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 쓸개>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
-
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평점 :
소설 읽는 진정한 재미는 주로 장편에서 발견되곤 하지만, 삶의 단면을 포착하는 타인의 시선이 궁금할 때는 단편 소설만한 것이 없다. 한정된 분량 안에 세계와 세계를 바라보는 개인과 그 개인에 대한 가치평가를 골고루 담아내고 있어 단 한 편만으로도 삶을 향한 응시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최근 들어 현대인의 팍팍한 삶의 방식이나 피폐한 정신을 조명하고 있는 작가들이 적지 않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구체적인 세계의 모습은 또한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수많은 작품들은 결국 크게 인간에 대한 부정과 인간에 대한 긍정으로 양분되는 듯하다. 김숨의 소설집 <간과 쓸개>는 굳이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부정의 시선에 보다 가깝다.
우선 이 소설집에 실린 9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비상식적인 사고와 행동을 일삼는다. 저녁을 차려내는 일에 비정상적으로 몰두한다든가(모일, 저녁), 계단을 허무는 것에 유난히 집착한다든가(흑문조), 자신의 아이들을 병적으로 두려워하는(룸미러) 식이다. 한 편에서 터무니 없는 주장을 늘어 놓으면 다른 편에서는 그 황당한 주장에 어떤 의혹도 제기하지 못한다. 배관 수리를 구실로 집안 곳곳에 구멍을 파헤쳐 놓아도(흑문조), 남편이 난데없이 여자를 데리고 집안에 들이닥쳐도(육의 시간), 집주인이 전세금을 터무니 없이 올려달라고 우겨도(내 비밀스런 이웃들) 인물들은 그 어떤 적극적 대응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습적인 무기력증과 타성은 정신적 이상징후라 여겨질 만큼 과장되게 그려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정신은 대체로 혼란스럽다. 때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조차 모호한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비상식적인 행위들에 대해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그 세계는 그 자체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쯤 되면 대체 상식적인 행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는 대체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간과 쓸개>에서 정신의 문제는 그 어느 것도 분명한 것이 없어 보인다. 소설은 정신의 영역을 환상적인 기법으로 처리하는 대신 인간 육신에 치중한다. 그런데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의 육신은 한결같이 병들어 있다. 간과 쓸개, 폐와 뇌 등 병마는 육신 어느 곳에든 깃들어 있다. 육체의 불완전성은 역설적으로 육체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병이 깃드는 육신만은 비상식이 난무하는 정신의 세계와 달리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표제작인 '간과 쓸개'에서 병든 육체는 생생한 현실로 그려지지만, 저수지에 대한 아득한 기억은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육의 시간'에 등장하는 여인은 그 육신을 천년 이상 보존해 왔지만 '소파에 고요히 앉아' 있는 것 외에는 특별한 행위를 벌이지 않는다. 긴 세월을 거쳐 보존된 것은 정신이 아닌 육신일 뿐이다.
비상식적인 정신과 병든 육체를 가진 인물들은 상호 간의 소통에 실패하고 있다. 도처에서 인물들은 실종되거나 동물과 동일시됨으로써 고독 안으로 침잠한다. '모일, 저녁'에서는 모처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아버지는 온 저녁을 전어를 굽는 일에 몰두하고, 어머니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차려낸다. 그러나 잘 구어진 전어와 푸짐한 진수성찬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오붓한' 저녁식사는 불발에 그친다.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는 폐장 시간을 앞둔 동물원에서 예정된 자매의 재회가 주된 서사를 이룬다. 그러나 와야 할 동생이 오지 않고 날이 저물어 감에 따라 동물의 우리와 인물의 위치는 반전되기에 이른다. 결국 그는 우리 안에서 사막 여우를 대신해 울음을 터뜨리지만 그 누구도 그가 우는 이유에 대해 물어 오지 않는다. '북쪽방'에서는 아예 아내에 의해 구석진 방으로 내몰린 남자가 등장한다. 쇠약해진 육신을 이끌고 유폐되듯 아내에 의해 북쪽방으로 옮겨진 남자는 생을 반납한 채 광물처럼 소멸해 간다. '내 비밀스런 이웃들'에서는 이웃은 고사하고 부부 간의 핀트가 맞지 않는 대화에서 관계의 단절을 절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럭키 슈퍼'의 아버지는? 이미 유통기한을 훨씬 넘겨 상품성조차 없는 식품으로 한없이 전락해 버린 후다.
정신의 가치가 보다 중시되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라고 할 때, 김숨의 소설들은 절망적이다. 모든 인물들은 세계와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다. 유일한 실재인 육신은 병들거나 지쳐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담한 세계만이 펼쳐진다. 어쩌면 뚜렷한 물성을 지닌 재료에 대한 작가의 집착은 절망의 심연에서 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