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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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물의 영장' 사람이 할 수 없는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을 되돌릴 능력이 없다는데 있다. 누구에게나 24시간 주어지는 시간은 유한하다. 그렇기에 각자 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사회속에 생존경쟁을 펼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소중한 지금 이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그 사라진 존재는 생의 흔적속에 비통한死를 맞이한것도 아니었다. 짧게는 몇개월,길게는 몇년을 거슬러 시간이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갑자기 온전한 몸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고 난뒤 꿈꾸듯 눈을 떠보면, 전혀 다른 시간장소로 이동해있다. 시간의 양탄자로 순간 이동한것처럼...


 

 

 


 


 




 
1971
  "겁내지 마, 아서. 아빠가 받아줄 테니까 어서 뛰어내려." -p9-

  "아서, 인생에선 어느 누구도 믿어선 안 돼. "
  나는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아빠를 바라본다. -p10-

 
보스턴, 1991년 봄

"아서, 그동안 잘 지냈니? 모처럼 내가 너와 함께 주말을 보내려고 왔는데, 괜찮지?" -p12-

"난 떠나기에 앞서 주변정리를 할 생각이란다."

"떠나다니요?"

아버지의 아랫입술이 살짝 일그러졌다. -p19-
 



 



     

 

  뭇 사람들의 흔한 동경은 풋풋하고 아련한 때로 되돌아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깊게 주름잡힌 얼굴을 떠올리며, "10년만 더 젊었더라면 어땠을까? " 후회반으로 희망을 품곤 하는 일상의 무미건조함들...  프랑스 베스트셀러작가 기욤뮈소의 12번째 소설 『 지금 이 순간 』 은 뮤지컬 노래가사 처럼, 마법같은  이야기를  표출하고있다. 1년에 몇번 볼까 말까한 아버지는 어느날 낚시핑계로 아들 '아서'에게 24방위 바람의 등대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동안 비밀에 묻어둔 집안의 비밀을 말꺼내며 아들에게 등대와 그에 딸린 작은 저택을 상속한다. 상속받은 아서는 아버지와 맹세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봉인된 문을 여는데... 정신을 잃은후 눈을 떠보니, 속옷차림에  경찰에 쫓긴다.  때는 1년후...눈뜬 사이 1년의 세월이 지났다. 


 

 

 




 

  



 "아버지, 왜 저에게 이등대와 집을 물려주려고 하죠?"

(중략)

"난 널 보호하려는 거야!"  -p26-


아비가엘과 통화를 마친 나는 마르코 호로비츠와 내 할아버지인 설리반 코스텔로에게 벌어진 일을
 생각했다. 두 사람은 몇 년의 차이를 두고 실종되었다. 그들의 실종은...

-p35-

 나는 무력감을 느끼며 힘껏 고함을 질렀다. 얼마 안 있어 귀청을 찢어발길 것처럼 굉장한 힘으로
나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p41- 


 




 

 

 

 

 

  


     

 

​     아서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중 단 하루뿐이다. 혼미해진 정신을 차리고 하루를 보내고 나면, 1년후로 순간 이동한 체로 자신을 발견한다. 단 하루의 생활도 급기야 줄어든다. 이 사라지는 과정을 24년이나 겪어야 한다. 기욤뮈소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이 긴밀한 전개를 맞이해  순간이동할때마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풍경속에서 변화를 맞이한다. 우리 일상에서 24가 가져오는 우주의 오묘함을 모티브로 해, 매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흥미로운 신비로움을 이어가고 있다.  뚜렷하게 시간을 경계짓는 구분점은 없는데 오랜 세월 24시간, 24절기의 시간관념이 일상생활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자체가 의문의 수수께끼가 아닐까? 태초에 누가 시간을 이렇게 정해놓은 것일까?  작가는 이 풀리지 않는 우주요소를 재발견하며 유레카를 외쳤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손가락들이 점점 더 목을 조여 오며 내 기도를 막았다. 이 미치광이 영감이 나를

질식시키려는 건가? -p79-

"내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더니 웬일로 여기에 올 결심을 하게 되었죠?" -p106-

빌어먹을!

나는 여자를 물 밖으로 꺼내 바닥에 눕힌 다음 맥박을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을 경동맥 위에...

-p114- 

 



 



     

 

​   소설은 철저히 갈등극복의 구성으로 전개되고 있다. 인생에서 어느 누구도 믿어선 안된다고 말하는 아버지는 아서의 친아버지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성당 성가대에서 벌거숭이 차림으로 발견된 아서... 경찰조사를 받는 아서는 아버지의 도움을 청하는데, 투병중인 아버지의 상황을 직감한다.  놀랍게도 오래전 실종된 할아버지가 정신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만나보라는 말을 하는 아버지...  『 지금 이 순간 』에서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단절된 관계를 매듭짓는단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있다.

 

 

 

 

 


 



     

 

​  세인트 파트리크에서 벌거숭이로 깨어난 지 24시간째 오후 5시, 다시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통제불가능의 상태에 들어간 아서...다시 시간이 이탈했다. '리자'라는 매력적인 여인과의 만남이다. 헌데 한창 샤워를 하고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쳐 또다시 도망자신세가 된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치밀한 구성은 책을 읽는 독자를 매료시키고 있다.  현실속에서도 '사랑'의 궁극적인 명제는 뜻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성장할수록 사회생활속에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접하기 때문이다. 전혀 인연이 닿지 않을법한 시골처녀와 도시총각의 만남또한 우연한 여행에서 찾아올 수도 있고, 시장의 노모를 통해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이어진 둘의 운명적인 사랑은 1년중 단 하루뿐인 아쉬움을 끌어안고 이어진다.

 

 

 




 


 


  

     

 

​  단 하루뿐인 사라지는 사람을 위해 온전히 기다릴 수 있을까? 영원불변할 것 같은 둘의 사랑은 현실에 부딪치며 갈등을 겪는다. 먼 시간여행을 거쳐 단 하루뿐인 자신을 지고지순하게 기다려주길 바라는 남자 vs 곁에 오랫동안 둘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답답함을 느끼는 여자... 둘의 접입가경의 갈등해결사는 다름아닌 아서의 할아버지...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승승장구한 나머지 가족에게 소홀할 밖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애정이 손자를 향하고, 증손자에게 이어진다. 반복되는 시간이동또한 아서에게 어느덧 습관처럼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아서를 처음 알아갈때만해도 빚에 허덕이며 생활고를 겪던 배우지망생 신분의 리자에게도 광고판을 가득채우는 인기가 가속되고, 경제적으로 부족할것없는 행복한 나날이 이어진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번번히 24년이 끝났을때 다가올 비극적인 결과를 걱정한다. 우려대로 비극은 찾아온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고통을 겪고 있는 아서의 초췌한 모습...1년전의 사랑스런 아이들의 끔찍한 죽음앞에 자책하는 아서의 텅빈 자리엔 리자가 있다.  시련끝에 찾아온 따뜻한 어루만짐이 있을 뿐이었다.

 

 

 



 

 


 


 



     

 

  막힘없이 이어지는 구성 덕분에 책의 가독성 자체는 훌륭하다. 다만 사랑을 만나고, 행복으로 이어진 이후의 과정들이 흐지부지 전개되는 느낌은 아쉽다. 책을 덮고나서 떠오르지 않는 "아리송한 결말"을 떠올려볼때, 적어도 마지막 50페이지 정도는 정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비극으로 이어지게 한 결정적인 단초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확실한건 현대인이 당면한 가족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단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없는 것처럼, 순간의 시간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노력할 뿐인데, 1인칭의 주인공은 온전히 등대의 저주로 받아들인체 저주를 풀 단서를 찾아나서는데 집착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가족들이 상처받고 슬퍼할것을 생각하기엔 한창 늦어진 뒤에야 뼈저리게 후회하게 된다.

 

 

 



 


 


 



     

 

​ '풍요속의 빈곤'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주 심각하게 황폐해졌을 시점이다. 함께 나눌 수 있어, 배가되는 행복의 본성에 위반되게 승자독식의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기욤 뮈소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서 통찰력있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허물없이 지내는 할아버지와 손자와의 관계를 통해 세대간의 갈등문제를 해소하고 있다. 1인칭 주인공 아서가 정신을 잃고 새롭게 등장하는 매 순간마다 반갑게 재회하고 있다. 비극은 아서가 본업인 의사생활을 접고 쓴 소설들이 유명해지면서 시작된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창작활동 때문에 스스로를 고립시킨체로 가족과는 단절이 이어지는 것이다. 순간 시간여행이라는 모티브로 잡은것도 그런 단절을 정당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1년중 길어야 단 하루밖에 있을 수 없기에 불가항력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설리반 할아버지가 두 사람의 비극적인 결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

"물론 들었어.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린 반드시 등대의 저주를 풀어야 해!"

- p194 -


 나는 매번 리자의 입장이 되어보려 애쓰지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로는 그녀가 충격을 완화시킬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

- p203 -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정확히 뭐야? 내 생활을 포기하고 당신만 기다려

주길... 난 14개월째 눈이 빠지도록 당신을 기다렸어.

-p214-


"아마도 소형 비행기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 건물에 충돌한 것 같은데요."

문득 우리는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의 당

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234-


시간여행은 원래의 흐름을 되찾았다. 나는 여전히... -p251-

"아빠가 내 기분을 좋아지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있는데... (중략)

"아빠가 시간여행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거야. 아빠가 우리 가족의...

-p284-



 


 



     

 


 이 모든 이야기가 소설가 아서의 원고내용이라는 점은 대반전이다. 더불어 작가본연의 털어놓을 수 없었던 심적 고뇌를 1인칭의 주인공에 감정이입해 솔직하게 말하려고 하는 부분도 엿볼 수 있었다. 보통 작품에는 그 창작을 한 사람의 거쳐온 성장경험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의 압박감들이 아서를 통해 전개되고 있는것을 봐서도, 1년 정도의 연대적인 시간전환은 창작작업후 일정시간 휴식을 취하는 작가들의 일상과 닮아있는 모습이다.

 우연히 낡은 타자기에 꽂힌 원고를 주마등같이 읽으며, 정서적 화해를 이뤄가는 결말로 이어진다. ​ 완벽함의 구성과 생뚱맞은 발상의 전환이 기욤 뮈소 소설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인간적 고뇌와 번민을 누구보다도 신명나게 풀어내고 있기에 책을 읽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이미 성장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과도기의 현상을 겪은 문화권의 경험이 좋은 정서적 완충막을 생성할 것이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것이 각자의 인생이요, 시간이다.  물질주의가 무안할 정도로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즈음 책을 통해서 정서적 유대감을 공고히 다져갈 수 있을 것이다. 


 

by. 해피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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