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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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뿌리를 박고 살아가고 있는 나지만 나는 서울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그저 한부분인 지금 ‘현재’만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과거’는 그렇게 옛날 사진, 옛날 프로그램을 통해 간접적으로 눈으로만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로만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MBC에서 ‘ 그 때를 아십니까 ’ 란 프로그램을 했었다. 짧고, 흑백 화면으로 된 프로그램이었는데, 엄마와 나는 열혈 시청자였다. 흑백 화면 속의 그 모습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기에 호기심이 일게끔 했었고, 낯선 옷의 순박한 사람들은 나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이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엄마와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점이었다. 함께 보면서 항상 엄마는 ‘엄마가 어렸을 때는 말야...’ 혹은 ‘ 그래 저때 저랬어... 엄마도 저렇게 살았어.. ’ 하면서 당신의 지난 시절 이야기를 조곤조곤 해주시는데 화면과 함께 전개되는 이야기에 나는 엄마의 모습을 투영하며 그 시절의 삶을 생각해보곤 했었다. 

내가 그 동네에 살던 무렵에는 수돗물은 그럭저럭 나오는 편이었지만 말 그대로 그럭저럭이어서 물이 끊기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면 가끔씩 급수차가 올라오곤 했는데, 그 때에는 온 동네 부녀자와 아이들이 ’빠께쓰‘ - 서양의 ’양‘과 물동이의 ’동이‘를 합친 ’양동이‘라는 합성어는 나중에야 만들어졌다-를 들고 나와 급수차 앞에 길게 늘어섰다. ’ (p308)

그런데 이 책 안에 엄마가 살았던 시절의 모습이 있었다. 이 글을 읽으며, 물동이를 지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보며 나는 마치 내 옆에 엄마가 앉아 내게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아.. 우리 엄마도 이렇게 살았겠구나!’ 하며 다시 한번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게 보통 사람들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눈으로만 보고 머리로만 이해했던 ‘과거’가 왠지 마음에 와 닿아 이해되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은 깊다>는 엄마의 세대보다도 먼저, 앞서 시작된 더 깊은 서울의 태생부터 함께 한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 지금의 서울로 천도한 그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양반과 중인, 천민 등 계급이 있었지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었던 그 시절부터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 변화에 익숙해지려고 하던 서민들의 모습이 있던 조선 후기,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 이후 서울의 모습까지 600여년의 시간이, 그 시간동안 서울이라는 공간의 변화된 모습이 이 한권의 책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적, 공간적 변화된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됨을 따라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런 모습에서 파생되는 ‘단어’ - 예를들어, [촌뜨기], [무뢰배], [땅거지]- 의 의미, 어원을 찾기도 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사라져 가는 문화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기도 했다. 이만큼 방대한 자료의 서울을 담은 책, 그러면서도 대중에게 쉽게 다가온 책은 아마 이 책이 처음이지 않나... 싶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참 생각이 많아진다. 이 책에는 우리네 ‘과거’사만, 아련한 추억의 서울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포화 때문에, 정권의 독재 때문에, 가진 자의 욕심 때문에, 여러 이유 때문에 무한정 뚱뚱해져만 가고 가슴에 문화를 담지 않는, 소비할 줄만 아는 서울의 ‘현재’도 보이고, ‘과거’와 ‘현재’가 모여 만들어갈 ‘미래’의 서울도 그 속에 있었다. 

숨 가쁘게 살아오느라 뒤돌아 볼 틈 없었던 우리에게 한번쯤 되돌아 볼 시간을, 그래서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새로이 각오를 다질 것은 다지고,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을 알아볼 수 있는, 숨고를 시간을 가지는 건 어때, 하고 권하는 책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나의 뿌리에 대한 지식의 깊이를 더해주는 책이었다. 그래서 나도 ‘서울’을, 그 속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서울 안에서 내가 지금 만들어 가고 있는 현재는 과연 미래에 어떤 ‘과거’로 기록될까?
‘서울’의 본뜻이 ‘ 높이 솟은 울’, 즉 신과 가장 가까운 도시, 가장 신성한 공간이고 정치와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라는 뜻이라는데, 그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계속 할 수 있기를.. 저자뿐 아니라 나도, 서울을 아끼는 보통 사람으로서 서울에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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