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비가 너무 많이 왔었다. 혹 그 비가 다음날까지 내내 이어질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비는 새벽녘에 그쳐 있었다. 새벽 일찍 차비를 마치고 영등포역으로 갔다. 작년에도 갔었던 그곳에서 나와 같은 마음으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내 자리는 창가 자리였다. 작년엔 혼자 오신 분과 함께 앉았었는데 올해는 어떤 분이 내 옆에 앉을까 궁금했는데 여러 명 단체로 오신 분들 중 짝수가 아닌 홀수 지원으로 혼자 남게 되신 분과 함께 앉았다. 잠깐의 인사를 하고 기차 출발도 전에 내 두 손에 삶은 달걀이 올려졌다. 유정란이라며 먹으라던 달걀을 창가 모서리로 껍질을 깨고 먹었다. 아침에 삶아 오셨다던 달걀은 아직 따뜻하고 고소하며 맛있었다. 기차 안에서 우리 언니 짝꿍이라며 챙겨 주셨던 일행 분들과 봉하에서 소머리국밥까지 함께 하고 따로 일정을 즐겼다.

 

작년에 못 샀던 기념 티와 손수건 분청 화분을 고르고도 추도식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작년과 많이 대조적으로 한산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적었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에 유독 사람이 많이 몰려 힘들었기 때문에 올해 한적해 보일 뿐이었다.

 

추도식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침 이슬을 불렀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많이 불렀던 노래들을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를 수 있다는 것이 가슴에 벅차올랐다. 작년처럼 나는 결국 자리를 잡지 못하고 추도식 1시간 동안 내내 서 있었다. 나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추도식 내내 서 계셨다. 하지만 아무도 추도식 동안 자리를 변경할 뿐 자리를 벗어나신 분이 없었다. 그리고 모두 함께 노래를 불렀다. 유독 내 옆자리에 서서 노래를 부르셨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깊은 울림소리가 어찌나 좋은지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지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냥, 그 소리가 좋아서 또 마음이 울컥했다.

 

 

 

 

문득 같은 노래를 한 마음으로 부르는 것을 생각해 봤다. 대학 내 동아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들과 함께 공연을 했었던 그 시절을 떠 올리며 내게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함께 같은 노래를 부르며 있다는 것이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랬다. 그날 나는 행복했다. 비록 우리가 모인 이유는 그의 추도식이었지만, 우리를 이렇게 만나게 하고 한 시간 동안 서서 그를 추도 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를 그리워하는 그 순간이 행복했다. 옆 사람의 노래 소리를 듣는 것에 가슴이 떨리며 벅차올라 나는 노래 끝마디는 다 부르지 못했다. 간혹 나와 비슷한 분들은 뜨거워진 눈시울을 닦아 내며 부르셨다. 십주기가 다가오지만 여전히 어제 같은 그와의 이별이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내 짝꿍이셨던 분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진양에서 서울까지 5시간,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을 함께 하며 우리는 이 기차 안에 모인 사람들과의 연대를 나누며 그간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우리는 왕복 10시간동안 서로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도 물어보지 않고,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단지 같은 이유만으로 이 기차를 탔다는 것으로 친밀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각자가 내려야 할 역에서 헤어지면서 마지막까지 그 어떤 것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다만 올해 8월에 열리는 봉하 음악회에서 만날 것을 약속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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