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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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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운명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 아니다. 별수 없이 개인의 운명에 침투해 들어가는 역사의 크나큰 횡포(?)는 숱한 문학 작품 속에서 반복되어 그려져 왔다. 그 속에서 인물들은 저항, 좌절, 냉소, 자포자기 등 각기 다른 형태로 역사의 횡포와 맞서 왔고, 그 누구도 그 영향을 비켜가지는 못 한다. 개인의 운명에 장난을 치는 크고 작은 일들 가운데 전쟁과 개인의 관계만큼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것은 없다. 일방적으로 닥쳐 오는 폭력과 같은 휘몰아침에 소리 한 번 못 내보고 휩쓸려 가는 부조리 속에서 개인의 운명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게 된다. 르 클레지오의 <허기의 간주곡>은 전쟁이라는 환경 속에 내던져진 한 개인의 운명을 그린 소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개인의 운명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시시각각 변화해 가는 개인의 운명 속에 역사의 횡포를 함의하고 있다. 

르 클레지오의 문체는 다분히 회화적이다. 전쟁이나 정치와는 무관하게 동화 같은 연보라색 집을 꿈꾸고 완벽한 우정을 갈망하는 것이 전부인 한 여인의 삶에 투사된 전쟁의 모습은 치열하기 보다 시리고 또 아리다. 소설에는 전시 유럽의 암울한 분위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무수한 명사구의 나열로 치열한 전시상황을 대신하고 명단이나 법령 따위의 의미 없는 인용을 활용하면서 현상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을 애써 드러내지 않는다. 작가는 역사적 리얼리티에서 한발짝 물러나 에텔의 삶에 집중한다. 에텔의 유년기에서부터 강인한 숙녀로 성장하는 동안 안온했던 삶을 뒤흔들어 놓았던 역사의 횡포를 포착해나갈 뿐이다. '파리에 떠도는 침묵'이라는 한 구절 속에 험난해질 파리의 정세와 에텔의 운명을 함축해 놓고 격정적으로 휘몰아칠 앞날을 예비한다.  

인물의 변화해 가는 운명이 소설을 지탱하는만큼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은 다르다. 벨 에포크 시대에 평화로운 파리의 한 저택에서 일상을 지내는 브루주아 소녀 에텔의 일상은 평온하다 못해 나른하다. 의미 없는 수다, 긴박감이라고는 없는 정치에 대한 토론, 권태를 상쇄시키기 위한 작은 음악회. 그러나 이 풍요로움조차 에텔에게는 충만한 행복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 무렵 에텔은 연보라색 집에 대한 환상과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치열한 생을 겪고 있는 제니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통해 나른한 권태로 인한 허기를 달랜다. 그러나 경제적인 몰락과 가정의 붕괴를 차례차례 겪어가는 동안 유년의 추억은 하나 둘 사라진다. 환경은 꽃밭의 꽃처럼 길들어져 온 에텔을 강인하게 훈련시켜 왔고, 아버지의 오랜 연인으로 자신의 유년을 불행하게 했던 늙은 여가수 모드에게조차 동정을 가질 정도로 강인한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그러나 강인해진 에텔의 이면은 사라진 유년에 대한 갈구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연보라색 집의 형상과 제니아에게 품어온 동경, 낮잠처럼 나른한 살롱의 오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연보라색 집이 있어야 할 빈 집터는 '흉물스러운 장벽'같은 시멘트 건물이 들어서 있고, 완벽한 여성상을 꿈꾸게 해 주었던 아름다운 유년의 친구는 새 의류 사업에 골몰하는 속물스러운 파리지앵이 되어 있다. 결혼과 이주로 새로운 삶을 꾸리게 된 에텔에게 유년의 결핍은 또 다른 허기로 다가온다.  

<허기의 간주곡>에서 나타나는 허기는 단순한 결핍의 차원을 넘어서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모두 포괄한다. 평화로운 유년에서 벗어나 졸지에 격렬한 삶의 현장으로 내던져진 에텔은 단순한 역사의 피해자가 아니다. 에텔은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되어 허기에 적극적으로 맞선다. 결국 순간순간 그녀 앞에 놓여진 허기는 그녀 생의 다음 순간으로 망설임 없이 나아가게 하는 추동력이 된다. 마치 다음 악곡을 예비하는 간주곡 처럼. 에텔은 허기의 순간들을 견디고 '침묵'의 공간이던 파리로 되돌아온다. 그 곳에서 유년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백조의 산책길'이 그들이 떠나온 모리셔스 섬과 같은 이름임을 깨닫게 된다. 떠남과 떠나 온 곳으로의 되돌아옴, 이러한 공간의 순환은 그 어떤 곳도 환멸의 공간일 수 없다는 깨달음과 함께 자신이 뿌리내린 모든 공간에 대한 긍정, 나아가 삶을 송두리째 휘몰아치는 모든 허기에 대한 긍정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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