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다시 여름, 한정판 리커버)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함께 눈물을 삼키는 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얼굴이 많아 야위었다. 그 전에도 살집이 있는 체구가 아니었지만 유난히 더 마른 손을 흔들며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자세히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게 그간의 심정을 담은 단 한 줄의 문장을 얘기 했고, 나는 그 순간 울음을 삼키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그녀에게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행히 여겼다. 그저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며 있었던 서너 시간이 그녀에게 그저 큰 위로가 되었길 바랐다. 많지 않은 말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다 사라졌지만, 끝내 귓속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것들은 위로와 따뜻한 포옹이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꼭 나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말을 기억해두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19쪽




시인의 에세이집을 읽으며 그날의 귀가가 떠올랐다. 자동차 소음 가득한 길을 한참을 걸어야 집에 올 수 있었던 그날, 위로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에는 무작정 맞장구를 쳤던 일들이 이제는 그 어떤 말이 필요 없이 손 한번 잡아 주는 것이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보다는 사소한 마음의 결이 어긋난 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것을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넘기고 만다.” 45쪽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 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51쪽



“다만 어떤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쓰이는 일만으로 저마다의 능력과 힘을 가지는 것이라 믿는다. 마치 마음속 소원처럼, 혹은 이를 악물고 하는 다짐처럼” 180쪽



일정한 주제 없이 나열한 것 같은 이 글속에는 이상하게 그가 흘리고 간 상념들이 느껴진다. 말 한마디의 위로를 어떻게 해줘야 할 것인지 고민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자신의 외로움과 발목까지 밀물처럼 따라오는 고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여름밤에도 겨울처럼 느껴지는 창밖의 바람을 맞고 있을 것 같은 그 시인을, 때로는 나와 동일시해 봤다. 내게도 그런 시간들이 한동안 오랫동안 있었고 그래서 눈물이 났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때로는 시원하게 울음을 쏟아내야 할 때도 있듯이 그런 날이 있었다는 것이 고마움을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