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의 집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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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선생님께

 

  우연히 선생님이 나쓰메 소세키의 열혈 팬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 관심작가가 되었습니다. 일종의 친밀감에 이끌려 편지를 써 봅니다. 만약 나쓰메 소세키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선생님과 함께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 친구가 되었을까 엉뚱한 상상도 했답니다. 작고 얇은 사이즈의 책을 받고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몹시 궁금했습니다. 책 표지의 노부부와 고양이 두 마리가 고원 숲 속 오솔길을 걸어가는 장면은 참 평화로워 보입니다. 부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일본의 알프스로 불리며 여름의 휴양지로도 각광을 받는 곳이라는 얘기를 듣고 전부터 가보고 싶었거든요. 서문과 역자 후기를 읽어보다가 다 읽고 말았네요.

 

  서문에서 마마보이라는 단어를 접하며 웃음이 났고, 어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먹먹해졌습니다. 재일교포 1세의 삶에 대해서는 시대극이나 책에서 접한 정도입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차마 짐작도 할 수 없겠지요.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수집한 고철이 조국의 형제들을 살상하는 탄약으로 바뀌는 아이러니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밤에는 눈물 흘리며 친척을 걱정해야 했다는 부모님의 삶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아렸습니다. 당시 수많은 재일교포들의 삶이기도 했겠지요. 이런 혹독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사람은 걸어 다니는 식도라는 신념으로 가족들을 위해 제철음식을 마련하는 과정은,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생명력을 나눠주신 어머니 덕분에 건강하게 살고 계시다고 하셨지요.

 

사람은 말이데이, 알몸으로 태어나가 알몸으로 죽는기라. 너거 아부지도 그랬고 나도 그렇데이.”

글자를 읽을 수 없었던 어머니가 남긴 말과 표정은아니, 어머니에 관한 모든 기억은 1만 권의 책 이상으로- 비유하자면 나쓰메 소세키나 막스 베버 이상으로- 지금의 나를 지탱한다. 닥쳐올 겨울을 어떻게 대비할지는 어머니에게 배우면 되는 것이다.(P9)

고난 속에서도 어머니의 헌신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전에 읽은 선생님의 저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통해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겪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역시나 이 글 곳곳에도 그 슬픔의 얼룩이 가득했습니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요. 기억도 나지 않는 언니가 있었다는 것을 철든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잊을 만하면 한번 씩 들렸던 엄마의 통곡소리가 떠올랐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슬픔이 자식을 가슴에 묻은 슬픔이 아닌가 합니다.

 

  한 땅에 온전히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쪽과 저쪽에 발을 걸치고 마음이 분산되는 삶, 고단하신 삶을 살아오셨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20대 독일 유학중에 무고하게 희생되어 죽어가는 광주시민을 보고 마음 저리며, 이러저런 상황에 맞닥뜨렸던 차별을 견뎌야 했던 삶, 정치인들의 보복이 되풀이되는 한국의 현실을 마음 아파하고, 한일관계, 남북관계 악화의 분위기에서도 마음을 졸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평생을 살얼음 위를 걷듯 살아오신 인생이 아닌가, 평범한 우리로서는 나라 걱정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으면서도 나만 힘든 것처럼 무사안일하게 살고 있었구나 싶어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마치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틈에서 눈치를 보며 갈피를 못 잡는 어린아이의 심정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요. 선생님을 비롯하여 고국의 안위를 걱정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이 만큼 사는 나라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나쓰메 소세키와의 인연이 되었던 이야기는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소세키가 교직생활을 했던 제5고등학교(현 구마모토대학)에서 놀았고 산시로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연구실에서 15년을 보냈으며 같은 안과까지 다녔다니요. 저도 작년에 도쿄 대학의 산시로의 연못과 소세키의 산방 기념관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의 흔적이 남겨진 장소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까운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중학교 친구들과 가출하여 도쿄를 보고 산시로에 묘사된 것과 비슷한 느낌을 경험하며 환희를 느끼고, 그리하여 소세키가 그린 주인공들과 동일시하면서 위안을 찾고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하셨지요. 구마모토의 오아마 온천을 무대로 했다는풀베개를 어렵게 읽은 적이 있는데 역시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고 인정해주시니 읽었다는 자체만으로 뿌듯한 마음이 됩니다.

 

  고원의 풍경 중 떠오르는 하나가 하얀 안개로 둘러싸인 몽환적인 세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짙은 안개를 싫어했는데 나중엔 안개 끼는 날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언론매체의 난도질을 피해가지 못했던 거죠. 세상은 이미 관음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기는커녕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보도에 아까운 생명이 스러지는 경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편 고원의 숲 속에 살게 된 이유도 알고 보면 마음 아픈 일을 겪고 나서 비롯되었다니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모든 것을 감싸주는 안개의 속성을 생각할 때, 마음의 피난처를 찾고 싶었던 선생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할까요.

 

  고원에 살면서 도심 속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박하게 피고 지는 꽃들을 보면서 사유하는 모습이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선생님을 통해서 클레머티스라는 꽃을 처음 알았습니다.

 

 ‘장미처럼 가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꽃을 피우지만 결코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지 않으며, 그윽하고 고상하다. 그러면서도 나름 존재감이 분명하고 사람의 마음을 달래준다. 클레머티스는 실제로는 꽃잎이 없는 모양인데 그럼에도 변형된 꽃받침이 마치 꽃잎처럼 보이는 점도 내게는 매력적이다. ‘여행자의 기쁨이라는 꽃말은 현대식으로 보자면 이민과 난민을 비롯해 자신의 처소를 방문하는 에트랑제’, 즉 이방인을 따뜻하게 반기며 위안을 준다는 뜻이라고 할까.’(P161)

 

  꽃을 보면서도 사람이 사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여행자의 기쁨이라는 꽃말처럼 이민과 난민들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이상적인 국가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세계는 급변하고 몰려드는 이민과 난민들로 인해 시끄러운 상황입니다. 정착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처지와 받아들이는 쪽의 조건 사이에 갭이 크기 때문에 팽팽한 형국이지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듯이 국적의 문제도 마찬가지겠지요. 살아오는 동안 겪어야만 했던 차별에 대한 아픔이 아련하게 전해집니다. 아첨하지도 않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치미를 떼지도 않는, 그저 가느다란 덩굴에서 하늘을 향해 담백하고 커다란 꽃을 피워낸다는 클레머티스처럼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그런 나라는 요원한 걸까요?

 

강상중 씨, 꽃이 왜 피는지 압니까? 인간이 10만 명이 죽든 100만 명이 죽든, 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피어날 거예요. 이렇게 아름다운 색으로 말이에요.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로 사람들을 위로해준단 말이에요. 그저 그것만으로도 사는 의미가 있어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꽃은 피는 거예요.”(P186)

……

꽃은 핀다.

그저 사람을 달래기 위해 꽃은 핀다.

말기의 눈에 보이는 것. 그것이 꽃이라면, 게다가 우리 집 뜰의 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고원에 살다 보니 점점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정원 한구석에 뼈가 되어 흩어져 꽃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면.(P187)

 

  꽃이 피는 이유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아무리 힘든 고난을 겪었더라도 온 인생이 고난 자체인 삶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평범한 우리에게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큰 힘을 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아내와 채소를 가꾸며 땀을 흘리고, 커피를 마시며 함께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평화로운 정경이 보기 좋았습니다. ‘강아지 파였던 선생님이 고양이 루크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가는 과정은 마음 따뜻해지는 한편의 동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소세키의 작품에 나오는 그 고양이의 후손이 아닐까하는 재미있는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사람은 떠났어도 산 사람의 마음을 통해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고 상기하는 것으로 영원한 삶을 누린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자세를 곧추세우게 됩니다. 어쩌면 치열했다고 할 수 있는 삶, 잘 견뎌내며 훌륭하게 살아오셨습니다. 선생님의 70여 년의 삶을 돌아보는 여정에서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의 지난한 인생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의 겨울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표현은 당치 않으십니다. 지금은 100세 시대이며 정신적인 지주이셨던 어머니 덕분에 건강한 몸을 물려 받으셨으니 선생님의 제2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닐까요?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숲 속의 보금자리 만년의 집에서 앞으로가 더욱 행복하고 편안한 삶이기를 기원합니다.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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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 - 좋은 것들을 모으러 떠난 1년
조민진 지음 / 아트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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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그림을 갖고 산다. 그 그림들은 어제의 회고이거나, 오늘의 일기이거나, 내일의 희망이거나, 먼 미래의 꿈이다. 산다는 건 수많은 그림들을 차곡차곡 마음에 남기는 일이다. 런던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이제 내게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벌써 그날의 그림들이 무척 그립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그리운 마음이 새로운 오늘을 떠받치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꼭 런던이 아니어도 된다. 벌써 그리워졌거나 언젠가는 그리워질 나날들을 자신도 모르게 그림처럼 그려서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 채 새로운 하루를 살고 있을 누군가가 이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비슷한 그림들을 품고 산다면, 그 마음들이 이어져 서로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서문에서-

 

 저자 조민진은 기자 생활 14년 만에 런던에서 1년을 보낼 수 있는 안식년을 얻는다. ‘좋은 걸 최대한 모아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는 각오로 수없이 걷고 걸었던 런던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다.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부러움이었다. 1년의 안식년이라니. 출퇴근 시간에 동동거리지 않고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 연결되었던 관계의 울타리에서 빠져나와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 관계 속에서의 가 아닌 본연의 와 진지하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꿈꾸는 미래일 수도 있다는 설렘과 기대를 안고 읽어나갔다.

 

 길치에 마흔이 되도록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저자가 낯선 런던의 삶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은 마치 나의 성취감이기도 한 것처럼 뿌듯한 미소를 짓게 했다. 런던에서의 첫 목표는 길 잘 찾기였다. 걱정하는 남편에게 구글 지도 읽는 법을 배워 갈 곳을 정하고 매일 외출을 한다. 그 간절한 노력은 보름 만에 길 찾기 능력자가 되어 자신감으로 보상받는다. 낯선 곳이 점점 익숙한 곳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 대견하지 않았을까.

 

 새벽부터 밤까지 치열하게 살아야했던 직장인의 삶을 내려놓고 시간의 자유를 얻은 기분은 어떨까. 나 같으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겠다. 물론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도 없진 않겠지. 런던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동을 받고 기다리는 것이 일상인 그들의 시간에 익숙해져 간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사를 쓰면서 바쁘게 살았던 그녀가 갑자기 더 이상 일이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런던에서 일어난 어떤 일을 보고도 관여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소외감을 느끼고 허전해 한다.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이 기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은 소속감을 느끼는 존재라고 했던가. 이런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현지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뉴스 생산자였다가 소비 주체로 살면서 뉴스가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고.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적, 물리적 자유를 얻었지만 외로움은 감수해야 할 자신의 몫이었다.

 

 그림이 있는 미술관을 좋아한다고 했다. 모네의 그림만이 아니라 여러 화가들의 그림이 들어있다. 역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는 글은 술술 읽힌다. 낯익은 그림들이 많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그림을 선택하고 글을 쓴 것인지, 글을 먼저 쓴 다음 적당한 그림을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조화로움에 감탄했다. 오랫동안 정제된 글을 써 온 기자라는 직업의 내공일까. 역사와 정치, 문화가 적절히 어우러진, 마치 취재한 듯 생생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고 그림이 쉽게 읽혔다.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 No Woman, No Cry

 

 영국 화가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의 작품이다. 인종차별 범죄의 희생자였던 18세 흑인 청년 스테판 로렌스의 죽음 앞에 바친 그림이란다. 자메이카 출신 음악가 밥 말리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그림의 주인공은 희생자 청년의 어머니의 모습이다. 사건의 배경을 알고 나면 그림의 의미가 환해지고 비로소 공감하게 된다. 그림 한 점을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을 알고 공감하는 것이다.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다.

 

 걸으면 많은 게 좋아졌다. 가끔씩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었고, 낯선 곳을 찾아내는 성취감도 생겼으며, 글쓰기에 좋은 소재나 새로운 계획들이 번뜩 떠오르기도 했다. 지도를 보고 걷는 건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가능했다. 하늘과 구름과 강처럼 언제나 주변에 있는 것들을 새삼스럽게 쳐다보게 됐고, 목적지를 찾으려는 의지를 담담하게 실천하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게 됐다. 내가 가는 길을 스스로 찾는 건 내가 나를 믿는 일이었다. 나는 길치가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 지도를 읽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을 뿐.(P93)

 

로런 킬리 「모두 함께 걷기」

 

I walk so much that my calf muscles have become strong and well defined.

…… I an the boss of me.

(나는 너무 많이 걸어서 종아리 근육이 점점 강해지고 뚜렷해졌다.

…… 나는 나의 보스다.)(P95)

 

 보는 걸로 만족했던 그림을 배우기 위해 미술학원에 등록하고 패션쇼를 본다. 영어공부를 하고 처음으로 책 집필을 결심하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피트니트센터에 등록한다.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40만원 하는 오페라를 관람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한 가지씩 경험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언어 실력을 키운다. 놀라운 건 직장에 다닐 때의 루틴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런던에 가서도 유지했다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알차게 1년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한정된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은 이런 것이 아닐까 . 기자생활을 하면서 철저하게 굳혀진 부지런한 습관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처음 간 런던에서 처음 쓴 책으로 생생하게 런던을 보여준다. 정확하고 반듯한 글을 써야 하는 기자인 저자에게 이런 감성이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그리움 가득 품은 유려한 글을 읽노라면 런던으로 막 달려가고 싶어진다.

 

 그림에 관심이 생긴 내게 시선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미술사학자 제임스 엘킨스의그림과 눈물을 언급하면서 작품과 강렬한 만남을 나눌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한다. “미술관에는 혼자 가라” “모든 것을 보려고 노력하지 마라등 마지막 조언은 충실하라는 것이었는데 일단 그림 한 점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보러 오겠다고 자신과 약속하라고 했단다. 그림을 보고 사진 한 장 찍고 휙 지나가는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림 한 점을 보는데 28초면 끝난다고 했다. ‘다시 보러 오겠다는 약속’, 정말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자주 생각하고 들여다보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릴 테니까.

 

귀스타브 카유보트 「파리 거리, 비 오는 날」

 

 읽는 내내 부러운 마음 일색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런 휴식을 누릴 만했다. 런던에서 1년은 그녀에게 더 큰 꿈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제대로 힘써 본 적이 있었을까 돌아보게 했다. 간절함이 부족해서 인지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미루던 나를 본다. 역시 좋은 기회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부러워만 하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나도 정신 바짝 차리고 좋아하는 일을 모으면 된다. 아직 내게 정해진 1년은 없으니까 우선은 내 자리에서 그림을 그려보려고 한다. 켜켜이 쌓인 그림들을 언젠가 쫙 펼쳐 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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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제3판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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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초판이 나오던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던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20대에 감옥살이를 시작하여 40대가 되어 나온 저자의 삶이 어떤 사연인지 궁금했고 아마도 제목에서 사색이라는 단어에 끌려서 읽게 된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신영복 선생이라는 한 인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고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도 어울리려고 하는 열린 마음, 부단히 학문에 정진하는 올곧은 지식인의 면모 등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속박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살고 있으면서도 소중한 삶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다 볼 수 있었다.


 영인본엽서의 서문에서 20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타난 선생을 본 친구들은 그의 변함없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2020일을 견디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족들의 끊임없는 헌신과 사랑도 물론이거니와 선생의 견고하고 담대한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27년 감옥살이를 하고도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를 떠올렸다. 어떤 것에든 감사하는 마음을 붙여서 견뎌냈다는. 모두 자신 앞에 던져진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면서 어떻게든 결국 살아남겠다는 초월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신영복의 엽서에서 뽑은 230장의 내용과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썼다는 사색노트가 추가된 이 증보판으로 20대와 30대 초반의 선생의 사색을 접하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실린 모든 글은 연월일의 순서로 편집하였으며 1969년부터 1988년까지 20년 동안의 기록이 거의 망라된 것이다.

 

 

 ‘오늘은 다만,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지금 현재를 충실히 살라고 하는데 단지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라니. 또 희망적이어야 할 내일은 어제의 내일일 뿐이다. 내일도 또 내일의 오늘일 뿐이라는 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처한 20대 청년의 고뇌가 이 그림에 너무도 절절하게 나타나 있다. 조금 서투른 듯 보이는 그림은 뒤로 갈수록 솜씨가 붙어 제법 감탄하게 하는 그림으로 나타나 미소 짓게 한다.(전에는 그림을 본 적이 없었는데 깨알처럼 빼곡히 쓴 단정한 글씨와 엽서의 그림을 보게 된 것도 내겐 큰 행운이다.) 마치 옥살이의 달인이라도 된 것처럼 삶에 달관한 듯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의 저력을 느낄수 있었다.

 

…… 수인의 군집 속에서 흙처럼 변함없는 인정(人情)를 만난다. 이러한 인정의 전답에 나는 나무를 키우고 싶다. 장교 동()에 수감되지 않고 훨씬 더 풍부한 사병들 속에 수감된 것이 다행이다. 더 많은 사람, 더 고된 생활은 마치 더 넓은 토지에 더 깊은 뿌리로 서 있는 나무와 같다고 할 것이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P53,55) -니토(泥土) 위에 쓰는 글 -


 수감 직전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었지만, 거칠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교도소에서 일반 사병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햇볕 좋은 자리를 선택할 수 없는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신에게 내려진 벌을 달게 받겠다는 굳은 다짐이 엿보인다. 참담한 슬픔도 아주 작은 기쁨으로 위로받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알고 보면 우리는 작은 기쁨으로 힘을 얻어 삶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불모의 영토마다 자리 잡고 있는 과거라는 이름의 숲은 실상 한없이 목마른 것입니다. 그늘도, 샘물도, 기대앉을 따뜻한 바위도 없습니다. 머물 수 있는 곳이 못 됩니다. 나는 벽 앞에 정좌하여 동공을 나의 내부로 열기로 하였습니다. 내부란 과거와 미래의 중간입니다. 과거를 미화하기도 하고, 현재를 자위하기도 하고, 미래를 전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색이 머릿속의 관념으로서만 시종(始終)하는 것이고 보면, 앞뒤도 없고 선후도 없어 전체적으로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키우려 합니다. …… 

 이 나무는 과거에다 심은 나무이지만 미래를 향하여 뻗어가야 할 나무입니다. 더구나 나는 이 나무에 많은 약속을 해두고 있으며 그 약속을 지킬 열매를 키워야하기 때문에 당장은 마음 아프더라도 자위보다는 엄한 자기 성찰로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P67~68)- 고성 밑에서 띄우는 글 -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 등 갑작스런 상황에 처한 선생과 가족들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현실을 잊고 싶어 과거를 회상해 본다고 해도 나아질 건 없다. 오히려 더욱 큰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고 과감하게 이전의 나와 다른 나를 만나려고 한다. 자신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심고 그 나무와 수많은 대화를 하고 약속을 하며 실행하는 과정에서 숱한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저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며 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思沈)하여야 사무사(思無邪)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P100)- 생각을 높이고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지만 밖에 나가서 실행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힌다.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내실을 다지고자 한다. 무작정 책을 읽으면서 권수를 채우려는 맹목적인 독서법을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친다.

 

봄철, 가을철은 징역 살기로도 좋은 계절입니다만 이곳에서는 봄 , 가을이 바깥보다 유난히 짧아서 춥다에서 바로 덥다, ‘덥다에서 바로 춥다로 직행해버립니다. 징역 속에는 춥다덥다의 두 계절만 존재합니다. 직절(直截)한 사고, OX식 문제처럼 모든 중간은 함몰하고 없습니다.’(P109)- 봄철에 뛰어든 겨울 -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났다. , 가을은 원래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하는데 징역 살기로도 좋다니. 힘든 현실에서 얼른 벗어나려고 안달하기보다는 상황을 인정하고 좀 더 의미있는 삶을 계획하고 자꾸만 침잠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긍정의 마음이 이것을 견디게 했으리라. 더운 것과 추운 것으로 심플하게 바뀌는 것이 징역살이의 애환일까. 이것뿐이 아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버님, 어머님께

꽃과 나비는 부모가 돌보지 않아도 저렇게 아름답게 자라지 않느냐.”

어린 아들에게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자애로 담뿍 적신 저는, 꽃보다 나비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P121)-꽃과 나비 -

 

늦은 5, 흠씬 비를 맞은 신록이 미리 여름의 웅장함을 선보이려는 듯, 방금도 키가 크는 것 같습니다.

기쁨과 마찬가지로 슬픔도 사람을 키운다는 쉬운 이치를 생활의 골목골목마다에서 확인하면서 여름 나무처럼 언제나 크는 사람을 배우려 합니다.’(P162)-슬픔도 사람을 키웁니다 -

 

 부모님을 비롯하여 형님, 형수, 계수 등 온 가족들의 옥바라지를 받는 선생은 더욱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꽃과 나비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리라고. 어디 선생에게만 해당되는 말일까. 오직 인간만이 과잉보호를 받으면서 점점 나약한 정신이 되는 건 아닌가 싶다. 기쁨이 아니라 슬픔도 한층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무엇이든 구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화단의 맨 앞줄에나 앉는 키 작고 별로 화려하지도 않은 꽃이지만, 열두 시의 나비 날개가 조용히 열려 수평이 되듯이, 팬지꽃이 그 작은 꽃봉지를 열어 벌써 여남은 개째의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한 줌도 채 못 되는 흙 속의 어디에 그처럼 빛나는 꽃의 양식이 들어 있는지…….

흙 한 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내가 과연 한 송이라도 피울 수 있는지, 5월의 창가에서 나는 팬지꽃이 부끄럽습니다.‘(179)-한 송이 팬지꽃 -

 

좁은 거처에서도 예쁘게 꽃을 피우며 제 할 일을 해내는 한 떨기 꽃들과 풀들을 보면서도 부끄러워하는 순수하고 맑은 마음.

 

어머님을 뵙고 난 어젯밤에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죽어서 망우리 어느 묘지에 묻혀 있다면,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쯤에는 어머니의 아픈 마음도 빛이 바래고 모가 닳아서 지금처럼 수시로 마음 아프시지는 않고 긴 한숨 한번쯤으로 달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만, 그러나 어제처럼 어머님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머님께서 손수 만드신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추석에 마음 아프시고 겨울에는 추울까 여름에는 더울까 한밤중에 마음 아프시기는 하지만 역시 징역 속이지만 제가 살아있음이 어머님과 더불어 마음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나 하시는 말씀처럼 부디 오래 사셔서 여려 가지 일들의 끝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P189)-어머님 앞에서는 -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말 밖에는. 매인 몸의 아들을 끊임없이 걱정하는 어머니를 향한 애절한 사모곡이 들려오는 듯하다.

 

나한테 묻는다면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불빛이라고 하겠습니다. 새까만 연탄구멍 저쪽의 아득한 곳에서부터 초롱초롱 눈을 뜨고 세차게 살아 오르는 주홍의 불빛은 가히 겨울의 꽃이고 심동(深冬)의 평화입니다.

천 년도 더 묵은, 검은 침묵을 깨뜨리고 서슬 푸른 불꽃을 펄럭이며 뜨겁게 불타오르는 한겨울의 연탄불은, 추위에 곱은 손을 불러 모으고,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젖은 양말을 말리고……, 그리고 이따금 겨울 창문을 열게 합니다.’(P206)-불꽃 -

 

 ‘덥다춥다로 함축되는 교도소의 추위를 견디게 해주는 불꽃... 

아름다울 수밖에 없겠다. 모두를 따뜻한 난로 옆으로 불러 모을 것이며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며 꽃을 피우겠지. 모진 세월의 징역살이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생각해보면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도 참 컸겠다 싶다.

 

이기(利器)를 생산한다기보다 필요그 자체를 무한정 생산해내고 있는 현실을 살면서 오연(傲然)히 자기를 다스려 나가기도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은 그 속이 빔()으로써 쓰임이 되고 넉넉함은 빈 몸에 고이는 이치를 배워 스스로를 당당하게 간수하지 않는 한, 척박한 땅에서 키우는 모든 뜻이 껍데기만 남을 뿐임이 확실합니다.‘(P212)-나막신에 우산 한 자루 -

 

 문명의 이기로 물질이 넘치는 시대에 아무려면 보통의 인생살이를 하는 사람만큼 많이 가진 사람이 있을까. 징역살이에서도 방을 옮기면서 힘듦을 겪고 빈 그릇의 미학을 떠올린다. 어디서든 사람은 홀가분한 삶을 원하면서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저께 밤중의 일이었습니다. 여태 없던 서늘한 바람기에 눈을 떴더니, 더위에 지친 동료를 위하여 방 가운데서 부채질하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엄상(嚴霜은 정목(貞木)을 가려내고 설중(雪中)에 매화 있듯이 고난도 그 바닥에 한 톨 인정의 씨앗을 묻고 있는가 봅니다. 이러한 인정을 보지 못하고 지레 미움을 걱정함은 인간의 선성(善性)의 깊음에 대한 스스로의 단견(短見)외에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P219)-고난의 바닥에 한 톨 인정의 씨앗 -

 

 여름의 감옥살이의 고충을 말한 바가 있다. 그저 존재 자체로 증오하게 된다는 여름살이의 힘듦을 말이다. 동료들을 위해 부채질하는 선행을 목격하고 선생은 자신의 좁은 소견을 깨닫기도 한다. 고생을 해 본 사람이 같은 처지의 사람을 이해하는 아량도 있을 것이다. 어디가 되었든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

 

옛날에 수염이 길고 지혜 또한 깊은 어느 노승이 이곳을 지나다가 짙게 서린 무기(霧氣)를 보고 이곳에는 훗날 큰 절이 서리라는 예언을 남기고 표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예언이란 엇비슷이 적중하는 데에 묘()가 있는가 봅니다. 수천의 청의삭발승(靑衣削髮僧)(?)들이 고행 수도하는 교도소는 가히 큰 절이라 하겠습니다.

잠 에너지로 어제의 피곤을 가신 이곳의 우리들은 새벽의 청신한 공기를 양껏 들이마시며 기차처럼 어느새 지나가버릴 쾌청한 가을 날씨를 차마 아까워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P222)- 청의삭발승(靑衣削髮僧) -

 

 지난한 옥살이의 세월을 이렇게 이야기로 토해낼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앞에서 나는 가족들의 옥바라지 외에 선생의 강인한 정신력을 더 높이 생각했는데 리뷰를 위해 다시 보면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형수님, 계수님에게 이렇게 자신의 일상을 털어놓을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을 치유하는데 한 몫을 했을 터였다. 세상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다림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유머가 느껴져서 더욱 아련한 마음이 된다.

 

이번 이사 때 가장 두고 오기 아까웠던 것은 창문이었습니다. 부드러운 능선과 오뉴월 보리밭 언덕이 내다보이는 창은 우리들의 메마른 시선을 적셔주는 맑은 샘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창문보다는 역시 이 더 낫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 앞에 조용히 서서 먼 곳에 착목(着目)하여 스스로의 생각을 여미는 창문이 귀중한 명상의 양지(陽地)’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연히 문을 열고 온몸이 나아가는 진보(進步) 그 자체와는 구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형수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새해의 발전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P230)- 창문과 문 -

 

창문으로 토막 난 하늘을 보다가 문으로 걸어 나가서 본 하늘의 느낌은 어땠을까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은 실천의 현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창문의 차이를 이렇게 멋지게 해석하는 선생이었구나!

 

 

육순 노인에서 스물두어 살 젊은이에 이르는 스무남은 명의 식구(?)가 한 방에서 숨길 것도 내세울 것도 없이 바짝 몸 비비며 살아가는 징역살이는 사회 , 역사의식을 배우는 훌륭한 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도덕적 분식(粉飾)이나 의례적인 옷을 훨훨 벗어버리고 벌거숭이의 이() , () , () , ()가 알 몸 그대로 표출됩니다. 알몸은 가장 정직한 모습이며, 정직한 모습은 공부하기에 가장 쉽습니다.’(P266)-감옥은 교실 -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어디서든 어떤 사람에게서든 배울 점 한 가지는 있을 것이다. 자신의 중심을 꽉 붙잡고 긴 세월 동안 사색을 멈추지 않은 선생의 깨어있던 정신에 마음이 아득해진다.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P298)-함께 맞는 비 -

 

 남에게 호의를 베풀면서도 언젠가 되받으려는 마음을 가진 적은 없는지. 아니면 상대의 굴종을 담보로 훗날을 위한 흑심은 없었는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으로 공감과 연대가 확장되는 것이라는 말이 뜨끔한 일침을 준다. 누군가에게 내민 도움의 손길이 결국 자신을 위한 위선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현상은 그것이 개인이든 사건이든, 하나의 단절된 객체로 한정할 수 없으며, 그것에 선행하는 여러 가지의 계기에서부터 그것의 발전, 변용의 가능한 방향에 긍()하는 총합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파악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더욱이 과거란 완성되고 끝마쳐진 어떤 불변의 것이 아니며, 반대로 역사인식은 언제나 현재의 갈등과 관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과거에 투영된 현재이며 그런 의미에서 계속 새롭게 씌어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어떠한 종류의 매스컴이나 미니컴이라도, 그것은 어떤 층을 대표하는 기관지인 법이며, 문제는 그것이 기관지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대표하는가에 있다는 그의 간결하고 적확(的確)한 사회인식이라든가, 어느 사회의 진상을 직시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사회의 밑바닥 인생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라는 소박한 민중의식은 뛰어난 것이 아닐 수 없다 하겠습니다.’(P301~302)- 과거에 투영된 현재 -

 

 선생은 징역살이 초기에 부친과의 편지에서 단지 염려스러운 아들보다는 하나의 독립된 사상과 개성을 가진 한 사람의 청년으로 이해되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단순히 옥에 있는 아들을 염려하는 편지보다는 대화의 편지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선생의 사물을 대하는 감성적인 부분 외에도 사회, 세상을 바라보고 사색한 그분의 생각이 많이 들어있다. 개인이나 사건 등은 단절된 객체가 아니므로 총합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은 개인은 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역사인식은 언제나 현재의 갈등과 관심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한 사회의 진상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직접 방문하여 민중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색한 선생의 이 육성이 두루두루 읽혀져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에 제가 정작 부러워하는 것은 객관적인 처지의 순역(順逆)이 아닙니다. 생사별리(生事別離) 등 갖가지 인간적 고초로 가득 찬 18년에 걸친 유형의 세월을 빛나는 창조의 공간으로 삼은 비약(飛躍)’이 부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비약은 그 어감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곱셈의 논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P318)-독다산(讀茶山) 유감(遺憾) -

 

 유형의 세월 동안 놀라운 업적을 이룬 정약용의 비약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도 옥중에서 많은 책을 읽고 출옥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다수의 저서를 남긴 것도 자신의 내면에 나무를 심고 키웠던 결과가 아니겠는가. ‘온몸으로 세상을 겪으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에 흠모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니 진정한 지식인은 역시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도 다르다.

 

비단 갇혀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많은 사람들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튼튼한 연대감이야말로 닫힌 공간을 열고, 저 푸른 하늘을 숨 쉬게 하며……, 그리하여 긴장과 갈등마저 넉넉히 포용하는 거대한 대륙에 발 딛게 하는 우람한 힘이라 믿고 있습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봅니다.’(P347)- 닫힌 공간, 열린 정신 -

 

 그렇다. 갇혀 있건 나와 있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다. 무관심은 인간의 정을 메마르게 하고 증오를 낳고 나아가서는 범죄를 부르기도 한다. 신영복 선생의 20대 후반부터의 인생 20년을 읽었다. , 이때 나는 몇 학년 이었지? 이때 나는 무얼 했더라? 기억을 떠올리며 읽어나갔다. 다 읽고 나서는 마음이 헛헛했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그분의 출옥을 보셨을까, 옥바라지에 20년을 보낸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등등. 그리고 선생도 세상에 안 계시다. 첫 책을 읽었을 때는 몰랐던 청구회모임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어린이에게 다가가 대화를 할 줄 알았던 열린 마음의 선생의 순수한 마음을 다시금 엿볼 수 있었다. 출간된 지 오래되었음에도 여전히 많이 읽히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아픔이자 우리 시대의 고뇌와 절절한 양심에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감옥이나 바깥세상이나 매 한가지가 아닐까. 어디서든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루어져있지 않은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출구와 입구가 어디인지 모를 만큼 넓은 교도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 너무 심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자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철학자가 있는 걸 보면 무리도 아니지 싶다. 그렇기에 『감옥으부터의 사색』은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에도 진실로 소중한 것이 무언지 모르고 나태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을 번쩍 깨워준다. 어쩌지 못한 세월을 원망하기보다는 글을 쓰고 공부하며 본연의 삶을 살면서 귀한 저서들을 남겼으니 우리에겐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의 다른 책들을 진작 만나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탓하면서 앞으로 그 헛헛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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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와 떠나는 미술관 여행
컬쳐앤아이리더스 기획팀 지음 / 컬쳐앤아이리더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알폰스 무하의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작년엔가 여러 블로그에서 보게 되었고 도서관에서 책 탐방을 하다가 눈에 띄어 읽게 되었다. 표지부터 눈을 사로잡는 책이었다. 꽃 화관을 쓴 아름다운 여인. 무하의 그림의 공통점은 보통의 그림과 달리 화려하고 꽃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물결치는 듯한 긴 머리에서 역동적인 힘이 느껴졌고 정열적인 인생을 그림에 모두 쏟아 부었구나 싶었다.

 

 이 책은 지난 2013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와 유토피아 >을 찾은 관람객들의 뜨거웠던 사랑에 힘입어 2016년 겨울에 새롭게 기획된 <알폰스 무하,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 >을 기념하며 출판되었다고 한다. 아르누보를 표하는 체코의 국보급 화가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알폰스 무하의 일생과 예술사적 발자취를 살펴보는 책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획했단다.

 

 ‘아르누보새로운 예술을 뜻하며 19세기 말 유럽에서 등장한 예술 사조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독일 출신의 딜러인 지그프리트 빙(Siegfried Bing 1838-1905)1895년 문을 연 파리의 화랑 메종 드 아르누보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아르누보 양식은 1890년에서 1910년 사이에 성행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조금씩 다른 형태로 등장한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는 아르누보, 영국과 미국에서는 모던 스타일, 독일에서는 유겐트슈틸,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체시온, 이탈리아에서는 스틸레 리베르티로 각 나라의 문화와 특성에 따라 발전했다. 나무의 줄기, 꽃과 같은 자연의 소재를 모티브로 활용한 유연한 장식성이 특징이며, 회화는 물론 건축, 가구 디자인, 생활용품 등으로 확대되었다.

 

 기존의 예술을 거부한 세기말의 새로운 양식이던 아르누보를 독특하게 표현해낸 예술가들이 주목 받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예는 빅토르 오르타의 카셀저택, 엑토르 기마르의 파리 지하철 입구,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 바트로를 들 수 있다.

 

 알폰스 무하는 1860724일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받던 슬라브 지역의 하나인 모라비아 남쪽의 작은 도시 이반치체에서 평범한 가정의 여섯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감각이 남달라서 그림을 잘 그렸고 노래도 잘 불러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모라비아의 브르노에 위치한 성 베드로 성당과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성당 건축과 회화, 조각, 장신구를 가까이 보고 자란 것이 무하에게 지속적인 예술적 영감이 되어 여러 작품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하루의 시간: 깨어나는 아침, 낮의 밝음, 저녁 사색, 밤의 휴식. 1899. 채색 석판화.

하루의 시간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이 참으로 탁월한 상상력의 대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꽃 장식과 긴 머리카락의 역동적인 표현은 여러 작품에도 나타나는 주된 특징이다.

 

연극 포스터들이다.

왼쪽부터 <카멜리아(동백꽃 부인)>, <로렌차초>, <햄릿>, <메데>, <라 토스카>

 포스터는 당대 연극계의 여왕으로 불리던 사라 베르나르는 르메르시에 인쇄소에 연극 <지스몽다>역을 위한 포스터를 주문했는데 모든 직원이 연말 휴가를 떠나 무하만 남아 있었는데

우연히 포스터 디자인을 맡게 된 무하의 손끝에서 모두의 탄성을 자아내는 결과물이 탄생한다.

1895년 새해 첫날 <지스몽다>가 엄청난 성공을 이루면서 사라 베르나르는 무하에게 6년간의 전속계약을 의뢰하였고 위의 연극 포스터 제작으로 이어진 것이다.

 

장식 패널: 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 1896. 채색 석판화.

 텍스트 없이 순수한 예술적 감상과 벽장식을 위해 제작되었다. 무하는 아름다운 미술작품을  통해서 삶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대량생산으로 대중들과 가까워지고자 노력했다. 특히 무하의 작품은 일반 대중이 대상이어서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예술이었다고 한다.

 

백일몽. 1897. 채색 석판화.

 

"예술가의 임무는 대중이 아름다움과 조화를 사랑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각종 포장 디자인.

무하의 예술적 영감은 대중 문화 속에 파고 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 행사, 각종 서비스뿐만 아니라 소비 물품인 향수와 담배 종이, 맥주, 샴페인 초콜릿, 비스킷 등에서도 만날 수 있다.

 

 

무하가 디자인한 스테인드 글라스.

 체코의 프라하성 안에 위치한 성 비투스 대성당은 프라하를 대표하는 신 고딕 건축물이자

무하가 디자인한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 원작을 살펴볼 수 있는 건물로 유명하단다.

습작의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도 싣고 있어서 실제 모습의 그림과 비교하면서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밖에도 무대 디자인과 의상 디자인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뉴욕의 독일극장에서 작업하던 중에 의뢰받은 셰익스피어 연극의 의상 디자인을 위한 연필과 수채화 스케치들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는 무하가 빈과 파리에서의 경험으로 무대 의상 디자인에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슬라브서사시 20편 대작의 일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되면서 무하의 조국은 1918년 10월 28일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새로 건국된 조국의 발전을 위해 도움을 주고자 했던 무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첫 우표와 지폐를 디자인해 달라는 제안을 수락한다. 또 국가의 휘장이나 경찰의 단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의 상징물이 무하의 손길을 거쳐 나온다.

 

 그리고 1912년에 시작되어 25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 슬라브서사시는 무하가 그리던 꿈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으며 1928년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10주년을 기념으로 <슬라브서사시> 전시가 열렸고 그후 작품들은 프라하 시에 공식적으로 기증되었다.

 

 독립을 이룬 지 20년도 지나지 않은 1938년 뮌헨협정이 체결되면서 독일 나치의 통제를 받게 된다. 게슈타포가 첫 번째로 체포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무하였고 심문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열정적인 예술혼으로 살았던 무하는  1939년 여름 79세의 나이로 영원히 잠든다.

 

 아르누보의 별은 그렇게 졌지만 무하 재단에 의해 1998년 체코 프라하에 설립된 무하 미술관은 세계 유일의 박물관으로 무하 생애 전반에 걸친 수많은 작품이 전시 및 보존되고 있단다.

한 해 1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무하 미술관은 체코공화국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미술관 중 하나이고 체코를 방문한다면 꼭 들러야 하는 프라의 명소가 되었다.

 

무하 미술관 내부.

미술에 조금씩 다가가는 중이다.

예전 같으면 도서관에 가더라도 미술쪽은 들여다 본 적이 없는데 요즘 신기하게도 자주 기웃거리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듯이 누가 아는가. 미술이 나에게 어떤 영감을 줄 지.

체코의 프라하는 내가 좋아하는 유럽 작가 프란츠 카프카와도 밀접한 도시인데 언제 갈 수 있을까.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그때는 무하 미술관에도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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くじけないで (單行本)
柴田 トヨ / 飛鳥新社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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