림체마저도 다시 아름답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별하늘이 많이 그려져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밤하늘의 별의 아름다움은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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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일곱 성당 이야기
밀로시 우르반 지음, 정보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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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축이나 지도, 시각적인 재현에 상당히 약하다. 그리고 나와 책 취향이 꽤 비슷한 지인이 '재미없다'고 한 책이기도 해서, 별 기대 없이 집어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R모사에서 대여한 이북이라 대여기간 끝나기 전에 읽고 싶었다. 이북을 대여하면 이 점이 좋은 것 같다. 책이라는 물성이 책장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있거나, 어찌됐든 도서관에 가면 빌릴 수 있는 것과는 달라서, 대여기간 직전에는 돈이 아까워서라도 읽게 된다. 


그런데 기대 없이 집어든 것 치고는, 와우, 상당하다. 공간에 별 감각이 없는 나인데도 어느새 체코와 그곳의 건물과 역사에 대한 작가의 열정에 휩쓸려든다. 카프카의 <성>이 생각나기도 하고, 마지막의 반전은 아주 정치적이면서도 체코식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르소설 팬으로서 '범죄스릴러'를 기대하고 든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많지만, 카프카나 중남미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의 팬이라면 꼭 읽기를 권한다. 


살면서 앞으로 프라하에 갈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만약 가게 된다면 프라하 지도를 펴 놓고 이 책을 한 번 읽고, 다녀와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별을 하나 뺀 것은, 체코와 프라하의 역사와 지리 등 배경지식이 없어서 충분히 책을 맛보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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