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한아르고니안메이드님의 토요일 아침에 읽는 시.


국영수에 그렇게 목멜 것 없이

중간 기말고사 공부한다고 십대 후반, 이십대 초반, 그 좋은 시절에

밤 잠 줄여가면서 시험공부하고

사흘 나흘씩 걸리는 시험 치르고 난 다음에

숨 돌릴 새도 없이 채점 결과 보고

한 문제 더 맞고 덜 맞은 걸 보고 일희일비 했던

그 천금같던 시간에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

나는 무엇을 잘 하나.

나는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

내가 어른이 되어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쯤엔 사회는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주로 요구할 것인가.

그 재주를 익히기 위해서 어떤 경로를 밟아가야 하는가.

준비할 것은 무엇인가.

공부할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무엇은 배울 필요가 없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고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갔던 선배들을 만나 조언도 들어보고

그런 준비를 통해 어른이 되었더라면

후회할 일도 적었을 것이고

시행착오도 줄었을 것이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갑다 하는 날이 오더라도

이미 너무 깊이 발을 담가, 발 빼기를 저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만나지 않았을 텐데

 

나는 그저 주변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어른들이

고놈 공부 잘 하네, 고놈 공부 잘 하네 하는 칭찬에 눈이 멀고 귀가 멀어

그저 의미 없이, 점수 높이 받는 연습만 하다가

이제 내 손으로 벌어먹고 살 때가 오니

가진 재주라고는 시험공부하고 높은 점수 받는 것 밖에 없어

그게 재주넘는 곰 보고 손뼉 쳐주는 소리인 줄도 모르고

박수 소리에 좋으니까 의미 없는 재주넘는 법이나 배우다가

 

갖춘 지식을 어디다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 지식을 누가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 재주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가 않고

나는 이것도 하는 사람이고 저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인데

그 어느 하나도 진중하니 깊이 판 사람은 아니라

 

이 회사에 지원을 해 보아도 묵묵부답이고

저 회사에 지원을 해 보아도 미안하다는 답장이 오고

 

내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어떤 일을 할지를 미리 생각하고 공부를 했더라면

이런 마음 고생은 안 했을 텐데.

이런 통장 잔고는 안 봤을 텐데.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판검사를 하는 루트만 보고 살았던 어른들의 말보다는,

사대부고를 나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해 미국 박사를 따 국내 교수를 하는 루트를 보고 살았던 어른들의 말보다는,

사회 운동을 하다 졸업 시즌이 되면 과사에 쌓여있던 대기업 원서를 들고 가 원하는 회사에 취직을 해 살았던 어른들의 말보다는,

 

내 길을 내가 개척했어야 했는데.

내 길은 내가 개척했어야 했는데.

나는 배운 모지리가 되어

그저

글 깨나 쓰는 척을 하고

문제 깨나 푸는 척을 하고

주워들은 아는 거는 많아서

술 한 잔 들어가면 말은 많은데

먹고사는 법은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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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8 1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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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8 15: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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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18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껏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잘 사는 방법을 물어보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알아서 잘먹고 잘 사는 방법은 누가 가르친다고 해서 터득되는 일이 아닌데, 세상살이가 힘들어지니까 남의 조언에 의존하려고 합니다. 그 예가 바로 ‘힐링‘이죠. 조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안심합니다. 그런데 그 달콤한 효과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yureka01 2017-02-18 15:18   좋아요 2 | URL
그럼요..눈치가 밝은 것도 큰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찾아 내는 게 상당히 어렵거든요.
당시에는 몰랐었던 생각이 뒤늦게 깨닫는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닐 테니까요..
인생이란 참 알수 없는 거죠...

겨울호랑이 2017-02-18 1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그래도 유레카님께는 사진이 있고 귀농의 꿈이 있으며,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 행복하세요^^: 100세 인생이라니 지금부터 살아가시면 되지요 ^^: 화이팅입니닷^^!

yureka01 2017-02-19 11:08   좋아요 2 | URL
차근차근 준비해야죠..
세상사 어느날 갑짜기...라는 것은 무작용이 크니까요.^^..

언젠가 봄이 되면 시골에서 봄나물 뜯는 재미가 솔솔하리라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님도 화이팅입니다.~

2017-02-19 04: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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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9 1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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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7-02-19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시족 70만 시대에 깔맞춤한 시네요.
김제동이 진행하는 ‘어쩌다 어른‘을 자주 보곤 해요.
말수없는 울 아들 속내를 짚어보려고-
입사 5년차, 그런데도 아직 어디론가 튀려고만 하니
그 녀석 속에도 아마 저런 생각이 또아리를 틀고있는 건 아닌지.

yureka01 2017-02-19 11:14   좋아요 0 | URL
네..공시족의 그 뜻이 의미하는 바가 자명하거든요.

통계에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자수성가 한 비율이
인도보다도 낮은 23%라고 하더군요.

대부분은 상속과 유산으로 이루어진 게 많더군요.

부모님의 버프가 없으면 자기 발로는 도저히 일어 설 수 없는
절름발이 시대가 된 고착된 사회가 되어 버린거니까요.

그럴 겁니다.아드님 직장 5년차시라고 하니, 이젠 기업에 자리로 봐서는
점점 중견으로 이동될 텐데 요즘 속이 어디에서나 편하지는 못할 거 같아서요..

저도 직장생활 20년 넘어가고 나니 영혼이 다 빠져 나간 느낌이랄까요.
진빠진다는 말이 이걸 두고 하나 싶어요.

2017-02-19 18: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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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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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9 1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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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0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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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0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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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0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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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1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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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14: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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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14: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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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13: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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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14: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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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14: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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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0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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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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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14: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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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13: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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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14: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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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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