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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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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불한당의 일기이다. 이 책은 말하자면 일종의 증명인데, 그 전부터 있었고, 이후로도 있을 수많은 불한당과 악당들의 일기이며, 또한 세상에는 그들보다 더 악당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부재증명이다. 빛은 어둠을 통해서 더 드러난다고 흔하게 이야기하고, 신은 악을 통하여 자신의 선함을 내세운다고 하던가? 그렇다면 어둠은? 그림자는 더 짙은 어둠에 의하여 가려질따름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인공은 누구인가? 그는 러시아의 정치인인 리모노프 - 물론 필명이지만, 이다. 무엇보다도 실존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전기적인 형식을 가진다. 여기서 잠깐 여담인데, 저 책의 표지의 레몬수류탄을 보고 의아하게 여긴 사람들이 많으리라. 저 레몬수류탄은 바로 리모노프에서 따온 것이다. 레몬수류탄이라는 단어가 리모노프가 아니고, 레몬, 수류탄 각각의 러시아어가 리모노프와 비슷한 어감을 지닌다.

 

그런데 그와는 별개로 저 레몬수류탄은 정말 리모노프 본인의 삶을 잘 드러내주는 일종의 상징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레몬은 시고 수류탄은 폭발한다. 누구나 달콤한 것을 먹고 싶고, 쓴 맛을 가진것을 피하고 싶어하는데, 이는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항상 인생이라는 녀석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는 않으며, 이윽고 우리는 때때로 달콤한 인생을 맛보기도 하지만,  때때로 쓴 맛으로 토악질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신 맛은 어떤가? 신 맛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항상 신 맛을 찾아서 계속 먹지는 않는다. 신 맛은 달콤한 맛과 쓴 맛의 사이에 있어서, 달콤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쓰지도 않기에 그야말로 중용의 맛이고, 이윽고 인생의 맛이 된다. 이렇게라면 그냥 중용으로 살아갔기에 불한당이라고 붙이기 애매하겠지만, (톡톡 튀는 신맛만으로는 불한당일수가 없다.) 문제는 수류탄에 있다. 빵빵, 하고 터지는 수류탄에 말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하고, 다시 러시아로 돌아와 정치인생을 시작한 리모노프는 그의 인생 전반에서 수류탄처럼 터지며 살아왔다. 어렸을때는 부모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살아왔고, 겨우 참여하게 된 문학클럽에서는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의 재능과 작품을 내심 무시하면서 살아왔으며 두 번째 아내가 될 사람을 얻기 위해 자살 소동을 벌였고, 항상 자신과 자신보다 더 유명한 명사들의 삶을 대비시켜 그들에게서부터 열등감을 가지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자신의 작품이 아웃사이더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기에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반등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평범한 성공스토리처럼 들리지만 저 맥락 사이사이에는 리모노프의 과격한 언사와 행동이 숨어있다. 이제 저 리모노프의 삶에서 빠진 것들을 채워보자. 장애를 앓고 있는 소년에게는 차라리 죽어버리지, 라는 말을 자신의 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며, (밑에 저자는 눈물겨운 변명을 하고 있지만, 이건 저자가 변명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의 성질이 아니다. 이후에 이 태도에 대하여 몇 마디 적을 것이다.) 파시스트들과 어울리고, 전쟁에 참여하고 등등. 그야말로 불한당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이는 그의 필명 리모노프와 유사하게 발음되는 수류탄에 정확히 부합한다.

 

하지만 앞서 나는 부재증명이라는 단어를 썼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리모노프는 그림자인데, 이 그림자를 덮는 더 짙은 어둠들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리모노프는 불한당에 지나지 않지만, 더 큰 악당은 저런 개인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 엄청난 돈이나, 혹은 권력으로 사람들의 목숨을 사소한 것으로 앗아가는 사람들이며, 리모노프는 그 사람들에 대한 증오를 언제나 여실히 드러낸다. 내전에 참여한 것도 유사한데, 사실 진정한 악당은 저 내전을 일으키고 거기서 어부지리를 얻는 사람들이다.

 

고작 리모노프 혼자가 참전을 하였든 안하였든 차이가 있었겠는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악, 혹은 거대한 세력에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사람은 자신이 깨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열심히 비판을 하거나 할 수도 있겠지만, 리모노프처럼 이제부터 나도 삐뚤어질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법이다. 따라서 리모노프의 삶은 거대한 악, 그러나 지금은 여기 없는 것 처럼 보이는 그런 악, 을 예감하게 만드는, 그런 예언자적인 부재증명이리라.

 

이 책의 구성상 특이점이라면 현실과 주인공의 삶을 적당히 버무려놓았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현실에서 시작하여 리모노프를 저자가 언제 만났더라, 에서부터 시작하여 리모노프의 일생을 한바퀴 돌아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저자와 리모노프의 현실에서의 만남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이런 구성은 상당한 장점을 지니는데, 이 책은 비록 소설이지만 현실에서 시작하고 현실에서 마무리한 결과 소설 구성 전체에서 일종의 현실감이 부여된다. 그러니까 지금, 2015년 3월 8일 7시 48분에(이 문장을 쓸 때의 시간이다) 저자와 리모노프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말이다. 실제 이 책은 3년 전에 출간되었을텐데도.

 

그러나 단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한마디 안할 수 없는 것은 이 책의 주인공에 대한 저자의 태도인데, 중간 중간 잊을만하면 저자는 주인공의 삶 근처에 자신의 삶을 풀어놓는다. 그 두 개의 삶은 거의 겹치지 않으나, 완전히 평행선은 아니라서 이윽고 종국에 가서 겹쳐지게 된다. 그야말로 개떡같은 인생 - 주인공의 말이다 - 을 저자가 취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하더라도 주인공에 대한 호의가 담긴 시각은 매우 보기 불편하다. 나의 리모노프씨가 이럴리 없어, 설령 리모노프씨가 그런 말을 했더라도 정말로 위기에 빠지면 가장 먼저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사람은 리모노프씨야, 이런 문장이 줄을 잇는다.

 

이에 대한 태도는 저자의 아들의 비평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책의 말미에 아들과 리모노프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은 아버지, 그러니까 저자에 대하여 한마디 툭 던진다. 아버지는 그 사람을 루저로 그리기가 싫은 거에요, 라고. 맞다. 매우 적확한 비평이다. 리모노프를 작중 전체에서 루저들의 왕, 킹오브 루저, 루저들의 제왕으로 그려놓고는 마무리에 가서는 그래도 제왕이다, 라는 식으로 일관하려니 적절한 마무리가 안될수밖에. 아니 루저들의 왕은 루저가 아닌가? 킹오브 루저는 루저가 아닌가? 본인이 그렇게 그려놓았다면 그렇게 일관되게 갔어야 옳다. 꼭 무슨 뱀꼬리보다 닭머리가 낫다, 라는 식으로 사감을 개입시키지 말고.

 

그럼에도 이 책에 나오는 객관적 사실들은 어느 정도 정확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리모노프가 두번째 아내 엘레나와 찍은 19금 사진도 검색해보니 있기도 있고 그의 자서전 등이 실제로 있는 책들이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적당하게 객관적 근거를 잘 투여하고 있으니, 리모노프와 더 나아가 그가 속한 러시아 정치의 복잡한 양태를 그려보는데 일부 도움이 되리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여담인데, 사실 정신분석비평을 시도해볼까, 조금 뒤적거려봤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걸릴것같아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때, 이중의 정신분석을 행해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작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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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5-03-09 11:34   좋아요 0 | URL
카레르의 신작인가 보군요. 전 카레르의 작품들을 보기 전 너무 기대치가 높았기에 읽고 나서는 매번 실망했습니다. 재미없다기 보다는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느끼는 그런 아쉬움 있지 않습니까. 이 작품은 어떨지...리뷰만 봐서는 감을 잡기 힘드네요~^^

희선 2015-03-10 01:49   좋아요 0 | URL
세상에는 리모노프 같은 사람이 있을 것 같네요 많다고 하려다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잘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한 일이 별로 좋지 않았을 테죠 그래도 이것저것 잘했다는 말이 있기도 하더군요 뭐든 잘하지만 뛰어나게 잘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저는 그것만 해도 어딘데 하는 생각을 할 텐데...

이 사람 이야기는 왜 썼을까요 그렇게 괜찮은 사람은 아니지만 알아둘 만한 사람이기에 쓴 걸까요 좋아한 건 아니겠죠

이것도 잘 모르는데 이런 말을 했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