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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ㅣ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도대체 언제쯤 감정의 폭발이 일어날까?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곧 뭔가 일이 터질것 같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심연`은 작가의 유명작인 리플리
시리즈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어떤 느낌인지 잘 알것이다.
이 책 역시 리플리에서와 같이 편안한 일상 속에서 느닷없이 순식간에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는데 주인공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폭력을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어떤 부분에선 그의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품위있는 출판업자 빅터는 유산을 받은 덕분에 생활에 어려움 없이 넉넉하게 살아갈수 있는 30대 중반의 신사이다
달팽이를 기르고 여러가지 화초와 허브를 기르는 취미를 가진 조용하면서도 체면을 중시하는 평범한 남자이지만 그의 아내 멜린다는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젊은 남자들과 시시덕거리길 좋아하는 화려한 여자
그래서 두 사람은 부부이지만 어느샌가 각자의 침실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멜린다를 보면서도 빅터는 일반적인 남편들과 다른 반응을 보여준다.
화를 내거나 제재하지않을뿐 아니라 상대남자를 자신의 저녁식사에 초대하기도 하고 아내가 눈앞에서 상대방과 수작을 부려도 화를 내지않고
참아내며 모른척 외면하고 있다.
책의 전반부에는 이들 부부의 기묘한 일상을 그리고 있는데 도대체가 자신의 눈앞에서 아내의 바람기를 보면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않고 오히려
그들을 관찰하면서 다음 행동을 그려보는 그의 태도를 보면 답답하다 못해 짜증이 나기도 하고 왜 화를 내지않나 의문이 든다.
이런 답답함이 극에 달하다 못해 이젠 멜린다가 아닌 빅터에게 화가 날 즈음 느닷없이 순식간에 살인이 일어난다
마치 침잔해 가라앉아 있던 진흙이 약간의 움직임에도 흙탕물이 되듯이...
그리고 이어지는 아내와 이웃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을 달리면서 평소 빅터의 평판에 대해 알수 있다.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있던 남자가 사고를 당해 죽었는데 그 사람과 가장 마지막에 있었던 사람이 바로 남편이라면 누구나 일단 그를 의심할만한
정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를 의심하기는 커녕 아내의 당연한 의심의 시선에 불편함을 호소할 뿐 아니라 결국에는 그녀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오히려 남편인 빅터에게 더더욱 동정의 시선과 지지를 보낸다
아내 멜린다의 입장에선 펄펄 뛸만한 상황이고 이런 아내의 의심은 결국 두 사람을 더더욱 파국으로 몰아가는 단초가 된다
첫살인이 벌어진 후에서야 빅터의 잔인하지만 냉정하고 칼같은 예리함이 빛나는데 아내의 모든 행동을 미리 예측할 뿐 아니라 왠만한 형사보다 더
날카로운 추리솜씨로 모든 의심에서 벗어나는 침착성을 보여주고 있다.
빅터의 이런 성정은 그의 취미를 보면 잘 알수 있다.
오랜시간을 공들여 달팽이를 번식하고 보살피며 키우는 걸 보면 그가 참을성이 지극히 강하고 목표의식이 강한 사람임을 알수 있는데 그런 성향은
다른 사람이라면 도저히 참아낼수 없는 아내의 연이은 부정과 바람에도 화를 내지않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걸로 표출될 뿐 아니라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런 살인을 저지른 후에 침착하기 그지없는 행동으로 위기상황을 벗어나는 데에서도 그의 이런 성정은 도움이
된다.
서로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부부가 서로 못견뎌하다 끝내는 파국을 맞는 과정이 참으로 치밀하면서도 평화롭고 조용한 가운데 점점 숨을 조여오다
마침내 모든것이 끝난후엔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게 할 정도로 압박감이 상당했다.
잔잔해보이는 물 밑이 침잔물이 잔뜩 쌓여 약간의 흔들림으로도 앞이 보이지않는 흙탕물이 될수 있음을 보여주는 `심연`
이 책이 쓰여진 시대적 상황과 당시의 분위기를 모르고 지금의 상황에 맞춰 본다면 도저히 이 부부를 이해하기도 쉽지않을 뿐 아니라 책내용의
이해가 쉽지않을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 두사람의 파국이 오히려 안도를 느끼게 했다.마침내 전쟁이 끝났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