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삼 일 전
빨간 신호등 횡단보도 앞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러니까 김신조가 괜히 내려왔겠냐고, 또 목숨 걸고 넘어오는 사람들 보면 모르냐? 빨갱이들 쳐들어오면 그냥 끝장나는 건데 그것도 모르고 설치는 놈들……
초록 불이 켜졌다 등산복에 모자를 쓴 초로의 아저씨 세 분이 길을 건너갔다
쏟아지는 햇살이 유난히 따갑다
입
가방 속 굴러다니는 물건 정리해주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주머니
동전 들고 비집으면
불룩하니 배 불려 넣어주고
길쭉한 볼펜 쑤셔 넣으면
뾰족한 끝 바들바들 버티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더니
결국 소리도 내지 못하고 실밥 튿어
견디고 견뎌온 시간을
쏟아놓고 말았다
줄줄 흐르는 내장을 보면서도
굳게 닫힌 입
지폐 들고 벌리니
조용히 꿀꺽!
별의 대답
세모야 홀로 외롭게 있지말고
옆 친구와 함께해봐
나처럼 반듯한 네모가 될 수 있어
네모야 그 모서리를 갈아봐
그런 나처럼 어디든 갈 수 있는
동그라미가 될거야
넌 왜 그렇게 뿔이 많아?
별에게 동그라미가 물었습니다
이게 원래 내 모습이야
별이 대답합니다
그럼 세모에게 한조각씩 떼어줘
그럼 너도 나처럼 동그랗게 될 수 있을거야
동그라미는 어깨를 의쓱 해 보였습니다
별이 답합니다
미안해 난 나를 아프게 하며 갈아내거나
떼어 내고싶지 않아
그리고 삼각형도 혼자 있고싶을지 모르잖아
탱자꽃
물만밥 한 사발
휙~~ 뿌린 듯
단단한 줄기마다
예리한 가시를
견디지 못하고 풀어헤친
이 봄 만이라도
빗장풀어
지나는 맘 잡고 싶었나보다
얼레지
한뼘도 안되는 키로
언 땅
낙엽 뚫고 일어나
파랗게 날 세운 꽃잎
스무살 도시 처녀의 앙칼진 자존심처럼
세상을 찌르고 하늘을 가를 듯
봄을 부르는
연약한 열정 곁으로
둔탁하게 지나는 무심한 발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