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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의 사형 집행인 - 16세기의 격동하는 삶과 죽음, 명예와 수치
조엘 해링톤 지음, 이지안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10월
평점 :
<뉘른베르크의 사형집행인>은 16세기 독일. 사형집행인인 프란츠 슈미트가 반세기 가까이 남긴 일기를 토대로 범죄를 대하는 당대의 인식을 보여주는데 그의 일기는 사형을 집행하며 남긴 기록이기에 직무일지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형집행인은 당대 사회를 작동시키기에 필요했지만 사회구성원들한테 멸시를 받았다. 그런데 왜 그는 명예롭지 못한 일을 했나. 그의 고모부가 사고로 사람을 죽인 뒤 직장에서 쫓겨났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실의에 빠진 고모부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사형집행인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지역에 사형집행인이 필요하자 영주는 나무꾼인 아버지를 사형집행인으로 임명했다. 고모부가 사형집행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사형집행인이 되었으니 아들인 프란츠 슈미트도 사형집행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고모부가 스스로 사형집행인이 된 것, 아버지가 영주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한 것,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은 것에서 운명에 순응하는 태도가 보인다. 그것은 신분제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었는데 이들이 개신교도였다는 걸 감안한다면 어쩌면 자신의 운명을 신의 섭리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사형집행인으로 일하면서 프란츠 슈미트는 멸시를 받으면서도 성실하게 일했고 술을 마시지 않았고 나쁜 친구들과 교류를 하지 않았다. 이 또한 신분제 사회에 복종하는 기독교도의 자세로 보이는데 (그가 처형한 범죄자의 범죄와 그가 가했던 형벌 종류를 기록하던 일기에 때때로 범죄자를 처형하면서 느꼈던 소회를 적기도 했는데 신분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기 범죄에 그는 특히 분노를 드러냈다고 한다...) 은퇴를 하면서 그는 황제에게 청원을 해 반세기 동안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했으니 자기 집안에 드리운 불명예를 벗겨 달라고 간청했다. 자녀들만은 차별 없이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걸 보면 그는 자신에게 드리운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일부러 운명에 순응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황제는 허락을 했지만 그가 죽고 난 뒤 자녀들은 후손 없이 죽었다. 게다가 백 년 정도 지나면 유럽 사회가 범죄와 인권을 대하는 인식이 바뀌면서 사형집행인의 필요가 줄었고 사형집행인이라는 직업은 없어졌다. 후손들한테 불명예를 주지 않겠다고 프란츠 슈미트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신분제 질서에서 고통을 받는 계층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몇 가지가 있을까. 신분제 질서를 전복하는 것. 고통받으며 계속 살아가는 것. 신분제 질서는 순응하지만 그 안에서 신분상승을 꿈꾸는 것. 등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프란츠 슈미트한테는 세 번째였던 것같다. 양반이 몰락하던 조선시대 후기가 생각난다. 권내현이 쓴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은 개같이 일해서 전답도 사고 돈을 많이 번 노비가 몰락한 양반한테서 족보를 산 이야기를 말한다. 양반이 된 노비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녀를 교육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자녀가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꿈꾼 것이었다. 유사한 사례에서 실제로 과거에 급제한 자녀도 있었던 것 같은데 문제는 그때가 조선시대 후기여서 몇십 년 지나지 않아 갑오경장이 일어나 신분제가 폐지되었던 것이다. 양반이 된 노비는 신분제가 폐지되기 전에 눈을 감았지만 그가 뼈빠지게 일했던 것은 결과적으로는 프란츠 슈미트가 그랬던 것처럼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양반이 된 천민의 자녀가 후에 미국 선교사를 만나서 미국에 유학가고 아니면 일본에 유학을 가서 지배계층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대로 이 땅에 머물렀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전쟁통에 죽었는지도 모르고. 그 운명이 참 기구하다.
이 책은 그가 처형했던 범죄자들의 끔찍한 범죄기록을 서술하며 당대 사회를 재구성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지만(그가 처형했던 범죄자는 수만명이고, 그가 고문한 범죄자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그보다는 한 인간의 기구한 운명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