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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랩소디
애덤 셸 지음, 문영혜 옮김 / 문예중앙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한 편의 연극을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상세히 들여다보면 사건의 기술과 감칠맛 나는 묘사에 있어 소설적인 서술방식을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작가의 메시지가 오감을 통해 전해진다는 점에서 애덤 셀의 <토마토 랩소디>는 독특하다. 단순히 활자를 해독하는 독서 활동만으로도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에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다분히 작가가 의도한 듯 보이는 연극적인 구성 방식 때문에도 그렇다. 

<토마토 랩소디>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미각에 강하게 호소하는 소설이다. 무엇보다 한 쌍의 남녀가 사랑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토마토와 올리브가 만나 맛있는 피자가 되었다는 식의 유래에 빗대어 우의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기발함이 돋보인다. 작가는 묘사에 있어서 생생함을 전할 수 있는 갖가지 요소들을 동원한다. 음식의 빛깔과 맛, 그 안에 숨겨진 절절한 사연까지 수다스럽게 풀어내며 독자의 오감을 자극한다. 열매를 재배하고 수확하는 과정, 음식을 요리하는 과정을 맛깔나게 풀어낸다. 나아가서 인물의 묘사에까지 싱싱한 채소들을 동원하는데, 이 모든 입맛 도는 묘사들은 마침내 뜨거운 햇빛을 가득 담은 남유럽의 생명력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 취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들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선과 악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인물이기 보다는 외양과 성격에 있어 모두 뚜렷한 하나의 인상을 주는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이런 인물들의 동선은 구체적인 몇몇 장소에 한정된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같은 느낌을 준다. 특이하게도 이야기의 서술자는 중간중간 불현듯 튀어 나와 포초 멘초냐의 극작법에 관한 눈문을 인용하는데, 이는 작가가 연극적 구성을 다분히 의도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연극에 비유하자면) 3막에 걸쳐 보여주고 있는 셈인데, 단순한 토마토와 사랑을 둘러싼 몇 가지 소동을 단조롭게 보여주고 있는 것에서 나아가 인생의 참다운 의미까지 심오하게 전달한다. 소설은 표면적으로 토마토를 재배하는 청년과 올리브를 따는 처녀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사건의 얼개를 이루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이야기 속에는 수 많은 인물들이 두 남녀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얽혀 있다. 얽히고 섥힌 인물들의 관계 속에는 은밀한 욕망이 있는가 하면, 애잔한 동정이 있고, 치졸한 탐욕이 숨어 있다.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사회적 금기와 개인적 탐욕에 따른 장애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드러내기 위해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포초 멘초냐의 논문을 들어 희극을 '단 것과 쓴 것이 뒤섞인 맛'이라고 말한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이 시골 마을에도 두 번의 쓴 맛, 즉 비극적인 사건이 찾아 온다. 논노와 교감하던 늙은 당나귀의 죽음이 그 하나고, 숱한 시련을 이겨낸 현자로서 다비도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논노의 죽음이 또 다른 하나의 비극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소설의 결말은 희극이다. 이들의 죽음이 환경에 완강하게 저항하다 맞이하는 비통한 죽음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평온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삶의 기쁨 속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죽음으로써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며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쓴 맛 없이는 단 맛도 없는 법.

무엇보다 인간 본성의 긍정이란 측면에서 소설은 희극이다. <토마토 랩소디>는 외적 조건을 넘어선 순수한 감정 자체를 무엇보다 긍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남녀의 본능적인 이끌림은 뜨거운 햇살 속에서 자연히 영그는 열매들과 같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다비도와 마리 뿐 아니라 베니토와 보보같은 소외된 인물들 마저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듬는다. 그리하여 각종 미신과 종교적 제약으로 인해 억눌러야 하는 모든 금기들이 해방되고, 종교와 신분을 초월한 뜻깊은 화해를 이루는 순간은 의심할 바 없이 인생의 해피앤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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