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맛을 차차 알아간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맨발인
다 싫고 냉수나 한 사발 마시고 싶은 때
잦다
오르막 끝나 땀 훔치고 이제
내리닫이, 그 언덕 보리밭 바람 같은,
손뼉 치며 캄탄할 것 없이 그저
속에서 휜칠하게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그 걸음걸이
내 것으로 몰래 익혀서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랑에도 죽음에도
써먹어야 할
훤칠한
물맛
<유심, 2010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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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냄새도 맛도 나지 않는 물맛을 알아간다고 말하는 시인, 그 무슨 경지인가? 그 언덕 보리밭 바람 같은 물맛을 느끼지까지 오래 살고 볼일이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절로 깨달아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내 것이었던 것들과, 내것이 되고자 했던 것들로부터 손을 놓아 버리고, 그 마음을 놓아 버릴 때 담박하고, 훤칠하게,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그 걸음걸이의 물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돌아가지 않고 직선으로 내리 꽂히며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는 냉수 한 잔.
세상은 너무 달짝한 것들로 넘쳐난다. 담백하고 우직한 맛은 설 자리가 없다. 오래도록 깊이 음미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을 밀쳐두고 당장 혀끝에 감기는 맛과 향에 취해서 산다. 우리는.
그래서 이 시는 비단 맛에 관한 것으로만 읽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