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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의 품격
신노 다케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윌북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공항인 “인천국제공항(仁川國際空港,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부지 면적이 5619만 8600㎡(1,700만 평)으로 여의도 면적(8.4 ㎢, 254만 평)의 6.7배에 달하고, 연간 2,700만 명의 여객과 170만 톤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하니 웬만한 소(小)도시에 맞먹는 그런 규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항에는 어떤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을까? 드라마나 영화로 종종 만나볼 수 있는 항공기 조종사와 남녀승무원들 뿐만 아니라, 관제사, 세관, 출입국관리사무소, 검역, 보안·검색 업무, 기타 공항 관리 업무 등 공항 소속 근무자들 뿐만 아니라 항공사, 여행사 근무자들에 이르기까지 인천공항에 근무하는 상주기관과 기타 공항 종사자만도 3만 5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 중에서 우리가 공항에서 제일 먼저 마주하게 근무자들 중 하나가 고객들의 티켓 발권, 예약, 수속, 화물, 안내, 관리 등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여행사 공항 근무팀 직원들 일 텐데, 이웃 일본에서는 이들을 “아포양(あぽやん)” - 공항(airport)의 약자 ‘APO’와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일본어 “양(‘やん’)의 합성어. 국내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찾아봤지만 딱히 부르는 용어는 없고 그냥 공항 지원팀 정도로 부르는 것 같다 -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번에 읽은 “신노 다케시”의 <공항의 품격(원제 あぽやん(아포양) / 윌북 / 2012년 2월)>은 바로 “아포양”으로 근무하게 된 서른 살 남자 직원이 겪는 좌충우돌 활약상과 풋풋한 사랑을 그린 청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행사인 "다이코 투어리스트" 입사 8년 차 남자 직원인 나(“엔도 게이타”)는 “나리타” 공항 근무팀에 발령받은 지 한 달이 된, 이른바 “아포양”이다. 어머니는 화려한 곳이라고 정말 좋겠다고 하시고,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도 여자들이 많아서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다이코 투어리스트 내부에서 공항 근무는 한직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35세에서 40세 사이의 딱히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그런 곳이다. 공항에 배속된 내 나이 이제 29세, 지금까지의 경우로 보건대 공항에 배속될 나이가 아니다. 입사한 이후 본사 수배과와 기획과 같은 알짜배기 자리에서 근무했었고, 딱히 큰 실수를 저지른 기억도 없었는데, 이렇게 한직에 배치된 이유는 아마도 전 부서에서 일처리가 부실해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따돌림 당하던 과장대리를 위해 과장에게 대들었다가 그만 공항으로 쫓겨 온, 윗사람에게 고분고분하지 못한 성격 탓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올해 나이 서른, 미래의 비상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시기인 30대 전반을 아무 실적도 쌓을 수 없는 공항에서 지내야 된다고 생각하니 완전히 맥이 빠지고, 고통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나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아포양”의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아포양의 일, 결코 만만치가 않다. 조폭 아저씨들과 매춘 여행을 떠나겠다는 브라질 출신 여학생, 자신의 방문을 꺼려하는 아들 내외에게 가기 위해 예약해 놓은 패키지 여행을 취소하고는 자신을 데리러 온 아들에게 못이기는 척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노부인, 여권 때문에 가족을 따라 나서지 못하고 공항에 홀로 남은 소년, 예약을 뒤죽박죽 바꿔 놓고 취소하는 바람에 큰 혼란을 겪게 만든 예약부 전임 근무자, 예약이 사라진 것이 반대하는 결혼을 한 자신들에게 천벌이 내린 탓이라고 비관하는 신혼 부부, 구조조정으로 아쉽게 이별하게 된 직원들 등 쉴 새 없이 터지는 예측불허의 사건 사고를 수습하느라 연일 정신없고 바쁘게 된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사건들을 주위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한건 한건 해결해나가는 나는 같은 나이의 다이코 에어포트 서비스 직원인 “고가”와 알콩 달콩한 로맨스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잠시 동안의 로맨스는 “고가” 씨가 유학을 떠나면서 아쉽게도 막을 내리게 되고, 시간은 어느덧 1년이 지나 버린다. 나의 사수이자 나에게 늘 “즐기고 있지?”를 물어오던, 진정한 아포양이었던 “이마이즈미 도시오”씨가 공항을 떠나게 되는 것이 못내 아쉬워하는 자신을 보면서 이제는 자신도 어엿한 “아포양”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한직으로 좌천당했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여행사 공항근무 업무(일명 “아포양”)를 시작한 한 젊은 청년이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렵기만 한 일들을 해결해가면서 자신의 일에 보람과 기쁨을 얻게 된다는 일종의 직장인판 성장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여행 회사에서 6년간 근무한 작가의 경력이 십분 발휘된 탓인지 공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꽤나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일반 사람들에게는 낯선 공항 업무들과 종사들의 이야기가 꽤나 색다른 재미를 맛보게 하는데, 이 책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물론 공항이라는 특수 공간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지만 큰 범주 내에서는 직장인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그런 일들이라는 점에서 "공감"을 일으키는 그런 이야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고객과의 마찰, 상급자와 하급자간, 본·지점 간, 그리고 상급자들 간 등 각종 직급과 회사들 간의 정치적인 알력과 다툼, 입사 동기와의 승진 경쟁, 구조 조정으로 인한 떠나는 자들과 남는 자들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사내(社內) 연애에 이르기까지 직장인들의 일상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그런 일 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인공 엔도가 벌이는 좌충우돌 활약과 로맨스 과정을 읽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직장 생활 초년 시절을 떠올리며 감정이입하게 되고,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특히 그저 정년(停年)을 기다리며 자리보전하는 퇴물인 줄 알았던 소장이 젊은 시절 꿈이 “마음에 안 드는 윗사람을 쥐어박고 회사를 (미련 없이) 그만두는 것이 꿈” -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꿈을 꿔봤을 것이다. 나도 입사 10년차 까지는 이런 자신감 때문에 여러번 회사도 그만 두고 옮겨봤었다 - 이었으며, 마지막에 자신의 꿈을 기어코 이뤄내는 장면에서는 통쾌함마저 느껴볼 수 있었고, 다른 곳으로 전근 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이마이즈미의 인사말에서 주인공 엔도가 아포양으로서의 직장 생활에서 더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 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게 해서 잔잔한 감동까지 불러 일으키게 한다.

 

이 책의 제목인 "공항의 품격" - 원제는 "아포양"이니 아마도 국내 출판사에서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 는 어떤 의미일까? 출판사 소개글에는 

 

공항의 품격이란 잘 꾸며진 공간의 외관이 아니라 여행의 설렘과 자신의 집처럼 편안하고 아늑함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 공항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호수 위의 백조처럼 처절하리만치 분투하는 주인공의 유쾌한 한판 역전승은 독자들에게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엔도와 같이 공항 근무직 직원들이 화려하진 않지만 자신의 맡은 바 업무를 다해낼 때 비로소 공항이 그 기능을 온전히 해낸다는 의미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원제보다 더 제격인, 꿈보다 해몽이 훨씬 좋은 그런 제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책, 극적인 긴장감과 재미는 다소 부족할 수 있지만 공감의 크기만큼은 그 여느 책 들 보다도 크게 다가온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엔도는 과연 이마이즈미가 늘 입에 달고 있던 인사말인  “당신은 지금 웃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아쉬운 로맨스는 그냥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일까? 이 책의 후속편 격인 <연애의 품격>에서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니 후속편이 어서 출간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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