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김현구 도움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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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지금은 중간에 무언가 추가되고 무언가 빠져 버렸지만, 여전히 태양계 하면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새로운 순서는 영 와닿질 않는다 그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저 말 자체도 굉장히 오랜만에 떠올렸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마지막으로 천문대에 갔던 일도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밖을 그렇게 돌아다니면서도 하루에 한 번 하늘 바라보기가 쉽지 않은데 천문대까지 찾을 여력이 있을 리 없다. 데이트 문화에 ‘밥 - 영화 - 카페’ 패턴이 자리 잡으면서 일반적으로 찾지 않는 장소가 된 영향도 물론 있을 것이다. 이쯤 되니 천문학은 낯선 학문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그림 속 천문학』을 만났다. 별처럼 반짝반짝한 금박을 입힌 이 책은 천문학과 명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1부 「그림 위에 내려앉은 별과 행성」은 그리스로마신화 이야기를 한다. 행성의 이름이 신화에서 따 온 것이므로 주로 신을 그린 그림이 등장한다. 2부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천문학」에서는 천문학과 화가의 긴밀한 관계를 그린다. UFO가 그려져 있다고 오해받는 그림에 관한 설명과 더불어 <멜랑콜리아 I>,<베리 공작의 기도서> 등 주요 작품을 꼼꼼히 살펴본다. 루벤스, 고흐, 조지아 오키프 등 주목할 만한 화가에 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나는 처음 태양계를 배울 때 토성을 가장 좋아했다. 다른 행성에게는 없는 고리가 있어서였다. 그 영향 탓인지 책에서도 토성 관련 대목이 마음에 쏙 들어왔다. 생각보다 정적이고 차가웠던 토성과 고야의 그림이 더없이 잘 어울렸다. 또한 신 중에서는 헤르메스와 아르테미스를 가장 좋아했는데, 관련 이야기가 많아 특히 집중해 읽었다. 헤르메스가 융통성을 상징한다는 해석은 귀를 기울일 만했고, 디아나(아르테미스)에게는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졌다.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틈틈이 신화의 가부장적 구조나 과거 남성 화가들의 에로티시즘과 미화를 꼬집어 불편함이 덜했다. 2부에서는 특히 사람들이 비행 물체라고 착각한 그림 부분이 재미있었다. 모자를 말 그대로 착각하거나 후첨해 혼동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종교 중심 사회와 맞물렸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또한 조지아 오키프의 <달로 가는 사다리>는 나 역시 어딘가 영적인 인상에 한참을 바라보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천문학과 명화의 결합이 기대되면서도 어려울 것만 같아 조금 걱정했다. 하지만 기우였을 뿐이다.

  신화부터 그림, 천문학까지 자잘한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유익한 책이다. 게다가 나에게는 선입견을 부숴 주는 역할도 했다. 여태까지 과학과 미술은 거의 접점이 없는 두 분야로만 생각했다. 과학은 때로 미술의 현실성을 떨어뜨리고 몰입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미술은 비과학 분야의 선두 주자로서 과학적 측면에서도 썩 반가워하지 않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상을 뒤집어 보면 과학과 미술 역시 서로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나아가서는 표현의 폭을 넓혀 줄 수 있는 관계에 놓여 있기도 하다. 『그림 속 천문학』은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더군다나 같은 일화를 서로 다르게 그린 그림을 나란히 정렬해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같은 상황도 사람에 따라 말로 표현하는 바가 다르듯, 미술 역시 화가가 품은 감정과 주목한 부분에 따라 판이해 그들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어 즐거웠다. 천문학, 명화, 신화 이 셋 중 하나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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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유럽 - 도시와 공간,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여행
조성관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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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여행은 떠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기간이 부담되어서다. 나에게도 유럽은 언제나 예술의 거리이고 떠나고 싶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거의 한 달 정도 기간을 잡아야 하니 시간을 비울 수가 없다. 친구들만 봐도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은 비교적 쉽게 떠나는 데에 비해 유럽은 그야말로 여행을 계획하기까지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가고는 싶지만 (큰맘 먹기 전에는) 갈 수 없는 곳이니 자꾸 대리 만족 겸으로 책을 찾아 읽는다. 『언젠가 유럽』은 파리, 빈, 프라하, 런던, 베를린, 라이프치히를 담은 여행기이다. 저자는 과거 천재에 매료되어 천재 테마 여행기를 출간한 적 있다. 이 책도 그중 한 줄기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젠가 유럽』은 도시를 영화로 연다. 그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듯하다가 중간중간 천재들과 밀접한 명소를 소개한다. 영화를 이용해 도시 전반적인 분위기만 전달하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소만 골라서 방문하는 편보다 이 방식이 더 마음에 들었다. 물론 최근에는 ‘성지 순례’라는 이름으로 특정 필모그래피에 등장하는 장소를 순서대로 찾는 팬들이 늘었지만,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감흥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페너가 마부가 마차를 몰며 마셔도 커피가 흐르지 않도록 휘핑크림을 올리는 데에서 시작했다거나, 묘지 투어에 관한 우리나라와 유럽의 인식 차이 등 자잘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즐거웠다. 동상과 얽혀 있는 사진도 도시의 풍미를 한껏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개된 모든 도시가 예술로 가득차 있어 꼭 가 보고 싶은 여행지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스타보브스케 극장 앞의 청동 조형물은 두 눈으로 꼭 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확실히 짧게 여행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말하자면 빠르게 랜드마크만 도는 여행자들에게 지침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카페나 공원처럼 찬찬히 앉아 둘러보아야 하는 장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신 몇 번 다녀와서 여유가 있거나 바쁘게 돌아다니기보다는 휴식을 즐기는 사람, 혹은 테마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하다. 이는 저자도 초반부에 밝혀 두고 있는 부분이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을 정보서를 찾는다면 참고하는 편이 좋다. 사실 지금 살고 있는 곳도 고샅고샅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텐데, 단 한 번의 여행으로 다른 나라를 다 파악할 수 있을 확률은 0에 수렴할 것이다. 유럽도 마찬가지로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가 보고 싶고 또 살고 싶은 나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째 대리 만족보다는 욕구가 커지는 느낌이지만, 이 마음을 차곡차곡 모아 현지에서 터뜨릴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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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티파니 와트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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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사실은 어렸을 적부터 많이 배웠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성악설과 성선설 둘 중어느 하나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성무선악설을 가장 신빙성 있게 여기지만, 그래도 선보다는 악에 가깝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완전 극단의 성악설은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는 샤덴프로이데를 집중 탐구한다. 이는 쉽게 말하자면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심리이다. 저자는 고대부터 이런 심리는 존재했으나 추한 것으로 치부되어 외면당해 왔고, 현대에 와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심리를 부정할 게 아니라 인정한 뒤 이를 토대로 발전하자고 제안하며, 그 이유를 찾는다.  


그저 본성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심리가 특정 명칭으로 불리고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게다가 ‘샤덴프로이데’라는 단어가 감성적 휴대폰 배경화면이 유행했던 과거에 들어 본 듯 친숙해서, 왜 여태까지 한 번도 찾아보려 하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받아들인 이 감정에 대한 인상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도, 상대에게도 건강하지 못하며 관계에도 하등 도움되지 않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혀 있는 예시를 읽으면서 진지하게 고민해 봐도 나는 다른 이의 불행을 듣고 웃었던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사람은 원래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뒤틀린 심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받아들고 나서는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오히려 나의 문제점은 부러운 일을 부럽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역시 건강하지 못하니 고쳐야겠다는 결론과 함께.


힘들다고 느낄 때, 마냥 손을 놓아버리는 것과 내 불행을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두 가지 모두 나를 위해서이다. 특히 타인의 상황과 비교해 위안받는 행위는 그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듯 “은밀한 감정”인 샤덴프로이데는 분명 존재하지만 숨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해도 괜찮은 행동을 지상으로 둔다면 사회적으로 용인받지 못할 만한 지하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떳떳하지 못하지만 어차피 존재하니 차라리 직시해 부정적 원인을 찾아내고 교정하는 편이 낫다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한다. 이런 류의 심리 책은 사실 새로운 지식을 얻기보다는 나 자신을 진단하는 데에서 흥미를 준다. 오늘도 진단은 했으니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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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디자인 포토샵 & 일러스트레이터 CC 2020 - 누구나 쉽게 배워 제대로 써먹는 그래픽 입문서 맛있는 디자인 시리즈
빨간고래 (박정아).윤이사라 지음 / 한빛미디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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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샵이 이렇게 유용해질 줄 알았으면 미리 좀 배워 둘걸. 요즘 들어 종종 하는 생각이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영상 편집 같은 기술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시대가 바뀌었는지, 내 시야가 넓어졌는지는 몰라도. 철 모르던 시절에는 그냥 ‘능력 1’로, 대학에 들어가서는 잘하면 좋지만 디자인 쪽에서 사용하기에 굳이배울 필요는 없는 능력으로, 지금은... 나도 배워 둘걸 하고 후회하는 능력이 된 것이다. 어떤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 대부분 독학과 학원 중 어느 쪽을 택할지부터 고민하리라 믿는다. 나 역시 그러던 찰나, 한빛미디어에서 출간된 도서를 발견해 일단 독학의 늪으로 뛰어들어 보고자 결심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발견한 다섯 가지 원칙. 공감되기도 하고, 제발 그랬으면 하는 마음에 한 컷 찍었다. 저도 저의 날개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뒤로 넘어가면 가장 중요한 게 나온다. 이미 결제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설치되어 있는 독자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완전 문외한에 정말 초보인 사람에게는(ㅠㅠ) 꼭 필요한 정보이다. 나 역시 부랴부랴 포토샵 결제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디자인 전공 친구 이야기로는 월 25,000원씩 내고 구독 중이라고 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알 수 있는 정보이긴 하지만 이야기가 나온 김에 특별히 내가 아는 내용을 공유한다. 아무튼 “구독을 취소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결제가 진행됩니다.”에 섬세함을 느꼈다.

 

 




 

여기까지 다 이미 배웠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여전히 극초반부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리뷰를 위해 마지막까지 책만 훑어보았다. 남이 해 둔 걸 읽으면 이렇게 쉬운데 나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 책만 끝내면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건가.... 하는 알 수 없는 자신감과 도전 욕구가생겼다. 전문 도서가 대개 그렇듯 메뉴 선택부터 실제 적용까지 단계 별로 사진을 수록해 읽기가 편하다. 한빛미디어의 실무 엑셀 분야 도서로 스터디까지 한 적이 있는데, 그때처럼 지금도 예제 소스를 홈페이지에서 제공한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복습해야 실력이 는다. 지금 리뷰를 쓰면서도 왜 진작 배우지 않았나 후회되고 막막해서 한숨이 푹푹 나온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노력만이 살 길이다. 『맛있는 디자인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 CC 2020』과 함께 파이팅을 외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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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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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좋았는데, 크면서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 내 코가 석 자라고 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라서는 아니다. 아마 그냥 그 많은 이야기를 배제해 두는 게 에너지나 시간에 있어 효율적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관심을 가지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한 순간이라도 옆에 있었던 사람들을 머릿속에 기록하고, 이해 대신 그 자체로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는 이유도 비슷하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은 연작 소설이다. 처음 인터넷에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표지를 보았을 때에는 어디에서 많이 본 그림체라는 생각에 관심을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벌새> 포스터와 같은 분의 작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세 설명에서 “대한민국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구절을 발견하고, 강하게 마음이 이끌렸다. 


「정아」의 주인공 정아는 친구 은미에게 속아 다단계로 재산을탕진한다. 건호라는 남자와 만난 뒤 그와 교제한다. 「정정은 씨의 경우」에서는 교사 정정은이 칠 년 동안 고시생 남자 친구를 뒷바라지한다. 그러나 남자 친구는 고시에 합격하자마자이별을 선고한다. 「아웃파이터」의 영진은 프로포즈를 기다리지만 남자 친구는 원하는 말을 해 주지 않는다. 「공동생활」에서는 김병권과 윤정화의 시선이 모두 등장한다. 김병권은 자신을 가족에게 소개하지 않는 윤정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윤정화는 자신에게 신경 써 주지 않는 김병권에 심심해서 다른 남자를 만난다. 「부장님 죄송해요」의 주인공은 이화정이다. 금요일, 퇴근했지만 만날 남자가 없어 외로워한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요」에는 서로를 아끼는 커플 태주와 수연이 등장한다. 수연은 태주와 결혼하기 위해 악착같이 이천만 원을 모은다. 「이숙이의 연애」는 앞선 수록작과 달리 과거 배경이다. 황 대감이 거지인 바우를 데려와 하인으로 키운다. 황 대감의 딸 이숙이는 바우를 좋아한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의 모든 단편이 재미있고 씁쓸했다. 속이는 여자도, 속는 여자도 있지만 과연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인가. 그렇게 되기까지의 경위를 읽다 보니 그중 누구도 감히 비판하거나 동정하기 힘들었다. 특히 이 연작소설이 좋았던 점은 작가조차 포장 또는 변명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나쁘거나 이기적인 남성들도 물론 존재하나, 대부분의 남성 캐릭터는「정아」의 건호나 「공동생활」의 김병권처럼 여자 친구를 사랑한다. 짐을 짊어지고 악착같이 아끼는 모습이 이따금 추해 보이거나 폭력이라는 방향으로 폭발한다는 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타고난 본성부터가 악질인 남성, 처음부터 이유 없이 모든여성을 멸시하는 남성이 사실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 권력을 취득한다. 여성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남성을 일방적인 가해자로 낙인 찍지 않는 저자의 소설이 진정한 페미니즘 소설로 읽혔다. 도저히 쿨할 수 없는 현실의 관계 속에서 쿨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 웃기도, 우울하기도 했다. 실제가 어떻게 다르든, 어디엔가 살아 있을 책 속의 모든 인물들이 모두 행복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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