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종말,소녀가 구원하다

스완 송 1 - 운명의 바퀴가 돌다
로버트 매캐먼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1년 6월

한동안 세기말을 다룬 작품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던 때가 있었다.

디스토피아를 다룬 그 작품들도 유행이 있어 핵폭발이나 바이러스 혹은 인공지능 로봇에 의해 인류가 멸망하다시피하고 살아남은 얼마안되는 인간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번갈아 가며 출간되고 인기를 끌었었는데 요즘은 조금 시들해진 느낌이다.

이 책 스완송은 `소년시대`로 인기를 끌었던 로버트 매캐먼의 작품으로 자그만치 1987년에 나온 작품이란다.

게다가 놀라운건 왠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스티븐 킹의 그 유명한 `미저리`와 같은 해 같은 상인 브램 스토커상을 공동수상한 작품이란건데 이렇게 뒤늦게 소개된건 아마도 1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 일정부분 차지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내용을 간추리자면 스토리자체는 복잡하거나 하지는 않다

짐작한 바대로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러시아가 아닌) 서로를 견재하고 증오하다 끝내 못견디고 서로의 심장에 핵폭탄을 터트리면서 모두가 지옥으로 끌려가게 되고 이런 과정을 참으로 잔혹하게 묘사하고 있다.

핵폭발은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다.어린 천사같은 아이도, 직위가 높은 사람도, 엄청난 부자도 상관없이 모두를 쓸어가버린 핵폭탄의 위력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얼굴에도 마치 두꺼비같이 흉측한 증거들을 남기고 그런 피해를 피해간 사람과 서로 대치하며 전쟁이 끝나 아무것도 남지않은 페허에서도 페를 나눠 서로를 증오하게 만든다.

이렇게 모든것이 끝난것 같은 페허에 어린 소녀가 살아남았다.

스완이라 불리운 소녀와 그녀를 돌보라는 운명같은 미션을 받은 프로 레슬러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 길을 떠나게 되고 또다른 그룹인 부랑자 시스터는 길에서 주은 보석같이 빛나는 고리를 통해 스완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운명처럼 그녀를 찾아 떠돌게 된다.결국 이 이야기는 이 두사람이 조우하는 긴 과정과 그들이 조우하고 난 뒤 벌어지는 전쟁으로 크게 나눌수 있겠다.

어린 소녀인 스완이 왜 꼭 살아있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은 전쟁전 그녀가 꽃을 키우는 데 남다른 재능이 있을뿐 아니라 곤충들과도 소통할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씬에서 짐작할수 있다.

모든것이 다 타고 페허가 된 세상에 한줄기 구원같은 힘을 가진 존재인 스완은 그 힘을 발현하기전 너무 많은 고통과 고난을 겪게 된다. 마치 모두를 구원하러 왔다는 예수처럼

온 얼굴을 덮은 기립종으로 인해 눈도 제대로 보이지않게 되고 몸조차 가눌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를 보고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추한 외모가 된다.그건 예쁜 외모를 가졌던 어린 소녀에게 너무나 가혹한 운명이지만 우연히 그녀의 손에 닿은 사과나무를 다시 피어나게 하면서 그녀 스스로 자신의 운명적과업을 깨닫게 되고 외모 컴플렉스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또다른 아이 롤런드 역시 운명의 날에서 살아남지만 영리한 이 소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해줄 어른을 찾게되고 그가 찾은 인물인 대령으로 인해 잔인하고 냉철하며 비인간적인 본능이 깨어나게 되면서 스완과 대척점적인 역활을 하게 된다.

모든것을 잃은 전쟁에서 살아남았으면서도 교훈을 얻기는 커녕 남은걸 노려 살육을 일삼고 온사방에 돌아다니는 무기로 얼마 안남은 사람들끼리 총을 겨누고 서로를 증오하는 모습은 지옥이나 다름없지만 결국 이 모든 지옥같은 모습은 메시아같은 존재인 스완의 등장을 극적으로 하기 위한 장치로 작용한다

하지만 스완이 모든걸 해결하고 그녀가 나타나면서 기적처럼 서로 화해를 한다는 식의 결말이 아닌 그녀 스완의 힘으로 새로 시작할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로 인해 사람들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 마음에 든다.

밑도 끝도 없는 희망이나 구원이 아닌 결말은 그래서 더 와닿는다

 공상과학적 요소에다 다소 판타지같은 동화적 요소가 섞여있어 처음엔 뜬금없이 느껴지고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그런 판타지같은 요소가 없다면 스완의 메시아적인 이미지가 살 수 없을것같아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엄청난 페이지에다 세기말을 다룬 작품답게 어둡고 암울해서 읽기에 녹록치않았지만...다 읽고 난 후 성취감을 느끼게 한 작품이었다.

내 것이었던 소녀

내 것이었던 소녀 ㅣ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제목에서 어느정도 짐작할수 있는것은 내것이었다는 소유격을 통해서이다

물건이나 펫같은 동물이 아닌 사람에게 소유를 나타내는 소유격을 쓴다는건 그 사람을 통제하고 주변 모든것으로부터 고립된 상태임을 뜻한다고 할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전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어느정도 짐작가능할것이다.

소녀가 누군가로부터 감정적 정서적으로 통제되고 조정되고 있다는걸

그리고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그 소녀가 바로 파킨스병을 앓고 있는 심리학자 조의 딸 찰리의 가장 친한 친구인 14세 소녀 시에나임을 알수있다.

시에나가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채 찰리의 집으로 찾아오게 되고 그녀의 집에는 원래 출장가 있어야할 그녀의 아빠가 시에나의 방에서 피를 흘린 채 죽어있었고 그녀는 단숨에 그녀의 아빠이자 전직 경찰이었던 레이 헤거티의 살해용의자로 떠오르게 된다.

시에나는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 주장하지만 평소 그녀와 아버지와의 관계,살해현장에 있던 그녀의 흔적들로 인해 그 주장은 힘을 잃고 그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알리바이조차 뚜렷하게 말하지못하는 그녀의 태도로 인해 모든 의혹은 그녀를 향하고 있지만 조는 그녀가 누군가를 보호할려한다는 걸 눈치채게 된다.그렇다면 그녀는 누굴 보호하려는 걸까?

어린소녀 시에나가 누굴 지키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다면...파킨슨병을 앓으면서 가족들과도 멀어지고 아내와도 현재 별거 상태인 조는 전작이었던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서 딸 찰리가 범인에게 납치되었던 사건으로 인해 딸인 찰리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더욱 이 사건의 용의자인 시에나를 돕고 싶어한다.그녀를 도움으로써 딸 찰리에게 용서를 구하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에서...

하지만 당사자인 시에나는 모든 진술을 거부하고만 있는 상태인데다 사건을 파헤치면서 시에나가 아빠로부터 성폭력에 시달려왔음을 알게 되고 그녀는 스스로 자해하는 성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가해자의 모습을 하고있지만 정작 피해자인 시에나의 마음을 열고 그녀의 속마음을 끄집어 내려는 노력을 하는 동안 그녀가 학교 선생님인 고든 앨리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심하게 몰입하고 있는 상태인걸 알게 되면서 조는 고든에게 모든 촛점을 맞추지만 그에겐 알리바이가 있을뿐 아니라 그녀와 사적으로 얽힌적이 없다고 모든 것을 부인한다

전작에서처럼 조가 고든을 압박하는 동안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받게 되고 그런 모습은 조와 줄리안의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하는 계기로 작용할 뿐 아니라 돌이키고 싶어하는 조와 달리 줄리안은 손을 놓고자 하면서 조의 심리상태는 최악으로 치달아가고 이런 그를 조롱하듯 고든은 그의 딸 찰리에게 접근함으로써 조를 흔들어놓는다.

냉철하고 냉정하게 다른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파킨슨병으로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아내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며 사랑하는 딸로부터는 외면당하는 아빠인 조의 노력은 그래서 왠지 안쓰럽고 상대방이 그의 폭발을 유도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죽이고 싶어한 조는 뛰어난 심리학자가 아닌 그저 딸을 둔 평범한 아빠의 모습이었기에 더 공감을 하게된다.

아직 자기자신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불안정한 소녀의 마음에 숨어들어 교묘하게 흔들어놓고 자신이 원하는걸 얻기위해 속살거리는 독사같은 혀를 가진 어른인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감정적인 노예가 되어 그 누구의 말도 들으려하지않는 소녀의 모습은 살인사건의 잔인함과 다른 섬뜩함을 주고 있다.

치밀하고 교묘하게 들뜬 소녀의 심리를 파악해서 마침내 소녀가 사랑에 빠지게하고 모든것을 걸도록 조종하는 남자...책을 읽고 난 뒤 `내 것이었던 소녀`라는 제목이 더 와닿는다.그녀는 분명 그의 것이었다는걸 인정하지않을수 없다.

전작도 흥미로웠지만 개인적으론 인간본성을 파고들어가고 치밀하게 접근한 이 책이 더 흥미로웠다.

철저하고 완벽하게 스스로를 연출하던 고든과의 대결도 멋지고 뻔하고 단순하지않은 스토리도 흥미로운데다 아슬아슬한 스릴러의 재미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의 심리는 제대로 파악해서 제대로 된 접근을 하던 조가 자신의 가족인 딸아이와 아내에게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좌절하고 아내에게 접근하는 남자를 질투해서 엉뚱하고 유치한 거짓말을 하는것도 재밌지만 어느새 성장하고 있는 딸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쩔쩔매다 결국엔 큰소릴치고 화를 내는 일반적인 아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면서 이 가족은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킬러..사랑에 빠지다

블러드 온 스노우 ㅣ Oslo 1970 Series 1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서늘하고 잔인하며 얼음같은 냉정함속에 타오르는 불꽃같은 해리홀레시리즈의 작가 요 네스뵈가 이번엔 색다른 소설을 들고 우리에게 찾아왔다.

복잡한 트릭도 없고 연쇄살인마도 없으며 사건속에 흩어져있는 단서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는 단순한 이야기

이렇게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B급정서를 풍기는 소설이지만 이 소설을 쓴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요 네스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소설엔 뭔가 다른것이 있을거라는 기대감을 높혀주고 그 기대감을 여지없이 만족시키는 게 바로 작가 요 네스뵈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토리는 지극히 단순하다.게다가 많이 봐 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직업인 청부 살해업자가 있다.

그에게 늘 일감을 주는 보스가 그에게 또 다시 살해명령을 내렸는데 그 대상은 바로 보스의 젊고 섹시한 아내

청부업자 올라브는 늘 하던대로 대상을 관찰하고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다 그녀에게 남자가 있고 그 남자가 그녀를 때리며 즐기는 장면을 보게 된다.

여기서 올라브는 일반적인 냉정하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킬러가 아닌 어릴적부터 엄마를 때리고 학대하면서 즐기던 변태성향의 아버지가 있고 그런 가정에서 자란 탓으로 학대받는 여자를 보면 참질 못하는 다소 덜떨어진 남자로 설정되어있다.

그런데다가 이 남자 올라브는 자신이 구해준 여성에게 혼자서 속절없이 빠져들어 자신이 가진걸 모두 내놓고 마는 타입인데다 더 웃기는 건 그런 행동을 하고서도 그녀앞에 나서질 않고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남자라는 것

이렇게 헛점 투성이고 컴플렉스덩어리인 이 남자는 글조차 편하게 읽지 못하는 난독증환자이다.

그래서 그가 읽는 책은 늘 남과 다른 결말이거나 남들이 아는 결말같은 두가지 버젼을 가지고 있고 그런 그를 이해할수 없는 다른 사람들은 그를 덜떨어진 멍청이로 취급하고 있는데다 자신 스스로도 어딘가 모자라다 자각하지만 그가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냉철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올라브가 겉보기와 달리 상당히 머리가 좋은 복합적인 인물임을 보여줄 뿐 아니라 책속에서 그려지는 장면장면에서 현실과 그가 스스로 그려내는 환상이 공존할수 있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위험에 처한 여자들에게 금새 빠져드는 남자가 미녀이자 섹시하기 그지없는 보스의 아내를 지켜보고 남자에게 두둘겨 맞는 모습을 보게된다면 그의 다음 행동은 누구라도 알수 있을것이다.

그는 마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보스의 명령으로 그의 정부를 지켜보다 속절없이 빠져들어 한순간 보스에게 쫓겨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신세가 되었던 남자 이병헌과 같은 신세가 된다.

젊은 킬러와 청부대상이 된 미녀...너무나 흔한 조합이지만 그리고 연이어 흘러가는 전개 역시 뻔하지만 이 뻔한 통속극을 뻔하지않게 그려내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고 이 역량을 최고로 끌어 올린 작품이 바로 이 책 `블러드 온 스노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뻔한 이야기를 억지스런 반전에 반전을 넣어 뻔하지않게 그려낸것이 아닌 뻔한 이야기를 뻔한지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읽도록 하는것...

그게 바로 요 네스뵈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도시괴담의 실체를 밝혀라

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시부야의 한적한 공원에서 발목이 잘린 채 버려진 소녀의 사체가 발견된다.

이 엽기적인 사건은 단숨에 화제가 되지만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할때 연이어 또다른 소녀가 역시 발목이 잘린 채 버려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두 소녀 사이의 접점을 찾는 수사관 고구레는 거리의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이상한 소문에 대해 듣게 된다.

`레인맨`

아이들은 이 사건의 범인이 레인맨이라고 말하면서 진작부터 소녀들의 발목을 절단하고 돌아다닌다는 이 레인맨에 대해 두려움과 함께 호기심을 보이지만 소문의 실체를 찾아가다 그 소문이 화장품 회사의 홍보전략으로 나온 마케팅의 일환이라걸 알게 된다.

하지만 고구레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부에선 이미 범인으로 짐작되는 한 용의자에게 모든 포커스를 맞춰 그의 의견따윈 관심도 없는데...

새로나온 향수의 인지도를 높이고 단숨에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으로 만든 레인맨이라는 도시괴담의 주인공이 한짓을 누군가 똑같이 모방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거기다 간 큰 이 범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시의 공원에 보란듯이 사체를 버려두는 과감성마저 보이고 있는데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누군가의 원한의 대상이 되거나 치정사건 혹은 돈에 얽힌 강도살인사건이 아니라 무차별 살인사건의 피해자이기에 용의자의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다.여기에다 살인사건 해결에 힘써야할 경찰들은 자기들끼리 파워게임을 하고 있고 재수없이 걸린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고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멍청한짓을 하고있다.

지금도 온라인상이나 온갖 sns에서 흔하게 쓰여지는 홍보방법인 입소문이나 노이즈 마케팅에다 괴담 그리고 살인사건까지 제대로 섞어놓은 `소문`은 입소문이 어떻게 어떤식으로 전파되는지...그리고 그 소문의 파괴력은 어느정도인지 제대로 알려줄뿐 아니라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가 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이용될수도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기업은 또 어떻게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지...

이런걸보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진실의 몇 % 가 진실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비록 어느정도가면 범인의 정체를 알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트릭따윈 없지만 가독성도 좋고 소재 역시 참신해서 좋았는데 의외의 부분에서 생각도 못한 반전이 놀라웠다.

네 이웃을 의심하라

크리피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3월

주변에서 뭔가 의심스러운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온 가족은 예민해지는데 답답하지만 어딘가 호소할수도 없다.

내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해오지않기때문이기도 하고 남들이 봐서 의심할만한 어떤 증거도 남기지않기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내 옆집에 산다면?

이런 명제를 가지고 일상의 공포를 이야기하고 있는 `크리피`는 15회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신인상을 받은 작품이자 드라마틱한 소재의 특성에 맞게 영화 역시 곧 개봉될 예정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혹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게 당연시 되는 요즘 만약 옆집에 사는 사람이 흉악한 범죄자이거나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우연히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런 가정을 소재로 하는 크리피는 평범한 일상이 한순간에 변화되는 과정을 공포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가르치고 간간히 방송에도 출연하는 다카쿠라가 사는곳은 한적한 주택가이다.

이런 평화로운 일상에 고교 동창생이자 형사인 노가미가 사건 자문을 요청해오면서 평범하게만 여겨 제대로 들여다본적 없었던 이웃집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금방 어딘가 이상함을 눈치채게 되면서 평화롭던 일상은 단숨에 깨지고 자신도 모르는 새 한순간에 사건당사자가 되어 무언가로부터 쫓기는듯한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과정을 마치 태풍에 휩슬리는것처럼 속도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책에서 모든 악의 중심이자 악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남자 야지마는 성장과정이 평범했을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다면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애교있게 다가갈수 있고 심지어는 머리도 좋으며 외모 역시 호남형이라는 점이 놀랍지만 사실 탁월한 범죄자의 외모가 호감형의 남자가 많다는걸 생각해보면 납득이 간다.

이런 남자가 스스로 원해서 악의 길로 걸어갈뿐 아니라 상당히 삐뚤어진 성적 욕망을 가지고 좋은 머릴 이용해서 사기를 치고 갈취를 하는 걸로도 모자라 무차별 살인을 하게 되는 범죄의 진화과정이 왠만한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데 그가 이용하는 방법이란게 너무나 교묘하고 사악하기 그지없어 알면서도 당하는 피해자의 모습이 어리석게 느껴지기보다 내가 그 입장이라도 그럴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범죄수법이 탁월하다.

일단 범죄에 맞는 유형을 자신이 가진 조건을 이용해 추려내서 그 주변을 조사하고 교묘하게 접근해 그 사람이 가진 약점을 이용하고 그 약점을 토대로 그 사람을 지배해 결국에는 그 사람이 가진 모든걸 삼켜버리는...이렇게 적어놓으면 별것 아닌것 같지만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주는 범죄의 대담성은 놀라울 따름이다.

버젓이 다른 사람의 가정에 침입해서 가족의 구성원이 되고 그 가족구성원의 입을 막아버려 누구도 신고조차 할수 없을 지경에 이르도록 폭력과 구슬림,협박을 이용하는 그의 대담성은 옆집에 누구 사는지 그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도 없고 관심조차 없는 현대인의 습성에 최적화된 범죄수법이라고 할수 있기에 더 현실성있어 소름끼치게 다가온다.

책을 다 읽고난 뒤 책표지에 적힌 `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라는 글이 그래서 더 두렵게 느껴진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의 말보다 더 친절하고 친근하게 다가와 아이의 말을 조근조근 설명하고 반박하는 이웃의 친숙한 어른의 말을 더 신뢰할거라는 사실을 알기때문에...

하지만 그 친숙한 어른이 진짜 이웃이 아니라면...?

생각만해도 무섭지않은가? 이 책의 진짜 공포는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