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평점 :
좋아하는 작가의 여행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이제야 알게 된 게 좀 많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내게 중요한 기준은 누구의 여행이냐이지 어디로 간 여행이었나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랬던가, 그래서 같은 여행지에 대한 글을 읽고도 어떤 책은 마음에 들고 어떤 책은 아니고 그랬나 보다.
9년 동안 여행 에세이를 써 왔다고, 그걸 이제야 책으로 만들었다고, 코로나 19로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 보라며 내놓은 책. 작가가 독자를 대상으로 기대했을 수준을 넘길 정도로 나는 만족했다. 내가 가 본 적 없는 뉴욕과 아헨, 단 며칠 동안이었지만 발은 디뎌 보았던 오사카, 타이베이, 런던. 나처럼 잠깐 스쳐 지나간 게 아니라 한 곳에서 한 달 이상씩 머물렀던 여행지에서의 이야기라 낯익음도 낯섦도 신기하고 흥미롭기만 했다. 아, 이렇게 공간을 바꿔 살아볼 수도 있는 것이구나.
여행이라는 게 사람마다 형편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띤다. 직업도 적성도 여러 가지 사정의 여유까지도 각자 여행의 시간과 질을 결정하는 조건이 될 것이므로 어느 것이 낫다 못하다 할 수는 없겠다. 아마 작가 역시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아주 알맞도록 여행을 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나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자신의 건강 상태까지 고려하면서. 그래서 더더욱 여행지에서의 생활이 충실해 보였을 것이고.
소설가인 작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비롯하여 감각으로 겪는 모든 상황들을 소설의 재료로 삼기 위한 태도가 유달리 돋보였다. 이렇게 하나하나 챙겨서 소설 속에 맞춰 넣는구나. 만나는 사람, 장소, 분위기, 소품 하나하나까지. 소설을 쓰기 위한 여행, 소설을 쓰기 위한 삶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게 또 나쁘다거나 모자란다거나 억울하다거나 할 것도 아니라서 축복처럼 숙명처럼 여기고 받아들이며 살아도 좋을 것 같더란 말이지.
소설만큼 넓고 풍요롭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읽는 일도 이렇게나 가슴 설레는데 쓰는 사람의 세상 만들기는 또 얼마나 근사할까. 아무쪼록 내가 좋아하는 이 작가를 비롯해서 세상의 모든 소설가들이 좋은 글을 많이많이 써 주시기를.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해 줄 사명감을 가진 분들이실 테니.(y에서 옮김2021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