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

체르노빌 사고 당시 핵 구름이 나흘만에 아프리카, 중국까지 도달했다는 사실 , 후쿠시마의 핵 구름 또한 유럽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도달했다는 기사에 전 세계가 긴장했던 사실을 떠올린다.

우리는 문명의 힘, 발전된 과학기술에 대한 지나친 긍정적인 인식 속에서 안주 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확신에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이 재앙,재난이다.
어떠한 사건이 불거질때 우리의 사고는 다시 멈추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비극이 누구의 것이며 이러한 비극이 초래한 결과며 원인 분석에 분주하다. 하지만 이 또한 잠시 ‘망각‘이라는 어쩔 수 없는 기억엔 이러한 끔찍한 사건들 또한 잊어 버리고 만다.

1986년 4월 26일 1시23분 58초
벨라루스 국경에 인접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가 폭발한다. 이 사고는 20세기 최대의 기술적 재앙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30년도 채 안된 2011년 3월 11일, 일본 지진 해일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난다.
절대적 안전을 자랑하던 원자력 발전소들은 아주 조용히 무서운 재앙으로 다가 왔다.

1986년 4월 체르노빌은 소비에트연방, 고르바초프의 시대이다. 공동체적 삶에 익숙했던 ‘소비에트 사람들‘ 은 나라가 하는 일에 그냥 믿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겨 나라의 명령에 절대적 복종만이 믿음이라 생각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국민을 속이고 그 속에 사는 국민은 진실에 대해 알려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는 말한다.
‘‘돌아보니 땅만 오염된 것이 아니라 우리 인식까지 오염되어 더렵혀져 있던거였다.‘‘
실체가 없는 전쟁, 이해 못하는 사람들
정작 무서워 하는‘이것‘의 실체를 모르고 있는 당사자들에겐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은 바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일어 나지 않는다. 단지, 눈에 보이는 총,칼을 든 사람이 무서울 뿐이고 일상적인 것에 큰 변화가 답답할 뿐이다.
이렇게 정말 무서운 일은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체르노빌에서 가장 안정적인 로봇은 ‘군인‘ 이었다. 아니 그곳에 작업했던 이들은 모두 실제 로봇보다 더 로봇이었다.
그들은 몇시간 버티지 못하던 로봇들과 기계들 대신 원자로 상공을 하루에 네다섯 번을 비행하고 치사량에 피폭된 후에도 끝까지 비행했다. 원자로 아래에 밤낮으로 터널을 뚫던 수많은 광부들은 그들이 믿는 나라의 부름에 보호장비 하나 없이 작업을 했고 죽어갔다. 하지만 이들의 이름과 글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체르노빌을 둘러싼 거짓들 속에서 그들은 또 한번 죽었다.

‘‘우리 마을에는 묘지가 세 개 남아있다.‘‘

첫번째 묘지는 사람이 묻힌 오래된 묘지고 , 두번째 묘지는 우리가 버려 총살당한 개와 고양이, 세번째 묘지에는 우리집이 묻혀있다.

‘‘우리는 집까지 장사 지냈다.‘‘

그들의 목소리, 지금도 인정하기 싫은 시간들
누구를 욕하고 원망해야 될지도 모른다.
방사선에 피폭되어 ‘체르노빌레츠‘로 지내는 지금의 시간에도 여전히 오염된 땅에 살면서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매우 자연스럽게 차려진 실험실‘‘이라 말한다.

지금의 우린 급변하게 발전하는 과학의 진보 아래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산다. 시대의 진보가 어느새 너무나 당연해지고 익숙해져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에 숨어 있는 이면들을 볼 수 없을때가 많다. 낯익은 세상이 언제 낯선 세상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가동중인 원자로 개수가 총 24개이다. 국제원자력기구자료에 의하면 보유 원자로 개수와 발전량 모두 세계6위의 규모다. 하지만 더 무서운건 원전 밀집도가 세계1위 라는 것이다.
체르노빌, 후쿠시마의 폭발로 인한 핵구름은 누구의 문제로 국한될 것이 아니라 인류전체의 문제일 것이다.
언제, 내가 누리는 낯익은 익숙한 것들이 낯선 공포로 세상을 바꿀지 모른다.
분명한건, 절대적 안전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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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6

우리가 정녕 코스모스와 겨루고자 한다면 먼저 겨룸의 상대인 코스모스를 이해해야 한다. 여태껏 인류가 멋모르고 부렸던
우주에서의 특권 의식에 먹칠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코스모스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자신의 위상과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주변을 개선할 수 있는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른 바깥세상이 어떠한지 알아내는 것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도움을 준다. 
우리의 행성 지구가 우주에서 중요한 존재로 남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와 던져진 질문에 대한 깊이 있는 답변만이 우주에서 지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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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
"히트러가 권좌에 앉은 것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지도 못했고 우리를 경악시키지도 못했어요."

- 아렌트의 말은 1933년 역사적인 비극의 결말을 아는 요즘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 당시 많은 유대인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히틀러가 권력을 쥐고 히틀러의 성공은 역사적으로 나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겐 정치적 사건이 개인적인 사건으로 다가오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오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정치적 사건이 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전향, 단시간에 많은 이들이 대단히 짧은 사이에 처자시을 먹여 살린다는 경제적 명분으로 나치즘을 도왔다. 아렌트는 여기서 히틀러에 대한 신념을 날조했다고 말한다. 그들이 고안해낸 신념의 덫, 당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아렌트는 이때까지 당시 상황을 그리 명확하게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녀가 지식인 사회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
"어떤 사람이 유대인이라서 공격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옹호해야 한다. 독일인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인권의 지지다로서가 아니라, 그 외의 그 무엇으로서가 아니라."p46
유대인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시오니스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었다.
나의 문제가 정치적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그녀 독일에서 태어났다는 현실, 그 모든 개인적 문제가 정치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적으로 유대인과 관련된 연구에 종사하고 싶었던 그녀.
p49
"독일어는 나한테 남아 있는 본질적인 요소고, 내가 항상 의식적으로 지켜온 언어예요."
본질, 역사적으로 미치광이가 돼버린 것은 독일이지 독일어가 아니었다는 그녀의 말. 히틀러 이전의 유럽 그 시대르 그립지 않다. "무엇이 남아 있는냐고요? 언어가 남아 있어요."p48
결정적인 시기, 아우슈비츠에 관해 알게 된 날.
"이건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에요."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1945년 그녀의 저작 대부분이 이시기에 출판된다.
상황이 다시 정상 궤도에 돌아온 지금 아렌트의 독일은
"나는 이제 바깥에서 상황을 봐요. 내가 그 시절의 나보다 상황에 훨씬 덜 관여하고 있다는 뜻이에요."p53
미국에서 출판된 아이히만 재판을 다룬 책은 유대인들 측에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이히만을 어릿광대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말한다. 360페이지나 되는 아이히만의 조서를 보면서 폭소를 터뜨린 것, 이런 반응을 나쁘게 받아들인 것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대해 어쩔 도리가 없다. 비난을 감당할 마음이 준비되어 있냐는 질문엔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고 말한다.
"당신이 옳아요. 무엇이 정당한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논의의 대상으로 열려 있다." p62
사실적 진리, 역사과학은 실패
한나 아렌트는 현대사회의 특유한 현상으로 대중의 뿌리 상실과 고독, 그리고 단순노동과 소비의 과정에서 만족감을 찾아내는 인간 유형의 승리를 지적한다. <인간의조건>
"모든 사유는 뒤늦은 사유" 그렇게 때문에 개인의 경험 없이 가능한 사유 과정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인간은 노동하고 소비하는 동안에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해요."
"노동하는 과정에 중에 독특한 고독이 생겨나요."
"인간성은 혼자 힘으로 절대 획득되지 않으며, 누군가 자신의 작업을 대중에게 바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인간성은 자신의 삶과 존재 자체를 '공공영역의로 향하는 모험'에 바친 사람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p70

-아이히만은 터무니없이 멍청했어요. p73

1964년 11월 9일 독일 SWR텔레비전의 프로그램<다스 테마>에서 나눈 대화이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분석하면서, 아렌트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라는 점에서 동의하지만 단서를 달고 싶다고 말한다. 대개 범죄자를 떠올릴 때 범행 동기가 있는 사람을 떠오린다. 하진 아이히만은 실제로 아무 범행 동기가 없었다. 그저 나머지 사람들에게 동조하기를 원했고 우리라고 말하고 싶어했다. 이 두가지 이유만으로 역사상 가장 최악의 범죄가 자행된다는 것 .
남들에게 동조하는 것- 혼자 있을 때의 무기력이 함께 행동하는 데서 유발되는 권력의 느낌, 그 자체로는 절대로 그릇된 게 아니다. "그건 인간이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이다. 그렇다고 선한 감정도 아니다. 그냥 중립적인 감정이다."p76
보편적인 인간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악의 평범성,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평범함하면 흔하다 생각하지만 아렌트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고, 우리 각자는 아이히만과 같은 측면으 갖고 있다는 말을 하려던 게 절대 아니에요. 내가 하려던 말은 오히려 그 반대예요! "알지 못하는 멍청함에는 정말로 터무니없는 게 있다.
"아이히만은 완벽하게 지적아었지만 이 측면에서는 멍청했어요."
아렌트가 말하는 평범성이라는 말의 의미, 아이히만의 행동에는 그 어떤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길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
칸트의 윤리학, "다른 모든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력, 이런 종류의 멍청함. 아이히만의 평생 라이트모티프는 순종. 매사에 동조될 준비가 돼 있었다. "권위라면 그게 어떤 종류건 실현 가능한 한계까지 슌종할 준비가 돼 있었다는 거죠."
책임, 재판에 회부할 때 그들에게 그 일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권리가 있다." 우리가 아니라 나라고 말하는 것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뜻하는 , 아이히만이 공무원으로서의 순종적인 시간은 한 개인이라는 인간은 없었다. 전체주의적 상황에서 영웅적인 행동을 기대할 수 없지만 그들은 범죄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따금 범죄를 방조한 사람들일 뿐. 여기서 우리는 범죄를 구경만 했더라도 유죄라는 것 .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자기 안의 타인" 사유
"멈춰서 생각해보라(stop and think)"
p105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것보다더 많이 이런 것들에 영향을 받아요."

<넛지> 에 나오는 집단 동조, "개를 보고도 고양이라 말하는 이유"
독립적 사고, 혼자 결정을 내리라고 요구했을 때는 오류가 적지만, 다른 사람들이 틀린 답을 내놓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의 1/3이상이 틀린 답을 내놓았다. 이러한 동조 실험, 실험에 참가한 사람의 20~40%라는 비율(해당 과제가 매우 단순했음에도 불구하고) 을 나타냈다. 강력하게 넛지를 당했다는 의미다. "만장일치로 의견이 수렴되는 집단은 가장 강력한 넛지를 가할 수 있는 셈이다." <넛지p95>

p105
우리가 말하는 진실이 한쪽에서는 어떤 정당한 이해관계와 갈등하고 다른 쪽에서는 대중의 감정과 갈등하더라도 우리는 진실을 말해야 마땅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아렌트의 답은 사학자들 그 시절을 살았고 그 시절에 독립적인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 그들은 사실적 진리의 수호자가 될 필요가 있다.
정당한 감정, 아렌트의 말이 다른 이해관계에 방해가 되고 정당한 이해 관계에서 본질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통해서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상처를 줘 왔다. 그래서 여기서 가져야 할 정당한 감정은 슬픔이다. 하지만 이걸 이해하는 사람이 무척 드물다. 자신이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사용하는 반어법에 대한 모든 비판 취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대단히 불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개인의 문제, 나는 도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한 존재일 것이다.그렇지만 나는 여기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식으로 자길 드러내는지 그들 스스로는 모른다. 자신의 책<예루살렘 아이히만>이 독일에서 출판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우려에 대한 답변으로 인터뷰는 끝낸다.

p111
-정치와 혁명에 관한 사유, 하나의 견해/ 그의 저서<공화국의 위기>
(이 인터뷰는 1970년 여름, 독일 작가 아델베르트 라이프와 나눈 대화)
어마어마한 사회적 욕구,
P114 공적행복,
"공적 행복이란 사람은 공적인 생활에 참여했을 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에게 닫힌 채로 남았을 인간적 체험의 차원을 혼자 힘으로 열어젖힌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여러 면에서 완전한 행복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것을 뜻해요."

제3세계, 그들이 공유하지 않은 무수한 것들을 간과하고 그들이 공유하는 게 다른 세계와 대비할 때에만 존재하는 차이점일 뿐이라는 사실. 모든 것은 그저 관점에 따른 문제로, 논리적 오류가 있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와 식민국을 구분하는 데서 받아들인 제 3세계의 구분
p124
"모든 표어에 곧이곧대로 속아 넘어가는 것, 사유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나 현상을 실제 있는 그대로 보길 꺼리는 것, 사유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나 현상을 실제 있는 그대로 보길 꺼리는 것, 현상을 마땅히 분류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현상마다 알맞은 범주를 적용하지 않는 것 등. 바로 이게 이론적인 무력함을 이뤄요."

아렌트는 우리가 역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는 확신하지 않는다고 한다. 늘 새로운 내용으로 꾸준히 우리와 대면하는 역사 속에서 학습해야 하는 마땅한 것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에서 현실을 역사적 인식으로 심사숙고하는 수고를 감당하는 사람을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의혹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체제 경쟁은 단순히 경제 시스템만 놓고 벌이는 경쟁이 결코 아니에요."P141
"자유라는 용어는 항상 '반대할 자유'를 의미해요."
자신의 눈앞에 단 한 가지만 집착한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폭력론>
"권력의 쇠퇴는 하나같이 폭력을 동원할 명분을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권력을 움켜쥐었지만 그게 자기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그걸 폭력으로 대체하려는 유혹에 저항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늘 알아왔기 때문이다."
권력을 상실한다는 것이 어떠 의미인지에 대해?
"대의정부를 가진 모든 공화국에서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
우리가 권력 상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건 사람들이 투표한 관리들이 하는 일에 대한 동의를 철회했다는 의미, 국민이 부여한 힘을 그들은 망각한 채 자신의 권력으로 채운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도리 없이 완력에 의지하기 시작한다. 전환점, 아렌트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예를 들어 이야기 한다. 베트남 전쟁은 실제로 미국 국민을 분열시켰고 신뢰를 상실했다. 그 결과 권력의 상실을 초래했다.
"사회적으로 하층계급은 민족주의와 쇼비니즘, 제국주의적 정책에 특히 민감해요." P149
정치적 행위,
우리에게 주어진 투표용지, 투표부스는 딱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거기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종을 받는 유권자나 다름없지만 우리 중 열 명만 테이블에 둘어앉는다면, 각자가 의견을 표명하고 나들 의견을 듣는다면 합리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고 아렌트는 말한다.P158 그러면 우리를 대표할 적합한 사람이 누구일지 명확해질 것이고 우리의 관점이 다른 관점들의 영향을 거치면서 명확해거나 수정되거나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공적인 사안과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개입이 당위성은 없지만 그들에게 기회만큼은 각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새로운 국가 개념을 형성할 가능성을 이 방향에서 본다고 말한다. 매우 다양한 종류의 연방에 적합할 것이며 이런 국가에서는 권력이 수평적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본다. 실현될 가망에 대해서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다음 혁명의 결과로 생겨날 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P161 마지막 인터뷰
(1973년 10월, 프랑스국영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의 프로그램<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나눈 대화, 인터뷰어 로제 에레라)

한나 아렌트를 만나며 /로제 에레라
인터뷰는 뉴욕에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 정세는 중동에서 10월전쟁(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참이었고, 미국에서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시작됐다.(1974 닉슨 대통령의 탄핵 위협을 받은 끝에 사임)
많은 주제를 논의하고 녹화한 필름을 50분짜리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1974년 봄에 방송됐다. 그녀는 1975년 12월 4일에 세상을 떠났다.
아렌트가 1941년 미국에 도착해서 받은 주된 인상,
미국은 토박이가 없다. 원주민 인디언들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시민이고 이들은 딱 한 한가지 미국의 헌법에 동의한 미합중국 시민이다. 헌법이라는 토대에서 이질적인 소수민족들과 지역들을 하나의 연방으로 묶어내고, 여전히 연합을 유지하면서 각각의 차이점을 완전히 흡수하거나 차이의 강도를 줄여 평준화한다고 말한다. 외국인 입장으로 이 상황을 이해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 인간에 의한 정부가 아니라 법에 의한 정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엄청난 실수예요." 레종데타, 국가이성 대통령이 하는 일이 무엇이건 그는 국가 안보를 위해 그 일을 했다는 거예요."P169 국가 안보라는 사안은 유럽에서 수입해 온 것이다. 그런데 국가이성이라는 것은 미국의 독립혁명이 깨부수려고 의도했던 정확히 그 유럽적인 유산이에요.
역사적 결정론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 "미래는 현재 만들어지는 중이다. "
"사람들은 두려워해요.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해요.
그게 개인의 주요한 동기 중 하나예요."
미국적인 태도 , 그들이 설령 그릇된 길로 들어섰더라도 사태가 여전히 괜찮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렌트는 자신은 명확한 정치철학이 없다고 말한다. "어느 곳에서건 우리가 과거 경험과 사유를 나름껏 취하는 데 전적으로 자유롭다는 뜻이에요."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거예요."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나는 사유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말할래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존재, 유대인들의 정치적, 심리적 맥락을 어떤 방식으로 바꿔놓았나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고 생각한다.
유대인은 유대인의 법을 따르는 유대인으로 존재하길 절대로 멈추지 않아요. 누군가의 유대인의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는 한 그는유대인이다. 유대교는 종교라기보다 생활방식에 더 가까워요"

<전체주의의 기원> 전체주의란?
무고한, 죄를 지은 적이 없는 희생자 역할이 특징이다.
예루살렘 아이히만 책은 관료제를 공격했다는 점에서 논란.
나치즘 문제를 다룬 문학작품에서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소설적인 방식으로 그리면서 인간적으로 묘사하려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서 그들을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의미가 있는지?
의미 작용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런 작품은 한번 일어난 일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요. 나는 이게 전적으로 옳은 말이라고 믿어요. 역사적으로 전제정치에서 보여준 폭군 네로와 칼리쿨라의 경우 세상은 전제정치의 정권을 적으로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아내지 못했다.
"정치 과정에서 범죄가 대규모로 일어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주는 훨씬 상세한 예시를 막지 못했죠"P195
인텨뷰의 마지막 답변이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 사유와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정치의 중요성을 , 자유의 소중함을 우리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올바른 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우리 자신이 정치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초래할지는 히틀러의 등장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한 선택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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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신저스(Passengers)


2016 년, 감독 모튼 틸팀

승무원 258명, 승객 5000명을 태운 우주 수송선 아발론 호는 새로운 식민 행성, 홈스테드2의 새로운 삶을 위하여 아주 오랜 여행을 시작했다. 무려 120년의 여행 후 도착 할 목적지에서 만들어 갈 그들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 된 것이다. 지구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동면 상태로 120년간의 우주 여행, 그리고 맞이할 새로운 행성에서의 새로운 삶은 두려움보다는 희망에 찬 모험의 기대가 컸을 것이다. 호화스런 우주 수송선에 탑승한 승객들 또한 다양한 직업군과 그들만의 사연을 지녔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장거리 우주 여행을 가능하게 한 비용 지불 능력에 따라 동면 상태에서 깨어나면 주어지는 기내 환경은 비행기의 비지니스석과 마찬가지로 그들만의 특권이 부여된다.

이렇게 꿈에 부풀어 긴 여행길에 오른 그들은 외부의 어떠한 상태도 인지하지 못한 채 동면 상태로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것이다. 하지만 늘 복병은 생기기 마련이다. 이들의 여행도 예상치 못한 운석 충돌로 인해 피해를 입고, 정말 운 나쁘게도 5000분의 1의 확률에서 불행을 쥐고 강제로 동면 해제를 맞이해야 하는 이가 생긴다. 목적지까지 90년을 두고 깨어난 엔지니어 짐 프레스턴이다. 더 나은 제 2의 삶을 위해 지구보다는 새롭게 시작하는 식민 행성에서 자기의 역활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동면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에게 닥친 운명은 목적지를 향하는 조용한 수송선에서의 삶이었다. 외로운 1년의 시간을 절망적으로 보내면서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동면 상태의 한 여자, 오로라를 보게 된다. 작가인 그녀의 프로필과 잠든 그녀의 작품을 읽으면서 어느새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녀를 깨우고 싶은 욕망은 결국 그녀를 깨우게 된다. 원치 않은 동면 해제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그녀는 그와 사랑하는 관계에 놓이게 되지만, 행복감도 잠시 자신이 짐 프레스턴에게 강제 동면 해제 된 것을 알고 그를 죽도록 원망하게 된다.

그가 생각한 목적지와 이미 틀어져 혼란스러울 때, 둘이라는 점은 큰 의지가 되었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그에게 오로라의 배신감과 증오감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동반자다. 그들 앞에 놓인 위기는 배신감 이전에 ‘운명‘일지도 모른다. 정말 운 없는 남자와 그녀를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한, 용서하고 싶지 않은 남자는 위기에 빠진 수송선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희생한다. 그로인해 그녀와 5000명 이상의 승객들은 안전하게 목적지를 향할 수 있다. 그가 없으면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 또한 그의 목숨을 살린다.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진 삶이 결코 잘못된 길의 여행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에 닥친 수송선, 침몰하는 수송선의 수많은 승객들을 위해 그들의 운명은, 다시 인정하며 주어진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긴 여행의 목적지까지 같이 가야 하는 운명 공동체였다. 비록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들은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남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가 목적지에 도착한 그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자신들이 타고 왔던 수송선의 파란만장한 시간을 알 게 될 것이다. 기나긴 여행 길에서 만난 행성들의 아름다움과 수송선 안에서의 많은 시간들을 경험할 것이다. 그들이 지구에서 처음 올랐던 수송선은 전혀 달라진 상태로 그들에게 다가 올 것이다.

영화 마지막 구절
˝ 다른 곳만을 너무 바라보면 지금 주어진 걸 누릴 수 없다.
우린 우주의 미아 같은 존재였조, 하지만 그를 만나 새로운 삶을 찾았어요.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삶을...˝

120년 뒤의 새로운 삶을 위해 떠났던 그들은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면서 동면에 들어갔을 것이다. 나에게 120년 뒤 새로운 삶을 위해 동면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나의 소심함은 지구에 남을 것이다. 오로라의 친구의 말처럼 꼭 대단한 삶이 아니어도 괜찮다. 지금 내 앞의 있는 시간을 뒤로하고 지구를 떠날 수 있는 용기도 없지만, 지금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나에게는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억세게 운 나쁜 남자와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된 삶에 놓인 여자는 어찌보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의 삶일지도 모른다.
‘왜 하필 나일까‘라는 운명의 저주에 한숨 짓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참, 예측 불허의 스펙터클한 시간이기 때문일지도.

<코스모스> 칼 세이건의 말이 생각나는 영화

˝ 인류는 지구 바같으로 나가서 우주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한 점 티끌 위에 살고 있고 그 티끌은 그저 그렇고 그런 별의 주변을 돌며 또 그 별은 보잘 것 없는 어느 은하의 외진 한 귀퉁이에 틀어박혀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의 존재가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칼세이건의 말처럼 영겹의 시간들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 속에서 찰나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영화가 말 해주는 것 같다. 먼 곳만 바라 보면서 내 눈 앞에 놓인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희망적인 새로운 삶이 결코 이상적인 곳을 향하는 것만이 아니라고. 내가 생각하는 가치있는 삶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나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
내가 SF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스펙터클한 스케일도 있지만 나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각시켜 준다는 점이다. 가끔 나에게 철학이 필요할 때 그 철학적 사고를 약간이나마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도 절망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별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들의 삶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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