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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시절 국어 선생님께서는 시인(詩人) 윤동주(尹東柱, 1917~1945)를 부를 때 이름 앞에 감탄사 “아!”를 두 개 붙여 “아! 아! 윤동주!” 라고 불러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첫 번째 감탄사 “아!”는 발표(1948년)된 지 수 십 년이 지났어도 전혀 그 빛이 퇴색하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더욱 영롱한 빛을 발하는 그의 시(詩)에 대한 경탄의 의미이고 두 번째 “아!”는 이런 천재 시인이 29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차가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의 의미라고 하셨다. 특히 그가 생을 마감한 시기가 감수성이 가장 풍부했던 20대 후반이어서 형무소 생활 속에서도 시작(詩作) 활동을 결코 멈추지 않았을 텐데, 당시의 시가 한 편도 전해지지 않는 것은 일제(日帝)가 저지른 가장 큰 만행 중의 하나라고 흥분하시곤 했다. 그의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그가 연희전문에 다니던 무렵 시들과 일본 유학시절의 작품들을 모아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선생님 말씀대로 수감생활 동안 그가 썼었을 시는 한 편도 수록되지 않았다고 한다. 서른이 채 되지 않았을 정도로 젊었던 그가 수감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빨리 유명을 달리했던 이유가 일제의 생체실험 때문이었다는 설(說)이 거의 정설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윤동주의 마지막 1년 동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등 팩션(Faction) 소설로 유명한 작가 “이정명”은 신작 <별을 스치는 바람 1,2(은행나무/2012년 6월)을 통해 윤동주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마지막 1년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그 정점으로 치달을 무렵 어머니와 헌책방을 운영하던 열일곱살 청년 “나(와타나베 유이치)”는 학도병(學徒兵)으로 징집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의 간수(看守)로 부임하게 되는데, 온 지 석 달 만에 선배 간수이자 문서 검열관이었던 “스기야마 도잔”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형무소장은 나에게 이 일이 절대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며, 스기야마 살인사건을 조사하라고 특명을 내리고, 간수장은 스기야마의 검열 일을 나에게 맡으라고 명령한다. 죄수들에게 숱한 폭력을 휘둘러 악명이 높았던 스기야마의 죽음을 조사하던 중 의외의 사실들을 알게 된다. 그의 시신 윗도리 주머니에서 발견된 “잘자요”라는 시 한편도 그렇고, 우연히 만난 인근 병원 간호사는 스기야마가 자신이 연주하고 있던 강당의 이 낡은 피아노를 조율(調律)했으며, 그는 결코 잔인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맗한다. 또한 그가 남긴 검열 기록장에서 여러 편의 시들과 문구들을 확인한 난 형무소 내 젊은 시인(詩人)으로 알려진 조선인 창씨명 “히라누마 도주”를 소환하여 그를 조사한다. 그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시인 “윤동주”였다. 그가 털어놓는 스기야마에 대한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간호사의 말대로 그는 절대 악마가 아니었던 것이다! 과연 윤동주와 스기야마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스기야마를 죽인 범인은 누구였을까?

 

 

책은 이처럼 후쿠오카 형무소 간수인 “스기야마”의 죽음이라는 미스터리로 시작해서 화자인 “나”가 죽음에 얽힌 비밀을 하나하나 밝혀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언제쯤 윤동주가 등장할까 기대했었는데, 윤동주로 짐작되는 창씨명 “히라누마 도주”로만 등장할 뿐 그의 조선 이름 석 자는 1권 중반 이후에나 등장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중반까지는 좀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책의 재미와 감동은 윤동주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악명 높은 간수로만 알려졌던 스기야마가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도 윤동주의 시와 글을 사랑하고, 그와 조선인 죄수들을 보호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본격화된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은 윤동주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책의 화자(話者)인 나도 아닌, 윤동주의 시와 글 때문에 가치관과 신조가 송두리째 변화한, 출판사 홍보 문구처럼 “영혼이 구원받은” “스기야마” 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좋아해서 시와 소설, 에세이 등을 총칭한 문학(文學)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처음에는 이 책에서 윤동주의 시와 글 때문에 악질 간수에서 윤동주의 시와 글을 사랑하고 그를 보호하려 했던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스기야마가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에 하루 아침에 야쿠자 생활을 접고 피아노 조율사(調律師)가 되었고, 노몬한 전투 - 영화 <마이 웨이>에서 징용으로 끌려갔던 주인공 장동건이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전쟁이 바로 이 전투이다 - 의 전쟁 영웅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동료를 밀고하고 살아남았던, 그 기억을 마음속의 빚으로 간직하고 살았던 어쩌면 누구보다도 여리고 상처 많은 사람이었다는 그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소장의 명령으로 글을 처음 배워 기계적인 검열을 해오던 그에게 윤동주의 시와 글은 마치 젊은 시절 그가 길거리에서 들었던 피아노 선율보다 더한 충격과 감동을 안겨 주었고, 그에게 찾아온 삶의 변화는 마침내 그의 영혼을 구원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되자 더디기만 했던 읽는 속도가 점점 속도를 내더니, 결국 윤동주가 죽고 스기야마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꼼짝없이 책에만 붙잡혀 있고야 말았고, 다 읽고 나서도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과 감동에 책 표지를 몇 번을 쓸어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앞서 언급한 국어 선생님 때문에 외우다시피해서 책을 읽으면서는 대충 읽었던 책에 실린 윤동주의 시들이 “다르게” 느껴졌고, 결국 시와 함께 다시 읽다시피 한 이 책, 자연스럽게 그 시들에서 책에서의 윤동주와 스기야마의 관계가 오버랩되면서 처음 읽었을 때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그제서야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픽션(fiction) 임은 알고 있지만 이처럼 문학 - 여기서는 윤동주의 시와 글이다 - 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영혼을 구원하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래전 국어선생님의 감탄사 “아!”의 의미를 이제서야 올곧이 이해하게 만든 감동적인 책이었다. 전작들이 재미에 치중했던 장르소설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재미는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감동이 재미의 부족함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을, 개인적으로는 이정명 작가하면 제일 먼저 이 책의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릴 작품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이 작품도 작가의 전작들처럼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감동적인 영상이 그려질 것으로 기대해본다. 두 번을 읽고서 제대로 된 감동을 느꼈던 것처럼 한 번 읽고 말 그런 책은 아니어서 앞으로도 여러번 읽게 될 것 같은 이 책, 그래서 책 속에 실려 있는 윤동주의 시들과 소설 속 가상의 인물 스기야마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의 마지막은 국어선생님처럼 윤동주의 이름을 부르고 끝을 맺는다.

 

"아!아!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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