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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책에 관한 책에 대해서는 누구나 기대하는 바가 있다. 책이라는 소재가 요구하는 지적 무게감이라든지 2차 독서에 대한 욕구로 이어지는 방대한 정보 같은 것들 말이다.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중 하나인 <책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는 책에 관한 이야기로서 이러한 기대들에 비교적 잘 부합하는 소설이다. 건조하지만 지적인 문체, 치밀하게 짜여진 플롯, 독창적인 스토리를 두루 갖추고 있어 독서노동이라는 행위가 주는 고통이 독서 후 쾌감으로 적절히 환원될 만큼의 만족감을 준다.
이 소설의 무엇보다 뛰어난 점은 '책사냥꾼'이라는 전무후무한 직업군을 창조해냈다는 점일 것이다. 이들은 언뜻 첩보영화에서 주로 그려지는 추격자 등과 유사한 형태의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그 대상이 '책'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직업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직업 철학은 곧 '책'만이 가진 본질적인 속성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국 이 소설의 성패는 책사냥꾼의 직업 윤리가 서사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녹아들어 갈등을 조장하고 해소해 나가는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가는 이 부분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책이라는 속성에 대한 해답을 조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납치당한 딸이나 도둑맞은 귀중품을 추적한다고 하면 그 동기에 대한 해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쫓는 대상이 책이라면 달라진다. 책은 단순히 장정을 입힌 종이뭉치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구전되는 우리 민담 중에 이야기를 주머니 속에 가두어 두고 풀어 놓지 않아 화를 당할 뻔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이 민담은 이야기들이 자기들을 가두어 둔 사람을 해치려고 모의하는 부분에서 위기를 맞는다. 이야기를 독점하려는 사람의 이기심은 독점되지 않으려는 이야기의 속성과 갈등을 일으킨다. 이야기가 널리 공유되기를 원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책이란 널리 읽히고자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책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의 책사냥꾼들과 그들의 의뢰인은 책의 유통보다 책의 독점에 관심이 많다. 책을 자본주의의 논리로 환산하려는 탐욕스러운 책사냥꾼 제롬이나 희귀본을 독점하는 데 일생을 바쳐온 미도당의 윤씨 노인과 같은 인물은 특히 책에 집착하는 뚜렷한 이유를 상실해 버린 인물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보여지고 만질 수 있는 형태로서 책 자체의 물질적 속성에만 집착하는 평면적인 악당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필요한 책 이외에는 손대지 않는다는 나름의 직업 윤리를 실천하고 있는 주인공 반디에게서도 책의 가치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오로지 사랑하는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의뢰인의 명을 받아 책사냥꾼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뿐이다. 이들이 찾고자 하는 희귀본의 가치는 종종 화폐로 환산되고, 그 책이 귀중한 이유에 책의 내용이 지니는 가치는 해당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소설 속 인물들이 치열하게 찾아 헤매는 희귀본이 책이 아니라 오래된 고고학적 유물이라든가 값비싼 보석이라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인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영혼이라면 그 내용을 실어 나르는 종이인 책 자체는 육신이다. <책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의 모든 인물들은 책의 육신에만 유독 집착한다. 간절히 소통되고자 하는 영혼의 외침을 묵살하고 오로지 책의 육신에 가치를 매기고 그것을 독점하려 애쓴다. 결국 소설은 감추어진 책을 둘러싸고 인물들이 벌이는 게임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한다. 물론 작가는 책들에 대한 다양하고 상세하며 흥미로운 정보들을 서사의 곁가지에 풀어 놓는다. 책이라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산물에게 바치는 오마주라고 해도 될 만큼 책과 책을 둘러싼 모든 메커니즘을 포착한다. 그러나 책에 관한 이 다양한 이야기들은 서사의 흐름 속에 자연스레 안착하지는 못한다. 책에는 수많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대부분은 영혼을 거세당하고 그 개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게임의 도구로서 책일 뿐이다. 작가는 책들의 영혼이 성장하는 요람으로서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하려는 듯 보였으나, 의미를 상실하고만 책들의 향연은 결국 책들의 무덤을 연상시킨다. 읽힐 가능성이 없는 미도당의 장서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