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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조의 칼
문호성 지음 / 호밀밭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뿌리를 안다는건 자기정체성의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날 탄생하게 한 부모의 탄생에 그 부모를 탄생하게 된 배경까지 알아가다보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곁에 유형으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정신적인 든든한 구심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교실 뒷켠에 빼곡하게 꽂힌 백과사전을 통째로 외울만큼, 학창시절 한국사 과목만큼은 내게 완벽한 과목이었다. 하지만 만20세의 성인의 범주에 편입된 이후엔 지식의 실체는 모래알과 같았다. 역사에 대한 지식고갈에 잔뜩 한심해하던 중, 『덴조의 칼』의 책을 접했다. 쉰 무렵에 습작을 시작한 저자의 심상치않은 이력과 함께 책은 임진왜란후 파견된 조선통신사의 의문의 죽음을 두고 서술을 하고있다.
인간이 가진 동물과의 극명한 차별성은 생각하며 표현할 줄 안다는 것이다. '언어'의 매체를 통해서 말이다. 평소 일본 출장할 일이 잦았던 저자는 우연히 지하철역 구내서점에서 마주한 문헌을 계기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는 열정의 모습을 주저없이 실천하는 것이다. 쉰살이 넘어서야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 기술은 거듭 수상의 영광으로 이끈다.
사건은 명화원년에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가 검은 자객의 습격으로 죽음을 당하면서 시작한다. 새벽녘 밥을 짓기위해 가마솥에 불에 지피던 격군은 고된 여정에 피로가 몰려와 졸고 만다. 한참 졸고 있다가 누군가 다리를 밟고 지나가는 통에 깨고만다. 이내 밟고 지나간 사내를 두리번했더니, 검은 왜인의 옷을 입은 사내가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추후 범인으로 스즈키 덴조 라는 자가 자백하며 체포된다. 책의 1장의 첫 페이지에 서술된 내용이다. 저자가 밝혀내고 하는 주제는 범인이 누군가?에 있지 않다. 외교사신을 살해한 전대미문의 사건에 왜? 그런 살인을 저질렀는가? 하는데 전개의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 책은 결론- 과거회상형으로 전개한다. 즉 당시 사건을 목격한 격군의 서술로 거슬러 올라가 사건의 과정을 밟히고 있다. 최근의 범죄수사드라마등에서 초반 최종전개를 암시하는 내용을 소개하며 전개하는 기법을 닮아있다. 심지어 범인 스즈키 덴조와 살해당한 최천종이 작가전지적 시점의 '나'로 대입되며 솔직하게 과정을 말하고 있다. 단지 범죄가 성립하는 인과관계만 밝혀내려 했다면, 이 책은 정말 시시해져 눅눅한 느낌 그대로일 지도 모른다.
초반 조선 통신사 자신의 자결로 규정하며, 미온적으로 사건을 종결시켜려 하던 막부... 제대로 밝혀내려 하지 않는 막부의 태도에 조선 통신사 일행은 탄식한다. 그런데 자신이 범인임을 밝히는 스즈키 덴조의 서찰이 전해지면서 사건의 배후를 놓고 전혀 의외의 숨은 배경을 찾게 되는데... 책을 끝까지 읽었음에도 과연 스즈키 덴조가 조선통신사를 살해했는지도 불분명한 체로 또다른 죽음을 서술하고 있어 보고 또 봐도 흥미롭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엊그제 끝난 천금같은 기적의 역전 야구경기처럼 맞상대로 부딪치면 늘 없던 열정까지도 쏟아내게 하는 섬나라로 각인된데에는 임진왜란의 영향이 크다 할 것이다. 1592년에 발생한 임진왜란... 조상들의 무고한 희생이 잇따른 전쟁이건만, 불과 수년뒤인 1607년 화친을 맺어 통신사를 파견하기에 이르른다. 전후 새롭게 들어선 도쿠가와 막부의 선린외교정책으로 초청된 통신사 파견은 총 12차례 있어왔는데, 『덴조의 칼』은 1764년에 파견된 통신사에 관한 이야기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그렇듯 170년이 지난 세월에도 아물지 않은 왜에 대한 적대의식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한편으로 응징자의 입장에서 박대하는 관료의 부조리한 모습을 읽어가고 있다. 강직한 성품의 조엄의 인물을 등장시켜 전체적인 중립성을 기하는것도 이때문이다. 사건을 풀어나가는데 있어서도 판이하게 다른 양국의 인물들을 통해 애증에 가까운 양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느 한 민족을 침략자라 할 수 없을만큼, 수많은 영역다툼이 있어왔다. 근대에 들어서 야만적 침략행위에 대한 국제질서차원의 응징이 더해지면서 역사에 대한 자각의식하에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거친 파도에 맞서 순항해야 할 배의 자재가 부실하다. 부실하게 조달관리한 책임을 묻지만, 하급관료들은 빨리 예인에 나서지 않는 왜선을 탓한다. 사건의 해결에 있어서도 실리를 추구하는 왜 vs 명분을 내세우는 조선으로 분명하게 갈린다. 왜 우리가 내세우는 경제지표의 자화상이 기초기술등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열악할 수 밖에 없는지를 풍자하고 있다.
이 소설의 장점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스타가토의 완급있는 구성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복선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문체는 다소 장황한 편이다. 당시 시대에 사용되던 한자어들이 구사된데다 별도의 각주처리는 없어 의미를 해석하는데 힘들었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단지 첫장의 두페이지만이 그랬을 뿐이다. 생소한 주제에 대한 부적응에서 오는 일시적인 난독현상으로 판단해두자! 소설을 읽어갈수록 주인공이 내가 되어 사건을 파헤쳐가는 느낌이다.
단, 저자가 소설을 전개함에 있어서 시점을 혼동하는 옥의 티가 곳곳에 느껴졌다. 대표적인것이 등장인물의 나이를 밝힘에 있어서 삼십대, 사십대 식으로 현재화된 명칭으로 부르고 있거나 자동차의 핸들과 같은 배의 '키'같은 용어를 등장시키는 면이다. 더불어 낮에는 외국선박을 관리하는 회사의 직원으로 밤에는 작가를 오가는 영향이 소설에 배어있다. 지나칠 정도로 배의 세부부품교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설명하면서 현대판의 직역을 하는 범실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부분을 제외하곤 이제껏 내가 읽어본 지루하기만한 역사소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감흥을 준다. 50대의 작가의 차기작이 기대될 수 밖에 없는 절대이유인 것이다.
범죄자를 취조하는 구성임에도 전체적으로 달관한 관조로 서술하는 흐름에, 감초같은 반전을 주는것이 그의 죽음의 이면이 결코 양국간의 갈등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 조선침략까지도 전혀 생각치 못했던 이유의 단서때문이란것이 4차원적인 결말을 이끌어낸다. 평범하게 상상해낼 수 없는 원인이건만, 당시의 시대상을 떠올려보면 전혀 가당치 않은것도 아니다. 이같은 여러가지 측면이 다채로운 상상을 자극하니,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