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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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좋았는데, 크면서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 내 코가 석 자라고 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라서는 아니다. 아마 그냥 그 많은 이야기를 배제해 두는 게 에너지나 시간에 있어 효율적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관심을 가지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한 순간이라도 옆에 있었던 사람들을 머릿속에 기록하고, 이해 대신 그 자체로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는 이유도 비슷하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은 연작 소설이다. 처음 인터넷에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표지를 보았을 때에는 어디에서 많이 본 그림체라는 생각에 관심을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벌새> 포스터와 같은 분의 작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세 설명에서 “대한민국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구절을 발견하고, 강하게 마음이 이끌렸다. 


「정아」의 주인공 정아는 친구 은미에게 속아 다단계로 재산을탕진한다. 건호라는 남자와 만난 뒤 그와 교제한다. 「정정은 씨의 경우」에서는 교사 정정은이 칠 년 동안 고시생 남자 친구를 뒷바라지한다. 그러나 남자 친구는 고시에 합격하자마자이별을 선고한다. 「아웃파이터」의 영진은 프로포즈를 기다리지만 남자 친구는 원하는 말을 해 주지 않는다. 「공동생활」에서는 김병권과 윤정화의 시선이 모두 등장한다. 김병권은 자신을 가족에게 소개하지 않는 윤정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윤정화는 자신에게 신경 써 주지 않는 김병권에 심심해서 다른 남자를 만난다. 「부장님 죄송해요」의 주인공은 이화정이다. 금요일, 퇴근했지만 만날 남자가 없어 외로워한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요」에는 서로를 아끼는 커플 태주와 수연이 등장한다. 수연은 태주와 결혼하기 위해 악착같이 이천만 원을 모은다. 「이숙이의 연애」는 앞선 수록작과 달리 과거 배경이다. 황 대감이 거지인 바우를 데려와 하인으로 키운다. 황 대감의 딸 이숙이는 바우를 좋아한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의 모든 단편이 재미있고 씁쓸했다. 속이는 여자도, 속는 여자도 있지만 과연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인가. 그렇게 되기까지의 경위를 읽다 보니 그중 누구도 감히 비판하거나 동정하기 힘들었다. 특히 이 연작소설이 좋았던 점은 작가조차 포장 또는 변명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나쁘거나 이기적인 남성들도 물론 존재하나, 대부분의 남성 캐릭터는「정아」의 건호나 「공동생활」의 김병권처럼 여자 친구를 사랑한다. 짐을 짊어지고 악착같이 아끼는 모습이 이따금 추해 보이거나 폭력이라는 방향으로 폭발한다는 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타고난 본성부터가 악질인 남성, 처음부터 이유 없이 모든여성을 멸시하는 남성이 사실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 권력을 취득한다. 여성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남성을 일방적인 가해자로 낙인 찍지 않는 저자의 소설이 진정한 페미니즘 소설로 읽혔다. 도저히 쿨할 수 없는 현실의 관계 속에서 쿨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 웃기도, 우울하기도 했다. 실제가 어떻게 다르든, 어디엔가 살아 있을 책 속의 모든 인물들이 모두 행복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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