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
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 나탈리 이브 개럿 엮음, 정윤희 옮김 / 혜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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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인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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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 -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
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 나탈리 이브 개럿 엮음, 정윤희 옮김 / 혜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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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들은 때로는 고독 속에 깊이 몸을 담그기도 하고, 때로는 소외감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 과정을 통해 각자 자아를 발견해 갔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외로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그 누구도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지 못한다. 외로움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고독의 순간을 통해 내면이 다시 차오르는 경험도 한다.

이 책에 실린 22편의 가슴 시린 이야기를 읽으며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길 바란다. 혼자라는 것과 외로움, 고독, 쓸쓸함은 비슷한 말들이나 그 결은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부디 분별해 내길 바란다. <ALONE>은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은 사람, 고독 앞에 담대해지고 싶은 사람 혹은 은밀하게 고독을 갈구하는 사람 모두를 환영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작가 줌파 라히리는 인도와 미국, 둘 중 어느 곳도 완전히 버리거나 속하기를 거부했던 부모님의 태도야말로 자신이 글쓰기를 통해 성취하고자 했던 핵심적인 가치라고 말한다. 줌파 라히리는 비록 어느 곳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지만, 이 조건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쓴다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 중 하나다. 소설을 쓴다는 건 실재와 거의 다름없는 것을 새롭게 구성해 내고, 다시 배열하고, 재조직해 내는, 지극히 의도적인 행위다. 심지어 실력이 형편없고 신뢰가 가지 않는 작가들에게서도 이런 의지는 발견되기 마련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내 말을 들어봐."라고 말하는 것, 이렇게 듣기에서 말하기로 한 단계 도약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제 아버지가 자신이 지녔던 현실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벼랑을 향해 자연스럽게 이끌렸다는 것을, 그래서 어딘가 속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안정감을 과감하게 던져 버리고 자신의 가족과 조국을 떠났다는 것을 안다. 이 때문인지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했다. 부모님이 떠나온 고향이든, 우리 눈앞에 펼쳐진 미국이든 말이다. 작가가 되고 책상이 비로소 나의 집이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내가 속할 곳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영토이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점령당했다 버려진다. 나는 나의 작품과 내가 창조한 인물들에게 속해 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선 낡은 것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작가 마야 샨바그 랭은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를 고집스럽게도 놓아주려 하지 않고 함께 지내다가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마야 샨바그 랭은 온갖 걱정에 사로잡힌 채 불확실항 상황의 이면에도 좋은 결과가 존재할 수 있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기애를 통해 유익함을 얻는다는 마야 샨바그 랭의 글에 공감한다.

"주방에 서서 냄비를 휘젓고 있는 내 모습이 왜 그렇게 절망스럽게 느껴졌는지 이제야 할 것 같다. 스스로를 위해 더 많은 것들을 상상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서둘러 나 자신을 불행한 운명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내 생각에, 이것이야말로 외로움이 지닌 가장 억압적인 특징이다. 상상력을 제한하고, 삶은 결코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 속삭이며,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꿈꾸지 못하게 스스로를 얽매이는 것. 외로움은 그렇게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날, 하늘은 반짝이는 푸른빛을 뿜어낸다. 밝은 빛 아래 우뚝 서는 것, 이것이야말로 엄마가 내게 원했던 모습이다. 이제 나는 놓아 보낸다고 해서 잃는 건 아니란 걸, 놓아 보내는 행위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안다. 이렇게 다시 자신과 재회하는 일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실로 엄청난 기쁨이다."

작가 헬레나 피츠제럴드는 여성은 지나치게 빨리 유년기에서 쫓겨나 성인으로서 막중한 사회적 책무를 짊어져야 하는 상황 속으로 억지로 떠밀려 들어간다고 말한다. 헬레나 피츠제럴드는 혼자 사는 삶은 내 몸을 사회적 요구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기심과 침묵을 차곡차곡 쌓아 두어도 상관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헬레나 피츠제럴드는 남편과 함께 살기로 한 선택에는 만족하지만, 그 선택이 나 자신보다 더 강력하고 덜 자비로운 힘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는 식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며, 한편으론 자신이 그런 통념을 영속시키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헬레나 피츠제럴드는 사랑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가정을 선택하는 행위는 나와 많은 이들을 위한 가치 있는 희생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희생이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혼자 지낸다는 것은 벗어나야 할 공포가 아니라, 희생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얻기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상과 같다. 내게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상태가 아니라 일종의 타협이었다. 남편과 함께할 때, 세상이 덜 냉혹하고, 더 관대하며, 덜 위험하고, 덜 팍팍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난관을 헤쳐 나가며 일종의 뾰족한 모서리를 조금씩 완만하게 다듬어 갔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서 비롯되는 따스함과 지지가 일상생활 속에서 일관성 있게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것을 포기한 대가로 얻어 낸 결과였다. 바로 '혼자인 삶' 말이다."

"여성으로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가족이나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의미가 있다. 우리 여성들은 종종 완벽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 내린 판단이 거부당하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일단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나면 포기하기가 어렵다. 내가 성숙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자연스러베 넘어가지 못하고 이 소중하고 얻기 힘든 것을 조금씩 떠나보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혼자 사는 삶을 놓아 주는 과정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삶에 나 자신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나의 일부는 여전히 혼자 지내는 삶이 지닌 강렬한 즐거움을 향해 끊임없이 되돌아간다."

작가 에이자 게이블은 유산과 임신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몸에 대한 상태를 비밀로 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에이가 게이블은 중요한 건 슬픔이 찾아왔을 때 숨기는 것이 아니라 괜찮은지 물어봐 주는 것이었고 말한다. 그리고 에이가 게이블은 슬픔으로 인한 외로움은 누구라도 혼자 견디기 힘든 법이므로 동지가 생긴다는 건 든든한 일이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에이가 게이블은 우리 몸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비밀을 담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유산이 놀랄 만큼 흔한 일이라는 사실이 애도의 과정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런 힘든 과정을 견뎌 냈는데, 그 과정이 어땠는지 솔직히 털어놓는 사람은 고작 몇 명뿐이라고?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마음속에 비통함을 품고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놀랍지만,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몸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도 하필 여성의 몸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외로움이다."

"삶은 고통이고, 고통은 집착에서 오며,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 배우자와 자식들, 말 못하는 반려동물들과,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행성들, 때로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태아에게까지 집착한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모두는 이런 대상들을 향한 집착의 끈을 풀고 보내 주어야 할 때를 맞이한다. 우리는 모두 불가사의한 효소와 호르몬, 분노와 욕망이 한데 뭉쳐 만들어 낸 비밀 그 자체다. 배 속에서 서서히 자라나고 있는 아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도 말 그대로 나는 아이에게 집착하고 있다. 하나의 비밀스러운 육체가 또 다른 비밀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서 너에게로, 나의 낯선 육체로부터 너에게로, 나의 외로움으로부터 너에게로 다가가려 노력하는 것이다. 내 배 속에서 느껴지는 통즈은 바로 그 노력의 과정이다."

작가 앤서니 도어는 인터넷 중독과 맞서 싸웠던 경험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여 흥미롭다. 앤서니 도어는 인터넷의 세상이 아닌 지금 내가 속해 있는 현실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의 전부는 옆에서 걷고 있는 아이의 눈동자를 저녁 내내 들여다보는 것뿐이다."라는 앤서니 도어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내 속에는 사악한 제2의 자아가 숨어 있다. 햇빛에 굶주린 이 천박한 자식은 내 심장의 북쪽 어딘가에 살고 있다. 높은 매일 조금씩 더 강해지고 있다. 이 녀석은 잡초이고, 넝쿨이다. 굵은 철사처럼 내 두개골을 칭칭 감고 있다.

편의상 이 녀석을 'Z'라고 부르자. 나는 일기예보를 즐겨 보지만 Z는 어떤 날씨에도 꿋꿋이 살아남는다. 나는 스키를 좋아하지만 Z는 뉴스 읽는 걸 좋아한다. 내가 정원에서 잡초를 뽑고 있으면 Z가 나타나 내 귀에 대고 기후 변화와 핵 확산, 불어나는 건강 보험료에 대해 속삭인다."

"Z는 시골이라면 질색을 한다. Z는 링크드인, 트위터, 구글을 워한다. Z는 내가 당장 휴대전화를 들고 이메일을 확인하길 바란다. 그 대신 나는 아들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 크고 어둡고 묵직하게 자리 잡은 계곡 위로 구름들이 떠가고, 황금빛 햇살이 낮게 내리비춘다. 우리 집 아래에 있는 협곡에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세이지가 자욱하게 피어 반짝이고 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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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없는 사진가
이용순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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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수감생활을 하면서 사진 대신에 선택한 글들을 통해 삶을 성찰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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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없는 사진가
이용순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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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용순은 사진가이다. 미국 시카고의 콜롬비아 칼리지와 뉴욕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정통 포토그래퍼이며, 미국과 서울에서 8회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는 중견 작가이다. 이 책의 출간에 즈음해 열리는 아홉 번째 개인전에선 특유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내면의 풍경과 문학적 서정의 순간들을 포착해내고 있다.

어느 날 카메라가 들려있어야 마땅할 사진가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알고 지내던 어떤 이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해준 것이 빌미가 되었다. 범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 일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이 어리숙한 예술가는 2년여의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책 <카메라 없는 사진가>는 그 낯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록이며, 영상에 대한 감각을 문자의 형식으로 풀어낸 또 다른 창작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시와 산문으로 옮겨진 그 결과물이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 탄탄한 문장력과 문학적 안목이 눈길을 잡아끈다. 책에는 짙은 서정성을 바탕으로 내면의 심층에 다가가는 깊은 시선이 돋보이는 저자의 아름다운 사진 작품 20여 점을 수록하고 있다. 책의 전반에 흐르는 일상과 주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섬세한 관찰, 따뜻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예리한 감수성이 빛을 발하는 매우 독특하고도 매혹적인 책이다.

이 책은 '1장 슬픔을 공부하는 시간, 2장 카메라가 없는 사진가, 3장 세상의 바닥이라는 교실'이라는 3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사진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록이며 이는 시가 가지는 기본 형태와 일치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시가 언젠가는 사진으로 환원되어 보이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요즘의 나는 종종 시를 쓴다. 나는 결단코 나의 시가 언젠가는, 누구에게는 사진으로 환원되어 보이기를 바란다. 나는 사진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진가라는 이유로 나는 추상의 단어를 시로 쓰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시로 환원시키는 것에 애를 먹는다. 예컨대 사랑, 행복, 슬픔을 바로 시로 쓰지 못하고 대신에 사진이 그러하듯이 다른 대상을 선택하여 그것을 표현해낸다. 예를 들어서 여름 장마철에 드러난 햇살을 통해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며 이 표현의 양식은 사진과 시가 동일하다. 그래서 시는 사진이다. 그러므로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나는 사진가다."

타인의 범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온 저자는 징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가슴에 붙은 번호로만 살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다가도 저자는 누군가에게 따스함이 전달되어 오면 자신의 한쪽을 내어주는 것이 감옥에서의 생활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감옥 안에서 순박하고 어수룩했던 사람의 장점을 많이 보았고, 끝까지 자신을 모른채로 출소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감옥에서의 수감 생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나오지 못하게 가두어놓고 구멍을 통해 먹이를 밀어 넣어주는 배식구의 시스템은 언제부터였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저자는 감옥에서 배식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자신이 예전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들의 잔임함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에게는 밥상이라는 게 있다. 밥상은 이제 구별의 도구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소중한 표식이다. 오늘도 배식구를 통해서 우리들의 먹이가 들어온다. 그러니 배식구는 생명이기도 하다. 벽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밥을 먹고 하루를 보냈다. 이제 밤이 오기에 그 배식구를 닫는다. 오늘의 용도를 다한 것이다."

저자는 감옥 안의 중앙통로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문이 나타나고, 초록색 바닥 중앙에 노락새 선이 나 있어 좌우를 가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에게 이 노란 선은 사색하는 길이며, 짧은 길을 오가며 좁은 공간에서 드넓은 세상과 우주의 깊이를 걷는 공간이라고 이야기한다.

"노동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지친 몸을 끌고 그 선을 따라 방으로 들어온다. 같은 선이지만 나갈 때와 들어올 때의 의미는 또 다르다. 들어올 때는 달력에 곱표를 하나 추가할 수 있다는 소소한 즐거움이 덤으로 주어진다. 인간이 죽는 것은 정해져 있지만, 그 날짜가 정해진 것은 아니어서 두려움 없이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이곳에선 나가는 날짜가 정해져 있으므로 두려움 없이 버틸 수 있다. 사람들은 이 생활을 삶의 범주에서 제외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시간이 흐르는 것에 대해 위안을 얻는다. 사실 그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리도 하다."

저자는 종종 감옥 안에 있는 자신의 상황이 더럽다는 생각을 하지만 자신에게 선택은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얼마나 자유로운 시간을 누렸는지 반추해 본다고 이야기한다. 진정 예술가가 되고 싶었으나 어딘가에 멈춰 서게 된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써내려가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예술은 다분이 위선적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다. 내게도 예술은 온전히 머물지 않았으며, 백지에 남긴 타인의 낙서와도 같았다. 사물과 인식의 대상에서 나는 가슴을 다 열어젖힌 것은 아니었다. 이제라도 나의 행로다 내가 꿈꾸던 방향이었으면 좋겠다. 내 예술의 세계가 가슴을 열어젖힌 것이라면 더욱 좋겠다."

저자는 교도소 수감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얻어지는 것들은 교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고, 도서관에서도, 책을 읽어서도 가질 수 없는 그런 귀중한 습득물이었다고 말한다. 교도소의 노역을 선택하면서 살아있는 생명체에서만 뿜어져 나오는 그런 지식들을 하나둘씩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교도소의 노역은 강제규정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강제인 곳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선택에 의함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노역을 선택한 곳이고 삶을 선택한 것이며 그로 인해 얻어지는 참지식을 선택했다고 믿는다. 나는 얼마나 이 생활이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나의 완성에 보탬이 되는 시간이라고 빋으며 다시 공장으로 향한다."

저자는 감옥 안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들과 함께 나의 슬픔과 고통의 기억을 버리려 한다고 말한다. 정말로 세상의 이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나를 알아버렸으며 나의 비워짐이 다시 무언가로 채워져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이것들의 버려짐으로 내 영혼이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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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잔혹사편 - 벗겼다, 세상이 감춰온 비극의 순간들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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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성찰할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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