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맨
김펑 지음 / 마카롱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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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is my 희망? [고시맨 - 김펑]



드라마 작가를 꿈꿨던 친구는 오랫동안 여의도에 머물며 창작 활동을 했었다. 그리고 힘들게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끝이 나고 여의도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날, 그런 얘기를 했었다. 여의도에는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들이 득실거린다고. 용이 되길 원했던 이무기들이 가득한 여의도를 떠나기로 결심했던 그 순간이 지금까지 결심한 것 중에 가장 힘들었지만 현명했었다고 했다. 포기 할 수 있는, 결심이란 마음에 얼마나 많은 구멍을 내는 것일까. 그리고 그 바람난 곳에는 어떤 상실과 희망이 채워 질 것인지.



sbs 스페셜 ‘아이돌이 사는 세상- 무대가 끝나고’ 에 나왔던 아이돌 한명은 아이돌이 되기 위해 노력했었던 삶을 더 빨리 떠나지 못했다는 것을 후회 한다고 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더 열심히 아이돌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빨리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그동안 시간을 투자 했던 아이돌의 삶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오로지 노래와 춤 밖에 없는 삶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남들이 여행을 가기위해 비행기 예약도 할줄 몰랐다는 한 아이돌은 친구들에게 바보 취급도 받았다고 했다. 꿈을 위해 애썼던 이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참 애잔해 보였다. 그들처럼 신림동 고시촌과 노량진의 공시생들도 어쩌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사법고시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가득한 신림동의 고시촌에도 용이 되지 못한 이들의 낮과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 중 사법고시를 위해 신림동에 6년째 머물고 있는 박현우가 있다. 그는 해탈의 길 (그것은 고시생들이 아닌 배달원들이 붙여준)의 꼭대기에 있는 성문 고시원에서의 삶도 6년째 접어들었다. 한때는 세계를 여행하는 오지 탐험가가 될 줄 알았지만, 군대를 제대하고 집에서 원하는 법관이 되기 위해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행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사실 그는 사법고시에 패스하기만 하면 앞으로의 삶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 6년이라는 시간을 신림동 고시촌에 쏟아 부은 것이다.

우선은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고, 어쩌다 보니 그 고지가 다 온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하면 닿을 것 같은 그에게 위기를 안기는 인물은 성문 고시원의 총무 안석주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성문 고시원을 떠나게 생긴 박현우와 안석주와의 갈등이 <고시맨> 소설의 주된 축으로 보였지만, 사실 이 소설에는 다른 소설이 하나 액자 구성으로 만들어져 있다.



고시촌을 벗어 날 수 없는 박현우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총무 안석주 사이에 다른 갈등 구조를 갖는 것은 고시생들의 안식처이자 힐링맨의 미스터 앤서가 있다. 힘든 고시생들을 위로하며 원하는 답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격려차원으로 기름진 음식으로 포상도 해주는 그는 왜, 고시원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연치 않게 본, 쫄쫄이와 노란 헬맷을 쓴 고시맨이라 불리는 사내는 대체 누구일까? 그는 희괴한 차림을 한 변태인가? 고시맨은 고시촌에서 어떤 히어로로 남을 것인가? 구성이 쫄깃하게 짜여 있고 악당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안석주나 미스터 앤서까지 모두에게 느껴지는 따뜻함이 작가의 심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지금은 비록 예전의 아우라를 품지 못해 마음 아픈 김려령의 초기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심성 좋은 작가가 쓴 작품을 읽을 때의 따뜻한 마음은 참 오랜만이었다. 작품과 작가는 다른 사람이고 하지만 나는 늘 좋은 심성을 갖고 있는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이 <고시맨>에 많이 녹아 있다.



sbs 스페셜 ‘아이돌이 사는 세상- 무대가 끝나고’에서 인터뷰한 아이돌이었던 이들은 무대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무대에 올라 자신들에게 환호했던 사람들의 모습은 힘든 아이돌 생활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원동력이며 자신들이 무대에 오르고 싶은 유일한 희망일지 모르겠다. 그들처럼 고시촌에서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는 고시생들도 여기서 조금만 넘어가면 그 굴곡의 시간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일지도. 그래서 성문 고시원의 총무 안석주는 얘기 했었다. 고시촌에서 가장 부패하기 쉬운 음식이 희망이라고. 그 부패한 희망이라는 음식을 끊임없이 섭취하며 몸이 상하고 마음이 병들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희망의 부패함이 어디 고시촌에만 있을까?



여의도를 떠났던 친구는 간혹 자신이 조금 더 버텼다면 어땠을까 반문을 하기도 하지만, 현실의 문 앞에서 의연하게 뒤돌아 갔던 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친구처럼 소설 속 주인공 박현우가 고시촌을 벗아 날 수 있을지 궁금했지만 혹 그가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만큼의 충분한 배움의 가치가 있었다고 그를 위로 하고 싶었다. 비록 청춘의 시간을 오로지 한 가지를 위해 쏟아 넣은 것이 아깝긴 하겠지만.



비극적인 상황에서 늘 나타났던 고시맨과 앵무새 아미고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쩌면 누군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속의 구원이 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밤, 치밀어 오르는 실패의 분노와 허탈함의 끝에서 그동안의 노고에 어깨를 토닥이며 응원해줄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런 기분 때문일까? 책을 읽은 후 때론 하늘을 볼 때가 있다. 혹 나를 구원해주기 위해 하늘에서 아미고가 날고 있지는 않을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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