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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1. 여행, 그 시작은...

 

어제는 무한도전에서 '못친소 페스티벌 2'를 했다. '못생김'이라는 외모를 주제로 모여든 게스트들과 게임이나 개인기 노래등으로 한바탕 어울어지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자신이 '못생겼다'는 이미지로 한 장소에 모였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 속에서 정이 쌓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더 오래 같이 있고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시 읽는 밤>의 하상욱씨가 이야기하는 소감에 울컥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기저기 일을 시작하게된 하상욱 저자는 하루하루 다른 사람들과 지내면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매일 메이크업을 하고 콤플렉스인 입을 가리고 웃던 시간 속에서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던거 같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나와 메이크업을 모두 지워버리고 사람들과 신나게 어울리면서 비로소 '휴가'를 받았다며 홀가분해졌다는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 사회적인 관계를 깨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힘들어한다. 사회적인 관계 속에 놓여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잘못한 일을 지적받아 알 수 있지만,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꿈을 찾기 위해 스스로 박차고 나온 사람들에겐 누구도 자잘못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미래가 늘 두렵고 불안스럽기만 하다. 그런 답답함과 불안함을 벗어버리기 위해 사람들은 여행을 하는게 아닐까. 낯선 사람들과 낯선 땅이 주는 신선함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 삼십대에 사표를 쓰고 세계일주를 떠난 건 내가 세상에 태어나 내린 결정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혼자 2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메고 사나흘에 한 번씩 잠자리를 바꿔야하는 유목민의 삶, 그 이상 내게 어울리는 삶은 없었다. 세상은 거대한 물음표였고, 나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질문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늙음이란 더 이상 궁금한 게 없어지는 순간이다. 자신이 나는 것이 전부이자 진리라고 믿는 좁은 세계에 갇히고 싶지 않다. "(p4)

 

 

■ " 지독히 낯을 가리는 내가 여행지에서는 쉽게 마음을 열게 된다. 우리는 모두 바깥에서는 서로에게 느슨해진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슬쩍 열어버리는 순간, 삶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도 같다" (p69)

 

2. 내가 만나 본 김남희 작가.

 

처음 만나 본 김남희씨의 책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는 유난히 추위를 타는 저자가 따뜻한 나라인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그리고 태국을 여행했던 이야기가 담겼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엄마와 함께 여행했던 순간이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각지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받게된 '온정' 이었다.

 

급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저자는 문득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발리 우붓 여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떠났던 여행길에서 누구보다도 엄마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자연을 즐길 줄 알고, 독서를 사랑하며 소녀같은 감수성을 풍부한 '엄마'가 있었음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 세상에 모든 엄마는 또 자신이 키운 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라는 이름을 벗어놓은, 욕망을 지닌 한 여성으로의 엄마를 나는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익숙했던 상대를 재발견하게 만든다. 내 안에 단단하게 굳어있던 상대에 대한 이미지를 녹여준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오다니, 참 잘했다" (p29)

 

2년 전 엄마의 생신에 맞춰 가족끼리 부산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 자매들이 모두 참여하는 여행이었기에 언니네 식구들까지 대 식구의 이동이었는데 그때마침 휴일을 맞아 부산항에 크루즈가 정박해있던터라 부산은 어느때보다 많은 인파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 어느 길이나 도로는 정체가 되었기에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장소가 없어 아쉽게 돌아와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엄마는 용두산에 있는 절에도 다녀오고 싶어 하셨고 해수욕장의 한적한 길을 걷고 싶다셨는데 어느 것 하나 들어들이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이 책을 읽으며 뭉클하게 떠올랐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엄마와의 여행을 꿈꿀 수 있게 되는 것일까를 생각해보다가 그저 나중으로 미룰 수 만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새삼하게 되었다.

 

 

" 오늘은 그동안 지나치기만 했던 이곳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이 카페의 매력은 창밖의 싱그러운 풍경, 커다란 반얀나무 한 그루가 창을 가득 채운다. 그 나무 아래에는 향과 공물이 놓여 있다. 이 카페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아침마다 바치는 것일까.. 나무를 바라보며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인데도 내 일상의 평화에 균열이 갈까 두려워 이 책을 쉽게 열지 못했다. 이곳에 와서야 이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p281)

 

천혜의 자연경관을 마주하고 맛좋은 커피 한 잔 탁자에 두며 읽는 독서의 맛이란 세계여행을 한번도 다녀오지 못했던 나에게도 그 기쁨으로 충만했던 마음 만큼은 온전히 전달되어진다. 여행을 떠날때 가져왔던 책이 무려 15권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녀가 얼마나 독서를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지만 <와일드>와 같은 두께가 어마무시한 책까지 가방에 넣었다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오랜 시간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책을 쓴 작가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여행길을 걷느라 늘 등에 지고 있던 배낭(몬스터라고 불렀다)때문에 허리가 아파 무척 힘들다던 토로가 이해가 되었다. 무엇보다 하루 일과 중 산책을 꼭 포함시키는 그녀가 걷는게 불편할 만큼 허리가 아프다던 이야기로 그녀의 기나긴 여행의 시간들이 책과 함께 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여행지마다 만났던 사람들이 대가없이 베풀던 온정들이란!

탁발을 구경하던 라오스에서 자신의 손에 공양물을 쥐어줬던 사람들의 인심과 자리가 없는 버스에서 자리를 만들어 주던 사람들 또 하치하이킹을 하며 얻어 탄 차량과 길을 묻기만 하면 오토바이를 끌고나와 꼭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던 사람들의 '인심'과 '온정'에 뭉클한 마음이 샘솟았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시골인심이라면 뒤지지 않는 '정'으로 넘쳐났지만 지금은 불신이 넘쳐나고 이웃과는 단절된 시간에서 살아가다보니, 선뜻 정을 베풀기 쉽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기에 그 따스함이 배로 느껴지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3. 다시, 바람이 분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러 천천히 읽게 되었다. 나에 급한 성격을 누르면서 천천히. 읽고 난 책에 대해 쓸때 너무 감상적이 되지말자, 칠푼이처럼 혼자만의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떠벌리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매번 나에 다짐은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오늘도 반 칠푼이가 되어 주절주절 적어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현재 내 심리적인 상태는 '불안'이다. 앞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내가 읽고 있는 이 책들이 미래에 어떤 토양을 만들어줄지. 혹은 지금 지내고있는 시간들이 옳은 일인지. 누가 묻는 것도 아니건만 늘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생각을 해본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에서 여행을 떠나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

 

그러다 베란다가 떠오른다. 주부라면 응당 주방이 제일 편한 공간이라고 하지만 나는 어떤 공간보다 베란다를 사랑한다. 햇살이 들어오고 여러 화초가 살아있는 공간. 늘 베란다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책을 보던 시간들이  내게 작은 즐거움이자 행복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흙과 화분을 정리하고 베란다 대 청소를 시작했다. 그리고 봄을 맞아 심을 식물들을 계획하고, 화원으로 달려가 온통 초록색인 베란다에 화사한 꽃을 피워줄 식물을 골라봤다. 그렇게 개나리 자스민과 함소화를  베란다 식구로 맞이하며 앞으로 이 공간에서 채소를 키우고 화초를 돌보며 그렇게 책을 읽으며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쁜 바람이 되어 한 줄기 불어오는 것만 같다. 그렇게 내 마음속엔 다시 산들 바람이 분다.

 

" 서치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묻는다. "

 넌 무슨 일을 해"?

"여행하고 글을 써"

서치가 다 알것 같다는 미소를 짓는다.

잠시 말이 없던 그가 덧붙인다.

"한번 이런 삶을 살기 시작하니 네 나라 안에서만 살아갈 수 가 없지?"

그 말이 내 심장을 툭 건드린다.

그 또한 그런 삶을 살고 있으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7~8개월 일해서 돈이 모이면 3~4개월 밖으로 나가 떠도는 삶.

여행에서 돌아오면 바로 다음 여행지를 생각하는 일상.

조금이라도 돈이 모이면 비행기 표를 끊는 습관.

늘 저곳을 꿈꾸며 이곳에 머물 뿐인 날들.

우리는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고도 아직 이런 삶을 살고 있다.

함께 세상을 떠돌던 친구들도 이제는 결혼을 하고, 취업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으며 정착했다. 우리는 아직까지 젊은 날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소수로 남았다. 철이 들지 않은, 여전히 이기적인 중년으로"(p175)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려버린 생각들을 다시 주워삼킬 수 없기에 앞으로도 나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불안으로 고통스러울 테지만, 내 인생 만큼은 누구보다도 내게 주는 즐거움을 찾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아보리라 생각을 하게 된다. 김남희저자, 그녀의 멋진 인생 만큼이나.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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